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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Jul 25. 2024

19. 주선酒仙이 되는 비결 - 중급

<제3부>  중국 음식과 인간관계 (3)

자, 이번에는 주선酒仙이 되는 비결, 중급 편이다. 그런데 바둑을 둘 줄 아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고수가 되려면 정석을 배워야 한다. 행마법을 익혀야 한다. 하지만 진정한 고수가 되려면 그 단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어떻게? 열심히 배운 정석과 행마법을 깡그리 잊어버려야 한다. 무시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거기에 구속받지 말고 초월해야 한다는 뜻이다. 


술자리의 신선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 초급 비결을 완전히 숙지했으면 머리에서 완전히 지워버려야 한다. 외형적 모습의 비결에 지나치게 구애받지 말고 이를 뛰어넘기 위해서 새로운 중급 단계의 비결을 익혀야 한다는 뜻. 안다스텐? 


그래도 모른다스텐? 아니, 못믿겠다스텐? 쩝... 아무튼 신선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중국의 지성인들과 진정한 꽌시를 맺는 비결 임에는 틀림없을 터이니, 계속해서 소오생의 한바탕 흥미진진 중국 술 이야기를 귀를 씻고 들어보시라!



음미하라! 천천히조금씩 



분위기를 바꿔 딴 얘기 한 마디 하자. 하지만 엉뚱한 얘기가 아니다. 다 맥락이 이어지는 아주 중요한 얘기다. 무슨 얘기냐? 모름지기 삶이란 음미하며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 (아니, 갑자기 웬 썰렁?) 사람은 순간순간마다 일어나는 모든 삶의 의미를 음미하며 살아야 한다. (점점 더?) 그런데 말이 그렇다는 얘기지, 그게 어디 그리 쉽겠어? (낄낄, 그럼 그렇지!) 


그래서 중국의 지성인들은 최소한 먹고 마실 때만이라도 음미하고자 한다. 그런데 중국 음식은 무엇을 음미한다고? 벌써 잊지는 않으셨겠지? 색色, 향香, 미味, 그거다. 요리를 먹을 때도 그렇고, 술을 마실 때도 그렇고, 차를 마실 때도 그러하다. 


그런데 요리의 맛을 품평하기는 쉽지만 술맛을 감상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차를 음미한다는 건 더더욱 어렵다. 오죽하면 다선일여茶禪一如라, 삶의 의미를 음미하고자 고요히 참선하는 스님처럼, 차 마시는 것도 그 깊은 운취韻趣를 음미하며 마셔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아무튼 차 이야기는 잠시 뒤에 다시 하고, 우선 술은 어떻게 음미하며 마셔야 하는 건지, 그 얘기부터 먼저 하자. 


음미의 첫 번째 요건은 속도 조절이다. 쉽게 말해서, 천 천 히, 조 금 씩, 마셔야 한다는 얘기. 모든 술이 다 그렇지만 특히 중국 술은 반드시 천천히 마셔야 한다. 빨리빨리 함부로 마셨다간 큰일 난다. 음미는 둘째 치고, 자칫 그대로 꼴까닥, 황천길로 떠나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에이, 선생님도 너무 말씀이 과하시네요! 아, 음미를 안 했다고 무슨 죽음이에요? 어허, 지금 농담하는 게 아니니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듣거라! 명심, 또 명심하시라! 


중국 술은 분명히 똑같은 상표인데 나란히 세워놓고 보면 높낮이가 확연히 차이 나는 경우가 많다. 그뿐이 아니다. 술맛도 서로 다르다. 그뿐이 아니다. 파는 장소에 따라 값도 서로 다르다. 아니, 이게 어뜨케 된 일이냐? 참으로 희한한 일일세?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계량화, 표준화가 안 된 탓도 있겠지만, 한 마디로 가짜 술이 많으니까 그렇겠지, 뭐. 

적발된 가짜 술들. 모두 마오타이茅台酒다. 비싼 술은 가짜가 많다. 이익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 마오타이는 시중의 90%가 가짜라고 생각하면 틀림없다. 대부분 한국인들이 대량 구매, 충동구매로 값을 올린 탓이다. 


천천히 마셔야 하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 첫째! 중국에는 뭐든지 가짜가 많다. 글씨, 그림, 골동품 같은 예술품은 물론이고 술, 담배, 영수증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가짜의 왕국이다. 어떤 가짜는 하도 잘 만들어서 진짜보다 더 좋다. 하지만 술은 절대 아니다. 가짜 술은 참으로 위험천만! 수없이 많은 중국 사람들이 화학 알코올을 사용한 가짜 술을 벌컥벌컥 마시고서 그대로 저승길 직행열차를 타고 떠나간다. 포장은 번지르르, 잘도 해놓았으니 겉모습만 보고는 가짜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중국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정부 당국이 '문명사회'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강력 단속하며 엄벌에 처하기 때문에, 혹시 상황이 바뀌었을 수도 있음을 감안하고 이야기를 들으셔야 한다.

중국 술 구매 포인트: 비싼 술은 가짜가 많다. 마오타이나 우량예는 특히 그렇다. 백화점에서 파는 것도 절대 믿을 수 없다. (마오타이도 종류가 많다. 몇 십만 원 짜리부터 몇 천만 원 짜리까지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우량예도 마찬가지) 차라리 한화 1, 2만 원 정도의 중급 고량주를 권한다. 그 정도 작은 이익을 위해 중벌을 감수하려는 모험은 하지 않기 때문. 중국의 경제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전과 달리 그런 술도 아주 훌륭하다. 중국술의 종류는 엄청나게 많다. 가격보다는 기호에 맞는 술을 고르자. 


아이구, 무시라. 그럼 어뜩해요? 술을 안 마실 수도 없고... 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평소부터 천천히, 조금씩 음미하며 술을 마시는 습관을 들이는 일이겠다. 앗, 이거 술맛이 어째 좀 이상한걸? 음, 이건 아무래도 마시면 안 좋겠군... 천천히 음미하며 마셔야 가짜인지 알아챌 수 있다. 아시겠지?


천천히 마셔야 하는 이유, 둘째. 육체적인 건강을 위해서. 이미 말한 바 있거니와, 중국 술은 백주白酒와 황주黃酒, 그리고 과일주 등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그중에서 알코올 도수가 제일 센 술은 백주, 속칭 빼갈白乾兒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대부분의 술들, 이를테면 마오(↗)타이나 우(↓)량(↗)예(↘)와 같은 술이 모두 이 계통에 속하는데, 요새는 34~37도로 부드럽게 순화시킨 종류가 많이 나오지만 전에는 보통 55~60도의 지독한 독주 일색이었다. 어느 정도 독주냐? 불을 붙이면 파아란 불꽃이 화~알 화~알 요염하게 춤을 춘다. 



최고급 마오(↗)타이(↗)지우(茅台酒). 닉슨 대통령과 한국 사람 덕택에 유명해지고 비싸졌다. 사연은 이렇다. 한국 전쟁 이후 미국과 중국은 냉전 관계의 적성 국가였다. 그런데 1971년 중국 정부가 미국 탁구선수단을 초청하면서 소위 핑퐁 외교가 펼쳐졌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자 양국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이때 만찬장에서 닉슨에게 대접한 술이 바로 마오타이였다. 양국은 마오저뚱(毛泽东) 사후에 집권한 작은 거인 덩샤오핑(邓小平)이 1979년에 미국을 방문했을 때 국교를 수립했다. 서방 국가 중 최초로 중국과 수교한 나라는 일본.(1972년한국은 1992년 중국과 수교했다. 그때부터 이 술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닉슨이 마신 술이라며? 중국을 방문하는 한국인들마다 술을 대량 구매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가짜 마오타이도 급증했다. 중국의 가짜술 붐은 한국인들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한국의 주당들은 자신이 무협 영화 주인공이나 된다는 듯, 이 지독한 술을 툭하면 맥주 마시듯 벌컥벌컥 마시면서 호쾌함(?)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 쯧쯧! 가짜 술이 아니더라도 내공內功도 없이 그런 독주를 폭음하는 건 사망에 이르는 첩경임을 왜 모르시나요?


그러나 소오생이 주장하고픈 천천히 마셔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생을 음미하기 위해서! 최소한 먹고 마실 때만이라도 음미해 보기 위해서. 하나님, 부처님, 이 음식을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먹고 마실 때만이라도 합장하고 기도하며 삶을 음미해 보듯, 한 잔 한 잔의 서로 다른 술맛을 음미하며 그 김에 우리의 삶도 덩달아 함께 음미해 보기 위해서. 무엇으로 음미한다고? 색色과 향香과 맛味을! 어떻게 음미한다고? 천천히, 아래와 같은 요령으로!


알려진 바에 의하면 중국 술의 종류는 약 4천 종. 천편일률적인 우리나라 소주 맛과는 달리, 저마다 다른 색과 향과 맛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맥주나 과일주, 황주黃酒와 같은 유색주有色酒라면 몰라도, 무색인 빼갈과 같은 술의 색깔을 음미한다는 건 그야말로 프로의 경지! 전문가 중의 전문가가 아니면 흉내도 못 낼 일이다. 하지만 향과 맛은 다르다. 아마추어라도 얼마든지 나름대로 즐길 수 있다.



자, 직접 실습을 하며 음미란 걸 해보도록 하자. 선생님이 좋아하는 우/량/예五粮液를 마셔보자. 먼저 술잔을 가볍게 들고 코앞 2~ 3 cm 거리에서 좌우로 서서히 움직이며 향을 맡는 거다. 


어허, 쯧쯧! 그렇게 킁킁! 소리를 내면 안 되지이~! 어디 가서 그렇게 불고기 냄새 맡은 황견黃犬처럼 덤벼들면 그야말로 개(!) 망신이겠지? (애구, 잔소리) 우아하게! 운치 있게! 살그머니 술잔을 움직이며 향기를 맡아야 하느니. 아하, 그렇게 술잔 위에 콧김을 내뿜어도 안 되지~! (또 잔소리?) 향을 음미할 때는 코로 숨을 들이쉬기만 하는 거란다. 내뱉으면 안 돼? (읍! 숨 막혀.. ) 


푸우~! 어휴, 힘들어! 선생님, 술 한 잔 마시려다 숨 막혀 죽겠어요! 이렇게 갑갑해서야 워뜨케 술을 마신대요? 하하, 그러게 술잔을 좌우로 자연스럽게 움직여주라고 했잖아? 술잔이 코에서 멀어졌을 때 숨을 내쉬면 되지! 그래, 바로 그런 식이야. 어때, 금방 익숙해지지? 좋은 술이나 차는 그 향이 은은하게 코에서 정수리 부분을 거쳐 맑은 기운으로 뇌리에 퍼져나가는 걸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단다. 


자, 이제는 맛을 음미해 보자꾸나. 첫 잔은 어떻게 한다고? 깐베이! 원 샷! 그런 말을 한다 해서 덩달아 소리치며 목구멍으로 한꺼번에 털어 넘기면 안 된다~, 기억하시죠? 그러면 어떻게 할까? 입안에서 부드럽게, 그리고 골고루, 그리고 천천히 혓바닥 위에서 굴리는 거다. 


혀에는 다섯 가지 맛을 보는 기능이 있다. 시고 달고 쓰고 맵고 떱떠름한 그 다섯 가지 맛을 골고루 음미해 본다. 좋은 술은 그 다섯 가지 맛이 서로 어우러져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특별히 어느 하나의 맛이 두드러지게 입안을 자극하지 않는다. 부드럽고 깨끗하고 맑은 밸런스를 이룬다. 그런 맛이 나는지 아닌지 천천히 입안에서 두서너 번 굴리며 음미해 보다가 살며시 목 젓을 넘기는 거다. 알겠니? 


아이고, 이게 어디 도 닦는 거지, 술 마시는 거예요? 술맛 다 달아나겠네! 하하, 그건 네가 벌컥벌컥 마시는 습관을 들여서 그러는 거다. 그렇게 마셔서야 어디 술맛을 알 수 있겠어? 그건 술 마시는 게 아니라 오로지 알코올로 감각을 마취시키자는 얘기지. 


아무튼 이렇게 마시는 게 복잡하고 골치 아픈 것 같지만 조금만 연습하면 금방 익숙해진단다. 그 술맛과 향기에다가 분위기를 일치시키고, 또 그 위에 술 마시는 사람의 기분과 느낌까지 하나로 접목시키는 것, 그게 바로 음미하며 술을 마시는 거지. 이렇게 천천히 조금씩 마시다가 상황에 따라 차차 스피드를 올리는 거란다. 알겠지?


여럿이 어울리는 술자리에서 흥겹게 놀려면 한 잔 한 잔의 술에 의미를 부여하며 마셔야 한다. 멋들어진 의미를 부여해서 히트를 치면 사회 생활 하는데 결정적으로 도움을 준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죠? 그런데 제대로 의미를 부여하려면 평상시에 내공을 쌓아야 한다. 천천히, 조금씩 음미를 하면서 마시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얘기다. 


자,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 잔 마시면서 음미해 볼까? 으으음~, 이야, 역시 우/량/예는 향도 그렇고 맛도 그렇고, 참 상큼하고 정갈하단 말이야~? 하오(↺)! () 하오(↺)! 정말 기가 막히구나~!     

▶ 쩐(→) 하오(↺), 眞好, zhēnhǎo: 정말 좋구나!




이태백의 <장진주>로 맺어지는 도원결의



자, 다시 함께 어울린 술자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아무튼 분위기가 무르익어 자리가 중반전을 지나 종반전으로 향하게 되면, 밥 먹는 자리가 점차 본격적인 술자리로 바뀌게 마련이다. 그때쯤이면 각기 주위 사람들과 일대 일로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특히 중국의 술자리에서는 이때 화제를 잘 선택해야 한다.


여기서 잠깐 우리나라 술자리의 주된 화제는 뭔지 한 번 생각해 보자. 새로 이사 간 아파트 평수가 어떻고, 무슨 주식을 사서 얼마를 벌었으며, 어떤 술집에 가서 어떻게 재미를 삼삼하게 보았노라는 무용담(?)의 연속! 목청을 높여가며 삿대질을 하는 그 얘기는 보나 마나 대통령 선거에 정치판 이야기! 술만 먹었다 하면 저마다 인간 세상 시시비비 가려주는 정의의 싸나이 돌쐬요, 지구를 지키는 독수리 오 형제로 둔갑하는데, 그 화제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돈과 여자와 권력이요, 결론을 말하자면 나 잘났소 그 얘기다.


그 버릇이 중국 간들 어디 가나? 중국은 정치 제도가 문제라는 둥,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는 어찌 된 거냐는 둥, 조선족은 우리 민족이고 만주 벌판이 사실은 우리나라 땅이라는 둥... 술 몇 잔이 더 들어가면 그야말로 점입가경漸入佳境, 너네는 더럽고 못 살지? 우리는 깨끗하고 잘 산다? 유치 찬란한 말투를 일삼으며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방을 굴복시키고 싶어 한다. 대체 서로 기분 좋은 자리를 가지자고 만난 건지, 싸우자고 만난 건지, 나 원 참!


Ugly Korean!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정말로 나라 망신이다.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안 되지만 중국에서 그렇게 행동하면 참말로 개피 본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그 즉시 화를 내며 언성을 높이는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달리, 꾹꾹 참고 웃으면서 그 헛소리를 다 들어주니, 옳다구나 신이 나서 자꾸만 더 떠든다. 하지만 알아두시죠. 그 양반들, 훗날 결정적인 순간에 반드시 엿을 드시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 웃으면서 자신의 술주정을 받아주었던 바로 그 ‘중국 친구들’에게! 


명심하자. 민감한 화제는 절대 금물이다. 더군다나 현재 진행형인 시사성 있는 화제는 참말로 쥐약이다. 더더군다나 나 잘났소, 상대방을 경시하는 태도는 금기 중의 금기! 아, 그럼 무슨 얘길 하라고? 간단하다. 현재 진행형이 아닌 이야기를 하면 된다. 흘러간 옛날이야기를 하라, 그 얘기다. 


아니, 그렇게 현실 도피적이어서야 쓰겠어? 쭝국 싸람들은 그래서 탈이야. 어허, 내 생각엔 댁이 잘못 생각한 것 같소만 설령 그대 생각이 옳다한들, 그래서 지금 어쩌자는 것이오? 중국 사람들을 술자리에서 기어코 굴복을 시키겠다 그 얘기요? 하물며 옛날이야기를 한다 해서 결코 오늘의 현실을 도피하자는 뜻이 아닐진대! 


중국의 지성인들은 예로부터 민감한 시사성의 이야기를 할 때면 언제나 차고논금借古論今, 즉 오늘의 현실과 유사한 옛날 스토리를 인용해서 빗대어 말하는 수법을 많이 사용했다. 그들은 E. H. Carr의 서양 책을 안 읽었어도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요, 현재는 내일의 과거이며, 미래는 과거의 거울이라는 사실 쯤은 기본으로 섭렵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직설적인 화법을 싫어한다. 장강長江의 물결 따라 사라져 간 그 옛날 영웅과 미녀들의 사랑 이야기로 시작하여, 시詩와 그림, 문학과 예술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가운데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은근슬쩍 돌려 쳐서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중국의 지식인들은 처음 만난 술자리의 이런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인격과 교양의 수준, 인생관과 가치관을 판단한다. 여기서 중국인들과의 ‘인간관계’, 즉 ‘꽌시’가 갈림길에 서게 되는 것이다. 


첫 번째 ‘꽌시’의 개념은? 

눈앞의 이익을 위해 만나는 ‘꽌시’!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중국의 지식인들은 결코 티를 내지 않는다. 음, 역시 형편없군. 그러면 그렇지, 지가 우리 중국 문화의 그윽한 세계를 어떻게 알겠어? 적당히 상대해 주고 챙길 거나 챙겨야 되겠군. 속으로는 깔볼망정 전혀 내색하지 않고, 하 하 핫, 그러시군요! 겉으로는 웃으면서 상대방을 여전히 잘 대해준다. 그런데 그 속을 어떻게 아느냐고? 간단하다. 그들이 진심으로 탄복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그런 '꽌시'는 '썩은 동앗줄'이다.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꽌시’란 말을 ‘빽’ 아니면 ‘연줄’의 의미로 이해한다. 그 양반들의 ‘꽌시’는 혹시 서로 간에 이익만을 위해 만나시는 그런 ‘꽌시’는 아니신지? 이런 ‘줄’은 ‘썩은 동아줄’! 이런 ‘줄’을 믿고 지옥에서 ‘빽’을 쓰면? 천당에 도착하기 일보 직전, 거의 다 왔는데, 앗, 이게 뭐야, 썩은 동아줄이었잖아? 도로아미타불, 도로 지옥으로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럼 두 번째 ‘꽌시’는 어떤 건가요? 

진정한 ‘꽌시’, ‘친구’ 관계다! 


친구는 친군데 보통 친구가 아니다. 자신들의 마인드를 이해해 주고 자신들의 정서를 함께 호흡하고 공감해 주는 진정한 친구, ‘지기知己’를 말하는 거다. 그들에게 있어서 한 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 그들은 자신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친구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바친다. 이런 말 못 들어보셨는가?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여인은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을 위하여 곱게 단장한다. (士爲知己者而死, 女爲悅己者而容。) 



전국 시대의 유명한 자객 예양豫讓이 자신을 알아준 주군 지백智伯의 복수를 위해 목숨을 바쳐 조양자趙襄子를 죽이면서 한 말이다. 출전: 유향劉向, 《전국책戰國策 · 조책趙策》&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 · 자객열전刺客列傳》


사실은 우리도 그렇지 아니한가? 내 생각과 기분, 나의 정서를 잘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정말 기쁘다. 중국의 지식인들은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적知的 세계, 이를테면 중국 문화와 문학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히 강하다. 하하, 짜식들! 우리들의 이런 경지를 너네들이 알겠어? 알아봤자 얼마나 알겠어? 그들은 마음속에 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외국인들을 대한다. 


그런데 말이다. 만약 얼큰한 배갈을 반주로 이태백의 <장진주將進酒>나 조조의 <단가행短歌行>을 낭랑한 목소리로 읊조리는 외국인 친구를 만난다면? 또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자신이 마음속에 감추어 둔 그 마인드, 그 정서와 완전히 일치한다면? 게다가 벽에 걸린 액자나 병풍 속의 문구文句 따위도 멋들어지게 해설해 낸다면? 그러면서도 겸손하게 자신들을 존중해 주는 태도를 보인다면? 


정말로! 그 눈빛이 변하기 시작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감탄에서 경악으로, 급기야 경악에서 존경의 눈동자로 변하기 마련이다. 손을 덥석 움켜쥐며, 유붕有朋이 자원방래自遠方來하니, 불역낙호不亦樂好아라! 먼 곳에서 벗님이 찾아오셨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랴! 소리치게 마련이다.


처음 만난 술자리일지라도 의기만 투합하면 중국인들은 바로 그 자리에서 결의형제를 맺는다. 삼국지三國志의 도원결의桃園結義가 그렇게 맺어지지 않았던가! 그러니 생각해 보시라! 만일 유비劉備같은 형님 하며, 관우關羽에 장비張飛처럼 든든한 중국 아우가 생긴다면, 중국에서 그 무슨 일을 하든 간에 그야말로 만사형통! 걱정이 없지 않겠는가? 그게 바로 중국 성공의 핵심 비결인 것이다. 


히야,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참말 기똥차겠네요! 뭬라?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아니, 인석 말하는 것 좀 보소? 그람, 지금 선생님 말쌈을 못 믿겠다는 거냐? 아이쿠, 그게 아니라요, 선생님 말씀하는 그런 경지, 중국 지식인들이 꾸바닥! 탄복할 정도로 대단한 지식을 갖추기가 어디 그리 쉽겠냐, 제 얘긴 그 얘기죠. 


음, 그래. 네가 걱정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근데 말이지, 후후, 너한테만 살짝 하는 얘긴데, 술자리에서 써먹는 시구란 게 사실 알고 보면 생각 외로 그리 많지 않거든? 쌤이 연재하고 있는 브런치 스토리 [중국 시와 중국 문화] 매거진에 조만간 그런 구절들만 따로 모아 설명해 줄 테니 쪼금만 기다리렴. 그것도 다 퀴즈 게임 풀 듯 요령이란 게 있단다. 알고 보면 아아~! 그런 거였구나아~! 금방 익힐 수 있지. 콜럼버스의 달걀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때 가서 그 책 한 권만 심심풀이 땅콩 삼아 주왁-- 읽어보면 중국 술자리에서 그야말로 백발백중, 백전백승할 터이니 그건 염려 붙들어 매고, 지금은 우선 술이란 건 대체 어떻게 마셔야 폼 나는 건지, 중국 사람들이 넋을 잃고 좋아하는 이태백에게서 그 풍류와 낭만을 배워보도록 하자. 오케이?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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