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중국 음식 순례 여행을 다니면서 여태까지 배운 것을 복습 정리해 볼까요? 중국 사대四大 요리는 뭐라고 했죠? 그래요, 산동山東 · 사천四川 · 강소江蘇 · 광동廣東 요리였죠. 그 특색은 뭐라고 했죠? 아직 안 배운 건 빼고, 산동과 사천 요리만 말해 보세요. 네, 맞았습니다! 산동 요리는 “다 같이 모여 다 같이 먹자!” 사천 요리는 “맛의 멜로디!” 그렇습니다.
중국의 행정 구역 명칭은 모두 두 글자 이상이다. 그런데 편의상 한 글자로 줄여야 할 경우가 많다.
[북경北京 → 京], [산동山東 → 魯], [사천四川 → 川], [강소 江蘇 → 蘇, 苏], [광동廣東 → 粵]과 같이 표기한다. 예컨대 자동차 번호판에는 이런 식으로 표기해서 번호판만 봐도 소속된 행정 구역을 알 수 있다. 요리와 같은 경우에도 비슷하게 표기한다.
'산동 요리'는 [ 鲁菜 : lǔcài ] (ㄹ)루(↓)차이(↘)
'사천 요리'는 [ 川菜 : chuāncài ] 촨(→)차이(↘)
'강소 요리'는 [ 苏菜 : sūcài ] 쑤(→)차이(↘)
'광동 요리'는 [ 粤菜 : yuècài ] 위에(↘)차이(↘)
하지만 누군가 여러분에게 중국 요리의 특색이 한 마디로 뭐냐고 물으신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어요? 잊지 마시길. 그 특색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색色 · 향香 · 미味!” 중국말로는 “sè · xīang · wèr : 써(↘) · 썅(→) · 월(↘)”이랍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구요?
위에 사진을 보세요.
색(色)! 색깔이 정말 예쁘죠?
향(香)! 맛있는 향기가 으으음~~ 너무도 향긋하게 풍겨오는 것 같지 않나요?
미(味)! 아직 맛을 보지는 못했으되, 보기만 해도 침이 꼴까닥 꼴까닥 넘어갑니다.
이게 바로 황제도 침을 흘린 양자강 고급 요리랍니다.
사천 요리가 굶주린 창자를 채우는 수준에 머물러 있던 중국인의 음식 활동을 ‘맛(味覺)’의 세계로 안내했다면, 강소 요리는 ‘시각視覺’의 세계로, 절강浙江과 복건福建 요리는 ‘향기香氣’의 세계로 인도하여 마침내 중국 요리를 ‘미(美)의 세계’로 승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자, 먼저 ‘시각’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꿀꺽, 선생님, 정말 예쁘고 아름답네요. 와, 저런 거 한 번 먹어봤으면... 굉장히 비싸겠죠? 자, 자, 흥분을 가라앉히고 우선 먼저 공부부터 하자. “아는 만큼 보인다.” 그런 말도 있지만, 정말로 아는 만큼 맛있는 법이란다. 정말 맞는 말씀이에요. 산동 · 사천 지역을 돌면서 중국 음식 시켜먹을 때마다 뼈저리게 느꼈어요. 그래서 말인데요, 강소 요리는 어떻게 그런 특징을 지니게 되었나요? 너무너무 궁금해요. 빨리 가르쳐 주세요. 음, 그래 그래. 이제야 배우는 자세가 생기는 것 같구먼.
먼저 우리의 상식을 풍성하게 만드는 지리 공부부터 해보자. 지명이 여러 개 나오지만, 그렇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선생님이 해주는 설명을 건성으로 듣지 말고, 아래의 지도에서 하나씩 지명을 짚어보면서 들으면 금방 이해가 될 테니깐.
‘강소江蘇’는 지도에서 회색 지역이란다. 노란색은 절강성 浙江省 일대. 북쪽으로는 회하淮河, 남쪽으로는 장강의 하류인 양자강 일대에 이르는 지역이지. 이 일대에서 가장 큰 도시는 너무나도 유명한 상해上海! 그러나 사실 상해는 20세기에 커진 아주 일천한 역사의 신흥 도시이고, 예로부터 중국 요리를 오늘날과 같이 예술적 세계로 발전시킨 중심 도시는 소주蘇州와 양주揚州, 그리고 남경南京이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역사가 오래 된 곳은? 양자강의 바로 남쪽에 위치한 물의 도시, 동방의 베니스라고 하는 소주다. 춘추 시대의 오吳나라라고 들어봤지? 바로 여기란다. 그러니까 ‘강소’의 ‘강江’은 양자강揚子江이고, ‘소蘇’는 ‘소주蘇州’를 지칭하는 거야. 알았지? (아유, 난 지리 공부는 딱 질색이야...)
아니, 그보다 이렇게 설명해 주는 게 이해가 더 빠르겠군. 이곳이 바로 흥부에게 박씨를 물어다 준 제비들이 겨울을 난다는 그 강남 땅이란다. 알겠니? 아아~! 소주가 바로 그 강남 땅이란 말이에요? 진작 그렇게 말씀하실 일이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흔히 '강소 요리' 대신 '상해 요리'라는 말을 많이 쓴다. 아마 ‘상해’라는 단어가 훨씬 더 귀에 익어서 그렇겠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요리 문화란 게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상해의 이름을 사용한다는 건 아무래도 적절하지 못한 것 같은데, 네 생각엔 어떠냐?
하지만 선생님, 옛날은 옛날이고, 요새는 이 지역에서 상해가 제일 유명하고 제일 큰 도시이니까, 남들 알기 쉬우라고 그냥 ‘상해 요리’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음, 그 말도 일리가 있긴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도 다 알고, 역사적 대표성도 있고, 오해의 소지도 없는 그런 명칭을 쓰면 더 좋지 않겠니? 그런 게 있나요? 있다면야 그게 제일 좋죠! 그게 뭐예요? ‘양자강 요리’! 어때?
양자강 이름은 누구나 다 안다. 게다가 양자강이란 게 원래 청해성에서 발원하여 황해에 이르기까지 장장 6, 300km를 흐르는 그 길고 긴 강 전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장강 하류 지역만을 가리키는 것이니, ‘양자강 요리’라면 훨씬 더 대표성도 있고 오해의 소지도 없다. 그렇겠지? 아, 정말 그렇겠네요. 그 이름이라면 저도 대찬성이에요!
아, 참! 그리고 너희들, 세계에서 가장 긴 운하가 어떤 건지 아니? 뭐라고? 파나마? 수에즈? 하하하! 그런 건 조족지혈鳥足之血, 새 발의 피란다. 여기에 비하면 운하 축에도 못 끼지. 잘 알아두렴. 세계에서 가장 긴 운하는 중국에 있는 남북대운하란다. 얼마나 기냐고? 전장全長이 무려 1,700km! 어때, 엄청나지? 바로 이 강소성의 한 가운데를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단다. 북경에서 항주까지 이어진다고 해서 경항京杭대운하라고도 하지. 201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항주를 지나는 대운하
언제, 누가 만들었을까?
[ 1 단계 ] 춘추시대 오나라 부차夫差(합려 아들)가 항주에서 양자강까지 파놓았다. (위 지도에서 확인하자)
[ 2 단계 ] 수隋나라 양제煬帝가 만든 연장선! 양자강가의 양주에서 황하까지 연장해 놓았단다. (확인하고 있지?)
[ 3 단계 ] 몽고족. 황하에서 자기네들 도읍지인 북경까지 다시 연장하여 뚫어놓은 엄청난 운하다. (어허, 확인하래두?) 실제로 가보면 이걸 사람의 힘으로 파냈다는 게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수나라가 멸망한 이유는 바로 이 엄청난 토목 공사 때문! 하긴, 이런 걸 파고도 멸망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지 않겠어?
양주를 지나는 대운하
그러나 당唐나라와 송宋나라 때가 되자 이 지역은 남북대운하가 가져다 준 경제적인 혜택을 톡톡히 누리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소주와 양주, 이른바 ‘소양蘇揚’에는 운하의 물결 타고 중국의 모든 돈이 그야말로 쏟아져 들어왔단다. 그러니 어떻겠어? 한 마디로 알토란 부자 동네가 되었지, 뭐.
무석을 지나는 대운하
기왕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양주 부자는 주로 소금 장사로, 소주 부자는 비단 장사로 떼돈을 벌었다는군. (비단이 장사 왕서방의 고향?) 음, 그런 의미에서 보면 송나라 이후에는 실크로드의 기점을 이 지역으로 삼는 게 더 타당할 지도 모르겠다.
비단의 고향은 양자강 유역의 뽕밭! 이 일대에서 만들어진 실크는 바로 이 운하를 타고 황하의 개봉開封과 낙양洛陽, 그리고 장안長安을 거쳐 실크 로드를 타고 서방 세계로 향했으니까.
각설하고, 이 일대의 특색을 정리해보자.
첫째, 풍광이 너무나도 아름답다. “하늘에는 천국, 지상에는 소주 항주(上有天堂, 下有蘇杭)”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둘째, 맛있고 싱싱한 먹거리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어미지향魚米之鄕’! 호수와 강물이 거미줄처럼 엉켜있는 아름다운 이 땅은, 별의별 수산물과 농산물이 엄청나게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중국에서 가장 풍요로운 고장이다.
셋째, 거기다가 수양제가 운하 뚫어준 덕택으로 돈이 넘쳐 흐른다. 돈이 꼬이니 기생도 많고, 청루靑樓에 고대광실 요리집도 즐비했다.
넷째, 그러나 이 동네는 소돔과 고모라 같은 음란한 도시가 아니었다.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쉬는 풍류와 낭만의 고장이었던 것이다.
다섯째, 그러나 진짜 부자들은 그런 곳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쪽 팔리게 그런 델 왜 가? 우리 집이 훨씬 더 좋구만! 그래서 소주는 Garden City, 정원의 도시이다. 그런데 정원이라고 해서 우리나라 담양 소쇄원瀟灑園 규모를 생각하면 큰 코 다친다. 너무너무 아름답고 화려한 궁궐 같은 정원이다. 아니, 궁궐 같은 게 아니군. 청 나라 때 북경 사는 황제들이 여기 와 보고 찬탄, 또 찬탄한 나머지, 고대로 흉내내어 북경에 궁궐을 지었다니 ‘궁궐 같다’는 표현은 잘못된 거다. 에이, 뭐라고 말해야 어울린담?
좌우간에 대충 결론을 내자. 사연이 이러하니, 자연히 먹는 입도 최고급이 되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런 고급 요리는 누가 만들었겠는가? 아무나 대충대충 만들었겠는가? 그럴 리가 없다. 이 동네는 예로부터 전문 요리사의 고장! 양자강 중국 요리는 프로의 세계이다.
때는 B.C. 515 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무려 2,500년 전이다. 여기는 오씨吳氏의 왕국, 그러니까 지금의 소주 땅에 있는 공자 오광吳光의 저택이다. 오늘은 임금 오료吳僚가 사촌 형 오광의 초청을 받고 그의 저택에서 열리는 연회에 참석하는 날이다.
무릇 모든 포악 무도한 임금들이 모두 다 그러하거니와, 평소에도 늘 자객의 습격을 두려워한 국왕 오료는 오늘따라 더욱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 제대로 왕위가 계승되었다면 지금쯤 대왕 자리는 사촌형 오광의 것. 비록 언제나 고분고분 절대 복종하고 있는 오광이었지만, 안심할 수는 없는 일, 혹시라도 속에 딴 마음을 품고 이 자리를 마련했을 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대왕 마마! 어서 오시옵소서! 누추한 곳까지 왕림해 주시니 참으로 광영이오이다!”
국왕 오료는 정중하게 마중 나온 오광을 한 번 힐끗 바라보고는 좌우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최고의 무예를 자랑하는 무사 수백 명이 세 걸음마다 한 명씩 연회장을 에워싸고 있었다. 음, 이 정도면 안심이군. 쥐새끼 한 마리도 못 드나들겠구먼. 하하하. 오료는 그제야 마음을 놓고 자리에 앉아 흔쾌하게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어여쁜 계집들이 뇌쇄적인 몸매를 자랑하며 현란하게 춤을 춘다. 요리사들이 산해진미의 음식을 연신 날라 온다.
“으하하하! 좋구나, 좋아! 모두들 마음껏 즐기라!”
국왕 오료가 한껏 호방함을 과시하고 있을 때였다. 한 요리사가 특이한 모습의 생선 요리를 커다란 쟁반 위에 내오고 있었다. 다람쥐처럼 보이는 생선 머리 부분의 모습부터 모든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몸통 부분에 끼얹은 갈색의 소스 색깔도 그렇고, 돌돌 말려진 꼬리 부분도 영락없이 다람쥐의 모습 그대로였다.
김이 모락모락, 뜨끈뜨끈한 소스에서 풍겨 나오는 그 기막힌 냄새! 씰룩씰룩, 요리를 검사하는 무사의 코가 저절로 움직인다. 햐, 고거 참 맛있겠다, 나도 한 번 먹어봤으면... 오료의 좌우에서 호위하는 무사들도 진한 향에 도취되어 눈은 게슴츠레, 입맛을 쩝쩝, 잠시 잠깐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어라? 저 요리사 녀석이 뭐 하는 거지? 그가 소스가 얹혀진 몸통 부분에서 뭔가를 꺼내고 있었다. 앗! 비수 아냐? 시퍼렇게 날이 선 비수였다! 그가 번쩍 치켜든 비수를 국왕 오료의 가슴을 향해 사정없이 내려꽂았다.
“멈춰랏!”
대경실색한 무사들이 일제히 덤벼들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으악!”
시퍼런 비수가 국왕 오료의 가슴에 꽂혔다. 단말마의 비명소리와 함께 오료가 가슴에서 피를 콸콸 쏟으며 쿵! 고목 나무 쓰러지듯 자빠져 버렸다. 신기한 다람쥐 생선 요리에 아주 잠깐 넋을 잃은, 순간의 방심이었다.
“으윽!”
무사들의 칼을 맞은 요리사도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러나 국왕 오료의 죽음을 확인하고 쓰러지는 그의 얼굴에는 임무를 완수했다는 기쁨의 미소가 어려 있었다. 공자 오광吳光이 일으킨 정변이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오광은 훗날 합려闔閭라고 부르는 오나라의 대왕이었으니, 춘추 오패五覇 중의 마지막 다섯 번째 패자覇者가 바로 곧 그다. 잔인하고 음탕한 국왕 오료가 나라를 멸망의 길로 몰아가는 것을 보고 그는 오래 전부터 거사를 일으킬 준비를 해왔다.
[ 사진 상 ] 합려의 무덤인 소주 호구산虎丘山 검지劍池. 저 물 아래에 합려의 시신과 엄청난 보물 & 합려의 명검들을 함께 묻었다는 전설을 듣고 진시황과 초패왕 항우, 동오의 손권 등이 이 잡듯 뒤졌으나 아무 것도 찾지 못해 진위가 의심스러웠으나, 최근 두 차례에 걸쳐 물을 빼고 탐사한 결과, 무덤 입구를 찾아내어 전설이 사실로 밝혀졌다. 향후 발굴 계획 중. 우측 '검지 劍池'는 왕희지王羲之(321~379), 좌측 '풍학운천 風壑雲泉'은 북송 미불米芾(1051~1107)의 글씨다. [ 사진 하 ] 동방의 피사의 사탑이라는 호구산虎丘山 운암사 탑. 일천 년 전 당나라 말에 세운 전탑塼塔. 토지 불균형으로 3.59도 기울어졌다.
그러나 군대를 일으켜 정면 승부를 하는 것은 너무나 무모한 일이었다. 설령 성공하더라도 피해가 너무 클 터, 인접한 다른 국가들 좋은 일만 시켜주는 꼴이 될 게 뻔했다.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암살이었다. 그러나 오료는 질탕하게 놀아나면서도 조금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니, 오광은 마음이 너무나 초조했다.
“방법이 있습니다. 듣자하니 오료가 생선 요리를 좋아한다 합니다. 자객으로 하여금 요리사 훈련을 시켜 생선 요리의 비법을 익히게 하면, 반드시 기회가 올 것입니다.”
초楚나라에서 망명 온 모사 오자서伍子胥가 기상천외의 계책을 바쳤다. 오광은 기뻐하며 칼 잘 쓰는 재간둥이 심복 부하 전제專諸에게 은밀히 특명을 내렸다. 생선 요리를 배워 오라! 전제는 일순 어리둥절했지만 그 까닭을 알고 나서 무릎을 쳤다. 과연 기막힌 방법이었다. 그는 즉시 생선 요리의 명인을 찾아 길을 떠났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말이 쉽지, 그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아니, 이게 정말 장난이 아니군. 국왕 오료가 보기만 해도 뿅-- 갈 정도로 폼 나는 모습의 생선 요리라... 게다가 호위하는 무사들이 냄새만 맡아도 헬렐레 넋을 잃을 정도로 향이 좋은 생선 요리여야 한다 이거지? 무엇보다도 요리 속에 비수를 숨길 수 있어야 할 텐데, 과연 그런 생선 요리가 이 세상에 있을까?
고민하던 전제는 일단 태호太湖를 찾아갔다. 태호가 어떤 곳인가? 중국 대륙 전역에서도 파양호鄱陽湖와 동정호洞庭湖 다음으로 넓은, 바다보다 더 푸른 호수 아니던가! 그야말로 물고기가 지천으로 살고 있는 곳이니 그곳에 가면 뭔가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주의 명물 요리 < 송서계(궐)어松鼠桂(鳜)魚>는 이렇게 탄생하였다. 그가 어떤 요리의 명인에게 배운 것인지, 아니면 그 자신이 독창적으로 만들어 낸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송서계어> 덕택에 천하의 패자가 된 오왕吳王 합려가 그 요리를 즐겨 먹으며 심복 부하의 죽음을 애도했다는 것과, 신하들과 백성들도 즐겨 먹게 되어 마침내 소주 요리를 대표하는 명물 요리가 되었다는 기록만이 전해 질 뿐이다. 어때, 재밌지?
글쎄요, 재밌긴 재밌는 거 같은데요, 다른 요리에 얽힌 얘기보다는 덜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쨌다는 얘기인지 잘 모르겠어요. 음, 네가 아직 이 요리가 지닌 가치와 의미를 catch하지 못했구나. 이 얘기의 핵심은 이거다. 이 지역의 요리는 옛날부터 역사를 뒤바꿀 정도의 기똥찬 수준이었다, 그 얘기다. 그걸 누가 만들었느냐? 아마추어가 심심풀이 땅콩으로 만들었느냐? 그게 아니다. 프로다. 전문 요리사가 만들었다, 이 얘기다. 이 지역에는 그래서 옛날부터 요리의 명인, 셰프들이 많이 살았다, 그 얘기다.
전설에 의하면 최초의 전문 요리사로 명성을 날린 사람은 역아易牙! 그러나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명물 요리를 남긴 중국 최초의 전문 요리사는 바로 합려의 부하인 전제專諸이다. 그가 만든 <송서계어>는 양자강 요리의 특색이 총 집합한 요리이다. 그걸 알면 양자강 요리의 핵심을 catch할 수 있고, 양자강 요리의 특징을 알면 <송서계어>에 얽힌 이야기의 가치와 의미를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자, 이야기를 들어보시라.
첫째, 재료 이야기. 양자강 요리로부터 비롯된 정통 중국 요리는 수산물이 주특기 재료다. 근데, 해산물이 아니다. 호수에서 나오는 호산물湖産物, 강에서 나오는 강산물江産物, 그런 수산물을 말하는 거다. (호산물? 강산물? 그런 말도 있나?) 왜요? 바다 생선이 얼마나 맛있는데요? 난 민물고기 별론데.
다른 동네에서 나오는 민물고기가 아니다. ‘양자강’ 민물고기다. 이 동네가 어떤 동네인가? 그림 같은 호수가 밤하늘의 별처럼 점점이 박혀 있고, 맑디맑은 강물이 비단처럼 그 사이를 이어주는 꿈처럼 아름다운 호수와 강의 마을 아니던가! 그러니 이 동네에서 나는 민물고기가 오죽이나 맛있겠는가! 그래서 소오생이 이름하기를 ‘황해 바다 요리’가 아니라 ‘양자강 요리’라 하지 않았던가!
사연이 그러하니, 양자강 요리는 재료의 신선도를 중시한다. ‘맛’은 별 문제가 아니다. 아아, 그렇다고 맛이 없어도 된다는 얘기가 아니지! 게 · 새우 · 조개 등등 이곳에서 나오는 웬만한 고급 먹거리는 원래부터 맛있다. 어느 정도 맛 있느냐? 전문 요리사는커녕, 소오생이 얼렁뚱땅 대충대충 만들어도 기막히게 맛있다. 그래서 양자강 고급 요리는 조미료를 별로 쓰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비린내 정도만 없애주면 하늘나라 신선이 먹는 음식이 된다. 양자강 요리가 중시하는 건 수산물의 신선도인 것이다.
<송서계어>는 ‘송서松鼠’, 즉 ‘다람쥐’로 만드는 엽기 음식이 아니다. ‘계어(桂魚)’, 즉 ‘쏘가리’로 만드는 요리다. 쏘가리가 어떤 물고기인가? 청정수에서만 자라는 민물고기의 왕이다. 정말이지 맛이 기가 막히다. 여기에 비하면 바다 생선은 고기도 아니다. 요새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잡히지도 않는다. 양식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이 쏘가리가 얼마나 비싼 물고기인지 매운탕 매니아라면 누구든지 다 안다.
그런데 그것도 보통 쏘가리가 아니다. 암살용 비수를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대왕 쏘가리여야 한다는 얘기다. 보통 쏘가리도 구하기 어려운 판에 그런 대왕 쏘가리를 구하기가 어디 그리 쉽겠는가? 구한다한들 소오생 같은 보통 사람이 먹을 수나 있겠는가? <송서계어>는 대단히 비싼 양자강 고급 요리이다.
사족이지만 우리나라 고급 중국 음식점에서 만드는 이 요리는 쏘가리 대신 바다 생선 도미를 쓴다는 얘기가 바람결에 들려온다. 거 참 재밌군. 쏘가리가 바다로 이사 가서 도미가 됐나? 사족 하나 더! 요새 중국의 어떤 음식점에서는 그래서 아예 ‘계桂’ 자를 빼고 <송서어松鼠魚>라고 메뉴 판에 써 놨단다. 음, 그건 말 되네!
둘째, 요리사 이야기. 아무나 대충 만들어도 맛있다면서 전문 요리사가 왜 필요하죠? 하하, 모르는 소리! 양자강 요리사는 먹거리를 만드는 단순한 주방장이 아니다. 양자강이 어디인가? 풍류와 낭만의 고장, 문화와 예술의 마을 아닌가! 양자강 요리사는 풍부한 상상력과 기발한 창의력을 바탕으로 작품을 창조하는 멀티 미디어 예술가다. 양자강 요리사는 반드시 사전에 시각視覺 · 후각嗅覺 · 미각味覺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예술적 경지의 요리를 머릿속에 구상한다. 심지어는 청각, 소리까지도! 그것이 바로 정통 중국 요리의 진수라는 “색色 · 향香 · 미味”! 진정한 프로의 세계인 것이다.
여기에 의하면 ‘맛’은 세 번째 순위, 맨 첫 번째는 ‘색色’이다. colour라 이거지! 하지만 단순한 colour가 아니다. 형태의 아름다움까지 포함한 시각적 효과라는 뜻이다. <송서계어>의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우선 먼저 눈길을 끌었던 것이 무엇인가? 다람쥐를 빼다 박은 기발한 외형 아니었던가! 그 아름답고 기발하고 생동감 넘치는 형태를 구상하기 위해 최초의 양자강 전문 요리사 전제專諸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을 것이다.
동시에 해결해야 할 숙제는 colour! 색조의 배합이었다. 재료가 지니고 있는 원래의 색깔을 자연스럽게 유지하여 깔끔하고 상쾌한 느낌을 주게 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보조 재료를 활용하여 현란하고 기발한 느낌을 주게 할 것인가?
그런데 이 색조의 배합이란 게 어떤 형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맞물려 있는 문제였다. 지금 선택한 형태는 다람쥐! 그렇다면 색조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쏘가리의 원래 색깔을 유지시켜주어야 할 것인가? 아니다. 이 때는 다람쥐의 색깔인 갈색을 사용해주자. 어떤 식으로? 소스를 만들면 어떨까? 갈색 소스로 쏘가리 몸통 부위에 끼얹어주면? 오케이! 그게 좋겠다.
그런데 또 색조의 배합이란 게 형태뿐만이 아니라 계절적 요인까지도 함께 고려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겠는가? 여름에는 시원하고 상쾌한 느낌, 겨울에는 따스하고 화려한 느낌을, 그리고 봄가을에는 그 두 가지가 적절하게 배합된 느낌을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송서계어>는 어떤 계절에 먹어야 할까? 그렇다! 겨울에 먹어야 제 격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료는 언제 암살 당했을까? 그렇다! 비록 먹어보지는 못하였으되, 겨울에 그 요리를 보고 하늘나라로 가셨을 것이다. 참으로 기막힌 예술의 세계가 아닌가!
그러나 진정한 프로의 세계는 멀고도 험난한 것! 제아무리 머릿속으로 멋진 구상을 하면 뭘 하는가? 생각이야 누군들 못해? 머릿속에 떠오른 조형미를 요리로 만들어내지 못하면 도로아미타불, 말짱 꽝 아니냐? 프로냐, 아니냐? 양자강 요리사냐, 아니냐? 머릿속의 조형미를 현실 속의 요리로 완성시키는 그 첫 번째 키포인트는 칼 솜씨였다. 전제는 쏘가리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수십 년 간 갈고 닦은 검술 실력을 펼쳐냈을 것이다.
이얍! 제 1 초식을 받아랏! 위민제해爲民除害하니, 도탄에 빠진 백성을 위하여 무도한 임금을 제거하라! 다다다닥, 현란한 검법에 칼이 보이지가 않는도다! 좌우지간 쏘가리의 뼈와 가시, 남김없이 제거되다. 그리하여 남은 것은 통째로 발라내진 쏘가리의 등살 뿐!
이얍! 제 2 초식이닷, 하! 심곡종수深谷種樹하니, 깊은 골짜기에 나무를 심어라! 눈부신 검술로 쏘가리 등살 위에 고루고루 깊숙하게 칼집을 넣어주니, 그 모습을 얼른 보면 골짜기를 깊이 판 듯, 나무 촘촘 심어 논 듯! 다시 한 번 살펴보니, 아니 이게 웬 일인가? 영락없는 다람쥐의 털이구나! 히야, 멋있어요! 선생님, 재밌어요! 무협 영화는 저리 가라네요!
전제뿐만이 아니다. 그의 칼 솜씨를 이어받은 양자강 요리사들은 한결같이 칼 솜씨가 뛰어났다. 도공刀工! 양자강 요리사의 필수덕목인 그 현란한 칼 솜씨를 한자漢字로는 그렇게 표현한다. 특히 꽃이나 야채 · 과일 따위를 예쁘게 칼질하여 장식해 놓은 양자강 냉채冷菜 요리는 정말 먹기가 미안할 지경이다. 꿀꺽, 보기만 해도 침은 자꾸 흐르는데...
조형미를 요리로 완성시키는 두 번째 관건은 ‘불(火)’이었다. 그건 또 왜죠? 생각해 보렴. 아무리 폼 나게 만들어 놓으면 뭘 하니? 그걸 날로 먹을 것도 아니고, 찌든 삶든 지지고 볶든 좌우 당간에 어떤 방식으로든 조리를 해야 되지 않겠어? 그런데 만들다가 형태가 헝클어지면? 십년 공부 도로아미타불! 먹어보니 너무 뜨거운 불로 너무 오래 익힌 탓에, 어라? 다 뭉그러졌잖아? 에휴, 이건 너무 질겨서 못 먹겠어! 맛이 제 맛이 아니라면 그게 어디 요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맛의 강약이 사천 요리사의 덕목이라면, 불의 강약은 양자강 요리사의 덕목! ‘칼’과 ‘불’은 양자강 요리사, 프로 무술 세계의 외공外功과 내공內功인 것이다.
참고 삼아 말하자면, 양자강 요리는 물을 이용하여 찌고 삶고 조리고 익히는 조리법이 발달되어 있단다. 중국의 민물고기 요리법은 대강 이런 식이다. 기름을 이용하여 볶고 튀기는 조리법은 상대적으로 적다. 하지만 <송서계어>는 쏘가리 등살에 칼집을 넣은 뒤 땅콩 기름에 아삭하게 튀긴 요리이다. 그래서 이빨로 깨물면 바삭바삭 경쾌한 소리가 난다. 양자강 요리사는 때로는 그런 청각적 효과까지 고려하여 작품을 창조하는, 멀티 미디어 프로 예술가다.
사족으로 하나 더! 앞에서도 말했듯이 양자강 일대에는 그림 같은 호수가 여기저기 점점이 박혀있는 그림 같은 동네이다. 풍광이 아름다우니 유람객도 많고, 유람객이 많으니 유람선도 많을 밖에. 유람선마다 솜씨 좋은 요리사들이 승선하여, 아이고 배고파라,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유람하다 입맛 당긴 식객들의 욕망을 해결해 주었다는데, 이런 요리사들을 행포行庖라고 하였단다.
또 연회를 전문적으로 준비해주는 외포外庖라는 요리사들도 있었다니, 요새로 치면 출장 뷔페 요리사인 셈. 하지만 이런 요리사들은 진정한 프로가 아니란다. 진짜 최고의 요리사는 고대광실 부자 집에 고용된 가포家庖였단다. 양자강 요리가 얼마나 특정 계급을 위한 고급 요리인지 짐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에휴, 사연이 그렇다니, 소오생 팔자에 언제 한 번 멀티 미디어 예술 같은 양자강 고급 요리 먹어볼꼬! 언감생심焉敢生心, 꿈도 못 꿀 일이로다!
<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