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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May 27. 2024

12. 천하제일의 맛을 찾아라!

팡/시에? 진짜 천하제일의 맛은...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먹거리는 무엇일까? 음, 너무 바보 같은 질문인가? 하긴, 사람마다 입맛도 다르고 먹어본 것도 다를 테니 정답이 어디 따로 있겠어? 그럼, 방향을 살짝 바꿔볼까? 아름다운 먹거리, 즉, 미식美食이란 무엇일까? 그것도 마찬가지네, 뭐! 그렇군. 이것도 정답이 따로 없겠군. 에이, 몰라! 좌우지간에 소오생 버전으로는 뭐가 제일 맛있다는 얘기인지, 그 이야기를 한 번 들어 보시라, 이 얘깁니다!     



아름다운 먹거리, 천하제일 별미는?



배고픈 생각 : ‘아름다움’이란 ‘포만감’이다. 여러분은 초대받아 남의 집에서 식사를 마치면 무슨 말을 하시죠? “잘 먹었습니다!” 우리말은 어영부영, 맛있어서 잘 먹었다는 것인지, 맛은 별로지만 배불러서 잘 먹었다는 것인지 애매모호, 잘 알 수가 없다. 중국말은 확실하다. “츠(→)바올(↓)러(↑)! 배불리 먹었어요!” 초대받았는데 다 먹고 나서 이 말을 안 하면 큰 결례다. 보나 마나 먹거리가 부족한 북방에서 나온 말이 틀림없다.


츠(→)바올(↓)러(↑)! 吃飽了! 잘 먹었습니다~ ^^


여기서 한자 공부 하나 해보자. ‘아름다울 미美’는 ‘양고기 양羊’과 ‘클 대大’ 자의 합성어. 일전에 @매미 작가님이 '아름다움'의 뜻에 대해 궁금해한 적이 있는데, 한자 문화권에서의 '아름다움'이란 ‘커다란 양’이라는 말에서 나온 개념이었다. 그 이유가 뭘까? 양은 주로 유목민들이 초원에서 키우는 동물. 농경민족이 아닌 유목민들에게는 고정된 먹거리가 별로 없었다. 토끼, 사슴, 멧돼지, 야생마 등등 산짐승 들짐승들이 있지만 그런 먹거리는 사냥을 해야 먹지, 아무 때나 배고플 때 늘 먹을 수 있는 먹거리는 아니었다.


사연이 그러하니, 먹거리 부족한 척박한 북방 지역의 환경 속에서 배고플 때 언제든지 잡아먹을 수 있는 양은 당연히 재산목록 제1 호, 너무나 소중하고 너무나 예뻐 보인다. 야, 너 커다란 게 아주 먹음직스럽게 생겼구나. 고거 참 아름답네!


이렇게 ‘미식美食’에 대한 초기 개념은 주린 배를 채우고 포만감을 느끼게 해주는 ‘풍성한 먹거리’였다. 옛날 ‘미녀美女’에 대한 개념 역시 ‘풍성한 여인’ 아니었던가! 당나라 때 미녀는 몸매가 아주 '풍성한' 여인이었다. 그래서 양귀비도 몸매가 아주 풍성했다는 사실을 아시는가?


아이구, 옆집 새댁은 어깨가 떡 벌어져 일도 잘하지, 엉덩이도 푸짐해서 쑥쑥쑥쑥 애도 잘 낳지, 월매나 예쁜지 몰라! 근데 아가, 넌 왜 이 모양이냐? 허리는 개미허리에 온몸이 버들갱이 같으니 저런 걸 뭐에 써 먹을려노, 엥이, 쯧쯧!


서안에서 출토된 당나라 여성들. 한결 같이 몸매가 풍성하다. 당나라 여인들은 사람마다 자신만의 다양하고 기발한 헤어스타일과 화장법을 사용했다. 농염하고 화사하면서도 당당함과 의젓함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모습들을 보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다. 중국의 여성과 여성성은 소오생이 가장 써보고 싶은 글쓰기 테마 중의 하나다.




배부른 생각 : ‘아름다움’이란 ‘진귀함’이다. 사자성어四字成語로 진귀한 먹거리를 일러 가로되, 용간봉수龍肝鳳髓라! 우르릉 꿍꽝 번개 칠 때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내어 구름 타고 승천하는 드래곤의 간땡이와, 오색찬란 황홀한 후광 받고 나타나는 전설 속의 상서로운 불사조, 동방의 피닉스 봉황의 머리 골수骨髓에 비유했으니, 그 월매나 구하기 힘들고 오죽이나 진귀한 먹거리를 두고 이르는 말이겠는가!


옛날에는 우리나라에서 바나나 구경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아, 바나나 한 번 먹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원숭이 똥구멍은 빠알개! 빨간 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는 건 바나나... 노래를 부르면서 침을 질질 흘리면서, 누구나 바나나 생각으로 안타깝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대만으로 유학 가니 바나나가 지천이네? 이야, 신난다! 탄성도 잠깐, 무더기로 쌓아놓은 바나나를 쳐다보고 있노라니 먹고 싶은 생각이 싹 가신다. 엇, 근데 왜 갑자기 고향 땅의 시큼 달콤 사과하고 시원~한 배(梨) 생각이 떠오르는 거지? 아, 사과 먹고 싶어! 대만 사과는 대체 왜 이렇게 퍽퍽한 거야? 오, 간사하고 간사한 인간이여!


나처럼 ‘동전 땡전’과는 담 싸놓고 지내는 사람의 심정이 이러하니, 등 따습고 배부른 부자 나으리들이야 오죽하시겠는가! 이 눔들아! 어서 빨리 돈뭉치를 들고 가서 용간이나 봉수를 구해 오라! 나으리, 나으리, 돈 많으신 나으리,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그런 건 이 세상엔 없는 걸입쇼... 뭬라? 없다? 아니 그럼 이 자식아, 원숭이 혓바닥에 곰 발바닥 표범 탯줄, 하다 못해 제비집이나 상어지느러미라도 구해 와야 될 거 아냐! 어마, 뜨거라! 호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다. 한 마디로 돈은 많은데, 배는 부르다, 이거지!




소오생의 생각 : 여보세요, 위에 계신 두 분의 서로 다른 생각 님들, 싸우지들 마시어요. 자고로 공자님 말씀이 틀린 게 없나이다. 공자님 가라사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지나친 건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고, 조금씩 모자란 건 어떨까요? 지나치게 추구하면 엽기가 된답니다.


그게 무슨 말인고?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보시게. 아주 진귀한 건 아닐지라도 적당히 귀한 것! 완전히 배를 채울 수는 없더라도 적당히 채울 수는 있는 것! 하지만 입안에는 하나 가득 부드러운 향기가 밀려오고, 혓바닥은 낙신낙신, 섬세한 미각들이 춤을 추는 그런 맛있는 먹거리, 그런 걸 ‘미식’으로 삼아보면 어떨까요?


그런 게 뭔데? 비에(↗) 마이(↘) 꽌(→)즈! 그만 약 팔고 빨리 얘기해 보시게! 말씀드리죠. 소생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본 결과,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죠. 그게 뭐냐? 역대 중국의 미식가를 자처하는 문인 양반들이 자기네들 좋아하는 특정 식품마다 상세한 기록을 남겼는데, 아 그게 몽땅 제가 가장 좋아하는 먹거리와 완전히 일치하더라니까요?


아, 그러니까 그게 뭐냐구? 비에/마이/꽌/즈(別賣關子)! 그만 뜸 들이고 빨랑 얘기하라니까? 중국 역대 미식가 문인들이 입을 모아 찬양하던 먹거리, 그러니까 소오생이 제일 좋아하는 먹거리는? 과일, 여지荔枝! 식물성, 버섯! 동물성은? 짠! 갑옷 입은 횡행장군橫行將軍, 방해대원수螃蟹大元帥! 그 아름다운 먹거리를 아십니까?




중국 대륙 미식 세계의 남북 전쟁     



음력으로 구월 시월이면 양력으로는 시월 말에 십이월 초! 산득산득 가을바람 싸늘하게 불어오는 이 계절 이 맘 때가 다가오면, 해마다 중국 대륙 전역에는 치열한 남북전쟁南北戰爭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뭐라고? 전쟁? 대만하고 대륙이 드디어 한바탕 싸움이 붙은 건가? 아아, 너무 긴장하지 마시라. 전쟁은 전쟁이로되, 아름다운 먹거리, 그 미식세계美食世界의 이니시어티브를 주도하고자 일어난 먹거리판 전쟁이니까.


매년 먼저 도발하는 측은 북녘 오랑캐들! 양고기, 오리고기가 화끈화끈 불고기 보병 사단과 따끈따끈 전골 기갑사단을 함께 휘몰고 남방의 상해, 홍콩까지 사정없이 급습한다.


돌격 앞으로! 음메헤헤헤... 꺼억꺽꺽꺽.... <베이(↓)징(→) 카오(↓)야(→) : 北京烤鴨>, 북경 오리구이 왔습니다! <쏸(↘)양(↗)러우(↘) : 涮羊肉>, 양고기 샤부샤부도 왔습니다. 양고기 불고기도 있어요! 아, 글쎄, 한 입 먹어만 봐! 으슬으슬 추울 때는 그저 이게 최고라니깐?


뭬야? 우리 남방 땅 미식의 영토가 지금 초토화되고 있다구? 안 되겠다.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다. 이 놈들, 기다려라! 우리에겐 일당 백, 횡행장군 방해대원수가 계시다! 장군, 어서 갑옷을 입고 출동하시지요! 속히 오랑캐들을 무찔러 주옵소서!


아니, 근데, 장군! 어디로 가시나이까? 왜 옆으로 기어가시나이까? 왜냐구? 내가 원래 옆으로 다닌다네. ‘옆으로 횡橫’, ‘갈 행行’! 그래서 남들이 ‘횡행장군橫行將軍’이라 부르더군. 아니, 그렇다면... 그렇다! 이 분이 바로 남방 미식세계의 횡행장군 방해대원수 ‘게’ 사령관 님이시다.




‘게’는 중국말로 팡(↗)씨에(↘), 한자로는 ‘방해螃蟹’라고 쓴다. 이제 그분의 이름과 별호를 확실히 아시겠지? 우리나라에서도 바로 이 분을 서로 모셔가려고 남과 북이 연평도 앞바다에서 한바탕 치고받고 싸웠으니, 중국의 남방 땅에서 장군님을 앞세워 북벌에 나선 것도 이해가 가시겠지? 장군님의 고향은 상해! 상(↘)하이(↓) 팡(↗)씨에(↘), 온 천하에 이름을 드날린 상해 게의 빛나는 명성을, 스치는 바람결에나마 들어보셨겠지?

남방 미식세계의 자존심을 걸고 출정하는 우리의 횡행장군께서는 그까짓 보병 기갑 사단이 문제가 아니다. 막강한 화력 지닌 비행 사단의 지원을 받아 북방 미식세계의 영토를 초토화하기 시작하셨으니까. 아니, 옆으로 기어 다니시던 분이 어떻게 비행기를? 그 사연이 궁금하니, 여기서 잠깐 비행기와 인연을 맺게 된 장군님의 지나온 발자취를 돌이켜보자.



1 단계, 중국 개방 전 : 횡행장군이 최초로 전투기 몰고 공습에 나선 곳은 남방의 홍콩! 대륙 땅에 오지 못했던 대만의 미식가들이 발을 동동 구르다가 그곳에서나마 장군님의 존안尊顔 뵙고 위안을 삼았던 시절.


2 단계, 중국 개방 초기 : 방해대원수 옥체玉體께서 행여나 다치실까, 충성스런 해외의 미식가 신하들이 아예 직접 비행기 타고설랑 장군님 생가를 찾아와 알현하게 된 시절.


3 단계, 오늘날 매년 초겨울 : 허구 헌 날 불고기 사단 전골 부대 횡포에 입맛이 질려버린 북녘 땅의 동포들, 장군님 대원수님, 이 땅의 미식세계 영토도 제발 좀 확장시켜 주사이다, 열화와 같은 요청에 다시 한번 횡행장군, 전투기 몰고 친히 나서 양고기 오리고기 평정에 나섰는데, 하늘 나는 쌕쌕이의 막강 화력 지원까지 갖췄으니 장차 천하 제패가 조만간의 일이로다!



장군님, 아니 선생님! 역시 불구경이랑 싸움 구경은 정말 재밌네요. 근데요, 양과 오리가 겨울철에 불고기 사단 전골 부대 지원받아 남침하는 이유는 얼른 짐작이 가는데요, 왜 횡행장군님은 초겨울이 되어야만 북정北征에 나서는 거죠? 무슨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는 건가요? 


이야, 선비는 삼일이면 괄목상대刮目相對라더니, 너 정말 일취월장日就月將, 하루가 다르구나! 대체 네 싸부님이 뉘시더냐? 음, 내가 너무 오버했나? 아무튼 그 예리한 질문에 점수 이점 플러스, 찰카닥찰카닥! 하지만 그 사연을 말하자면 먼저 정확하게 상해 게의 정체부터 알고 있어야 하느니!




천하제일 먹거리, 상해 게의 정체  



찬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며~언, 해마다 상해에서는 거리마다 커다란 음식점 앞 대형 수족관 안에서 보는 이의 입맛을 자극하는 축제가 벌어진다. 수많은 게, 게, 게!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게 들이 로맨틱한 멜로디를 배경으로 상하이 블루스, 집단 댄스파티를 벌이는 것이다.


대부분 십중팔구 양자강 어구에서 무더기로 그물에 올라온 상해 게들이다. 그러나 이런 상해 게는 진짜 오리지널이 아니다. 예로부터 천하에 명성을 드날린 오리지널 방해대장군은 양징호陽澄湖 대갑해大閘蟹! 상해 서쪽 서너 시간 거리에 있는 곤산崑山 땅의 해맑은 호수 물에 사는 민물 참게다.

양징호의 위치: ①의 지점이다. 아래는 양징호의 풍광.


양징호 대갑해는 보통 상해 게와 생긴 것도 다르고, 값도 물론 다르다. 부세 조기와 임금님 수라상에 올라가는 영광 법성포 굴비의 차이랄까? 백두산 호랑이 이마빡에 임금 ‘왕王’ 자 새겼듯이, 푸르뎅뎅 등껍질에 황금빛 ‘공公’ 자가 선명하니, 우선 그 품격부터 다르다. 배때기를 뒤집어서 진흙을 닦아보면, 점 하나 볼 수 없는 순백純白의 맑은 기운이 그 고결한 품성을 말해준다. 그뿐인가, 집게다리는 샛노라니 황제의 기상이 선연하다. 결정적인 것은 털! 사자의 위엄은 사자머리 갈기에서 풍겨나듯, 대갑해 민물 참게의 위용은 황금 다리에 달린 기나긴 황금 털에서 비롯된다.

힘은 또 항우장사라. 매끄러운 유리 위에 올려놓으면 보통 게는 힘을 쓰지 못하는 법. 그러나 양징호 대갑해 횡행장군이 누구신가? 황제들도 찬탄해 마지않던 방해대원수가 아니신가! 여덟 개의 다리에 힘을 주고 벌떡 일어서서, 조자룡의 장창長槍인 듯 가위 같은 두 개의 집게다리 허공에 세워놓고, 돌격 앞으로! 아니, 참, 돌격 옆으로! 순식간에 횡진橫進하는 그 모습이 참으로 위풍당당하기 그지없다. 이것이 진짜 양징호 대갑해다.

 

이야, 정말 횡행장군 방해대원수의 호칭을 들을 만하군요. 근데 왜 하필이면 양징호에서 나온 것만 그런 거죠? 그 이유가 또 있지. 우선 양징호 호수 물은 수질이 기막히게 좋단다. 남녘 하늘 염제炎帝의 뜨거운 햇볕이 벽옥 같은 물속을 그대로 투과하여 게 껍질에 따끈따끈 쏘여주니, 그 아니 발육에 좋겠는가! 거기다가 결정적인 것은 호수 바닥이 평평하기 이를 데 없다는 사실, 그것이 중요하다.


옆으로 실실 기어 다니는 게들이 먹거리 찾기에는 최적의 환경! 또 거기다가 수초는 무성하여 소라 · 우렁 · 새우들이 득시글득시글, 먹성 좋은 중국 사람 중국 땅의 중국 게답게 마구마구 먹는단다. 아,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는 먹거리여! 강남땅 해맑은 호수에 사는 참게들의 창자는 너무너무 행복하다. 또 또 거기다가 환경 조용하지요, 분위기 쾌적하지요, 정말 게 주택 단지로는 천혜의 입지구나!


사연이 그러하니, 게 뚜껑을 열어보면 빽빽하니 가득 찬 속살에 시각이 먼저 행복해지고, 꽃향기 풍겨오는 노오란 알 냄새에 후각도 덩달아 호사를 누리는데, 속살에 노란 알을 입안에 한 입 넣어보면 쫀득쫀득 사르르, 아, 황홀한 미각이여, 황제가 안 부럽다! 양성호陽城湖 게가 아니라면 내가 소주蘇州 땅에 살 이유가 어데 있을까 보냐! 그리하여 예로부터 돈 많은 중국 부자, 소주 양주 강남땅에 모여 살았다는 그 얘기다.

   

선생님, 근데요, 아까는 곤산崑山 양징호라더니 지금은 왜 소주 양주 술 이름에 양성호陽城湖라고 말을 바꾸시는 거예요? 예끼, 인석아. 선생님이 말 바꾼 게 아니라 네 녀석이 상식이 부족한 게야. 양징호나 양성호나, 진(→) 라오(↓)쓰(→)나 김 선생님이나, 똑같은 이름 아니더냐! 그리고 지금 술타령 하자는 얘기가 아니고, 소주蘇州 · 양주揚州는 예로부터 이 동네, 강소성江蘇省을 대표하는 곳이니, 양양 설악산이냐 속초 설악산이냐, 지금 행정구역 소속을 따지자는 이야기가 아니지 않겠느냐?

오월동주吳越同舟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사자성어다. 월越나라는 항주를 지칭하고, 오吳나라가 바로 소주蘇州다. 미녀 서시西施의 고향 소주는 물의 도시, 정원의 도시다.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진 탑도 있다. 중국 속담에 "하늘에는 천당이, 땅에는 소주 항주가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맛있는 먹거리가 풍부하고 아름다운 도시들이다. 중국 음식문화는 이 지역에서 또 한 단계 위로 발전한다. 사진은 모두 소주의 풍광들.




여기서 잠깐 우리의 상식을 풍성하게 만드는 지리 공부 한 토막! 중국에서 가장 긴 강은? 헤헤, 그거야 저도 알죠. 중국을 상징하는 황하! 맞죠? 야, 넌 선생님 수업 시간에 뭘 들었냐? 으이그, 창피해. 선생님, 죄송해요. 제가 얘 대신 사과드릴 게요. 양자강, 맞죠? 어이구, 그래 그래, 반은 맞았으니 맞은 걸로 치자꾸나.


중국에서 가장 긴 강은 장강長江, 모르는 사람은 고걸 양자강揚子江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이 강 이름은 정말이지 개판 오 분 전이다. 우선 한자부터 잘못 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 [ ‘楊’子江 ]은 그래도 나은 편, 양자 물리학 시간도 아닌데 [ ‘陽’子江 ]이 뭐란 말이냐?


아무튼 장강의 전장全長은 무려 6,300 km! 전 세계적으로도 랭킹 3위의 길고 긴 강인지라, 곳곳마다 구비마다 이름도 가지가지. 청해성 발원지를 유유하게 흐를 때는 타타하沱沱河요, 손오공이 건넜다는 통천하 通天河를 지나서, 운남성을 향하여 일로 남진할 그 당시에는 이름도 아름답다, 금빛 모래 금사강金沙江... 등등등등 수없이 많은 이름 거치면서 동쪽으로 흐르다가, 마침내 이곳 강소성 양주揚州 땅, 남북대운하와 엇갈리는 그곳부터 바다와 만나는 하구의 그 일대를, 양주의 이름 따서 양자강揚子江이라고 부르는 것이란다.

그런데 20 세기 초, 중국 땅을 수탈하러 여기에 몰려든 '코쟁이 제국주의자'들이 그 사연을 모르고, 길고 긴 강 장강의 이름이 몽땅 양자강인 줄 착각한 채 자기네들 지리책에 고 따위로 이름을 올렸다는 한심한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는 또 그 사실을 모르고 이번엔 아예 한자까지 엉터리로 바꿔가며 楊子江, 陽子江 하니, 어이그, 참으로 따따블로 한심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소오생이 여기서 왜 갑자기 양자강 타령이냐? 그게 다 이유가 있다. 가을바람 불어오면 게 다리가 근질근질, 민물 참게 횡행장군께서는 매년 이맘때면 맑은 호수 밑바닥 인생을 정리하고 양자강의 물결 타고 바다로 외출을 나가신다. 참게 장군 바람났네! 화려한 외출, 그러나 알고 보면 죽음으로의 슬픈 외출이다.


참게는 회유성 동물이다. 매년 음력 9, 10월이면 바람난 참게들은 양자강 어구의 민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서 교배하여, 산란의 의무를 마친 후에 하늘나라로 떠나신다. 그리고는 그다음 해 봄에 부화된 새끼 게들이 역류하여 호수로 돌아가서 생활하는 것이다. 그것이 민물 참게 방해대원수의 아름다운 일생이다.


그러므로 양자강 하구에서 무더기로 잡아 올린 게들은 각지에서 외출 나온 바람난 참게들이다. 9월엔 바람난 암컷, 10월엔 발정된 수컷이 맛있다니, 그 사연은 무엇일까? 소오생도 궁금하다. 아무튼 초겨울이 되어야만 상해 게가 맛있는 사연은 바로 거기에 있다. 다른 때는 거의 잡히지도 않을뿐더러 잡혀봤자 알도 없고 속살도 퍽퍽하여, 에이 뭐 이래? 입맛만 버리기 십상인 것이다.


어때? 이제 왜 초겨울이 되면 전 세계 미식가들이 횡행장군의 존안을 알현하러 상해를 찾아 나서는지, 왜 방해대원수께서는 초겨울이 되어야만 북녘 땅에 용맹을 떨치시러 원정에 나서실 수 있는 건지, 그 이유를 알겠지?


상해 게 시즌은 그래서 일반적으로 10월 경부터 이듬해 1월까지를 친다. 혹자는 그중에서도 원소절 간등해看燈蟹를 최고 상등품으로 친단다. 아니, 2월 말이면 양자강 하구의 횡행장군께서는 이미 황천길로 오르셨을 텐데, 그건 또 무슨 얘기? 알고 보니 이런 쯧쯧! 초겨울에 잡아 올린 암컷 수컷을 고이고이 모셔다가, 정월 대보름 원소절에 등불잔치 보며 냠냠 먹는 게가 최고로 맛있다나? 돈 많은 호사가들이 괜히 만든 소리겠지.


그러나 사실 엄격히 말하자면 최고로 맛있는 게는 초겨울의 상해 게가 아니다. 옛날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던 게는 오뉴월에 잡아 올린 민물 참게다. 아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여태까지 신나게 초겨울이 제 시즌이라 더니, 왜 왔다 갔다 하시는 거예요?


그건 양자강 하구에서 저승길 떠날 준비하는 상해 게 얘기고, 양징호 맑은 호수에 사는 참게는 그게 아니다. 생각해 보렴. 서너 달 더 일찍 잡았으니 그만큼 덜 발육한 것이라 등껍질은 야들야들 속살은 쫄깃쫄깃, 겨울 게보다 훨씬 더 맛있을 수밖에 없지. 왜 닭도 영계가 더 맛있잖니? 그런데 왜 오뉴월 참게는 알려지지 않았죠? 하하, 당국에서 포획을 금지시켰기 때문이지. 그것도 생각해 보렴. 새끼일 때부터 깡그리 잡아버리면 씨가 마르지 않겠니? 아하, 그게 그런 이치였군요!


 


아름다운 횡행장군 아름다운 요리법은?



그나저나 게는 어떻게 먹는 게 제일 맛있을까? 상해의 전문 요리점엔 가지가지 게 요리가 풀 코스로 나오지만 제일 맛있게 먹는 방법은 사실 딱 두 가지에 불과하다.


첫째, 가장 간편한 방법. 쪄먹는 거다. 재료가 고급이고 맛있을수록 조리법은 단순한 법! 주의 사항: 그때, 등껍질은 밑으로, 배때기는 하늘로 보이게 뒤집어놓고 쪄야 한다. 그래야 게 안에 있는 맛있는 엑기스 국물이 안 흘러나간다. 그렇게 해서 게 껍질의 강도에 따라 5 ~ 20분 정도 적당히 폭폭 찐 다음, 식탁 위에 올려놓고 뜯어먹는 그 재미가 여간 삼삼한 게 아니다. 방해대원수를 끊임없이 사모하고 숭배해 온 미식가 동호인 팬들이면 다 아는 얘기지만, 이 순간에는 인생의 삼대 즐거움이 단계별로 우리를 기다린다.

( 1 ) 기대가 현실로 이루어지는 즐거움. 깨끗이 씻은 손에 튼튼한 이빨 동원하여 껍질의 결을 따라 조심스레 뚜껑을 벗겨보니, 이야, 과연! 바라던 그 모습 그대로다! 자르르 윤기 나는 주황빛 알에 꽉꽉 찬 하얀 속살이 황홀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그때 그 순간의 짜릿한 감동! 어찌 환희의 탄성을 내지르지 않을 수 있으리오!


( 2 ) 소유의 기쁨. 잠시 화사한 봄꽃 같은 그 향기를 음미한 후, 호박琥珀같이 노란 알과 백옥같이 하얀 살을 한 두 입 커다랗게 베어 물면? 오, 이 부드러운 탄력이여! 시각의 즐거움이 미각의 즐거움으로 바뀌는 그 순간, 그 신선세계가 바로 나의 무릉도원이 되었다는 충만한 소유의 즐거움에 가슴마저 뿌듯하다.


( 3 ) 깨달음의 즐거움. 노란 알 하얀 살이 누군가의 입 속으로 자취를 감췄어도 깨달은 자는 결코 실망하지 않는다. 이따금씩 쾌자筷子장군 젓가락의 도움 받아 사이사이 숨은 살을 발견하러 구석구석 찾아다니는 그 재미야말로 도를 깨친 자만이 아는 즐거움이 아니던가! 이야, 여기도 또 있었네! 남모르는 비경 찾아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 자세야말로 가히 미지의 대륙 찾아 나선 콜럼버스의 각오이며, 삼천 배拜에 천일기도 쉬지 않고 정진하는 수도승의 마음이라! 아, 진리의 길은 멀고도 험하구나! 일몰의 고갯길에서 얻는 고행 속의 깨달음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즐거움이 아닐까 보냐!




그러나 이렇게 쪄먹는 걸로 치자면 상해 게도 사실 별 게 아니다. 괜히 유명해서 그렇지, 우리나라 서해안 연평도 꽃게나 동해안 영덕 대게가 더 맛있으면 맛있었지 결코 떨어지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잠깐! 상해 게는 몰라도 양징호 참게는 원래가 그렇게 쪄먹는 게 아니올시다!


예로부터 황제의 수라상에 올랐던 천하제일 별미였다니까, 생각해 보시라. 임금님이 체통 없이 맨손으로 게 껍질을 붙들고서 아구아구 쳐드셨겠는가? 그럴 리가 없다. 그럼 어떻게 드셨을까? 기록을 찾아보니, 세수해! 세수해로 드셨단다. 아니 먹다 말고 갑자기 세수를 왜 하냐고? 하하, 그게 아니라, 임금님께서 드신 양징호 게 요리 이름이 세수해洗手蟹였다는 말이다. 어떻게 먹는 건지 궁금하시지?


먼저 씩씩하게 여기저기 횡행하고 다니는 용맹스러운 양징호 방해대원수를 체포하여(어이구, 물릴라), 집게다리 꽁꽁 묶고 산 채로 껍질을 벗긴 다음, 속살을 모두 긁어낸다.(으, 잔인해) 그다음, 소금과 매실 과육을 넣고 손으로 정성껏 무친다. 아 참, 손을 먼저 깨끗이 씻어야겠지? 어휴, 그럼 손에 범벅이 되어 있겠네요. 그렇다. 손에 잔뜩 묻은 무친 게살을 물에 씻는다. 아이구, 아깝게 왜 물에 씻어버리죠? 하하, 버리는 게 아니라 그 물도 먹는 거란다. (윽, 드러워!) 음, 근데 물은 물인데 향료 물이란다. 산초 · 등자 등등등 온갖 희귀한 향료가 다 들어간 비법의 향수에 무친 게살을 담가먹는 요리라니, 우리말로 하자면 ‘게살 물회’ 정도랄까? 겉보기엔 우리 간장 게장이랑 비슷하다.

세수해洗手蟹


아니, 중국 사람들은 날 걸 안 먹는다면서 어떻게 된 거예요? 그건 일반적인 얘기고 언제나,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중국은 이 세계의 축소판으로 생각하면 틀림없다. 56개의 서로 다른 민족들이 서로 다른 풍토 속에서 짬뽕 비빔밥으로 섞여 살고 있으니 먹는 방식도 가지가지, 별의별 방법이 다 있는 거지.


전래의 비법 중에 아직도 사용하는 방법은 젓갈이다. 네? 중국 사람들이 젓갈을 먹는다구요? 그렇다. 젓갈은 젓갈인데 술로 담근 게젓이다. 그래서 주해酒蟹 또는 취해醉蟹라고 하지. 바로 이게 예로부터 무수한 중국의 미식가들에게 인정받은 천하 최고 별미 중의 별미란다. 그래요? 게젓이 중국 최고의 별미라니, 정말 생각도 못했네요!

하하, 그렇지? 근데 너, 젓갈을 중국말로 뭐라고 하는지 아니? 어이구, 그런 어려운 말을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하하, 사실은 중국말로 정확하게 우리의 젓갈에 해당하는 단어는 없단다. 중국에 어디 우리식 젓갈이 있어야 말이지? 구태여 갖다 붙이자면 ‘간장 장醬’ 자를 쓰면 되겠지만 아무래도 어색하다.


그런데 옛날 기록을 보면 젓갈을 ‘축이逐夷’라고 불렀단다. ‘몰아낼 축逐’ ‘오랑캐 이夷’, 동이東夷 족을 몰아낸다는 희한한 뜻이지. 이상한 이름이네요? 왜 그런 이름이 붙었다죠? 음, 춘추전국 시대까지만 해도 산동 반도에서는 우리와 똑같은 젓갈을 담가 먹었단다. 근데 한나라 무제가 동이 오랑캐의 야만적 풍속이라며 젓갈 담가먹는 걸 금지시켰다나? 그래서 붙은 이름이란다. 물론 지금은 사라진 단어지만, 젓갈이 우리 민족의 음식이라는 걸 증명해 주는 스토리지. 그러고 보면 중국인들이 천하 최고 별미로 치는 주해酒蟹도 사실은 우리 민족의 영향을 받은 거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치?


우와,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아주 재미있네요. 그나저나 선생님, 혹시 어떻게 담그는 건지 아세요? 왜, 그건 알아서 뭐하게? 헤헤, 우리 엄마가 게장을 무진장 좋아하시거든요? 거의 저만큼 좋아하시걸랑요? 천하제일 별미라는데 제가 엄마 드시게 한 번 담가 드리려구요. 정, 말? 네가 담근다고? 어쩐지 수상한데? 하지만 쩝, 엄마를 파니 안 가르쳐줄 수도 없군.


먼저 음력 9월에 잡은 살찐 참게 10근을 물에 씻은 다음, 물기를 잘 닦아낸단다. 그리고 볶은 소금 1근 4냥과 술 5 근, 식초 약간, 명반 1냥 5전을 넣고 적당한 시간이 지난 후, 게 껍데기 곳곳에 산초를 한 알씩 뿌려서 항아리에 넣어 밀봉하면 일주일 뒤부터 먹을 수 있단다. 그리고, 음, 이걸 가르쳐줄까 말까... 뭔데요, 선생님? 가르쳐 주세요, 네? 에이, 특별히 인심 썼다!


선생님이 발견한 요리 비급을 읽어보니까, 거기다가 콩과科 식물인 조협早莢이란 걸 조금 넣어두면 일 년이 지나도 삭지 않는단다. 어때, 아주 뻥인 것 같지는 않지? 헤헤, 일 년 후에도 안 삭으면 선생님한테도 몇 마리 드릴게요. 뭬야? 흥, 관둬라, 이 녀석아! 고맙지만 그런 말은 안 믿기로 했네! 누구는 나중에 세계 여행 시켜주겠다고 하더라. 그건 진짜 뻥인 것 같네요. 근데요, 선생님. 어쩐지 선생님 눈빛이 그래도 기대에 가득 차 보이시는데요? 그, 그거야... 예끼, 이 녀석아! 내가 아무리 게장을 좋아해도 네가 담근 주해는 절대로 안 먹는당!

  



따스한 애정 담긴 천하제일 명주로



그런데 말이다, 너 주해를 담글 때는 반드시 소흥주紹興酒로 담가야 한다, 알았지? 딴 술로 담그면 절대 안 돼? 망한다, 망해! 알았지? 히히, 왜 그렇게 강조하시는 건데요? 이 녀석아, 그거야 선생님이니까 직업상 가르쳐주는 거지! 네가 담근 건 절대 안 먹을 테니 걱정 마라. 네 어머님이 담그신 거라면 또 모르지만. 어흠, 흠... 헤헤, 선생님, 노여움을 푸시와요. 꼭 드릴게요. 그나저나 소흥주가 어떤 술인가요? 왜 꼭 그 술로 담가야 하는 거죠?


음, 남들은 중국 팔대八大 명주 중의 하나라고 하지. 하지만 소오생 버전으로 따지자면 천하제일 명주란다. 음, 그 얘길 하자면 천상 중국의 술 종류부터 설명해 줘야겠군. 중국 술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가 있단다.


첫째, 고량高梁이나 수수 따위로 담근 잡곡주. 주로 북방에서 많이 담는다. 이런 술은 색깔이 하얘서 백주白酒라고 부른단다. 중국말로 바이(↗)깔(→)이라고도 한다. 그걸 우리나라 짱꿰집에서는 빼갈이라고 부르지. 아, 빼갈이란 게 그런 뜻이었나요? 전 또 술 이름인 줄 알았죠? 마오(↗)타이(↗)우(↓)량(↗)예(↘) 같은 고량주는 중국을 대표하는 술로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제법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고량의 원산지는 아프리카. 중국에 유입된 것은 중세의 일이라고 하니, 사실 고량주의 역사는 생각만큼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둘째, 과일주.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게 포도주다. 포도는 원산지가 이집트. 한나라 무제가 실크로드를 개척했을 당시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단다. 이집트와 기후 조건이 유사한 실크로드에 있는 화염산과 불(火)의 도시 투루판(吐魯番)이 포도의 산지로 유명하지. 캘리포니아 포도 따위는 저리 가라, 참말로 기똥차게 맛있단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그래서 중국 포도주는 전 세계적으로도 아주 유명하다.

투루판 화염산 계곡 사이에 있는 포도의 계곡. 멀리 천산산맥의 눈 녹은 물이 지하로 뚫린 카레즈kariz(위구르어)라는 인공 수로를 통해 이 계곡을 지나간다. 투루판의 평균 기온은 섭씨 44도. 그러나 포도의 계곡으로 들어서면 너무나 시원한 파라다이스가 펼쳐진다. 중국의 민중문학은 이런 오아시스를 배경으로 탄생했다.




셋째, 쌀로 만든 미주米酒. 쌀은 남방의 곡물이니까 당연히 남방에서 담그는 술이지. 근데 이건 색깔이 누런 관계로 황주黃酒라고도 부른단다. 춘추전국 시대의 기록에도 나오니까 아마 현존하는 중국 술 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종류의 술일 거야.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게 바로 소흥주란다. 현대 중국 문학의 아버지 루쉰魯迅의 고향인 절강성浙江省 소흥紹興의 특산품이지. 백문이 불여일견! 짠! 이게 뭘까? 바로 소흥주다! 이럴 줄 알고 내가 한 병 사 왔지. 어때? 이야, 역시 선생님은 다르셔! 멋져요, 선생님! 존경해요, 선생님!


자, 자, 아부는 그만하고, 우선 한 잔 쭉-- 들이킨 후 다시 얘기하자꾸나. 깐베이(乾杯)! 쎼(↘)셰 라오(↓)쓰(→), 고맙습니다, 선생님! 쭉---! 웩, 켁켁! 으악, 이게 무슨 맛이지? 아휴, 꼬린내! 선생님, 이 술 상했나 봐요. 이상한 냄새가 나요. 하하하! 내, 그럴 줄 알았다. 아니, 선생님이 왜 이렇게 좋아하시지? 수상한데? 혹시... 너무해요! 선생님이 몰래 간장 타신 거죠?


예끼, 이 녀석아! 내가 넌 줄 아냐? 그게 아니라 이런 황주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처음 마실 때는 대부분 너처럼 그런 반응을 보인단다. 나도 처음에는 너처럼 그랬으니까. 어때, 좀 짭조롬하지? 소흥 부근에 감호鑒湖라는 호수가 있는데 그 호수 물로 만든 거란다. 수질이 기가 막히게 좋긴 한데, 호수 물이 바닷물처럼 짭쪼롬하다는구나. 그것도 모르고, 뭐? 간장을 탔다고? 기가 막혀.


그나저나 무슨 고약한 꽃 냄새 비슷한 게 나지? 찹쌀하고 누룩에다가 비장의 약초를 넣었기 때문이란다. 아니, 대체 중국 사람들은 이런 술이 뭐가 좋다고 천하 명주니 어쩌니 난리래요? 하하하, 나도 처음 이 술을 마실 땐 너처럼 아주 질색을 했지. 그런데 몇 번 마셔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구?


소흥주는 일본 술 정종처럼 반드시 따뜻하게 데워 먹어야 제 맛이 난단다. 중국말로 술을 데우는 걸 원(→)지우(↓)라고 하지. 말하는 게 자신이 없으면 한자로 ‘溫酒’라고 써 보이면 종업원이 술을 데워서 가져올 거야. 자, 종업원이 없으니 네가 가서 주전자에 넣어 따스하게 데워 와 보렴.


옳지, 이제 좀 술이 따끈따끈해졌구나. 자, 여기다가 요걸 한 알 넣어보자. 그게 뭐예요? 아, 이거? 아이구, 선생님, 이거 안 넣으면 안 돼요? 지난번에 얘랑 같이 길에서 사 먹어 봤는데, 시큼털털한 게 맛이 아주 괴상하더라구요! 하하, 그래서 요거 이름이 ‘시큼할 산酸’ ‘매화 매梅’, 시큼한 매실, ‘산매’라고 하는 거 아니겠니? 어쨌든 이 쏸(→)메이(↗)를 주전자에 두 알 정도 넣어서 다시 한번 마셔보고 얘기하자. 자, 깐(→)베이(→)!


원(→)지우(↓), 溫酒.  쏸(→)메이(↗), 酸梅. 깐(→)베이(→), 乾杯

(하) 쏸(→)메이(↗), 酸梅

‘깐/베이’라고 말하면 다 마셔야 하는 거죠? 아이고, 저는 싫어요. 한 모금만 마실래요. 어? 맛이 그럭저럭 괜찮아졌네? 약간 달콤한 게 마실 만한데요? 선생님, 조금만 더 줘 보세요. 하하, 맛 들리기 시작했으니 이제 큰 일 났군. 보아하니 앞으로 너도 옛날 중국사람들처럼 항아리로 쌓아놓고 마시게 생겼구나!


소흥주의 도수는 15 ~ 18도. 도수가 낮고 영양이 풍부하여, 마시면 마실수록 입맛이 당기고 피로가 없어진다. 종류가 몇 가지 있는데, 우리가 지금 마시는 건 가반주加飯酒란다, 제일 보편적으로 마시는 거지. 그런데 이름이 아주 재밌다. ‘더할 가加’, ‘밥 반飯’, 밥을 많이 먹게 해주는 술이라는 뜻이란다. 이를테면 우리가 젓갈 먹으면 밥맛이 팍팍 당기는 거랑 비슷한 이치지.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음식을 만들 때 툭하면 이 술을 집어넣는단다. 우리가 툭하면 젓갈 넣어서 음식을 만들 듯이 말이야.


이야, 그렇군요! 정말 몇 잔 마시니까 아까 그런 이상한 맛이 없어진 거 같아요. 하하, 그렇지? 음식이란 게 다 그런 거란다. 그 음식에 맺힌 내력과 사연, 그리고 그 음식이 지닌 가치를 음미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먹고 마시면, 처음에는 이상하게 느껴졌던 맛도 금방 천하제일의 진미珍味로 바뀌게 마련이지.


맞아요! 우리들끼리 먹을 땐 맛대가리 하나도 없고 너무 느끼해서 괜히 눈물이 나오려고 그럴 때가 많은데, 선생님 썰(說) 들으면서 먹으면 게눈 감추듯 맛있게 먹어치운다니까요! 하하, 짜식! 그동안 말하는 솜씨가 조금 늘었군. 그래도 그렇지, 선생님 말씀을 ‘썰’이라니! 덱끼! 통 말하는 법을 몰라요! 좌우간에 그 아부의 의도가 가상하여 특별히 아주 결정적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지.




소흥주가 중국 음식, 특히 중국의 남방 음식과 잘 어울리는 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다. 소흥주는 사랑의 술, 애정이 듬뿍 담긴 술이란다. 항주 명물 동파육東坡肉나, 복건 명물 불도장佛跳牆 같이 두고두고 중국인들에게 사랑을 받는 요리들도 그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던 거지. 하지만 요리 얘기는 다음에 항주에 가서 하기로 하고, 지금은 우선 소흥주에 듬뿍 담긴 애정의 사연부터 알아보자꾸나.


모든 술이 다 마찬가지지만 소흥주는 특히 오래 묵힌 술이 최고지. 위스키 같은 것도 병에 [ 12 old years ]하는 식으로 써놓지? 하지만 중국에서는 정확하게 숫자까지 밝히지는 않는단다. 그냥 [ 천(↗)니엔(↗) 陳年 ], '여러 해 묵힌 술'이라고만 써놓지. 몇 년이나 묵혔는지, 그런 건 마시는 사람더러 수수께끼 삼아 맞춰보라는 뜻일까? 하하, 아무튼 훨씬 더 여유 있고 훨씬 더 문학적이다.


그런데 [ 陳年 ]이란 표현은 주로 백주白酒, 그러니까 고량주 계통의 술 이름 앞에다가 많이 쓰고, 황주黃酒 그러니까 쌀로 빚은 미주米酒 계통에는 그런 식으로도 표현하지 않는단다. 아예 또 다른 표현을 쓰는데 이게 또 기막히게 문학적이니, 모르는 사람은 계속 모르시라, 이거지! 그러니 소흥주 마시며 중국 사람한테 괜히 바보 취급당하지 않으려면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두렴.


일반적인 소흥주는 중국 사람들, 특히 남방 사람들에게는 식사할 때의 음료수 정도란다. 그런데 이 소흥주가 한 십여 년 정도 지나면 아까 네가 느꼈던 그런 꽃향기가 본격적으로 우러나온단다. 그래서 그런 소흥주를 ‘꽃 화花’ ‘새길 조雕’, 화조주花雕酒라고 한다. 술항아리에 꽃향기가 흠뻑 배어버렸다는 뜻이지.

하지만 꽃향기 정도는 문제가 아니란다. 진정한 꽃향기는 인간사랑 아니겠니? 옛날 소흥 사람들은 애지중지 키운 딸이 시집가는 날, 잔치를 벌일 때 마시는 소흥주를 여아홍女兒紅, 중국말로 뉘(↓)얼(↗)홍(↗)이라고 불렀단다. 연지 곤지 바르고 곱게 단장한 딸내미의 얼굴이 앵두처럼 바알갛게 익어 보였겠지. 얼마나 예뻤겠어? 그래서 여아홍이란다.

근데 그때 마시는 소흥주면 무조건 다 뉘/얼/홍이냐? 그게 아니다. 꽃같이 어여쁜 딸, 그 딸내미에 대한 애정이 흠뻑 배어있는 술만 여아홍이라고 불렀단다. 아니, 그걸 어떻게 구별해 내죠? 이런 쯧쯧! 이렇게 문학적 감수성이 둔해서야... 잠시 잠깐 타임머신을 타고 이 귀여운 딸내미를 낳은 그날, 그 순간으로 돌아가 보자. 쒸--- 익! (무슨 소리? 시간이여, 거꾸로!)


어? 선생님, 저 남자 지금 뭐 하는 거죠? 땅에 항아리를 묻고 있네? 어라, 항아리에다가 이상하게 생긴 노란 물을 부어 넣네요? 근데 저 사람 지금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예요? 하하, 궁금하니? 선생님이 통역해 주마.  

   


아이구, 신난다! 히히, 나도 이제 아빠가 됐어! 칫! 딸이면 어때? 까짓 거, 아들보다 난 딸이 훨씬 더 좋기만 하네. 랄랄라, 술아, 술아! 맛있게 잘 익어야 한다, 알았지? 나중에 우리 귀여운 딸내미 시집가는 날 그때 보자아~? 음... 안 되겠다. 아무래도 몇 동이 더 담가야겠어. 시집가서도 쓸 일이 오죽이나 많겠어? 요리할 때마다 넣어야 제대로 맛이 나지. 그래 그래, 힘 좀 더 써보자, 끙!


 

이렇게 딸내미를 낳은 그날, 신이 난 아빠가 소흥주를 담가서 김칫독 파묻듯 항아리 째 땅속에 파묻어 놓은 걸 여아홍이라고 부르는 거란다. 그러니 그 딸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흠뻑 배어 있겠니?


아, 그렇군요! 근데 선생님, 질문 있어요. 중국 사람들도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딸보다는 아들을 더 좋아하지 않나요? 그럼! 일반적인 풍속으로 따지자면 남아 선호사상이 아주 대단하지. 심지어 딸을 낳으면 바로 죽여버리는 일까지 비일비재했단다. 요새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그런 엽기적인 뉴스가 들리곤 할 정도니까 옛날에는 오죽했겠니?


하지만 사람도 사람 나름! 그런 건 인간을 사랑할 줄 모르는 불쌍한 사람들 얘기고, 인간 사랑의 마음이 넘치는 가슴이 따스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많단다. 딸이면 어때? 난 좋기만 하고만. 싱글벙글 좋아하며 먼 훗날의 딸을 위해 여아홍을 담는 거란다. 정말 따스한 애정이 흠뻑 배인 술이지.


이렇게 인간사랑의 마음이 철철 넘쳐나는 술이니, 이걸 넣어 만드는 요리가 맛있지 않을 리가 있겠니? 그러니 내가 이 술을 천하제일 명주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니? 그러니 내가 반드시 이 술로 주해를 담가야 한다고 강조를 하지 않을 수가 있겠니? 천하제일 먹거리 양징호 민물 참게가 천하제일 사랑의 명주 소흥주를 만났으니, 어찌 주해가 천하제일 별미라는 칭송을 얻지 않을 수가 있었겠니? 이제 알겠느냐?


아하, 그렇게 깊은 뜻이! 이제야 알 것 같군요. 주해 담글 때 저도 꼭 소흥주, 아니 여아홍을 구해다가 담그도록 할게요. 어? 그런데 선생님, 왜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셨어요? 에이,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렇게 속상해하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음, 그게 아니다. 어떤 여아홍에는 아주 슬픈 사연이 숨어있다. 그걸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아려져서 그런단다.


여아홍은 보통 십 오륙 년이면 따게 마련. 하지만 아주, 아주, 오래 묵은 여아홍도 있단다. 그런 소흥주를 라오(↗)지우(↓), 노주(老酒)라고 하지. 우리 누나는 마흔 넘어 시집갔는데 한 사십 년쯤 묵힌 술인가 보죠? 음, 그게 아니다. 그런 농담할 기분이 아니란다. 그까짓 시집가고 못 가고, 그런 게 문제가 아니란다.


옛날에는 아이들이 일찍 죽는 경우가 많았단다. 부모 입장에서 보면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지. 이 세상에서 가장 기막힌 일이 바로 자식 먼저 보내는 일 아니겠니? 그런 판에 술 담가 놓은 일을 기억이나 할 수 있겠니? 기억을 한다한들 그걸 파내서 마실 기분이나 있었겠니?


먼 훗날 사람들이 땅을 파다가 우연히 그런 노주를 발견해서 맛있게 먹기도 한다만 그건 또 딴 얘기고, 아무튼 보람도 없이 그대로 영영 땅속에 묻혀 차갑게 잊혀 갈 그 따스했던 사랑의 마음들을 생각하니 선생님은 너무너무 가슴이 아프구나. 잘 기억해 두렴. 음식은 정성으로 만드는 거란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는 언제든지 그 음식을 장만해 준 따스한 사랑의 마음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단다. 그게 바로 곧 천하제일의 맛이 아니겠니?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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