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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Jul 13. 2024

18. 주선酒仙이 되는 비결 - 초급

<제3부>  중국 음식과 인간관계 (2)

중국 사람 집에 초대를 받아 가면 자꾸만 음식을 앞에 놓인 접시에 올려준다. 접시가 없을 때는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옛날 어머니처럼 먹고 있는 밥그릇 위에 올려놓아 주기도 한다. 먹기 싫은 요리지만 어머니가 그립고 그 성의가 고마워서 억지로 다 먹고 나면 어느새 또 올려져 있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몇 번이고 계속 당하면 참말이지 미치고 환장한다.



첫 번째 비결, 사양과 권유 사이에서 



그뿐인가? 밥을 다 먹고 나면 이번엔 차를 준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이럴 때 마시는 차는 음미하면서 마시는 그런 수준 높은 차가 아니다. 해갈 차원에서 커다란 잔에 따라주는 그런 재스민 종류의 차다. 그래도 첫 번 째 한 모금 마시면, 으음― 괜찮은 걸! 너무 향기롭다.


그런데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으면 그 즉시 다시 하나 가득 찻잔을 채워놓는다. 음, 따라주었으니 안 마실 수 없지. 다시 한 두 모금 마시고 내려놓으면, 으윽! 바로 그 자리에서 또 잔을 하나 가득 채운다. 어뜩하지? 안 마실 수도 없고? 한국 땅의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은 이럴 때는 안 마시면 안 된다는 묘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이렇게 물고문을 당하다가 죽는 건 아닌가? 엉뚱한 고민까지 생긴다.


상황이 그러하니, 술 마실 때라고 다를 리가 있겠는가? 우리나라에서는 술잔을 돌린다. 내 잔 어디 갔지? 어? 누구 쌍권총 차고 있네? 우리나라 술꾼들은 상대방에게 자기 잔을 건네고 술 마시기를 강요한 후, 그것도 애교랍시고 능청을 떤다.


중국 사람들은 절대 잔을 돌리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나라 주당들이 절대 금기로 여기는 ‘첨잔’을 한다. 막사금준공대월 莫使金樽空對月이라! 이태백이 달빛 아래 술잔을 헛되이 비워놓지 말아라, 지시를 내린 탓인지 중국에서의 술잔은 언제나 가득 차 있어야 한다.


※ [ 참 고 ] 막사금준공대월 莫使金樽空對月 ※

이태백의 유명한 <장진주 將進酒>에 나오는 구절이다. 오랜만에 간단하게 한자 공부 한번 해보자.
▶ 막 莫 : 금지사. ~을 하지 말아라.
▶ 사 使 : 사역동사.
▶ 금준 金樽 : 술항아리. 여기서는 술잔으로 의역했다. 항아리째 마시면 죽을 것 같아서... ^^;;
▶ 사금준 使金樽 : 술잔으로 하여금
▶ 공 空 : 헛되이
▶ 대월 對月 : 달을 대하다. 달빛을 대하다.
▶ 막사금준공대월 莫使金樽空對月 : 달빛 아래 술잔을 헛되이 비워놓지 말아라.

잔이 조금만 비었어도 얼른 가득 채워 놓는데, 그 동작이 실로 신속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쌍권총은 찰 망정, 잔이 가득 차 있으면 너무너무 초조해진다. 첨잔을 훨씬 더 심한 강요로 느낀다. 넌 왜 건방지게 술을 빨리 안 마시는 거야? 따질 것만 같은지라, 제길, 중국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심하게 강요하는군, 지레 짐작하며 죽기 살기로 다 마신다.


술뿐만이 아니다. 차도 그렇게 억지로 마시고, 음식도 그렇게 억지로 먹는다. 속으로 투덜대며 억지로 먹다가 기어이 배탈이 나서 병원에 가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자기 주량을 망각하고 신나게 마시다가 기어이 만땅꼬로 취해 술주정을 하기 일쑤! 아무 데서나 웩, 웩, 오버이트를 하며, 에고 죽겠다. 이게 다 중국 사람들이 자꾸만 잔을 채워놓은 탓이야… 애꿎은 사람을 원망한다.


그러나 사실 중국 사람들은 전혀 강요하지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모든 잘못은 그걸 강요로 지레 짐작하고 받아들인 사람에게 있다. 그건 전적으로 소오생에게 수업을 안 들어 중국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무지의 소치다. 지금이라도 잘 배워 두자.     


공자님의 말씀을 듣고 군자가 되고 싶은 중국의 지식인들은 겸양을 미덕으로 삼는다. 먹고 싶어도, 마시고 싶어도 일단 꾹 참는다. 그러므로 주인이 권하는 입장에서는 손님의 그 마음을 헤아려 더 먹어라, 더 마셔라 자꾸만 권하는 게 예의인 것이다.




여기서 잠깐 여담 한 마디! 중국 젓가락은 길다. 왜 길까? 정답은 따로 없다. 소오생 생각 : 어떤 손님은 너무나 겸손해서 말로만 권해서는 안 된다. 주인은 그런 경우까지 고려하여 젓가락으로 손님에게 음식을 집어주는데, 그때 자기가 먹던 쪽으로 집어주면 비위생적!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반드시 젓가락을 뒤집어서 집어준다. 그러려면 젓가락이 길어야겠죠? 통과!


앗, 덩(↓)이샤(↘) 等一下!잠깐, 잠깐!

(동사 + 이샤 용법, 기억하시죠? 기억 안 나시면 ☞ <15. 질문을 잘못하면 키스가...> 클릭! )


하지만 요새는 세태가 변했다. 젓가락이 아무리 길어도 남이 쓰던 젓가락은 께름칙하다. 그래서 요즘은 모두 공용 젓가락을 사용한다.


차제에 아래 단어의 발음을 익혀두자. 처음에는 천천히, 나중에는 점점 빠르게! 열 번, 시이작!

젓가락 : 콰이(↘)즈 : 筷子
공용 젓가락 : 꿍(→)콰이(↘) : 公筷


아무튼 중요한 건 이거다. 손님은 자꾸만 사양하고 주인은 자꾸만 권유한다. 그것이 중국 사람들의 먹고 마시는 첫 번째 에티켓이다. 그들이 권하는 건 어디까지나 권유이지, 우리처럼 강요의 성격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이고, 선생님, 배고픈데 언제까지 사양하란 말이에요? 주인이 되면 또 몇 번이나 권유해야 되죠? 으~, 골치 아파.


아주 중요한 사항이니 잘 알고 있자.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첫째, 먹고 싶은데 겸양의 미덕을 보였던 경우. 이럴 때는 적당한 시점에서 그만 사양하고 먹으면 된다. 그 시점이 언제냐고? 한 번 사양은 기본 필수, 두 번 사양은 선택 사항 에티켓! 그러나 세 번 권하면 더 이상 사양하지 말고 못 이기는 척 슬그머니 먹는 게 안전하다.


하필이면 왜 세 번이죠? 네 번 권하지는 않나요? 물론 네 번 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삼고초려三顧草廬란 말이 괜히 생겼겠니? 제갈량도 유비가 세 번 찾아오니까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섰는데, 지가 무슨 용가리 통뼈? 인간 심리 상, 세 번 이상 권하면 강요라고 느끼기 쉽다. 그러므로 네 번까지 권하는 사람은 흔치 않은 법. 못 믿겠으면 계속 사양해 보시죠! 쪼르륵, 애고, 배고파라….


둘째, 정말로 먹기 싫은 경우. 간단하다. 아니, 싫다는데 왜 자꾸 권하는 거예요? 신경질 부릴 필요 없다. 상대방의 권유가 다소 부담스럽더라도 그냥 꾹 참고 빙그레 웃어 보이면서 안 먹으면 된다. 그러면 중국 사람들은 아, 저 사람이 진짜로 싫어하는가 보구나, 생각하고 절대로 그 이상 권하지는 않는다. 아시겠지?


술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술자리에서는 예의상 한두 번만 권유해도, 나, 술 못 마신다니까요? 화를 내며 완강히 거절하거나 아예 술잔을 엎어놓는 사람을 종종 본다. 이런 건 중국에서는 큰 결례다. 그냥 받아 놓고 양껏 마시면 된다. 아니, 선생님. 한 잔도 못 마신다는데 무슨 ‘양껏’이에요, 양 껏은? 어허, 이런, 이런! ‘양껏’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구먼! 쯧쯧, 아무래도 그 뜻부터 먼저 알아봐야겠다.     




양껏 마셔라, /베이(乾杯)의 의미     



‘양껏’이란 말의 뜻을 알아보기 전에 먼저 상식 퀴즈 하나! 타인과 함께 술을 마시는 가장 큰 이유, 또는 목표는 무엇일까? 술 마시는 데 다른 이유가 있을라구요? 취하기 위해서 마시는 거죠, 뭐. 아니다! 그게 아니다. 그걸 착각하는 데서부터 문제가 발생하는 거다.


취옹지의醉翁之意 부재주不在酒요, 재호在乎 산수지간山水之間이라! 술 취한 늙은이는 술에 뜻이 있음이 아니요, 산수山水에 뜻이 있다고 하였다. 송宋나라 때의 유명한 문인 구양수歐陽修<취옹정기 醉翁亭記>에서 그리 말했거니와, 술 그 자체에 뜻을 두고 술을 마셔서는 절대로 아니 되는 법! 분명히 알아두자. 타인과 함께 술을 마시는 이유는 한 마디로 인간관계의 원활함을 돕기 위해서다. 모두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어울리기 위한 것이다. 동의하시죠?


자, 그럼 이번엔 ‘양껏’이란 말의 뜻풀이를 해보자. ‘양量껏’은 무슨 뜻? ‘주량 껏’! 그 뜻이다. ‘주량’이란 또 무슨 뜻일까? 얼마나 술을 처마셔야 죽나, 그걸 테스트하는 게 ‘주량’일까? 그게 아니다. ‘주량’이란 서로 간에 마음 문을 열어놓고 가장 잘 어울릴 수 있는 최적의 음주량을 말한다. 주량이 하이/량이란 말은 아무리 많이 마셔도 그런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뜻.


하지만 그런 사람이 어디 그리 흔하랴! 상대방과 마음 문을 열어놓고 기분 좋게 잘 어울리자는 술자리의 목적을 이룰 수만 있다면 그게 최고지, 하이/량이 아닌 들 무슨 상관? 모두 함께 즐겁고 흥겹게 어울리는 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서로 권유하고 사양하는 가운데, 각자가 알아서 ‘양껏’ 술을 마시는 것, 그게 키 포인트이다.


동아시아 전통의 지성인들은 양껏 술을 마신다. 무지한 주정뱅이들은 어디서 들었는지 깐(→)베이! 연방 외치면서 목숨 걸고 술을 입에 털어 넣는다. 중국에선 깐/베이(乾杯)! 하면서 술 마신대. 근데 말이지, 그건 우리말 ‘건배!’ 하는 거 하곤 달라. 반드시 ‘원 샷’을 해야 한다구! 막무가내로 상대방이 술잔을 다 비우기를 강요하기 일쑤다. 그게 아니다. ‘깐/베이’에도 종류가 있다.


중국어는 이현령비현령 耳懸聆鼻懸聆,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상황에 따라 해석을 올바르게 해야 한다. 이 ‘깐/베이’란 단어가 특히 그렇다. ‘깐/베이(乾杯)’는 ‘마를 건乾’ ‘잔 배杯’, 잔을 말린다는 뜻이니 원래는 ‘원 샷’이란 뜻이 틀림없다.


하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지, 언제나 반드시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다. 예컨대 만찬 석상의 첫 잔의 경우, 다 같이 사회자의 선창에 따라 ‘평범한 목소리’로 깐베이! 외치기 마련인데, 그때는 우리말 ‘건배!’ 정도의 의미다. 구태여 ‘원 샷’할 필요가 없다. 아니,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좋다.


왜요? 첫 잔과 마지막 잔은 반드시 ‘원 샷’을 하는 게 에티켓 아닌가요? 선배들한테 그렇게 배웠는데? 아이쿠, 두야! 바로 그게 문제다. 그건 오로지 술 취하기 위해 술을 마셔대는 우리나라의 잘못된 음주 습관이 낳은 잘못된 낭설이다. 잘 알아두자. 첫 잔과 마지막 잔은 절대로 ‘원 샷’을 하지 않는 게 올바른 술버릇이다. 그래요? 왜 그렇죠?


중국에서의 술자리는 바로 곧 식사하는 자리다. 그러니 첫 잔을 마실 때는 대부분 빈속이기 마련이고, 빈속에 ‘원 샷’을 해대면 금방 술 취하기 마련이다. 술 취하면 자신의 건강에도 나쁘지만 남에게 실수하기도 쉽다. 혼자서 실수하는 건 또 모르지만, 모두들 즐겁고 흥겹게 지내기 위해 모인 자리를 엉망으로 만드는 실수를 저지르면, 중국에서는 어떻게 된다고? 그렇다. 그 당시에는 웃으며 넘기지만, 속으로는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생각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조용히 매장해 버린다. 사회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된다. 이해가 되셨겠지? 통과!


잠깐요! 마지막 잔은 왜 ‘원 샷’을 하지 않는지 그것도 가르쳐 주셔야죠. 음, 그렇군. 중국 사람들은 마지막 잔을 마시며 다 함께 ‘먼(↗)치엔(↗)칭(↓)’이라고 외친다. ‘門前請’이라, 자기 집 문 앞에 쌓인 눈을 치우듯, 자기 앞에 놓인 술잔을 정리하자는 뜻이다. 혹시 모르니까 이 기회에 발음을 익혀보자.

그러나 남은 술을 깨끗이 다 비우자는 뜻보다는, 오늘의 즐거웠던 만남을 되새기며 마무리하자는 의미가 더욱 강하다. 그런데 축구에서도 종료 오 분 전에 실점이 많고, 비행기도 착륙 직전에 사고가 많이 일어나듯이, 술도 막판에 정신을 놓고 마셔댈 때 사고가 나기 쉽다. 첫 잔이 모든 사람들의 분위기를 위해서라면, 마지막 잔은 자기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호흡 조절을 해야 하는 거란다. 오케이? 진짜루 통과!


그러면 ‘깐/베이’는 어떨 때 ‘원 샷’의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첫째, 어느 정도 배가 차고 분위기도 무르익었을 때, 사회자 격인 사람이 ‘특별히 목소리를 높여’ 깐베이! 강조하며 외칠 때. 그때는 상당히 눈치를 봐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원 샷’할 자신이 없다면 여러 사람 속에 파묻혀 적당히 어물쩍 안 마셔도 상관없다. 누가 특별히 따지거나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원 샷’ 하지 않은 걸 너무 티 내면 안 좋겠죠?


둘째, 일대 일로 마실 때. 이때가 가장 중요하다. 만약 특정인이 자신을 지목하며 “깐베이!”라고 외쳤는데, 나도 덩달아서 “깐베이!”라고 말했다면? 그때는 도수 없다. 반드시! 꼭! 기필코! 다 마셔야만 한다. 안 마시면 상대방이 내색은 안 하더라도 내심 몹시 불쾌해한다.(후환이…, 애구, 겁나라)


다 마시고 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나라에서는 종종 빈 잔을 자기 머리 위에 부어 보인다. Oh, No! 룸살롱 접대 문화다. 그런 경망스러운 짓은 제발 좀 하지 말자. 그런데 어라? 중국 친구가 먼저 그런 행동을 하네? 소오생 순 엉터리 아냐? 아니다. 그건 한국 사람한테 배운 거다. 그게 한국식 주도인 알고 상대방 기분 맞춰주려는 거다. 그럴 때 우리는 이렇게 해보자. 비어있는 술잔의 바닥이 보이게끔 두 손으로 공손하게 잔을 비스듬히 기울여서 상대방에게 보여줘 보시라. 틀림없이 상대방이 깜짝 놀라며 좋아할 거다. 그게 중국식 주도다.


에고, 얼렁뚱땅 넘어갈라고 했더니, 뙈놈들은 의심도 많어! 엉뚱하게 중국 사람들을 탓하지 마라. 누가 덩달아서 ‘깐/베이’라고 외치랬남? 중국 사람들이 ‘깐/베이’라고 외치는 건 ‘원 샷’을 강요하는 게 아니다. 지금 ‘원 샷’할 체력과 의지가 있으십니까? 상황을 물어보고 정중하게 권유하는 것이다. 이때, 자신이 있으면 ‘깐/베이!’하고 호응해 준다. 예, 저도 다 마시고 싶어요! 그러나 도저히 다 마실 자신은 없고, 반 잔 정도는 마실 수 있겠다 싶으면,


“빤(↘)베이, 하오(↓)부/하오(↑)?”

"半杯, 好不好?"

“반잔만 마셔도 되겠습니까?”

하고 양해를 구하면 된다. 그래도 상대방은 아마 계속해서 두세 번 ‘깐/베이’라고 외치며 자꾸만 권할 것이다. 이게 뭐라고? 그렇다. 강요가 아니라 예의상 권유하는 거다. 그러니까 나도 같이 방글방글 웃으면서 계속 정중하게 사양하면 된다.


“뚜이(↘)부/치, 워(↓) 스(↗)짜이(↘) 메이(↗)빤(↘)파(fa)!”

"对不起。我实在没办法!"

“미안합니다. 저 정말 안 되겠는데요.”

겸손하게 말하면, 분위기는 좀 깨질망정 우리나라에서처럼 아주 기분 나빠하지는 않는다. 선생님, 근데요, 빤/베이(半杯)도 자신 없을 경우는 어떻게 하죠? 그때는 수이(↗)이(↘)라고 말하면 된다. ‘수이/이(隨意)’는 ‘자기 마음대로’, ‘기분 내키는 대로’라는 뜻. 의역하면... 제가 마시고 싶은 대로 마시면 안 될까요? 그 뜻이 된다. 그러니까 이 말을 하려면 아까보다 조금 더 겸손하고 미안한 표정을 지어줘야겠지?


우와, 그렇구나! 아주 합리적이네요! 그럼, 아예 한 방울도 못 마시는 경우에도 ‘수이/이’라고 하나요? 아하, 그건 안 된다. “수이/이!”라고 외쳤으면 하다 못해 입술이라도 축여야 한다. 아예 못 마시겠다면 조금 번거롭지만 또 다른 방법이 있다. 서투르더라도 중국말로 이렇게 말해보자. 말을 더듬을수록 더 효과만점이다.


"뚜이(↘)부/치,

워(↓) 쭈이(↘)진 ㄹ선(→)(↗) 부()타이(↘) 하오(↓),

ㄹ쩡(↘)짜이(↘) ㄹ츠(→)야오(↘), 뿌(↘)넝(↗)흐어(→)지우(↓)."

"对不起。我最近身体不太好,正在吃藥, 不能喝酒。"

“미안합니다. 제가 요새 몸이 안 좋아서 약을 먹고 있는 중이라 술을 못 마십니다.”

정중하게 죄송함을 표현한 다음에 찻잔을 들고 이렇게 한 마디 더 해보자.


“워(↓) 이/차(↗)따이()지우(↓), 하오(↓)마(↑)?”

"我一茶代酒,好吗?"

“술 대신 차(茶)로 하면 안 될까요?”

그러면 된다. 그런데 그다음이 중요하다. 술을 안 마셨어도 술에 취한 것처럼 즐겁게 어울려주는 게 중요하다. 술을 안/못 마시는 사람도 분위기를 깨지 않고, 술 취한 것처럼 즐겁고 유쾌하게 어울려주면 모두들 너무너무 좋아한다.


중요한 것은 뭐라고? 그렇다. 상대방과 마음문을 열어놓고 즐겁게 소통하기 위해 술자리를 가지는 것 아닌가! 양껏, 주량껏, 마시면 된다. 방울 마셔도 언제나 상대방과 즐겁게 소통할 수 있다면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짜 신선이요, 선녀겠다. 물론 주선酒仙은 아니지만.


소오생은 군생활을 DMZ 안에서 했다. 최전방 중의 최전방이니까 일 년 365 일, 술은 언제나 한 방울도 마실 수 없다. 연말이 되어 모처럼 특식(?)으로 회식할 때도 마찬가지. 그러면 소대장이 명령을 내린다. 자, 이제부터 모두들 쐬병 마신 것처럼 신나게 노는 거다. 알겠나? 제대로 못 노는 놈들은 밤새도록 대공초소에서 혼자 보초 선다. 알겠나? 그러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미친 듯이 신나게 노래하고 춤을 추며 놀았다.


그때 습관이 되서인지 친구들과 술 마실 때도 나 혼자 맹물 마실 때가 많다. 못 마셔서가 아니다. 나름 분위기 타면 꽤 마신다. 소주 두세 병 마셔도 생전 실수해 본 적이 없으니까. 단지 사는 곳에서 대중교통으로 약속 장소에 가기가 너무 힘들어 차를 끌고 때가 많다. 그럴 땐 소주잔에 맹물을 따라놓고 함께 건배를 한다. 근데 희한하게 진짜 술보다 더 취하는 것 같다. 아무튼 파장이 될 때까지 함께 어울렸다가, 술값 계산도 하고 자동차로 집에 바래다주기도 하니까, 술 안 마신다고 나를 타박할 리가 없다.


중국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삼세 번 권유는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심하게 강요하는 분위기는 아니니까, 술을 전혀 못 마시는 사람도 이런 에티켓만 익히면 술자리가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다. 얼마나 좋은가? 게다가 요새는 자가용족이 많이 생겨서 중국 술자리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우와, 선생님, 저처럼 술을 잘 못 먹는 사람에게는 진짜 너무너무 좋네요! 잘 외워두고 써먹게 다시 한번 정리해 주시면 안 될까요?



 1. 乾杯, 干杯  ;  깐(→)베이(→)

 2. 半杯  ;  빤(↘)베이(→)

 3. 隨意, 随意  ;  수이(↗)이(↘)

 4. 以茶代酒  ;  이(↓)차(↗)따이(↘)지우(↓)


아무튼 중국 술자리에서는 이렇게 마시고 싶은 대로 그때그때 술의 양을 얼마든지 조절하고 절제해 가며 마실 수 있다. 적당하게 서로 사양하고 권유하는 그 미묘한 줄다리기가 인간관계의 원활함을 돕는다. 그것이 중국 술꾼들의 재미인 것이다.      




즐겁게, 의미를 부여하며 마셔라



학생들과 함께 M. T를 가면 게임을 하는 시간이 있다. 그런 게임을 할 때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사회자다. 사회자는 왕이다! 다 같이 큰 목소리로 복창하고 게임을 시작한다. 왜 게임을 할까? 간단하다. 재미있으라고. 인생을 즐기기 위해. 중국 사람들의 술자리에도 대부분 사회자가 있다. 사회자는 왕이다! 복창하지는 않지만 누구나 기꺼이 그의 명령에 따라 게임을 한다. 아니, 술이나 먹지, 웬 게임? 왜냐고? 방금 전에 말했잖아? 재밌으라고, 인생을 즐기기 위해!


선생님, 중국 사람들은 언제부터 M. T를 갔길래 언제부터 사회자가 있게 된 거래요? 언제부터 있었냐구? 아주 오랜 옛날부터, 거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부터, 술을 발명했다는 전설의 인물 두강杜康이 살았을 때부터, 밥자리와 술자리 그러니까 회식하는 자리에는 언제나 사회자가 있었다. 그런 사회자를 주관酒官이라고 불렀다.


헌데, 곰곰 생각해 보시라. 그 당시에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회식을 베풀었겠는가? 당연히 통치자들이었다. 그들은 술 마시는 것도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했다. 음, 그래! 모두들 고생하였노라! 오늘은 특별히 술을 하사하겠노라! 에구, 좋아라.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그리하여 좌중의 모든 사람들은 황감한 마음으로 주관의 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술을 마셔야만 했다. 또, 주관이 내리는 그 명령을 주령酒令이라고 했다. 주령을 어기면 엄한 징벌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술이 흔해지면서 주관과 주령의 성격은 점차 바뀌었다. 특정인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통제의 수단이, 모든 사람들의 흥을 돋우기 위한 권주勸酒의 수단으로 바뀐 것이다. 재밌으라고, 인생을 즐기라고, 주관인 사회자는 여러 가지 게임을 시키면서 주흥酒興을 도도하게 돋워야 할 책임이 있었다.


자, 복숭아꽃 오얏꽃 만발한 이 좋은 경치에 이 좋은 술이 있으니 어찌 아니 시詩 한 수 읊지 않을 수가 있을 소냐? 때는 바야흐로 양춘가절陽春佳節이니, 오늘의 주제는 춘春으로 하자꾸나! 먼저 첫 글자가 춘春으로 시작하는 옛날 시를 읊은 다음, 여러분도 첫 글자가 ‘춘’으로 시작하는 시를 지어 대구對句를 이루어야 하느니! 만약 차례가 되었는데 좋은 시를 짓지 못한다면 벌주 석 잔을 연거푸 마셔야 함을 명심하시오!


아니, 선생님! 이렇게 어려운 게임을! 술 한 잔 마시려다 머리에 쥐 나겠어요! 하하, 근데 옛날 지식인들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게임이 아니었단다. 우리들도 술 마실 때 가끔 편을 지어 번갈아 노래 대항전을 펼치곤 하잖니?


자, ‘가을’로 시작하는 노래를 부르는 거야, 알았지? 1조부터, 시작! 사회자가 명령을 내리면 1조가 노래를 시작한다.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차라리~ 하아얀~ 겨울에 떠나요!


자, 이번엔 가사 바꿔 부르기 순서다. 가을엔 옛사랑 그리워, 차라리~ 까맣게~ 그 님을 잊을걸! 이와 마찬가지다. 시詩라는 건 바꾸어 말하자면 결국 노래 가사 아니겠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어려운 게임은 아닌 것이다. 아무튼 중국의 지식인들은 이렇게 지적知的인 게임을 하며 지는 사람이 벌주를 마시곤 했다.


하지만 상형문자인 한자漢字를 나라 글자로 쓰는 중국은 지식인보다는 일자 무식꾼들이 훨씬 더 많다. 그들의 술자리는 한 마디로 시끌벅적 난장판!


특히 섬서성陝西省 일대에서 시작했다는 화(↘)취엔(↗)이라는 중국식 묵찌빠, 주사위 던지기, 투호投) 등 동적動的인 게임을 즐기는데, 그중에서도 묵! 찌!! 빠!!! 큰 소리와 함께 주먹을 어지럽게 내지르는 화/취엔划拳은 오늘날에도 싸구려 음식점에 가면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대단히 다이내믹한 게임이다. 어느 정도로 다이내믹하냐고? 가히 상상을 불허할 정도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 직접 한번 겪어보면, 어마 뜨거라! 귀를 막고 뛰쳐나와 두 번 다시 그런 장소에 가고 싶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 사람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라면 아무래도 동적動的이라기보다는 정적靜的이며 지적知的인 분위기가 더 많은 자리일 게 틀림없다. 아이고 그람, 사회자가 혹시 날더러 옛날 한시漢詩를 읊으라고 시키면 어뜩하지? 지레 고민하실 필요는 전혀 없다. 그런 게임을 시키는 사회자들은 진즉에 이 세상 분이 아니실 터이므로.


중국인의 지적知的인 술자리에서는 한 잔 마실 때마다 매번 의미를 부여한다. 추석날이 가까워지는데 한국대학교 당국자들이 북경대학과 자매결연을 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했다고 치자. 그럼 먼저 북경대 측에서 초대하는 모임을 가지게 마련이다.

첫 잔은 주최 측인 북경대의 부총장인 리(李) 총장이 일어나 의미를 부여한다. 중한 양국의 진정한 우의友誼를 위하여! 모두들 다 같이 일어나 깐베이! 소리 높여 외친다. 잔을 들고 난 다음에는 모두 앉아 안주 삼아 요리를 맛있게 먹는다.


잠시 후, 두 번째는 초대받은 한국대의 교무처장 서徐 처장님이 일어나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한국대와 북경대의 자매결연을 축하하기 위하여! 모두들 다 같이 일어나 다시 한번 깐베이! 소리 높여 외친 후, 또다시 앉아서 요리를 맛있게 먹는다.


잠시 후, 세 번째 잔의 의미 부여는 다시 북경대 측의 순서다. 외사처外事處의 장(江) 처장이 일어나 의미를 부여하고 나면 한국대 기획처의 김 처장님 순서가 되고, 다시 북경대 대외협력실의 천(陳) 실장 차례가 된다.

 

이렇게 직위와 나이 순서대로 차례차례 내려오며 의미를 부여하는데, 나중에 할수록 의미를 부여하기가 점점 더 쉽지 않다. 이미 앞에서 할 말은 웬만큼 다 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중에 할수록 더욱 번뜩이는 기지와 재치가 필요하다.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된다고나 할까? 위트와 유머를 적절히 활용하여 히트를 쳐야 한다. 이때, 단순하게 평범한 말이 아니라 유명한 시구詩句 따위를 인용하며 의미를 부여한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예를 들어보자. 맨 마지막에 남은 김 아무개가 일어나 말한다. 오늘은 마침 백로白露군요. 내일모레가 중추절입니다.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말했죠. 노종금야백露從今夜白 월시고향명月是故鄕明이라, 이슬은 오늘밤부터 하얘지고, 달은 고향에 뜬 달이 가장 밝다고요. 그래서 이 잔은 모두 함께 단결과 화합을 선사해 주는 우리의 영원한 벗, 고향의 달님을 위해 드심이 어떠할지요?

모두 일어나 손뼉을 치며 말한다. 하오, 하오! 달님을 위하여, 위하여!


선생님, 근데요, 그 김 아무개가 누군진 몰라도 되게 티 내는 거 같네요? 하하, 그 정도는 원래 동아시아 풍류객에게는 기본 필수다. 멋들어지게 받아넘기면... 오, 저 친구 제법인걸? 사회생활에서 모두 인정하는 분위기가 되지만, 우물쭈물 제대로 받아치지 못하면... 에이, 저 자식 형편없군. 개밥에 도토리밥 신세되기 딱 좋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자고? 상황에 어울리는 옛날 시 구절을 미리미리 준비해서 우리 것으로 만들어두자. 오케이?


아무튼 이렇게 한 바퀴 돌고 나면 공식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순서는 일단락된 셈. 그다음에는 주로 개별적으로 상대방 자리를 찾아가서 주거니 받거니 오순도순 대화와 함께 권하며 마신다. 먼저 주인 측이 손님 측을 찾아가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찾아가는 게 기본 매너다. 이때는 상대방에게 경의敬意를 표한다는 의미로 ‘징(敬)…뻬이(杯)’란 말을 사용해 보자. 이런 식으로.


 라오(↓)()! 워 징(↘)닌 이(↘)뻬이(→)

"金老师,我您一!"

“김 선생님! 제가 한 잔 올리고 싶습니다. (한 잔 올려서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중국어를 모르는 분이라도 이 정도 말은 무조건 꼭 기억해 두자. 나중에 틀림없이 소오생에게 감사하고 싶을 거다. 이때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징뻬이(敬杯)를 할 경우에는 반드시 윗사람인 그 분하고만 징뻬이를 해야 한다. 윗사람은 한 번에 여러 사람에게 술을 권할 수 있지만,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권하는 징뻬이는 반드시 한 번에 한 사람씩 마주 해야만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것임을 명심하자.

 

술이란 모름지기 한 잔, 한 잔에 의미를 부여하며 마셔야 한다. 그래야만 술자리가 생산적인 자리가 된다. 그래야만 즐거울 때의 한 잔 술이 좋은 친구가 되어 주고, 슬플 때의 한 잔 술은 지기知己가 되어 주는 법이다. 주정뱅이 주당들은 술이 사람을 마신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혼자만의 기분을 위해 마신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전통 풍류문화는 다르다. 사람이 술을 마신다. 상대방을 배려하며 함께 즐기기 위해 마신다. 이제는 우리도 술 한 잔마다 의미를 부여하며 마시는 이런 지성인들의 음주 문화를 배우자. 오손도손 즐겁게 이야기하는 소리, 까르르 명랑하게 웃는 소리, 그리고 이따금 일송정 푸른 솔은 느~읅어 늙어 갔어도, 정겹고도 의미 있는 노랫소리도 함께 들려오는 생산적인 술자리를 만들어 보자!


< 계 속 >




◎ 다음 글은 <주선酒仙이 되는 비결 - 중급>입니다.

일주일 정도(7. 14~7.21) 발행을 쉽니다. 그동안 중국어 복습을 열심히 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 대문 그림 ]

◎ 邱文生, <太白醉酒>,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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