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먼저 난센스(?) 퀴즈 하나! 인간의 감각 중에서 가장 식욕을 당기게 해주는 감각은 무엇일까? 미각味覺? No, No! 먹어봐야 맛을 알지. 그럼, 시각視覺? 물론 큰 역할을 한다. 휘황 찬란, 오색영롱한 양자강 요리는 보기만 해도 침이 꼴까닥, 황제도 침을 질질 흘렸으니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이것도 정답은 아니다. 왜냐고?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눈앞에 직접 펼쳐지지 않는다면 말짱 꽝! 식욕을 당기게 할 방법이 없다.
정답은 뻔하다. 후각嗅覺이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한참 배고플 때 어디선가 솔~솔~ 풍겨오는 음식 냄새는 으~, 미쳐! 정말 사람을 환장하게 만든다. 제아무리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려 발버둥을 쳐봐도 소용없다. 오죽하면 참선하던 부처님도 향기의 세계를 찾아 담을 넘어가셨을까? 음? 그건 또 무신 유언비어? 스님, 스님, 흥분하지 마시어요! 상징과 은유의 문학적인 표현이니까요. 아무튼 얘기를 들어보시죠!
찜 요리에 숨은 향기의 비결을 찾아라
옛날 중국의 중원 사람들은 양자강 남쪽 소주蘇州 일대를 오吳라고 불렀다. 이건 지난번에 얘기했죠? 그리고 거기보다 조금 더 밑에 있는 항주杭州 일대는 월越이라고 불렀다. 오늘날의 절강浙江 지역이다. (지도에서 찾아보자!) 그 아래가 복건福建이다. 대만 맞은편이니 어디쯤인지 짐작이 가시겠지? (그래도 지도 보며 확인하는 게 좋을 걸?) 아무튼 이 동네들이 이 글의 공간 무대, 향기의 세계이다.
그중에서도 본격적으로 향기를 팍팍 풍기는 곳은 복건!
왜냐고? 이유가 있죠. 무릇 모든 음식이 모두 다 냄새가 나는 법이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많이 나는 요리법은? 구워 먹는 거요! 우리 집 부근에 갈비 집이 있는데 냄새가 정말 장난이 아녜요. 아주 지독해요. 음, 그렇겠군. 그럼, 질문의 방향을 바꿔서, 다시! 향기가 제일 좋은 요리법은? 그렇다. 오랫동안 푸―욱 찌거나, 고아 내는 거다. 그런데 복건 요리는 바로 이 조리법이 대단히 발전되어 있는 탓에 향기의 본고장이 된 것이다.
왜냐고? 이유가 있지. 아까 부처님 얘길 꺼냈으니 잠깐 먼저 스님 얘기부터 해볼까?
전설 따라 삼천리, 오늘은 몇 백 년 전, 복건 지방의 어느 절간에 계셨던 노스님 이야기올시다.
노스님께서는 요새 속이 영 헛헛하시다. 영양실조 기미마저 보이신다. 음, 안 되겠군. 아무래도 보신을 좀 해야겠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부처님 잠시 눈 좀 감고 계세요… 하고는 몰래 돼지고기 한 근을 사 왔다. 이걸 어떻게 요릴 해야 다른 스님들한테 들키지 않을꼬? 고민하던 노스님, 대중들이 곤히 잠든 틈을 타서 부엌에서 솥을 가져와, 자작하게 물을 붓고 고기를 넣은 다음, 물 샐 틈 하나 없이 완전 밀봉을 해버렸다. 일 단계 성공. 후유, 진땀 나네.
이 단계. 근데 뭘로 불을 때지? 장작으로 때자니 아무래도 들킬 것 같은지라 살며시 법당 안에 들어가 촛불을 무더기 째로 가져왔다. 히히, 하나로 때자면 성능이 안 좋겠지? 좋아, 초는 많이 있으니 여러 개를 왕창 한꺼번에 때는 거야…
그리하여 밤새도록 은은한 화력으로 지구장장 고아낸 다음, 나중에 혼자 계실 때, 쩝 어떻게 됐을까? 밀봉한 걸 뜯어보니, 아아니? 이렇게 기막힌 향기가? 끝내주는 향기가 온 천지를 진동하였다~, 그 얘기올시다. 그리하여 그 향기가 복건 지방 전체로 퍼져나갔다~, 이 얘기올시다. 또 그리하여 복건 지방에서는 그 스님의 방식대로 은은한 불로 지구장장 오랜 시간 동안 포옥 고아내는 조리법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 얘기를 하는 것이올시다.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 끝!
에이, 선생님, 시시하게 뭐 벌써 끝나고 그래요? 여태까지 해준 얘기 중에서 제일 썰렁했어요. 옛끼, 이 녀석아! 내가 누구냐, 이야기꾼 소오생이 아니더냐? 지금은 프롤로그, 마이크 테스트를 한 거고, 본격적인 얘기는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거야. 아, 그런가요? 헤헤, 사실은 저도 그러실 줄 알았어요.
지금으로부터 약 170 년 전 일이다. 복건 복주福州에서 포정사布政司 벼슬을 맡은 주련周蓮이라는 고관이 있었다. 건륭 황제를 닮은 건지 주련은 대단한 식도락가였는지라, 그에게 아부를 하려면 맛있는 요리 바치는 게 최고였다. 그리하여 너도나도 자기 집에 모셔다가 맛난 요리로 아부를 하는데, 이것저것 온갖 산해진미를 다 먹어본 주련은 늘 그저 시큰둥하기만 하였단다.
그런데 어느 날, 어느 부하의 집에 갔더니 마을 입구에서부터 기막히게 향긋한 냄새가 천지에 그윽하다. 으으~~음! 이게 대체 무슨 냄새 일꼬? 잔뜩 궁금하여 요리를 받아보니 닭고기와 오리고기, 돼지고기를 함께 찜 해놓은 평범한 요리였다.
아니, 이렇게 평범한 재료에서 어떻게 이런 기막힌 향이 나는 거지? 한 젓가락 집어다가 입에 한 입 넣어보니, 사르르 고기 살이 그 순간에 녹아버리는데, 꼴까닥 목구멍을 넘어간 뒤에도 입안에 하나 가득 은은한 향기! Oh, Yeh! 날개 달린 신선 되어 구름 타고 승천하는 기분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단다.
집에 돌아온 주련은 즉시 전속 요리사 정춘발鄭春發을 불렀다. 어떤가? 자네도 요리 솜씨가 뛰어나니 지금 내가 설명한 그 향기 나는 요리를 만들 수 있겠지? 그러나 춘발이는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찌고 고아내는 조리법이야 이 지역 요리사라면 누구나 필수 기본! 포정사의 전속 요리사가 그런 기본 조리법을 모를 리가 없지~!
하지만 상전인 주련이가 누구인가? 식도락 밝히는 천하의 미식가가 아닌가? 별의별 찜 요리를 다 먹어본 사람이 그깟 평범한 고기 찜을 먹고 저처럼 황홀해하다니…. 그 향기에는 틀림없이 무슨 비결이 있을 터였다. 그래, 무조건 찾아가 보는 거야. 그런 비결을 쉽게 가르쳐 줄 리가 없겠지만, 그래도 어떡하겠어?
마음을 굳힌 춘발이는 목욕재계하고 정성껏 예물을 준비한 다음, 주련을 초대했던 그 집을 찾아갔다. 요리를 만든 사람은 그 집의 안주인. 그가 무슨 방법으로 어떻게 그 여인의 환심을 사서 비법을 배웠는지, 역사의 기록은 입을 다물고 있다.(묻지마, 다쳐!) 아무튼 그 집 문을 나서는 춘발이 얼굴 좀 보소? 싱글벙글 히히하하 만면에 희색이 가득한데, 얼씨구? 입이 쭉 찢어져 눈가에 이어져 있네?
그 뒷얘기는 잠시 후에 다시 하고, 춘발이가 왜 그리 좋아했는지 그 얘기부터 먼저 해볼까? 찜 요리에 숨은 향기의 비법이 무엇이었는지 그것부터 알아보자 이거지. 힌트! 여인은 절강성浙江省 소흥紹興 사람! 알고 보니 그 찜 요리는 절강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일종의 변형된 <동파육東坡肉>이었던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동파육>은 돼지고기 찜 요리인데, 여인은 거기에 닭과 오리를 함께 넣고 찜을 했다는 것뿐.
네? <동파육>요? 그건 또 뭐죠? ‘동파’란 말은 어디서 들어본 거 같아요. 사람 이름 아닌가요? 이야, 너 많이 늘었는 걸? 그렇다. 동파는 중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문인이자 예술가인 소식蘇軾(1037~1101)의 아호다. 소오생이 브런치매거진 [동아시아의 고전과 글쓰기]에 그가 쓴 기가 막힌 명작 산문을 몇 편 소개하고 있으니, 어서 가서 마음의 웰빙 음식을 먹고 정신 힐링 할지어다!
아무튼 <동파육>은 바로 그가 만든 요리다. 그 탄생 과정을 아는 것이 바로 향기의 비결을 찾는 키포인트! 자, 그럼 찜 요리에 숨은 향기의 비결을 찾아 길을 떠나볼까? 그러나 첫 번째 목적지는 절강성이 아니다. 그곳에서도 훨씬 더 멀리 떨어진 장강의 중류 지역, 호북성湖北省의 황주黃州란 땅이다. (위의 지도에서 그 위치를 확인하고 가시라!)그 절묘한 사연을 들으시라!
백성들의 복음, 천재 문인과 삼겹살의 만남
동파東坡 소식蘇軾은 누구인가? 중국 오천 년 문학사의 가장 위대한 천재 문인이다. 그 어떤 문학의 장르도 그를 빼놓고선 이야기가 안 된다. 문학뿐이 아니다. 글씨도 잘 그렸고 그림도 잘 그렸다. 예술뿐만이 아니다. 요리도 잘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 어흠, 흠! 술도 자주 만들었고 요리도 자주 만들었다.
그런데 자주 만들었다고 해서 반드시 맛있게 만들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가 만든 술을 먹고, 웩, 웩! 아니 이게 무슨 술이야, 식초지! 했다는 얘기도 있고, 썩은 술을 만들어서 마신 사람들 모두 식중독에 걸려 설사를 했다는 기록도 있으니까. 하하.
아무튼 송宋나라 때의 음식과 음식 문화를 연구하려면 그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로, 그는 먹는 것에 대단한 관심을 보였단다. 어떤 이는 장난 삼아 동파를 식통食通이라고 불렀다나? 하하, 먹통이 아닌 게 다행일세!
사천 미산에 있는 소동파의 고향 집
그의 고향은 총기의 땅 사천四川. 그러나 그는 중국 대륙 여기저기 일생을 돌아다녔다. 왜 돌아다녔냐고? 정적政敵들의 미움을 많이 사서 툭하면 귀양을 다녔기 때문이다. 동파는 여우(→)모(↘)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게 무슨 뜻인데요? 아, 여우/모(幽黙) 몰라? humor! 유머가 많은 사람이었다고!
동파의 유머는 그 문학세계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란다. 그런데 그 유머란 게 묘하다. 좋게 들으면 재밌지만, 반대 입장에서 들으면 빈정대는 것 아니겠니? 특히 정적들이 들으면 열받게 마련이지. 아유, 얄미워!
그런데 그 당시에는 왕안석王安石이라는 사람이 임금 신종神宗 황제의 두둔 하에 신법新法이란 걸 추진하고 있었단다. 취지는 대단히 좋은 법이었지만 그걸 시행해야 하는 관료 사회가 썩었기 때문에 부작용이 대단히 컸지. 그래서 조정은 둘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물론 정권은 이미 왕안석이 잡고 있었지만 말이야.
좌우지간에 그때 동파가 유머러스한 시를 썼는데, 왕안석의 신법파新法派가 읽어보니, 아니 우릴 약 올리고 있잖아? 잔뜩 열이 받아 감옥에 처넣고 말았단다. 어이구, 분해! 단 칼에 죽여버리자구! 목숨까지 왔다리 갔다리 위기일발! 다행히 동생인 소철蘇轍이 그때 한 감투하고 있었길래 망정이지, 진짜로 저승사자에게 끌려갈 뻔했다. 너무나도 유명한 오대시안烏臺詩案 필화 사건이지.
아무튼 동파는 구사일생, 간신히 목숨을 건져 호북성湖北省 황주黃州 땅으로 귀양을 가는데, 그때 나이 마흔네 살. 1079년의 일이니까 춘발이가 소흥 여인에게 비법을 전수받기 750년쯤 전의 일이었다.
선생님, 지금 근데 먹는 얘기 하다가 무슨 말씀이 그렇게 길어요? 어허, 지금 내가 삐지는 게 아니니라. 모두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들이니, 꾹 참고서 들어 보라.
아무튼 이곳 황주가 어디냐? 장강의 푸른 물결이 바다보다 더 광활한 모습으로 도도하게 흐르는 중국 내륙 지역 최고 전망의 스케일 큰 땅이었으니, 우주와 인생을 한눈에 조망하는 동파의 달관과 초월超越의 호방한 문학 세계가 바로 여기서 탄생한 것이다. 그 유명한 <적벽부赤壁賦>도 바로 이 시절 이 땅에서 쓴 것이니, 그의 황주 유배를 중국문학의 입장으로 본다면 오히려 최대의 행운이었던 것이다.
명明, 문백인文伯仁, 〈추산유람도 秋山游覽圖〉의 일부. 실제 황주 일대를 지나는 장강은 그림보다 더 광활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자, 이쯤 해서 슬슬 먹는 얘기를 해볼까? 황주 시절, 동파는 찢어지게 가난했다. 한직閑職으로 귀양 나온 신세에 식구들은 주렁주렁 달렸으니 늘 먹거리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견디다 못해 동쪽 산비탈 땅을 빌려 손수 밭농사를 지으니, 동녘 동東, 언덕 파坡, 동파거사東坡居士라는 그의 별호도 바로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그나저나 오늘은 무얼 먹나 고민하던 동파, 어느 날 시장에 나가 이것저것 기웃대다 보니, 엇, 이게 웬일이냐? 돼지고기 값이 똥값이네? 황주는 돼지 값이 엄청 쌌다. 바다같이 드넓은 장강을 끼고 있는 황주 사람들은 민물고기는 좋아했지만 돼지고기는 잘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구, 돼지는 너무 느끼해서 싫어!
그러나 동파가 어디 사람이라고? 수군水軍은 별로 없되, 육군이 많아 그 조리법이 잘 발달된 사천 사람 아니던가? 이야, 수지맞았다! 하하, 이거야 간장 넣고 졸여먹으면 되지! 신이 나서 매일 돼지고기를 먹었는데, 그 짓도 하루 이틀이지 동파 역시 차츰 돼지고기 조림에 물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수 있나? 돈이 없으니 그거라도 먹어야지. 오늘도 부엌에서 돼지고기를 졸이고 있는데, 선생님 계십니까? 누군가 찾아왔다. 누구지? 피어오르던 장작을 몇 개 빼내어 불을 아주 약하게 하고 다급히 밖에 나가보았다.
아, 자네구먼! 어서 들어오게. 선생님, 오랜만에 선생님과 수담手談이나 나눌까 해서 왔습죠. 바둑? 거, 좋지! 그리하여 고기 올려놓은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는데, 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지만 바둑을 두면 어떻다고? 그렇다. 도낏자루 썩는 줄도 모르는 게 바둑 아니던가!
서너 판을 두다 보니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장강의 아득한 수평선 너머 사라지고 있었는데, 킁킁, 선생님, 근데 이게 무슨 냄새죠? 아차! 고기를 올려놨는데 다 타버렸겠군! 황급히 달려가 솥뚜껑을 열어보니, 어라? 색깔만 발그스름 변했을 뿐, 타기는커녕 기름기가 쪽 빠지고 야들야들 흐물흐물 입안에서 녹아나니 진미珍味 중의 진미로다!
이리하여 천하명물 돼지 삼겹살 찜 요리가 탄생! 동파는 너무너무 기쁜 나머지 <돼지고기 찬송가猪肉頌>를 지어 불렀다니, 그 노래를 소오생의 통역으로 들어보자!
황주 땅 돼지고기 품질이 끝내주네
가격도 저렴하니 진흙보다 더 싸구나
부자들은 “그런 걸 왜 먹어?”
가난뱅이 “어떻게 먹는 거죠?”
黃州好猪肉, 價賤如泥土. 富者不肯食, 貧者不解煮.
하, 하, 하! 내 가르쳐 줌세!
불은 은은하게, 물은 자작하게!
때가 되면 저절로 아유, 맛있어!
아침마다 한 그릇, 아 배부르다!
자네는 배고파도 나는 몰라요!
慢著火, 少著水! 火候足時它自美. 每日起來打一碗, 飽得自家君莫管.
해학과 유머가 가득 넘쳐흐르는 기상천외의 노래! 동파의 <돼지고기 찬송가>는 황주 땅 가난한 백성들에게는 엄청난 복음이었다. 응, 그래? 돼지고기를 그렇게 요리해 먹으면 맛있다고? 영양실조로 쓰러지기 일보직전, 찬송가 가사 대로 요리를 해 먹으니 과연 환상의 음식이다! 할렐루야, 동파거사!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다 함께 <동파 찬송가>를 불렀다~, 그 얘기다. 그 찜 요리의 이름은 그리하여 <동파육東坡肉>! 그 후로 수 백 년 동안 가난한 백성들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준 이 요리는 이렇게 탄생했다~,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다.
햐! 그런 사연이! 난 맨날 삼겹살을 구워 먹기만 했는데, 다음엔 그렇게 한번 먹어봐야겠네요. 근데요, 선생님, 아까 처음에 복건 어느 절간 스님 얘기를 하셨잖아요? 그 스님이 만든 돼지고기 찜 요리나 <동파육>이나, 따지고 보면 마찬가지 아닌가요?
이야! 너 정말 많이 늘었구나! 아주 예리해졌는걸? 박수! (짝, 짝, 짝!) 맹자 말씀에 인재를 가르치는 건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라 하셨느니, 참으로 기쁘구나! 그렇다. 스님이 만든 거나 동파가 만든 거나 오십 보 백보, 그게 그거다. 적어도 여기까지는. 하지만 만(↘)말/라이(↗), 서두르지 말거라! 내가 누구더냐? 이야기꾼 소오생이 아니더냐? 아직 얘기가 끝나지 않았지~!
<동파육>은 황주에서 탄생했지만 그러나 황주 음식이 아니란다. 항주 요리라고 하지. 아니, 그건 또 왜 그렇죠? 고향도 중요하지만 성장 환경은 더 중요한 법. 동파는 사천 미산眉山이 고향이니, 사천식 조리법의 영향도 받았을 터!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사천요리라고 해야 하게?
아니다! 복주의 포정사 주련이 먹고 홀까닥 반했던 그 향기 그윽한 고기 찜 요리는, 황주의 <동파육>이 아니다. 몇 년 뒤 동파가 항주에서 업그레이드시킨 항주 명물 <동파육>인 것이다. 황주 <동파육>과 항주 <동파육>은 발음도 비슷하여 맛도 비슷할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 하늘과 땅 차이다! 자, 이제 그 얘기를 해야겠지? 향기 찾아 삼 만리, 두 번째 코스올시다!
최고의 문인과 절세의 미녀, 향기의 문턱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는 어디일까?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의하면 바로 이곳,항주杭州란다. 자, 보렴! 아지랑이에 휩싸인 길게 뻗은 제방 위에 푸른 버들 붉은 복숭아꽃이 온 천지에 가득 날리는 저 모습을 좀 보렴! 더구나 떨어지는 석양에 수면이 비취색으로 물 드는 장면은 정말 환상적이지.
이야~! 선생님, 정말 아름답네요. 저는요, “하늘에는 천국이요, 땅에는 소주 항주(上有天堂, 下有蘇杭)”라는 말을 듣고요, 어이구, 중국 사람들 뻥은 참 대단해… 속으로 그랬거든요? 그런데 직접 와 보니 이 말만큼은 참말인 것 같네요!
하하, 그렇지? 비록 소주는 안타깝게도 요사이 좀 오염된 것 같지만 항주는 여전히 아름답단다. 하늘에서 떨어진 진주, 절세의 미녀 서시西施를 닮은 아름다운 호수 서호西湖가 있기 때문이지. 서호는 바로 곧 항주, 전 중국의 보배란다.
그런데 말이지, 이렇게 아름다운 서호가 저절로 만들어진 걸까? Never! 옥불탁玉不琢, 불성기不成器라! 아름다움이란 갈고닦아서 만드는 것! 제아무리 아름다운 구슬이라도 가다듬지 않으면 그릇으로 사용할 수 없는 법이니, 언제나 외모와 내면세계를 잘 갈고닦아야만 미인이 탄생하는 거란다.
서호도 마찬가지! 절세 미녀의 바탕을 지닌 그녀를 중국의 진주로 가꾼 사람이 있다. 그게 누굴까? 히히, 선생님은 너무 어려운 문제만 내시네요? 음, 혹시… 소동파 아닐까요?(으이그, 이 능청!) 하하, 그렇다! 바로 소동파다. 선생님은 참말로 언제나 쉬운 문제만 내지?(이거 못 맞춘 사람, Out! 강의실 밖으로 나가주시어요?)
황주에 귀양 갔던 동파는 몇 년 뒤 신종 황제가 죽고 왕안석의 신법파가 실권하자 곧 복권하여, 1089년에는 항주 태수로 부임하게 된다. 동파는 내심 은근히 기대가 컸다. 서호의 명성은 그 또한 익히 듣고 오랫동안 그 아름다움을 사모해 왔으니까.
더구나 옛날 당나라 때의 대 문호 낙천樂天 백거이白居易가 제방을 쌓아 예쁘게 단장까지 했다지 않은가? 아니, 근데 이게 웬일? 막상 와보니, 서호는 거대한 뻘 밭에 잡초만이 무성한 황량한 모습 아닌가! 버림받은 절세의 미녀, 서호는 중병으로 쓰러져서 신음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파의 느낌이 어땠을까? 눈앞에 삼삼하게 떠올렸던 아리따운 자태가 일시에 연기로 사라진 그 감회가 어떠했을까? 말없이 바라보다 쓸쓸히 돌아섰을까? 아, 난 참 되는 일이 없어. 머피의 법칙을 떠올리며 에라, 술이나 쳐 마시자, 그랬을까? No, 아니다! 동파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가 누구인가?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예술가가 아니던가!
그는 지체 없이 대대적인 서호 정비 작업에 나섰다. 먼저 경비를 마련해야 했겠지? 물론 조정에 상소는 올렸지만 애당초 그런 건 기대도 안 했단다. 온갖 머리를 짜내어 자체적으로 조달했지. 그리고 이십만 명의 연 인원을 동원, 바닥의 진흙을 파내어서 그걸로 이십여 리에 걸쳐 제방을 쌓았으니, 저기 상하로 길게 뻗은 ‘소동파 제방’, 즉 소제蘇堤는 이렇게 탄생한 거란다. 서호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한 거지.
(상) 서호 개념도. 넓이는 21.22 ㎢. 여의도의 약 세 배 넓이다. 백제白堤란 중당 시대 백거이白居易가 항주태수로 부임했을 때 쌓은 제방이고, 소제蘇堤는 소동파가 쌓은 제방이다. 동파가 이 제방을 쌓은 이후로,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나도 언제나 일정한 수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 근데요, 아름답긴 참 아름다운데요, 이거 쌓느라고 백성들이 얼마나 시달렸을까, 그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좀 무거워지네요. 뭐, 뭐라고? 아니, 이런, 이런! 소동파가 이 제방을 쌓은 게 진시황이 아방궁에 지하궁전 만든 이야기인 줄 아는 모양이지? 천만에! 절대로 오해하면 안 되느니!(찔끔!)
무릇 ‘아름다움(美)’이란 언제나 ‘진리(眞)’ 그리고 ‘선함(善)’과 함께 하는 법! 소동파가 누구냐? 자신의 주관적 개인적 심미관을 위해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짜가 예술가요, 도탄에 빠진 백성들은 난 몰라라 저 혼자서 띵까띵까 풍악을 울리는 탐관오리 변 사또란 말이냐?(애구, 말 한마디 잘못 꺼냈다가…) 아니다! 동파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는 인간을 사랑할 줄 아는 따스한 마음의 진정한 예술가요, 백성의 고통을 자신의 아픔으로 생각하는 참된 정치가였다.
생각해 보렴. 호수 물이 말라붙어 있으니 물고기가 있을 턱이 없고, 물고기도 못 사는데 논밭에 물인들 대겠느냐? 그러니 농사가 제대로 되겠느냐? 그러니 백성들의 생활이 어떠했겠느냐?(묵사발이 되는구나…) 연이은 가뭄, 전염병과 기아飢餓에 허덕이며 서호와 함께 죽어가고 있었으니, 조만간에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참상, 생지옥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서호 정비 사업은 동파의 개인적 심미관을 만족시키기 위한 일이 아니라, 항주 백성들의 절실한 민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이었음을 알아야만 한다. 자연이 황폐해지면 인간의 삶도 함께 파괴되는 법, 참된 아름다움이란 자연과 인간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것임을 명심하거라. 알겠느냐? 넵, 알겠습니다!(이제 끝났겠지?)
그러니 당시 항주 백성들의 반응이 어떠했겠느냐?(어휴, 아직도 또?) 아무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엄청난 사업을 과감히 추진하여, 버림받은 황폐한 땅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탈바꿈시켜 놓은 동파에게 어떤 마음이 들었겠느냐? 지옥에서 신음하다 천국의 주민이 된 항주 땅의 백성들은 다 함께 몰려나와, 할렐루야 항주 태수, 할렐루야 동파거사! 황주 백성들처럼 찬미의 노래를 불렀단다.(후유, 이제야 명랑 분위기…)
그런데, 그중의 누군가가 문득 외쳤다나? 여보게, 우리 조둥아리로만 칭송하지 말고, 뭔가 선물을 하는 게 어떻겠는가? 그래, 그래! 그게 좋겠네! 선물로 우리의 마음을 태수 님께 전달하세! 옳소, 옳소! 만장일치로 선물, 통과! 땅, 땅, 땅!
그 즉시에 회의가 벌어졌다. 근데 뭘 드리지? 태수님이 예술을 사랑하시니, 멋진 그림이나 폼 나는 글씨 써진 병풍이나 액자를 해드리는 건 어떨까? 예끼! 아, 그 냥반이 뉘신가? 글씨에 그림 하며, 시사詩詞에 산문散文하며, 두루두루 통달하신 당금 천하 으뜸가는 최고의 예술간디, 뭐시여? 그런 분한테 뭣을 드린다고? 아, 시방 공자님 앞에서 문자 쓰고, 뻔데기 앞에서 주름잡자는 것이여 뭐시여? 의견이 분분하다.
마지막에 연세가 지긋하신 한 노인네, 조단조단 목소리로 의견을 제시한다. 예로부터 우리 고장 풍습에 고마운 분에게는 돼지고기를 드리는 게 미덕이니 그걸 드리는 게 어떠할꼬? 예? 돼, 돼지고기라굽쇼? 어쩐지 썰렁… 너무 싸잖아? 한동안 뜨악… 문득 누군가 맞장구를 친다. 아, 참! 그 냥반 돼지고기 무지 좋아한다던데? 그으래? 정말? 그래, 그럼 그걸로 하지 뭐. 왁자지껄, 한 바탕 토론 끝에 갑자기 선물은 돼지고기로 낙착! 땅, 땅, 땅!
며칠 후는 마침 설날이었다. 순박한 시골 백성들은 저마다 등짝에 돼지고기를 지고 동파에게 몰려가, 태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우! 새해 인사를 하니, 항주 관아는 그야말로 졸지에 거대한 푸줏간으로 변해버렸단다. 아이쿠, 두야! 동파는 산처럼 쌓인 돼지고기를 보고 어안이 벙벙, 곧이어 하하하, 파안대소破顔大笑를 터뜨리며 주방장을 불러 명을 내렸다.
참으로 고마운지고! 하지만 이 많은 고기를 나 혼자 어떻게 먹겠는가? 내가 좋은 요리법을 알고 있으니 자네한테 일러줌세. 여차여차 쑥덕쑥덕 저차저차 어쩌구저쩌구… 알겠느냐? 음? 저기 술 단지들이 보이네? 때마침 옆 마을 소흥紹興 태수가 선물로 보내온 소흥주 술 단지들이 동파의 눈에 띄었다. 그대로 만들어 저기 저 술과 함께 그동안 고생했던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거라. 자네도 한 그릇 먹고. 알았지? 예으이~!
주방장이 신이 나서 동파의 가르침대로 찜 요리를 만든다. 삼겹살을 큼직큼직 네모나게 썰어다가 커다란 솥 안에 집어넣고 완전 밀봉! 가만있어봐라? 밀봉하기 전에 뭘 어떻게 하라고 그런 것 같은데? 동파의 사천 발음이 절강 출신 주방장에게는 아무래도 귀에 쏙쏙 들어오지가 않았던 터라, 기억이 오락가락한다.
그래, 저기 저 술을 손가락질하면서 뭐라고 했는데? 이 술을 넣으란 말인가? 참, 웃겨! 술을 음식에 넣고 끓이란 말이야? 아냐, 저 냥반이 보통 냥반이냐? 좋은 요리법이라 했으니 그게 진짜 비결일 거야….
혼자 중얼중얼 대면서 물 대신 소흥주를 자작하게 부어 넣어버렸다. 아이고, 저걸 어째! 그 많은 고기를 버릴 수도 없고!
헌데 이게 웬일이냐? 뭉근하게 약한 불에 지구장장 고아내어 그 이튿날 뚜껑을 열어보니, 이야~! 과연, 과연, 우리 사또님은 과연 참으로 신인神人이로세! 주방장은 탄복에 또 탄복! 춤을 추며 동파를 칭송한다.
꿈에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기막힌 향기가 퍼져 나오고 있었다.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중국 최고의 예술가를 만나 비로소 아름다운 모습을 찾은 절세 미녀 서호가, 그 보답으로 동파에게 업그레이드된 <동파육>, 항주 명물 <동파육>을 선물한 것이다. 바야흐로 모든 중국인들은 그들의 인도 하에 향기의 세계, 그 아름다운 문턱을 넘고 있었다.
향기의 세계 찾아 부처님도 담을 넘다
황주 <동파육>과 항주 <동파육>의 결정적 차이는 바로 소흥주! 그 소흥주를 넣느냐 안 넣느냐, 바로 그 차이에 있었다. 다른 술이 아니다. 딸을 낳는 날 담근다는 인간 사랑의 따스한 마음이 담긴 술, 뉘/얼/홍(女兒紅)! 그 소흥주를 넣는 것이 향기의 세계, 그 문턱을 넘는 첫 번째 비결이었다.
선생님, 요새 <동파육>은 비싼가요? 하하, 돼지고기가 비싸봤자 얼마나 비싸겠니? 헤헤, 그럼 우리도 어떤 맛인지 한번 먹어봐요. 그럴까? 이곳 항주에서 최고로 유서 깊은 음식점은 누외루樓外樓! 서호의 그림 같은 풍광을 지켜보며 향기의 세계를 넘나드는 기막힌 곳이지.
음, 지난번엔 예약도 안 하고 소주 송학루를 찾아갔다 퇴짜맞고 누룽지로 배를 채웠지? 전철前轍을 또 밟을 수야 없는 노릇! 이미 예약을 해놨으니 어서 가서 그 향기의 세계를 느긋하게 음미하여 보자꾸나. 우와, 역시! 선생님은 역시 드래곤 표, 드래곤 표가 최고예요! 예끼, 이 녀석! 선생님을 약 올려?(히히, 그래도 기분 좋당!)
우와! 이게 <동파육>이군요! 이야, 저 그릇 좀 봐! 벌써 담아 온 뚝배기부터 무지 폼 나네요! 으이그, 챙피하게 소리 좀 지르지 말아라. 나처럼 이렇게 조용히 음미하며 먹는 거야. 젓가락으로 한 점 떼어내어 입안에 넣어볼까? 으으~~~음! 아니? 이게 대체 고기냐 두부냐? 삼겹살이 어찌 이리 야들야들 보드라울 수가 있을꼬?사르르 그 순간에 녹아내려 저절로 꼴까닥 목구멍에 넘어가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입안에 가득 넘쳐흐르는 이 그윽한 향기의 여운이여! 아하, 이게 바로 동파와 서호의 사랑의 결실인 게로구나! 참으로 오묘하고 절묘한 맛이요 향기로다!
음, 사연이 이러하니 복주 절도사 주련이 먹어보고 뿅! 가지 않을 수가 없었겠군! 아, 정말 그 사람 전속 요리사였다는 그 누구죠? 맞아, 춘발鄭春發이 아저씨는 그 뒤에 어떻게 됐어요? 그래, 그 얘기를 마저 해줄까?
춘발이가 한 수 가르침을 청했던 소흥 여인이 주렴에게 대접한 그 찜 요리는 바로 이 <동파육>을 조금 더 업그레이드시킨 것이다. 그날 춘발이가 배운 비결은 모두 세 가지. 첫째, 소흥주를 넣는다. 그래야 향기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요리를 할 때 술을 넣는다는 건 절강성이 아닌 다른 지방에서는 생각조차 못했던 조리법. 소흥주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술을 넣고 찜 요리를 하면 절대로 그 맛 그 향기가 우러나오지 않으니까. 그러니 과거 복건 사람들이 해 먹었던 찜 요리는 황주 <동파육>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거지.
둘째, 반드시 소흥주 술 단지에 고기를 넣고 은은한 불로 다려내야 한다. 네? 그건 또 무슨 이치죠?<동파육>은 그냥 보통 솥에 넣고 찌지 않았나요? 하하, 여기에 또 절묘한 이치가 숨어 있느니. 처음에는 보통 솥을 사용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소흥주 술 단지에 집어넣고 약 다리듯 다렸단다. 또다시 업그레이드가 된 거지. 그럼 더 좋은가요? 물론이지. 직접 술 단지에 넣고 다리면 훨씬 더 향기가 좋단다. 이해가 안 돼요. 음, 키포인트는 두 가지다. 하나, 소흥주 술 단지는 유약을 안 바른 질그릇이라는 점. 둘, 향기는 오래될수록 좋다는 점.
설명을 해주지. 흙이란 생명이 없는 무생물로 배웠겠지만 사실은 살아있는 생명체다. 최근에 서양에서 나온 가이아나 이론이란 말을 들어봤니?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아요. 그 이론이 뭐냐 하면 바로 ‘지구는 살아있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서 대지, 즉 흙이란 건 무생물이 아니라 생물이란 주장이지. 동방 세계에선 옛날부터 하던 얘긴데 그걸 미신이라고 코웃음 치더니, 요새 와서 아주 새로운 학설인 것처럼 저 난리란다.
아무튼 모든 살아있는 생물은 호흡을 한다. 흙으로 만든 질그릇도 당연히 숨을 쉰다. 그런데 거기다가 유약을 바르면 호흡이 차단되어 흙으로서의 생명이 끊긴단다. 그러니까 유약을 바른 사기그릇 같은 건 생명이 없는 거고, 바르지 않은 질그릇은 숨을 쉬는 생명체라는 말이다. 근데 왜 유약을 발라요? 하하, 부서지기 쉬우니까 그렇겠지. 그러나 강남 일대의 진흙은 스토리가 다르다. 아주 찰져서 유약을 안 발라도 아무 문제가 없다. 특히 의흥宜興 자사토紫沙土는 너무나 찰기가 좋아, 중국의 다호茶壺는 거의 다 이 흙으로 만든단다.
좌우 당간에 소흥주 술 단지는 바로 그런 진흙으로 만든 질그릇이다. 그러니 어떻겠니? 소흥주를 오래 담아두면 술의 꽃향기가 항아리에 그대로 배어버리겠지? 호흡을 하면서 향기를 빨아드린다는 얘기다. 그런 내력을 지닌 술항아리에 고기를 넣고 은은한 불로 오랫동안 약 다리듯 다려내면? 그동안 흡수했던 향기를 다시 토해내게 마련이지. 좋은 술을 오래 보관했던 항아리일수록 그만큼 좋은 향을 토해내는 거란다. 향기는 오래 묵을수록 좋은 법이니까. 이해가 가니?
아하, 정말 절묘한 이치네요. 그럼 <동파육>을 담아 온 이 뚝배기 그릇도 소흥주 술항아리인가요? 하하, 유감스럽게도 아닌 것 같구나. 하도 많은 사람이 <동파육>을 먹으니 소흥주 술항아리가 남아나질 않는 게지. 그래도 유약을 바르지 않은 뚝배기 질그릇에 끓인 거니 솥보다는 훨씬 낫겠지?
셋째, <동파육>은 돼지고기 찜 요리지만, 다른 재료를 활용해도 똑같이 맛있다는 사실이다. 벌써 소흥 여인은 돼지고기뿐만 아니라 닭고기 오리고기를 함께 넣었는데도 주련이 헬렐레할 정도로 맛있었으니까. 그치? 춘발이는 특히 이 점에 눈이 번쩍 뜨였단다. 그래 맞아, 이거야. 이걸로 승부를 거는 거야! 자신이 생각해도 자신의 아이디어가 너무나 기똥찬지라 싱글벙글 히히 하하 입이 찢어져서 소흥 여인의 집을 나선 거란다.
춘발이, 돌아오자마자 맨 먼저 한 일이 무엇이냐? 까짓 거! 야망의 싸나이가 남의 집 월급이나 받고 살게 생겼어? 사표를 내버렸다. 아니, 자네 왜 이러는가? 주련이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은행 빚을 얻었는지 사채 돈을 빌렸는지, 좌우지간에 복주 시내 한 복판 동가東街 거리에 허쭈? 대형음식점을 떡! 내어설랑 이름을 붙이니, <삼우재三友齋>라!
메뉴는? 말이 필요 없다, 그녀에게 배워 온 찜 요리, <만단향滿壇香>이었다! ‘만단향’이 무슨 뜻이죠? 가득 찰 ‘만(滿)’, 항아리 ‘단(壇)’, 술항아리에 향기가 가득 찼다~, 그 얘기지. 야, 그 이름 괜찮네요.
아니, 내가 말을 잘못했군. <만단향>이 아니었다. 그건 닭과 오리, 돼지가 들어간 육군에 공군 요리였고, 춘발이의 메뉴는 육군 공군의 화력은 대폭 줄이고, 새로이 잠수함 구축함에 항공모함까지 동원한 막강 해군의 전력으로 완전 대체를 시켜버린 전혀 다른 맛의 새로운 요리였다.
복주는 누런 바다 황해를 완전히 벗어난 남중국해南中國海의 초입에 위치한 항구 도시. 온갖 희한한 해산물이 모두 모여드니, 춘발이는 바로 그 점에 착안하여 해산물 위주의 완전히 새로운 요리를 만든 것이다.
소흥주를 담았던 커다란 술항아리 밑바닥에 육군 공군의 재료에 버섯 죽순 깔아놓고, 그 위에 소흥주와 특별 제작한 닭 국물 소스를 쫘악― 고루고루 끼얹은 다음, 간장에 설탕 파 생강 계피가루 등등등 조미료를 투여! 그다음, 또 그 위에 상어지느러미 해삼 전복과 오징어에 패주貝柱 조개 등등등 또 한 겹을 도탑게 깔은 다음, 또다시 소흥주와 국물 소스 & 각종 조미료! 그 위에 또 깔고 또 뿌리고, 또 깔고 또 뿌려서 항아리가 꽉 차자 완전 밀봉! 은은한 불에 하루종일 푹 고아내니, 그 맛이 과연 어떠할꼬?
정춘발은 정식 개업을 앞두고 복주 시내 유지들을 모두 모아 시식회試食會를 가지었다. 새로운 요리란 게 어떤 거야? 그 좋은 직장을 때려치우고 빚 얻어서 벤처 음식점을 내다니, 춘발이가 지금 제정신인 게야? 웅성웅성 이야기에 꽃을 피우는데, 오늘의 주인공 춘발이가 나타났다.
국민의례!(아휴, 배고파) 어쩌고저쩌고 인사를 하고, (빨리 안 주나?) 손바닥을 두드려 신호를 보내니 하인 두 명이 커다란 술항아리를 내온다. 드디어 시식 시작! 아니, 먼저 술항아리 뚜껑을 열어야겠군. 짠! 밀봉된 뚜껑이 열렸다.
아아~앗? 으으~음! 세상에, 세상에! 이렇게 기막힌 향기가 있다니! 모두들 항아리 속에 든 음식 먹을 생각조차 잊어버리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은은히 퍼져 나는 그 향기를 정신없이 음미하는데, 아니 이것 좀 보소? 인근 사는 동네 사람, 사냥개처럼 벌름벌름 킁킁, 향기의 세계 찾아 인산인해 구름 떼처럼 모여드네? 와글와글 왁자지껄! 아니, 이게 무슨 냄새길래 이렇게 좋은 거야? 그 자리에 마침 글 깨나한다 하는 수재秀才 있어, 그 광경을 보고 입을 열어 시 한 구절 읊었다니, 소오생의 번역으로 뭐라 하나 들어보자.
술항아리 뚜껑 여니
사방에 흩날리는 냄새의 향연이여!
참선하던 부처님도
향기의 세계 찾아 담을 넘어 오시누나!
啓壇葷香飄四隣, 佛聞棄禪跳墻來!
모두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음식을 먹는다. 후르륵 쩝쩝, 이야 향기가 좋으니 맛도 기가 막히구먼! 내 평생 이렇게 기막힌 음식은 처음 먹네. 헌데, 주인장! 이 요리 이름이 뭐요? 글쎄요? 전에는 <만단향>이라고도 하고 <복수전福壽全>이라고도 했사오나, 재료도 다르고 맛도 완전히 다르니, 아무래도 새로운 이름을 지어야겠는 걸 입쇼? 음, 아까 저 수재 양반이 지은 시구詩句가 썩 마음에 드는구려! 향기의 세계 찾아 부처님도 담을 넘다! 어때, 이 요리 이름을 <불도장佛跳牆>이라고 하는 게? 이야, 그 이름 좋네! 그걸로 합시다! 짝짝짝!
정춘발의 벤처 음식점은 그리하여 대 성공! 참선하던 부처님도 담을 넘어오시는 판에, 우리 같은 속인俗人이야 말할 나위가 없지~! 매일매일 향기의 세계를 그리워하는 인파들로 <삼우재> 음식점 규모로는 감당이 안 되는지라 긴급 확장 공사! 170년 전통을 자랑하는 중국 최고의 유서 깊은 요릿집 복주의 <취춘원聚春園>은 이렇게 고고지성呱呱之聲을 울린 것이다.
자, 이야기를 정리하자. 향기 찾아 삼만 리, 복건성 복주에서 호북성 황주로, 황주에서 항주로, 항주 옆의 소흥도 잠깐 들렀던 우리의 기나 긴 여정은 다시 복주로 돌아와 담을 넘어오신 부처님을 만나 뵈옴으로써,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고하게 되었다~, 그 얘기다. 양자강 요리의 특색이 오색 영롱한 colour의 세계였다면, 절강과 복건이 합작으로 창조한 요리의 특색은 향기의 세계! 그 내력 그 사연을 알고 보니, 소동파와 서호, 그리고 소흥주가 한데 어우러진 인간사랑 자연 사랑의 아름다운 향기가 어려있었다~, 이 얘기다.
그런데 잠깐! 중국요리의 특색을 한 마디로 말하면 뭐라고? 그렇다! 색色 · 향香 · 미味다! 그러니 어떻다고? 중국요리의 특색은 바로 이 지역을 거치면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지금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거다. 오케이? 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