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오생 May 17. 2023

결합의 패러다임

제2장 - 이원론의 함정

동아시아의 자연환경에도 서양과 상반된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첫째, '닫힌 공간'.

 

중국 대륙 중심의 이 세계는 '닫힌 공간'이다.

동쪽은 세상에서 가장 깊고 크고 무서운 바다인 태평양.

서쪽으로는 세계의 지붕인 히말라야산맥과 티베트고원, 죽음의 타클라마칸사막.

남쪽으로는 인도차이나 반도로 이어지는 울울창창한 정글.

북쪽은 끝없는 혹한의 벌판인 시베리아...

동아시아인의 주요 활동 무대는 극한의 자연환경에 의해 완전히 포위된 '닫힌 공간'으로, 고대 인간의 능력으로서는 외부와의 교통이 매우 어려운 환경이었다.


이렇게 '닫힌 공간'에서는 청각 문화가 발달한다. 모든 생명체는 '열린 공간'에서는 시각 의존도가 높아지고, '닫힌 공간'에서는 청각 의존도가 높아진다. 바다와 같은 '평면 공간'에서는 시각적으로 전망이 좋고, 고저의 굴곡이 있게 마련인 육지와 같은 '입체 공간'에서는 시각적인 장애를 받는 곳이 많으므로 보다 청각적인 패러다임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극단적인 닫힌 공간인 동굴에 사는 박쥐는 아예 청각에만 의지하여 활동한다.


청각은 감성적이고 결합적인 패러다임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준다. 소리는 모든 방향에서 순간적으로 동시에 들려오기 때문에, 장내의 청중에게 일체감을 준다. 시끄러운 소리가 나면 모두가 불쾌감을 느끼고, 쥐 죽은 듯 적막이 흐르면 모두가 숨을 죽이게 된다. 선생님이 낭랑하고 명쾌한 목소리로 강의를 하면 모든 학생이 빨려 들어오지만, 각자 눈으로 책을 읽게 하면 일체감은 무너지고 여기저기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오게 마련이다. (월터 옹,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참조)


청각적 의존도가 높은 동아시아의 '학문'은 그만큼 감성적이고 결합적이다.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서구의 '인문학'과 비교해 볼 때, 어느 쪽이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배우기에 더 유리할까?




둘째, 공포의 자연환경.


이곳의 자연환경은 그야말로 공포와 경외의 대상이었다. 외곽에서 포위하고 있는 극한의 자연환경은 말할 나위도 없고, 주요 활동 무대도 끊임없는 홍수와 가뭄, 태풍과 지진에 시달렸다. 예컨대 동아시아 문명의 발상지인 황하黃河는 평균 2년에 한 번 꼴로 범람할 때마다 평균 1백만 명의 인명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재산을 앗아갔다. 게다가 천정천天井川이기 때문에 범람할 때마다 물줄기가 바뀌었다. 2천 년 동안 수로水路가 크게 바뀐 게 10번. 아예 바다와 만나는 하구마저 바뀐 게 7번이나 되었다. 엄청나게 거대한 강이 남북으로 무려 2천 km 이상을 꿈틀대며 돌아다닌 것이다. 꿈틀거리며 사정없이 인명과 재산을 삼켜대는 그 누런 강! 그야말로 공포의 황룡黃龍이었다. (류제헌,《중국역사지리》제5장 참조)


홍수뿐인가! 매년 극심한 가뭄과 공포의 태풍과 지진이 끊임없이 몰아친다. 히말라야와 티베트고원은 높이만 따져도 알프스의 두 배다. 그렇게 엄청난 대자연이 도전과 정복의 대상이라고? 동아시아인은 감히 생각도 못할 일이다. 오로지 숭배와 경외의 대상일 뿐이다. 대자연의 이치를 설파한 노자老子는 그의 책을 이렇게 시작한다.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다. 道可道, 非常道."《노자老子 제1장》그가 뭐라고 설명할 수조차 없어서 감히 이름을 붙이지도 못했던 그 '도道'가, 기독교로 치자면 바로 '하나님 God'인 것이다.



[ 대자연 = 신 ]



동아시아의 결합 패러다임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 특징은 조화調和와 중용中庸, 그리고 간절함과 겸허함이다. 인간은 공포의 자연환경에 처하면 자신의 능력이 보잘것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간절하고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천재지변에 대처하기 위해서 상대방과 힘을 합쳐 공동 대처할 수밖에 없으므로, 나 자신이 인내하고 타협하고자 하는 조화와 중용의 논리가 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의 분리와 투쟁은 강자의 입장에서는 상황이 호전되었을 때의 선택이요, 약자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최후의 선택이다.


[우주 = 대자연 = 인간]의 결합 패러다임 속에서는 '타인과 나'는 '하나 one'다. 동아시아에서 '우리 we'의 개념이 특별히 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남성과 여성, 정신과 육체, 행복과 불행 등등 현상적으로 대립한 것처럼 보이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사실은 완성된 '하나'로의 결합을 위한 상호 보완재라는 음양陰陽 사상이 발전하였다. 동아시아의 '학문'은 이런 생각의 틀을 기반으로 탄생한 것이다. 공포의 대자연이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 표제 사진 ]

티베트의 메이리梅里설산. 6,540m. 빙하 아래 명영촌明永村 마을이 있다. 이런 닫힌 공간에 살면 청각 의존도가 높아진다.


                                                                                                                            <계속>

이전 10화 분리의 패러다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