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오생 Jul 07. 2024

16. 엽기의 세계, 식도락의 천국

홍콩과 대만 - 중국 요리 마지막 순례 여행

여기는 홍콩香港! 

우리들 중국요리 순례 여행의 종착역인 광동廣東의 관문이다.

우리의 여행처럼 중국요리도 이 지방에서 완성되어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그런 의미에서 잠시 우리가 여태까지 다닌 경유지와 그 특색을 정리해 볼까?


산동山東, 다 함께 모여 다 같이 먹자!

중국 음식의 기본 정신이 바로 여기서 탄생했다. 기억하고 있지?


사천四川, 맛의 멜로디!

굶주린 배를 채우던 수준에서 중국 음식을 ‘맛味’의 세계로 인도한 고장이다.


양자강揚子江, ‘색色’의 세계!

아, 그 오색 찬란한 요리들을 생각하니 지금도 침이 고이는군.

중국요리에 이미지의 효과를 극대화시킨 곳이었다.



향香! 절강浙江과 복건福建은 향기의 세계!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중국 최고의 예술가 소동파蘇東坡, 꿈처럼 아름다운 천국의 풍광 서호西湖, 따스한 인간사랑의 천하 명주 소흥주紹興酒, 그리고 복건 지방의 풍부한 해산물이 하나로 만난 향기의 세계였지.


이렇게 ‘맛味’과 ‘색色’의 세계에 ‘향기香’라는 깊이를 더해 줌으로써, 중국요리는 환상의 멀티미디어 종합 예술로 승화한 거다. 선생님, 그럼 이곳 광동 요리의 특색은 뭔가요?      

 



오감五感 만족, 미스터 몽키! 엽기의 세계     


중국요리의 특색은 한 마디로 ‘써(↘) · 썅(→) · 월(↘)’,  ‘색色 · 향香 · 미味’이다. 근데 이런 특색은 이미 다른 지방에서 다 갖춰졌으니 어쩐다? 이곳은 특색이라고 할 만한 게 없겠네? 하하, 그러나 걱정 마시라! 보다 더 재미있고 보다 더 인상 깊은, 아니 어쩌면 아주 충격적인(!) 스토리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깐. 짠!


식재광동食在廣東!


중국 사람들은 광동 요리의 특색을 그렇게 표현한다. 그게 무슨 뜻인데요? ‘먹는 건 광동에 다 있다’는 뜻이지. 이해가 가니? 글쎄요, 긴가 민가 하네요. 그래? 그럼, 의역을 해줄까? 울리 광동 쌀람 뭐든지 다 먹어해! 그 뜻이다. 이해가 가지? 아~, 그게 그런 뜻이군요.


그렇다. 우스개 소리로 이 지방 사람들은 날아가는 비행기랑 공부하는 책상다리 빼놓고 뭐든지 다 먹거리로 삼는다고 한다. 거의 엽기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괜히 무서워지네요. 사람이라도 잡아먹나요? 예끼, 그건 엽기가 아니라 괴기怪奇의 공포세계겠지. 헤헤, 그런가요? 그럼 대체 어떤 것들을 먹길래 그런 얘기가 생긴 거죠? 하하, 그럼 우선 먼저 특이한 요리 한 두 가지만 소개해 줄까?




맑고 청아한(?)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아주 작은 소리… 어디서 들리는 거지? 아하~! 저기 저 원탁 위에 놓인 크리스털 그릇 속에서 나는 소리였구나! 투명한 그릇 속을 들여다보니 곱게 다져진 음식이 보인다. 이게 뭐지? 아이스크림인가? 고급 백화점 식품 매장에 새로 선을 보인 유럽 스타일의 아이스크림처럼 무지개 빛이다. 그러나 이것은 ‘만두소餃餡’! 해삼, 전복, 패주, 게 살, 상어 지느러미, 양장피, 새우, 표고버섯, 죽순, 석류, 비파…. 이 세상에서 제일 비싸고 귀한 음식 재료들을 곱게 다져 별의별 향신료와 함께 버무린 최고급의 만두소다. 실내에 하나 가득 은은히 퍼져 가는 이 그윽한 향기…. 으음~! 정말 기막힌 향기인걸! (후각 만족, 찰카닥!)


근데 만두피皮가 없네? 뭘로 싸 먹는다지? 찌직, 찌지직, 찍, 찍…. 앗! 자세히 보니 그릇 속에 뭐가 꼬물꼬물 기어 다니잖아? 아니, 저게 뭐야? 으악, 흰 쥐 아냐? 그렇다. 하얀 쥐새끼들이었다. 손가락 마디 하나 크기나 될까? 이제 막 태어난 작은 새끼 쥐들이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채 허겁지겁 정신없이 만두소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기막힌 것은 만두소에 독주毒酒가 섞여있는 탓으로 새끼 쥐들의 보드라운 내장이 차츰 녹아가고 있다는 사실! 피부도 덩달아 점점 투명해지고…. 새끼 쥐들이 삼킨 만두소는 그럴수록 점점 더 오색 영롱한 빛을 발한다. 히야, 정말 찬란하군! (시각 만족, 찰카닥!)


자, 이제 드디어…, 입에 넣는 순간! 하얀 새끼 쥐를 살포시 손으로 집어 천천히, 그리고 지그시 이로 깨문다. 파르르, 발버둥 치는 새끼 쥐! 햐, 혓바닥에 느껴지는 진동이 그만인걸! (촉각 만족, 찰카닥!) 그와 동시에 귓전에 스며드는 소리! 찌직, 찌지직, 찍, 찍…. 아, 대나무 숲을 버석이며 스치는 바람 소리인들 이렇게 청아할까!(청각 만족, 찰카닥!) 뒤이어 새끼 쥐가 뱉어내는 만두소의 기막힌 맛이 혀에 녹아든다. 음, 그래. 이런 걸 꿀맛이라 하는 거야!(미각 만족, 찰카닥!) 드디어 하나로 어우러진 오감五感! 교향악단이 연주하는 감미로운 멜로디가 되어 인간을 환상의 세계로 인도해 주다! 꼴까닥!(무슨 소릴까?) 아멘!     


웨엑―! 그만하세요! 에이, 말도 안 돼! 세상에 그런 요리가 어딨어요? 선생님이 지어낸 얘기죠? 아니, 이 녀석 좀 보게? 지어내긴 뭘 지어내? 그러게 엽기의 세계라잖아? 진짜로 이런 요리가 있다니깐! 선생님 말을 그렇게 못 믿는 학생들이 어딨냐? 말도 안 되니까 그렇죠. 못 믿겠다구? 쪼아, 그람 하나 더 해주지.

  



제2 탄! 원탁을 에워싸고 둘러앉은 십여 명의 눈동자! 한결같이 기대에 차 있다. 모두 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정장 차림의 남자들. 음, 차림을 보아하니 귀한 손님이 오신 것 같군. 근데 오늘은 식탁이 어딘지 모르게 다른 때와 달라 보이는걸? 뭐가  다른 거지? 아, 그렇구나! 원탁 한가운데의 좐(↗)판(↓) 놓일 자리에 동그란 뚜껑이 덮인 게 평소와 다르다.


선생님, 좐/판(轉盤)이 뭐예요? 음, 그러고 보니 요즘 우리나라 중국 식당에서는 잘 안 써서 너희들은 잘 모르겠군. 중국 사람들이 밥 먹는 원탁은 보통 십여 명이 충분히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크다. 그러니 어떻겠어? 음식을 올려놓으면 반대쪽에 있는 사람은 너무 멀어서 먹을 수가 없겠지? 그래서 멀리 앉은 사람도 잘 먹을 수 있도록 빙글빙글 돌아가게 해 놓은 동그란 판을 좐판이라고 하는 거야. 알겠지?


아, 그렇구나! 근데, 요즘 우리나라 식당에는 왜 그런 원탁이 드문 거죠? 하하, 아마 너희들이 서로 더 많이 먹겠다고 자꾸 싸워서 그런 게지. 서빙하는 종업원들이 음식을 골고루 나누어주니까 그런 좐판이 필요할 리가 없지 않겠어? 요새는 중국집마다 워낙 서비스 경쟁이 치열하잖아. 에이, 얘기가 딴 데로 너무 많이 샜다. 다시 아까로 돌아가서!


이윽고 서로 반대 방향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이 경건한(?) 태도로 몸을 일으킨다. 주최 측 인사人士인 듯. 아니, 그런데 저건 또 뭐야? 망치하고 톱이잖아? 저게 왜 여기 놓여있지? 지금 밥 먹으려고 앉아있는 게 아니었나? 의문을 풀어주려는 듯 그중 한 사람이 망치를 든다. 또 한 사람은 뚜껑을 연다. 짠! 뭐가 나타났을까?


앗! 헬로, 헬로 미스터 몽키! 원숭이 아냐? 원숭이의 머리였다. 으악! 근데 저 원숭이 머리가 움직이네? 알고 보니 가엾은 원숭이, 식탁 밑으로 묶여있는 모양이다. 식탁 위로 모습을 드러낸 머리가 사방을 조심스레 둘러본다. 천진난만한 눈동자다. 여기가 어디지? 쟤네들은 왜 군침을 흘리며 앉아있지? 초롱초롱한 눈,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는데…. 그 순간이었다!


딱! (별똥이 튀는 소리) 깩!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그 뒤에 이어지는 소리를 모아보자. 슬금슬금(무슨 소릴까?), 따끈따끈(뇌에서 김 나는 소리?), 철컥철컥(다 같이 젓가락 드는 소리!), 후루룩 쩝쩝… (아, 인간이 싫다!)


※ 참고 ※

이 이야기는 픽션이다. 소오생이 대학 재학 시에 홍콩 영사를 역임하셨던 유명규 교수님께 들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꾸며보았다. 이와 유사한 풍문은 많이 돌아다니지만, 실제로 이런 풍습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태평어람太平御覽》《오잡조五雜俎》등 옛날 문헌에 '원숭이머리 수프 猴頭羹'를 먹는 문화에 대한 기록이 있지만, 이는 진짜 '원숭이 머리'가 아니라 '노루궁둥이 버섯'을 지칭한다. 오늘날 중국음식 메뉴에 '사자머리 獅子頭'가 있지만 진짜 사자머리가 아니라 다진 돼지고기를 사자머리처럼 동그랗게 만들어서 볶은 음식을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코로나 19 이후로 중국인들의 엽기 음식문화는 큰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나 요리연구가 정갑식에 의하면, 중국보다는 오히려 18, 19세기의 유럽 상류층 사회에서 식사 후식으로 큰 동물들의 두개골 요리를 즐겨 먹는 문화가 성행했다고 한다. 1806년 런던에서 발행된 요리책을 살펴보면 토끼 머리 요리 레시피를 아주 상세하게 적어 놓았으며, 북유럽에서는 양의 머리를 반으로 잘라서 뜨거운 불에 훈제하듯 구워 먹는 문화가 있었고, 프랑스에서는 동물들의 두개골을 주요 식자재로 삼아 레몬 양념으로 요리해서 먹었으며, 독일에서도 동물 두개골로 수프를 만들어 먹었다. 또 러시아에서도 레몬소스로 두개골 요리를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엽기 음식은 어느 나라 어떤 문화에도 존재했다. 정갑식, <동물들 머리 요리 이야기> 참고




엽기와 식도락의 차이는?     



광동 요리의 가장 큰 특색은 울리 쌀람 뭐든지 다 먹어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요리의 재료로 삼는다는 점이다. 쥐새끼도 먹고 원숭이 골 요리도 먹는다. 따끈따끈 김이 나는 원숭이의 뇌수腦髓는 날로 먹지만, 기록에 보면 쥐고기는 옛날부터 포를 떠서 먹는 게 더 인기였단다.(원조 쥐포!) 뿐이냐? 박쥐도 먹고 구더기도 먹는다.(우엑!) 


중국의 남방 요리는 날짐승이나 다리가 아주 많거나 아예 없는 짐승들에게 강한 애착을 보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제일 많이 먹는 게 뭘까? 비암 왔어요, 비암! 그렇다. 뱀은 광동 명물 중의 명물이다. 광동의 성도省都는 광주廣州(广州: Guang Zhou, 광쩌우)! 그곳 장란로槳欄路에 가면 사찬관蛇餐館이란 식당이 있다. 사왕蛇王 오만吳滿이라는 사람이 세운 백 년 전통을 자랑하는 유서 깊은 뱀 고기 식당이라는데, 장사가 어찌나 잘 되는지 구름 떼처럼 몰려드는 손님들이 보통 하루 평균 천 여 마리의 뱀을 맛있게도 냠냠, 하늘나라로 보내신다고 한다.


오만가지 뱀 요리 중에서도 최고 인기 메뉴는 단연 <용호투龍虎鬪>! 그게 어떤 요리인지 아니? 영화 제목 <용쟁호투龍爭虎鬪>하고 비슷하네요? 용하고 호랑이가 싸운다는 뜻이죠? 용은, 보나 마나 뱀일 테고, ‘호’는 뭐죠? 호랑이랑 비슷하게 생긴 게 뭐가 있을까? 냐~옹! 고양이다.


예엣? 고, 고양이요? 으윽…, 웨엑! Stop! 그만하세요, 그만! 난 선생님이 그렇게 엽기인 줄은 몰랐어요! 좀 있다가 밥 먹어야 하는데 어쩌지? 예끼, 이 녀석아! 나는 아직도 개고기는 물론이요, 양고기 오리고기도 잘 안 먹는데 그런 걸 먹었겠냐? 에이, 선생님, 빨랑 여길 떠나요. 난 광동 사람들이 그렇게 드러운 놈들인 줄 정말 몰랐어! 공연히 흥분하지 마렴. 광동 사람들이라고 다 그런 게 아니니까. 대부분은 우리와 똑같은 정서를 지니고 있단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서도 엽기 음식만 찾는 사람도 많잖아, 그치?


하지만 이 지방에 엽기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엄연한 사실! 왜 그러냐구? 유구한 사연이 있다. 자, 지도를 보면서 얘길 들어보렴.(아휴, 또 지도 공부?) 우리가 다녀온 절강성浙江省만 해도 춘추 전국 시대부터 중국 역사에 자주 등장하던 지역이다. (절강 확인했죠?) 

하지만 복건福建 지역부터는 스토리가 틀려진다.(바다 건너 대만도 어딨는지 확인하세요?) 이 지역의 옛날 명칭은 민閩! 그런데 이 '민閩'이란 글자를 잘 살펴보자. ‘대문門’ 안에 ‘버러지虫’가 들어가 있으니, 이 지역 사람들은 중원의 한족漢族들에게 ‘집안에 사는 버러지’ 취급을 받은 게 틀림없다. 하물며 거기보다 더 남쪽에 있는 광동 지역이야 말할 나위가 없지. 여기는 뭐라고 불렀는데요? 


여기는 ‘월粵’이라고 불렀다. 절강 지역도 ‘월越’이라고 했지만 한자가 다르니 헷갈리면 안 된다, 알았지? 좌우간에 ‘월은 또 무슨 뜻이냐? 산돼지란 뜻이다. 집안에 사는 버러지 같은 인간의 수준을 뛰어넘어, 야생의 산속에서 아무거나 먹고사는 산짐승 취급을 한 거지. 저런, 산짐승 같은 놈들! 어떻게 그런 걸 다 쳐 먹냐? 하하! 우리만 우엑, 그런 걸 어떻게 먹어! 비명을 지른 게 아니었군요? 그렇다. 먹기 좋아하는 중원의 중국인들도 이 지역의 먹거리에는 어이가 없어서 혀를 내둘렀던 것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왜 그런 엽기 먹거리들을 좋아하죠? 정말 미개인이라서 그런가요? 중국말에 “산에 가면 산을 먹고, 물에 가면 물 먹는다(靠山吃山, 靠水吃水)”란 말이 있다. 살고 있는 주변의 환경에서 먹거리를 구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복건이나 광동은 아열대 기후의 밀림 지역이 많다. 그러니 당연히 밀림에서 먹거리를 구하는 수밖에. 이제 이해가 가지?




그나저나 너희들 해산물 좋아하니? 해~산, 물요? 그럼요, 생선회를 제가 얼마나 좋아한다구요! 애구, 갑자기 침이 꼴까닥 넘어가네? 왜요? 생선회 사주시게요? 하하, 너희들 아주 이상하구나. 조금 아까는 엽기라고 질색을 하더니, 해산물이라니까 갑자기 침을 질질 흘리네? 근데 말이지, 생선회도 엽기 아닐까?


너희들 그런 거 못 봤니? 우리나라의 어떤 횟집에서는 얇게 썬 생선회를 몸통 부분에 올려놓고 머리랑 꼬리를 함께 내온단다. 살아있는 싱싱한 놈을 잡은 거라 이거지. 그때 먹고 먹히는 자들이 뭐라고 대화를 주고받을지 생각해 보자.


아직 죽지 않은 생선, 눈을 꿈벅꿈벅, 꼬리는 탁탁! 투덜대며 가라사대: ‘아니, 저 놈이 내 뱃살을 먹고 있잖아? 아이고, 배 아파!’ 먹는 사람 가라사대: ‘이야, 저 놈 눈 껌벅대는 게 아주 싱싱한 걸? 아유, 쫄깃쫄깃 맛이 그만이네!’ 그런 건 엽기 아니냐? 외국 사람들이 보면 기겁을 한단다. “오, 노! 항쿡 싸람 야만이에요, 너무너무 찬인해요!” 헤헤, 그러고 보니 그럴 법하군요. 하지만 생선회는 맛있잖아요. 중국 사람들은 바보같이 그것도 몰라.


하하, 남이 하면 불륜이고 자기가 하면 로맨스? 편견을 갖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상대를 이해해야 하느니! 헛된 문화적 우월주의에 빠져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면 안 되느니!(찔끔! 애구, 또 혼나는군…) 프랑스의 가슴 큰 여배우가 공연히 꼴불견이겠느냐? 우뚝 솟은 쌍둥이 빌딩이 공연히 무너졌겠느냐?(고개 숙이고 반성…) 엽기냐, 식도락이냐? 생각의 차이일 뿐이다! 알겠느냐?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중국 사람들도 옛날에는 생선회를 엄청 좋아했다. 어? 그래요? 오죽이나 밝혔으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다, 그런 말이 생겼겠니?(나도 아는 말인데?) ‘사람 인人’, ‘입 구口’, ‘날생선 회膾’, ‘구운 고기 자炙’! 아주 많은 사람들이 고기는 구워 먹고 생선은 날로 먹는 걸 즐겼다는 얘기다.(그게 그런 뜻이었나?) 그래서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많이 애송하는 유명한 시구詩句를 보고, 인구에 회자된다, 그렇게 말하는 거란다.(그런 사연인 줄은 미처 몰랐군. 히히, 챙피.)


그런데 왜 요즘에는 안 먹죠? 음, 이유가 있지. 중국 대륙은 땅덩어리가 워낙 커서 바다가 아주 멀다. 그래서 옛날 중국 사람들이 먹었던 생선회는 대부분 민물고기였다. 그런데 민물고기는 회로 먹으면 절대로 안 된다. 기생충이 많아서 간디스토마에 걸리면 치명적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는 민물고기를 회로 먹었지만 요새는 거의 먹지 않는다. 중국도 마찬가지. 이해가 가지?


하지만 복건과 광동의 바닷가 사람들은 민물고기를 먹을 일이 없다. 이곳 앞바다는 꾀죄죄한 황해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넓은 바다, 태평양의 일부분인 깊고 푸른 남중국해다. 그물만 던지면 온갖 왕따시 해산물이 하나 가득 올라온다. 헌데 이 지방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 따끈따끈 원숭이 골도 아유 맛있어! 날로 먹는 판국인데, 생선회를 안 먹는다? 말도 안 되지!


그물에서 올라온 펄펄 뛰는 온갖 생선, 회로 떠서 다 먹는데, 얼마나 맛있는지 조정에서 파견 나온 중원의 한족漢族 관리들도 이내 맛을 들이고 너희들처럼 침을 흘리며 덤벼들었단다. 어? 요게 첨엔 쫌 비리더만 먹을수록 맛있네? 그리곤 어떻게 됐게? 그 맛을 못 잊어 고향으로 돌아가신 후에도 아무 민물고기나 잡아먹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게?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영원한 고향으로 돌아가셨지. 그런 양반이 한 둘이 아니란다. 저런 쯧쯧! 그러게 바보같이 민물고기 회를 왜 먹어!


근데 그 양반들만 가신 게 아니다. 바다 생선회를 먹은 이 지방 사람들도 그 뒤를 따라 숱하게 하늘나라로 올라가셨다. 아니, 그건 또 왜요? 생각해 보렴, 이 지방이 어떤 지역인가. 아열대 지역 아니냐? 바다 생선이라도 수온이 높은 여름에 잡히는 놈을 회로 먹으면 대단히 위험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름에는 비브리오 균이다 뭐다 해서 횟집이 파리만 날린다. 그치? 더운 지방 광동 사람들이 고것도 모르고 건방지게 우리처럼 생선회를 마구 먹었으니 가실 수밖에….


좌우간에 바다 생선이든 민물고기든 잘못 먹으면 하늘나라 직행 열차를 타게 된다는 이치를 알게 된 건 불과 몇십 년 전! 그 후로는 당국에서 아예 금지를 시켜서 못 먹는 거다. 그러다 보니 조상들이 열나게 먹던 습관도 다 잊어버린 거고. 이제 알겠지? 아무튼 지금 내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거냐? 엽기냐, 식도락이냐, 생각의 차이일 뿐이다~, 지금 그 얘길 하고 있는 거다. 알겠느냐?(으으~, 그래도 엽기는 엽기, 생각만 해도 끔찍해…)




눈물 젖은 홍콩의 밤, 식도락의 천국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전, 소오생은 후배인 맹 아무개 교수와 함께 처음으로 홍콩에 놀러 갔다. 빅토리아 산정에서 내려다본 홍콩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수십 층의 빌딩들이 성냥 곽처럼 다닥다닥 늘어선 Hong Kong Island와 구룡九龍 반도의 첨사취尖沙嘴, 음, 홍콩 지명을 한국어 독음으로 읽으면 어쩐지 어색하단 말이야. 청룽成龍 발음을 한번 흉내 내 볼까? 거우룽 반도의 침사쭈이에 물 드는 노을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동방의 진주 홍콩의 참된 매력은 그 노을이 완전히 사라질 무렵부터 드러나기 시작한다. 홍콩의 야경夜景, 오색 영롱한 그 불빛의 축제를 한 번이라도 지켜본 사람은 절대로 그 아름다움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더욱 잊지 못한다. 그 눈물 어린 밤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아니, 우리 선생님, 홍콩 아가씨한테 차이기라도 했나요? 웬 눈물? 


홍콩은 물가가 비싸다. 나처럼 가난한 유학생에게 홍콩 여행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하는 수 있나? 최대한 경비를 아껴야지. 아직 중국 음식에 익숙하지도 못한 처지에 겁도 없이 뒷골목의 싸구려 음식점에 들어갔다. 뭔지도 모르고 대충 손짓 발짓으로 음식을 시켜 먹고 나니, 우엑! 무슨 고기인지 너무 느끼하다.(싸구려 홍콩 음식은 이렇게 느끼하다!)


그래도 싸나이가 이것도 못 먹으랴! 후배의 강권으로 억지로 꾹 참고 다 먹었다.(나는 후배한테 이렇게 꼼짝 못 한다) 그런데 먹자마자 속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위로 마구 나온다. 그뿐이 아니었다. 아래로도 마구 나온다. 그 날 뿐이 아니었다. 그다음 날도, 그 다음다음 날도, 며칠 동안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아래위로 저절로 줄줄 쏟아진다. 소오생, 참말로 홍콩 갔다!


며칠 후, 누렇게 뜬 얼굴로 그 유명한 빅토리아 산정에 올라가 홍콩의 전경을 구경하게 되었다. 며칠을 굶었던 탓일까, 노을이 황홀하게 아름다웠던 탓일까? 그렇게 아프던 배의 통증이 가라앉았다. 문득 무엇인가 먹고 싶어졌다. 아, 뭘 먹으면 속이 괜찮을까? 고민하며 이리저리 둘러보니 햄버거 집이 보인다. 맞어, 저건 내가 먹어본 적이 있지. 자신 있게 햄버거 하나를 사서 꼭꼭 씹어먹으며 홍콩의 야경을 내려다보는데, 갑자기 다시 배가 끊어지는 듯 아파 온다. 으으으, 하나님, 제게 너무 큰 시련을 주시나이다….


아! 눈물 어린 빵을 먹어보지 못한 자와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사연이 이러한데, 그 영롱한 홍콩의 야경을 지켜보며 내가 눈물이 나겠는가 안 나겠는가?


홍콩은 그 후로도 서 너 번 더 갔다. 나중에 알게 된 그곳에 사는 고등학교 선배가 자꾸만 놀러 오라고 한 것이다. 홍콩의 인상이 하도 안 좋아 가기가 꺼림칙했지만 선배가 부르는데 건방지게 어찌 안 갈 수가 있겠는가.(나는 선배를 이렇게 깍듯이 모신다!!) 사업을 하는 그 양반, 하루 종일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며 며칠 동안 진진하게 맛난 음식을 사주는데, 참말로 산해진미, 중국말로 할 때는 순서를 바꿔 산진해미山珍海味가 바로 그것이었다.(돈만 조금 쓰면 홍콩 음식은 이렇게 너무나 맛있다!)


아니다. 내가 말을 실수했다. 그 양반이 사 준건 산진山珍이 아니라 주로 해미海味 계통에 속하는 것이었다. 해미, 즉 해산물 요리 얘기가 나왔으니 이 얘길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 광동 사람은 심지어 집도 먹는다. 집? 무슨 집? 집도 모르시나? house! 이제 아시겠지? 자기가 사는 집을 먹어버리면 잠잘 데가 없어지므로 그건 안되고, 치사하게도 제비가 사는 집을 뺏어먹는다.


아니, 저런! 놀부보다도 더 나뿐(!) 놈! 아무리 굶어 죽어도 그렇지, 어떻게 제비가 지푸라기 모아 만든 집을 먹어요? 착각하지 마시라. 강남 갔다 박씨 물고 돌아온 그 제비가 아니다. 광동 일대의 해안에 사는 바다제비다. 이 제비들은 온갖 바다의 맛있는 먹거리들을 물어다가 집을 짓는단다. 그 제비집을 싹― 바꿔치기해서 만든 제비집 요리는 중국요리 중에서 최고급 요리 중의 하나인 것이다.


음, 기왕 얘기가 나왔으니 하나 더 할까? 여러분, 물고기 중에서 가장 맛있는 부위가 어디 게? 뭬라? 어두육미魚頭肉味라 하였으니 머리가 아니겠느냐고? 어허, 쯧쯧! 그렇게 대답한 사람들은 필히 반성하고 새 삶을 살지어다! 물론 우리의 사랑하는 어머니들은 늘 그렇게 말씀하시지. 어두육미라고 물고기는 원래 대가리가 맛있는 법이야. 그래요? 그럼 엄만 맛있는 대가리 드세요. 저는 맛없는 몸통이나 먹을게요. 귀여운 자식, 살 한 점이라도 더 먹이려 딴 청을 피우신 그 심정도 모르고 불효를 저지른 인간들은, 이제라도 반성하고 늙으신 어머님께 진짜로 맛있는 거 사드리며 효도할 지어다!


물고기 중에서 제일 맛있는 부위는 지느러미다. 헤엄치느라 가장 많이 움직이는 부위이니 만큼 그 쫄깃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가히 일품이다. 그런데 이 지느러미는 클수록 맛있다. 멸치 지느러미를 먹어봐야 맛을 느낄 수나 있겠는가? 수산시장에서 파는 만 원짜리 광어 정도로는 택도 없다. 최소한 십만 원짜리 정도나 되어야지 그 맛을 느낄 수 있는 법이다.


사연이 이러하니 제일 맛있는 지느러미를 지닌 물고기가 무엇이겠는가? 고래? 고래는 물고기가 아니지~! 그렇다. 바로 상어다. 그래서 상어 지느러미 요리, 샥스핀은 최고급 중국요리 중의 하나인 것이다. 아, 그거요? 저도 우리 집 앞 짱꿰 집에서 먹어봤어요! 하하, 그건 아마 십중팔구 가짜일걸? 네? 정말요?


그렇다. 중국요리는 재료를 활용하여 모조품을 잘 만든다. 이를테면 해삼이 귀하니까 돼지 창자나 목이버섯으로, 상어 지느러미가 귀하니까 죽순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제 알았지? 알았으면 더 이상 늦기 전에 늙어 가시는 어머님께 빨리빨리 맛있는 제비집 요리에 상어 지느러미 한번 사드리자.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나처럼 땅을 치고 후회해 봤자 때는 이미 늦으리!(난 언제나 뒤늦게 후회…)


사족 한 마디. 상어는 주로 남태평양에서 많이 잡힌다. 그런데 그 동네 상어들은 이상하게도 장애자 상어들이 그렇게 많단다. 왜요? 참치잡이 나갔던 원양 어선들이 상어가 걸려 올라오면 값비싼 지느러미만 자르고 몸퉁이는 다시 바다에 던져버리기 때문이다. 어휴, 죽는 줄 알았네. 우이 씨, 근데 이제 난 뭘 가지고 헤엄치냐? 아이고 나 죽네...


근데 내가 지금 또 뭔 소릴 하고 있는 거냐? 음, 그렇군. 소오생이 홍콩 가서 당해보고 비로소 알았듯이 날짐승이나 다리가 전혀 없거나 아주 많은 놈들, 이를테면 엽기 계통의 산진山珍은 대부분 싸구려다.(지난번에 난 뭘 먹었던 거지?) 그러나 선배가 사준 해미海味 계통은 거의 다 고급이다. 식도락가들은 주로 요런 걸 먹으려고 홍콩에 몰려든다. 그러고 보니 엽기냐 식도락이냐, 생각의 차이가 아니라 어쩐지 쩐錢의 차이인 듯! 쩝, 공연히 입맛이 쓰군. 그나저나, 같이 장사하자고 꼬시던 형범이 형! 사업은 잘 되시겠죠? 다음엔 제가 쏠게요?(참말로 선배를 깍듯이 모시죠?)


엽기의 세계, 광동은 그러나 오늘날엔 식도락의 고장이다. 광동 사람들은 그 옛날처럼 돼지우리 같은 곳에 살며 아무거나 주워 먹던 산짐승이 아니라, 중국에서 가장 풍요로운 지역의 주민들이다. 라스베이거스와 맨해튼을 능가하는 환락과 유흥의 도시, 마천루가 즐비하게 널린 초 현대판의 대 도시들, 홍콩 · 심천深圳 · 광주廣州와 같은 21세기 형 최첨단 도시가 바로 이 지역에 있다. 특히 홍콩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식도락의 천국이다.


엽기의 세계가 어떻게 식도락의 천국이 되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신가? 간단하다. 돈! 자본의 힘이다. 홍콩은 19C 말 서구 열강이 중국 수탈의 관문으로 삼은 곳. 아편전쟁에 패한 중국이 울며 겨자 먹기로 이곳을 영국의 조차지로 내놓으면서 온갖 종류의 자본이 넘쳐흐르기 시작했으니, 돈이 있는 곳에 맛있는 게 몰리는 건 당연한 이치! 게다가 기차에 버스에 비행기까지 교통마저 날로 날로 발달하니, 전에는 미처 만나기 어려웠던 먹거리도 홍콩으로 총집합!


색色? 향香? 미味? 울리 광동 쌀람, 뭐든지 좋다 해! 북방의 오리에 양고기가 기갑사단 지원 하에 꾸역꾸역 몰려들지, 급기야 횡행장군 상해게까지 비행기 타고 날아오니, 비위생적이라 구박받고 없어졌던 생선회도 또다시 등장한다. 상쾌한 북녘의 청정 해역, 깊고 깊은 바다에서 펄떡펄떡 뛰어놀던 놈들이 불과 몇 시간 만에 홍콩 일식집 식탁 위에 올라와서, 눈은 꿈벅꿈벅, 꼬리는 탁탁! 여기가 어디지? 방금 전에 분명 바다 속이었는데….


상황이 이러하니, 그러지 않아도 다양했던 홍콩의 식도락 세계에는 그야말로 없는 게 없다! 그뿐인가? 세계 각지에서 돈을 보고 부나비처럼 몰려든 인간들의 먹거리도 함께 들어왔으니,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의 유명 요리는 본고장보다 오히려 여기가 더 맛있다. 한국 음식도 일본 음식도, 하얀 나라 음식도 까무잡잡 음식도, 본 바닥보다 홍콩의 레스토랑이 훨씬 더 맛있다. 전 세계 맛있는 먹거리는 단연 이곳이 최고! 아름다운 먹거리를 찾아 나선 전 세계의 미식가들로 홍콩의 식도락 세계는 오늘도 밤을 잊고 북적댄다.


뭬라? 중국 대륙이 개방한 이후로 요새 스토리가 쪼깨 바뀌었다고? 동방의 새로운 진주를 모르시냐고?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이룬 중국의 새로운 맨해튼, 포동浦東 지구를 끼고 있는 상해를 모르시냐고? 음, 나도 그런 얘기를 들은 바 있다. 상해가 요새 돈 좀 벌면서 식도락의 천국 자리를 노리고 홍콩에 맹렬히 도전하고 있다는 소문! 그러나 그게 어디 상해뿐이랴! 바야흐로 중국이 무섭게 뜨면서, 대륙 전역의 대도시마다 식도락의 천국으로 변해 가는 느낌이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중국! 참으로 무서운 중국이다.    

 



엽기에서 식도락, 향락의 세계로!     



여기는 대만臺灣 최대의 도시 대북臺北, 즉 타이(↗)완의 타이/베이(↓)다. 대만을 찾는 외국 여행사들마다 관광객들의 빗발치는 요구에 견디다 못해 아예 관광 코스에 집어넣었다는 밤거리의 명소가 있다. 이름하여 화서가華西街! 필요하신 분이 있을 것 같아 중국어로 발음해 드리자면, 화(↗)씨(→)지에(→)다. 사실 이곳은 밤낮이 따로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 명성을 떨치는 첫 번째 이유: 산과 바다에서 나는 온갖 정력 음식들을 이곳에서 다 만나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 인기 품목은 역시 비암, 아니 뱀이다.


자, 이 넘이 무엇이냐?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아리산 독기 품은 대나무 이슬방울 빨아먹고 자라나서 푸르뎅뎅 독사이니, 이름하여 그 유명한 죽엽청竹葉靑이 아니더냐! 아, 글쎄, 이 눔 한번 먹어만 봐, 하늘 나는 오줌발에 기왓장이 와그장창 오줌통이 박살 나도, 아, 글쎄, 난 책임 못진당게!(이하 내 맘대로 윤리위원회의 심의에 걸려 삭제)

여기는 뱀고기 식당 앞. 목에 수십 마리의 구렁이를 칭칭 동여맨 아저씨가 왼 손엔 죽엽청(유명한 술 이름. 하지만 원래는 대나무 숲에 사는 무시무시한 독사 이름) 목을 쥐고, 오른손에는 마이크를 들고서 열심히 떠들고 있다. 그가 하는 말은 표준어가 아닌 민남閩南말, 그러니까 대만 말이니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소오생의 통박 상 대충 뻔한 얘기 아니겠는가!


그런데 언제나 발견할 수 있는 더 재미있는 풍경이 있다. 그 아저씨 말을 넋이 빠진 채 정신없이 듣고 있는 청춘 남녀들을 언제 가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응? 무슨 말을 들은 걸까? 갑자기 저기 있는 저 아가씨, 팔짱을 끼고 있는 짝꿍 남자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네? 옆구리 찔린 그 남자, 어쩐지 마지못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선다.


뱀 장사 아저씨가 뱀 한 마리를 사정없이 도마 위에 팽개친다. 아얏! 머리를 얻어맞은 그 비암은 두 눈을 x자로 질끈 감고 잠시 졸도 중! 그 틈에 조수가 나서서 머리를 못에 꽂고 쭈악― 껍질을 벗긴다. 이제는 완전히 사망 중! 뱀의 몸통에서 능숙한 솜씨로 뭔가 조그만 주머니(?) 비슷한 걸 잘라내더니 맥주잔으로 한 잔 가득 담긴 독한 고량주에 집어넣는다. 술에 들어가자마자 노오란 액체가 번진다. 저게 뭐길래….


옆구리 찔린 남자, 눈을 질끈 감고 원샷! 아니 근데 옆구리 찌른 저 아가씨, 무슨 까닭으로 만면에 희색이 가득한 채 짝꿍 남잘 쳐다보는 거지? 나는 당최 이해가 안 된다. 소오생이야 이해를 하든 말든, 뱀 장수 아저씨 조수는 그 사이에 듬성듬성 비암 몸둥아리를 사정없이 자르더니 매운탕을 끓인다. 아니, 고춧가루를 안 넣으니까 매운탕이 아니라 지리인가? 옆구리 찌르고 찔린 두 남녀가 하얀 뱀탕을 정신없이 함께 먹고 마신다. 에워싸고 구경하는 수십 명의 인파!




몸을 빼고 다시 거리를 걸어보면 온갖 희한한 것들이 다 있다. 이름 모를 날것들과 곤충들이 단지 날개 달린 죄와 다리 많은 죄로 뻣뻣하게 말린 포가 되어 길바닥에 누워있다. 그곳을 지나면 산이 좋아 산에 살다 끌려온 온갖 짐생들이 시뻘건 고기 되어 쇠꼬챙이에 찔린 채 여기저기 걸려있다. 부어라, 마셔라, 잘라라, 구워라, 먹어라! 어둠이 밀려온 길거리에 늘어놓은 식탁에서 흥겹게 목청 높여 먹고 마시는 남녀들!


다시 몸을 빼고 계속 걷다 보면 이번에 등장하는 고기 시장은…, 인육人肉 시장이다. 뭬라? 사람 고기? 그렇다. 그것도 살아있는 사람 고기다. 죽은 사람 고기 팔면 수갑 차고 잡혀가지만 살아있는 사람 고기는 괜찮은 모양이다. 여기는 화서가! 화서가가 명성을 떨치는 그 두 번째 이유다. 벌건 정육점(!) 등불 아래 젊은 여인들이 각종 포즈로 앉아있고 서있다. 거의 움직이지도 않는다. 내 고기 사 주세요, 절대로 붙잡거나 떠들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정육점 밖에 선 채 안을 들여다보는, 젊고 늙고 어린 각양각색의 남자들도 애꿎은 담배만 빡빡 빨아댈 뿐,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꼼짝 않고 서로 노려보는(?) 그 광경이 자못 갑갑하고 답답해질 무렵, 앗, 움직인다! 유리창 밖에 서있던 한 남자가 드디어 성큼성큼 정육점 옆 어두컴컴한 계단으로 올라간다. 아니, 근데, 정육점 안 저 여자도 뾰로롱 따라 올라가잖아? 매매가 성립되었음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허, 근데 참 요상한걸? 흥정하지도 않았는데, 이게 어찌 된 거지? 가만히 살펴보니 여기에도 무슨 법칙이 있는 듯! 우리나라 새벽 경매 시장에서는 손가락으로 흥정을 한다지만, 오밤중 화서가의 인육시장에서는 눈빛으로 장사를 하나보다. 프로 야구선수들이 경기 중에 주고받는 손가락 사인에는 실수가 있을지언정, 화서가 인육시장 장사하는 남녀 간의 눈빛 스파크 사인에는 실수가 있을 수 없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무슨 사인을 어떻게 주고받는 건지, 원….


그 화서가의 인육시장이 몇 년 전 철퇴를 맞았단다. 나중에 대만의 총통이 된 천/수이/벤(陳水扁)이 대북 시장市長을 하실 그 당시에, 음식 시장만 살려두고 인육시장에는 날벼락을 내리셨다더구먼. 아무렴, 그래야 하고 말고. 대체 문명 세계에 인육시장이 말이나 되는가 말이다!


에휴, 이제 그놈의 사람 고기 사 고파는 몹쓸 놈의 시장일랑 영원히 그 땅에서 추방되어 버렸겠지? 앗, 근데 저건 또 뭐냐? 이번에는 시외로 장소를 옮긴 또 다른 화서가가 여기저기 우후죽순雨後竹筍 급속도로 번영을 누린다니 이건 또 웬 말이냐?


어라? 알고 보니 시내 안 상황도 비슷비슷 고부고부 오십 보 백보 아냐? 충효동로忠孝東路에서도, 중경남로重慶南路에서도 쌰오(→)예(↘), 야식 파는 집들이 휘황찬란하게 밤을 새워 불을 밝히고 있다. 그 옆에 즐비하게 늘어선 이발소, 안마시술소, 러브호텔들…. 여기는 우리나라 향락 산업의 원조 근거지, 아름다운 섬나라 대만이올시다 그려!


시선詩仙 이태백은 흐르는 광음光陰이 애달파 촛불을 밝히고 밤을 새워 즐겼다는데, 그럼, 저들도 이태백의 후예란 말인가? 그런데 왜 이태백은 멋있어 보이고 저 자들은 개판으로 보이는 거지?


어허, 자네 무얼 그리 혼자 중얼거리는고? 자네가 그리 못 논다고 남들이 노는 것을 너무 그리 아니꼽게 생각하지 말게나. 서양 어느 문인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 하였거늘, 자네는 그 반대로 ‘견딜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이구먼 그래! 식食과 색色은 원래가 인간의 본능인 게야. 너무 그리 썰렁하게 살지 말게!


아니, 지금 이 말이 누가 하는 말씀이지? 댁은 뉘시오? 공자님이나 맹자님쯤 되시오?


내 이름을 알고 싶으냐? 허허, 특별히 가르쳐주지. 그 양반들 친구 뻘인 고자告子이니라!


네? 뭐라구요? 맹자 선생님 친구라구요? 근데 왜 이름이 하필이면 그 모양이시오? 이름이 풍기는 이미지가 어쩐지 신빙성이 부족하다 싶었던지, 고자란 양반 외에도 공자님 제자의 제자 뻘쯤 되는 옛날 어느 지식인께서 《예기禮記》라는 책에다가 한 말씀 더 하셨다. 음식남녀飮食男女는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이니 너무 탓하지 말지어다!


음식남녀? 이거 영화 제목이잖아? 아, 그거야 그렇죠, 중국 음식 맛있다고 먹고 있는 남자 여자가 무슨 죄가 있겠어요? 쯧쯧, 그 뜻이 아니란다. 마실 음, 먹을 식, 수컷 남, 암컷 녀! 먹고 마시고 섹스하는 건 인간의 필수 기본이다~, 하는 얘기란다. 그래~에요? 이야, 신난다! 자, 성현들께서도 이렇게 인정을 해주셨으니 어찌 아니 먹고 마시고 홀레 붙지 않을쏘냐! 라이(來)! 다 같이 차차차, 신나게 차차차! 네 바~악자 이~인생~! 돌리고 돌리고! 


그리하여 사정이 다소 다를 뿐, 지금 이 순간 홍콩에서도 상해에서도 북경에서도 중국 대륙 전역에서도 대동소이한 상황이 숨 가쁘게 벌어지고 있다.


춘추시대에 관중管仲은 말했다. 백성들은 창고가 가득 찬 다음에야 예절을 차리게 되고, 의식衣食이 풍족해야만 영광과 치욕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 (倉廩實而知禮節, 衣食足而知榮辱.) 《관자管子 · 목민牧民》


소오생은 말한다. 그 말이 참말인가? 천만에, 그럴 리가 없다! 우리의 식도락 중국 여행을 돌이켜 생각해 보시라. 색色․향香․미味! 굶주린 창자를 채우니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고, 맛난 음식을 먹고 나면 예쁜 요리를 먹고 싶고, 그윽한 향기를 느껴보고 싶다. 한 단계씩 올라가며 미각 시각 후각 만족의 그 환상적인 멀티미디어 예술 같은 음식을 먹고 나니, 이번에는 또 다른 감각을 맛보고자 엽기의 세계로 사냥을 나서잔다.


엽기가 아니라 식도락일 뿐이라고? 그럼, 그 식도락의 욕망을 해결한 뒤에는? 정말로 이제 상황 끝? Oh, No! 천만의 말씀! 그때부터 진짜로 시작일걸? 인간의 한없는 욕망은 점점 업그레이드되기 마련 아니던가! 모두들 정신없이 달려간다. 말초신경의 쾌락과 관능 찾아 향락의 세계로!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특급열차를 타고서!


하지만 그게 어디 남의 이야기이랴! 향락문화가 어디 중국 사람들에게 국한된 것이랴!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아니 그러한가? TV만 켜면 온통 먹방에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향락 이야기가 판을 치지 않는가!


동방세계의 전통문화, 특히 중국 문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속俗 문화', 대중문화다. 여기에 속한 부류들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처먹고 처마시며 원초적인 행위만 일삼는다. 아마도 95% 이상의 인간들이 이 부류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오천 년 중국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려온 5% 이하의 문화는 다르다. 그들은 음식 하나를 먹고 마실 때에도 늘 그 가치와 의미를 생각할 줄 알았다. 먹고 마시는 그 원초적인 행위에 적절하게 브레이크를 걸며 가치와 의미를 창조하고, 아름다운 낭만을 부여해 온 그룹이었다. 그들이 누구인가? 중국의 지성인들이다. 그들이 '아雅 문화'라고 말하는 '지성인 문화'가 진짜 중국 문화인 것이다.


제3부에서는 우리들도 그 원초적인 본능의 행위에 적절하게 브레이크를 걸면서 ‘잘’ 먹고 ‘잘’ 마시는 그 지성인 문화를 배워보자. 그래야만 중국을 이끄는 그들과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 참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참된 삶의 가치와 의미를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그 아름다운 낭만의 음식 문화, 지성인의 진정한 동방 문화를 찾아 또 다른 배움의 길을 떠나보자. 기대하시라, 개봉 박두!


< 계 속 >


  

매거진의 이전글 15. 향기의 세계로 부처님도 담을 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