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중국 음식과 인간관계 (1)
인간관계는 언제 시작될까? 당연히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도사가 아닌 다음에야 그때는 막연한 선입견만 가질 뿐,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판단을 내리기가 몹시 어렵다. 그러므로 참된 의미의 인간관계는 공적公的인 자리가 아닌 사석私席에서 음식을 매개체로 만나면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로 개인적으로 만나 함께 먹고 마시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을 때, 우리는 점차 상대방의 성격과 기호嗜好, 교양과 학식, 심지어 성장 환경과 가치관, 인품과 장래성까지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중국의 지식인들은 공무公務를 떠난 사적私的인 자리, 즉 먹고 마시는 자리에 상대방을 초대해 그를 평가하고 판단하여 본격적인 인간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초대받는 입장에서 본다면 일종의 ‘면접시험’이랄까? 마치 우리의 옛 어른들이 사윗감, 며느리감이 생기면 식사 자리에 초대하여 그 사람 됨됨이를 보고자 했던 것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그런 자리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그 에티켓을 익히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먼저 알아두자. 중국 사람들에게는 밥 먹는 자리가 바로 곧 술자리다. 헌데 밥 먹는 자리라고 하지만 사실은 밥은 거의 안 먹고 주로 요리를 먹는다. 그런데 기름진 중국요리를 먹으려면 아무래도 술 한두 잔을 반주로 하게 되고, 식사가 끝난 후에는 차를 마시게 되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중국 요리를 먹는 자리는 자연스럽게 술 먹는 자리가 되고, 차를 마시는 자리도 되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중국요리를 먹는 식탁은 어떻게 생겼다고? 이미 몇 번 말했듯 중국의 식탁은 거의 대부분이 십여 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원탁이다. 즉 중국인이 먹고 마시는 장소란 기본적으로 십여 명 정도의 인원이 모여 두세 시간 동안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는 곳이며, 바로 그런 자리에서 상대방의 수준을 평가하고 판단해서 인간관계, 이른바 ‘꽌시關係, 关系’를 엮어나가는 것임을 알아야겠다.
‘꽌시’? 어디서 많이 들은 말인데? 그렇다. 매스컴에서 중국 시장 공략법을 소개할 때 언제나 단골로 입에 올리는 말이다. 그럼 이제부터 중국에서 활동하려면 가장 중요하다는 이 ‘꽌시’란 걸 대체 어떻게 엮어나가야 하는 건지, 어떻게 행동해야 그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인지, 중국 술과 중국 차의 황홀하고 그윽한 낭만의 세계로 들어가서 그 비결을 알아보도록, 하시죠!
중국 역사상 최고의 술주정뱅이는 누구일까? 기록에 의하면 동진東晋 시대에 죽림칠현竹林七賢을 자처한 이들 중에 완적阮籍과 유령劉伶이라는 두 사람이 그 후보에 오를 듯싶다. 그들은 늘 술에 쩔어 제정신이 아닌 채로 꿈꾸듯이 인생을 살았다고 하니, 그 취생몽사醉生夢死의 수준으로 논할 것 같으면 둘 다 막상막하莫上莫下에 난형난제難兄難弟, 어려운 말로는 평분추색平分秋色이요 쉽게 말하면 우열을 가리기가 힘든 끝내주는 술꾼들이었다.
허나, 개인적인 견해로는 그중에서도 특히 유령이라는 선비가 영광의 월계관을 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의 주특기는 옷 벗기! 자기 집에서 술을 먹기만 하면 남이야 보건 말건 홀라당 완전 나체가 되어 비틀~비틀~(덜렁덜렁?) 취권 보법으로 술병을 들고 왔다리~ 갔다리~ 술을 마셨다니, 술주정도 이 정도면 거의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어 귀신 내지는 유령(!)의 경지에 오른 주정뱅이 임금임에 틀림없지 않겠는가!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어찌 아니 소문이 나겠는가? 지나가던 사람마다 은근슬쩍 건수 잡아 ‘유령의 집’을 참관하니 그의 집은 어느덧 강호의 명물이 되었다. 그때, 소문을 들은 어느 점잖고 할 일 없는 도학자께서 따끔하게 호통을 쳐주려고 작심을 하고 찾아갔다.
찾아가 보니 중년의 벌거숭이 사내 한 작자가, '클 대大' 자, 아니 뭔가 덜렁덜렁 하나 더 달렸으니 '아주 클 태太' 자인가, 아니면 '개 견犬' 자인가? 아무튼 그런 글자 생긴 모양 고대로 하늘 보고 발라당 드러누워 잔뜩 술에 취한 목소리로 홍알홍알 크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게 아닌가. 할 일 없고 점잖은 도학자 님, 아무리 같은 남자지만 차마 흉측한 거시기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외면한 채 빽! 소리를 질렀단다.
“아니, 빨가벗고 이게 무슨 짓인가! 아무리 자네 집안이라지만 이런 법은 없네 그려! 그래도 자네 역시 명색이 선비란 사람 아닌가!”
그러자 유령이란 유령 같은 인간이 뭐라고 대답했겠는가? 술 취한 눈을 희멀겋게 치켜뜨며 오만한 말투로 느릿느릿 말하는데, 어디 그 하는 말쌈 좀 들어보소!
“아니, 시생이 언제 빨개를 벗었단 말이요? 저기 저 푸른 하늘이 우리 집 천장이요, 시생이 드러누운 땅바닥은 우리 집 대청마루라! 여기 있는 이 건물은 바로 시생의 이부자리요 도포 자락이거늘, 어찌 시생더러 빨개를 벗었다고 말씀하시는 게요? 어허, 그나저나 참으로 해괴한 일이로고! 댁은 뉘시길래 뭣땀시 내 고쟁이 속까지 들어오셨을꼬?”
도학자 님, 공연히 에이즈 환자로 몰릴까 두려웠던지 그 말 듣고 얼굴이 시뻘개져 걸음아 날 살려라 꽁무니를 뺐다는 유명한 주정뱅이 이야기다.
술을 마시면 인격이 보인다. 인생관, 세계관도 보인다. 혹시 이런 사람 보지 못하셨는가? 평소에는 너무너무 점잖은데 술만 마시면 개판이 되는 사람이 있다. 겸손하기 그지없던 사람이 알고 보니 오만하기 이를 데 없다. 말하는 소리가 점점 커지며 핏대를 낸다. 개자식 소자식 상소리가 나오더니 마침내 엉엉 울음소리, 웩웩 토하는 소리가 쌍 나팔을 분다.
급기야는 언제 익혔는지 소림 권법으로 와장창 술병을 깨고 으랏샤샤 태권도로 이단 옆차기를 하며 무술 대련을 시작한다. 그래놓고서는 그다음 날이 되면 지난밤의 그 모든 것을 술 탓으로 돌린다. 미안해하는 기색도 별로 없다.
어떠신가? 우리 주위에서 너무나도 흔히 보는 일 아닌가? 오늘날 우리나라 대부분 주당들은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술이 사람을 마신다. 다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이룩한 놀라운 경지, 고등학교 때부터 백일주百日酒로 연마하기 시작하여, 대학교 때는 강의에 등록금까지 빼먹으며 매일매일 단련한 결과다. 직장 생활 시작한 후로는 바이어 접대 핑계에 회사 공금으로 1차에서 2차, 3차는 기본이고 4차는 선택으로, 여기저기 장소를 바꿔가며 밤새도록 연마하여 도달한 경지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주당들은 목숨 걸고 술 마시는 사람이 많다. 회수일음삼백배(會須一飮三百杯)라, 한번 마시면 삼백 잔은 마셔야지! 어디서 들었는지 이태백의 시구를 인용하며 술이 동이 날 때까지 밤을 새워 목숨 걸고 처마신다. 술과 웬수가 되어 오케이 목장에서 결투를 하려는 것 같다. 짜잔! 짜자자자잔~ 짜자잔!(엔니오 모리꼬네의 총 뽑는 음악 소리)
잠깐, 잠깐! 결투하시기 전에 체크하실 게 있다. 여러분이 그토록 흠모하는 주정뱅이 임금님 유령의 주량이 어느 정도인지 아시는가? 아래의 이야기를 듣고 여러분 스스로와 비교해 본 후, 계속 결투를 하든가 말든가 하시지요.
점잖은 도학자야 꽁무니를 빼건 말건, 유령의 아내는 남편이 너무 미웠다. 미워도 보통 미운 게 아니었던지라 어느 날은 단단히 혼을 내주리라 각오를 했다. 그리고는 커다란 항아리에 술을 반쯤 집어넣고, 소첩이 서방님 위해 술 한 항아리 준비했사오니 맘껏 드셔보사이다, 선심을 쓰는 척 폼을 잡았다.
하이고, 이 에펜네 이제 좀 유령 마누라 같군 그래, 이게 웬 떡이냐! 신이 난 남편 유령이 항아리에 머리를 처박고 술을 퍼내느라 낑낑댔다. 이때다! 아내가 그 틈을 타서, 에라 모르겠다! 주정뱅이 서방의 두 발을 번쩍 치켜들어 술항아리에 남편을 첨벙! 처박고는 잽싸게 뚜껑을 덮어버리고 무거운 돌멩이를 잔뜩 올려놓아 버렸다.
이젠 꼼짝없이 항복하겠지. 여보, 마누라! 내가 잘못했소! 다시는 술 안 마실 터이니 제발 좀 살려주시구려. 그런 소리가 날 줄 알고 술항아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랬더니, 웬 걸? 안에서 들리는 소리: 꿀꺽꿀꺽, 끄윽…. 설마 술에 빠져 죽는 소리는 아닐 테고. 아니, 그렇다면?
그만 꺼내줄까 싶었던 마누라, 더욱 열을 받아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 항아리 뚜껑 위에 무거운 돌멩이 하나를 더 올려놓았다. 꿀꺽꿀꺽, 끄윽…. 돌멩이 하나 더 올려놓고, 꿀꺽꿀꺽, 끄윽…. 또 돌멩이 하나 더 올려놓고, 그렇게 돌멩이는 자꾸만 쌓여갔다. 그래도 천성이 착한 마누라는 이러다가 사람, 아니 유령 잡는 게 아닌가 싶어 술항아리 옆에 붙어살며 안에서 나는 소리에 모든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갔다. 문득 들어보니, 조요~옹, 드디어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겁이 덜컥 난 아내가 황급히 항아리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니…, 무엇이 보이는가? 물론 유령이 보였지, 뭐. 하지만 뻗어있는 시체가 아니라 눈을 감고 단정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유령이었다.
어라,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어쩐지 좀 이상하여 그 좌우를 둘러보니 그 많던 술이 한 방울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항아리가 샜나? 아무리 살펴봐도 그것도 아닌지라, 그람, 그 많은 술을 이 양반이 다 처마셨단 말인가? 황당하고 걱정스러워 남편 유령의 얼굴을 쳐다보는데, 유령이 문득 눈을 번쩍 뜨고 점잖게 한 마디 하더란다.
“여보시오, 부인! 어찌 이리 약속을 안 지키시는 게요! 맘껏 술을 마시라더니 이게 어찌 된 일이오? 술이 하나도 없지 않소!”
“ … !!! … (졌다)”
하하하! 그래 맞어! 술을 마시려면 그 정도는 마셔야지! 나도 그 양반처럼 밤새워 마셔야겠어! 삼백 잔을 마시리, 술독 빠져 마시리! 마시리, 마시리잇고, 청산에 마시리잇고! 어라, 이게 웬일인가? 자기 주량과 비교를 하랬더니 이 땅의 술꾼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오히려 용기 백 배, 밤을 새워 신나게 처마신다. 하지만 여보시오, 술꾼 님들! 댁네들의 주량이 정녕 유령처럼 하이(↓)량이란 말쌈이오?
중국 술꾼들, 특히 북방 사람들은 하이/량(海量)이란 말을 즐겨 쓴다. '바다 해海', '양 량量'. 인천 앞바다가 막걸리여서 꿀꺽꿀꺽 몽땅 다 마셔도 까딱없을 정도로 주량이 엄청나다는 뜻. 중국의 북방 사람들은 유령처럼 주량이 하이/량인 사람이 꽤 많다. 그래서 자기들처럼 주량이 하이/량인 사람을 만나면 너무너무 좋아한다.
으하하! 통(↘)콰이~! 통/콰이(痛快)~~!!
통쾌하게 술 마시며 통쾌하게 좋아한다. 그러나 명심하고 또 명심하시라! 뱁새가 황새 쫓아가면 가랑이가 찢어지는 법! 중국 사람들은 하이/량도 아닌 사람이 시건방지게 흉내 내는 꼬락서니는 너무너무 싫어한다.
음, 식, 남, 녀! 중국인들은 본능과 쾌락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이 술을 마신다. 술이 사람을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지식인들은 술을 마셔도 늘 타인의 입장을 고려해 준다.
아니, 유령 같은 주정뱅이도 있었다면서요? 어허, 오해하면 안 되느니! 유령의 행동을 잘 돌이켜 보시라! 사흘동안 항아리 속에 들어앉아 그 많은 술을 쉬지 않고 마시고도 말짱한 정신으로 단정히 앉아 여유 있게 농담을 건넨 사람 아니던가! 사람이 아니라 유령(!)이 술을 마신 것인지는 모르겠으되, 분명 술이 사람을 마신 건 아니지 않겠는가!
명심하시라! 주량이 그 정도로 하이/량이라면 모르거니와 그렇지도 않으면서 유령 흉내를 내는 짜가 주정뱅이는, 중국 사회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아시는가? 한 마디로 파멸이다. 절대로 우리나라처럼 너그럽게 넘기지 않는다. 물론 겉으로는 메이(↗)꽌(→)시, 괜찮아요! 허허 웃어넘기지만 내심 분명히 기억해 두었다가, 절벽 가장자리에 다가선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확실하게 낭떠러지로 밀어 떨어뜨린다. 그게 중국 사람이다.
어휴, 어쩐지 조금 섬뜩하네요. 저는 주량이 형편없는데 어쩌죠? 중국 사람들하고 어디 제대로 사귀겠어요? 하하, 걱정 마렴! 술 좋아하는 중국의 지식인들은 유령과 같은 주귀酒鬼도 좋아하지만, 이태백과 같은 주선酒仙을 더욱 존경하고 흠모한다. 선생님에게 이태백이 술 마시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면 너도 ‘주선’이 되어 중국 사람들과 참된 지기知己가 될 수 있단다.
그래요?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근데, 주귀酒鬼는 주량이 하이/량인 사람일 테고, ‘주선’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거죠? 저처럼 보통 사람들도 그 경지에 들어갈 수 있는 걸까요?
그럼! 네 선생이 누구더냐? 이태백처럼 하늘나라 신선은 아니로되, 지옥에서 전지훈련, 이론과 실천 통해 중국 술의 그 신비하고 오묘한 세계를 엿보고 돌아온 중국 문학박사 소오생이 아니더냐? 지금부터 날개 돋은 신선 되어 구름 타고 허공을 나를 수 있는 그 비결을 특별히 공개할 터이니 귀를 씻고 잘 들으시라! 오케이?
< 계 속 >
[ 대문 그림 ]
◎ 劉彦沖, <죽림칠현도 竹林七賢圖>, 1836년 작품.
죽림칠현은 명철보신明哲保身, 무사안일無事安逸 만을 추구했던 비겁한 지식인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