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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May 17. 2023

분리 패러다임의 'science'

제3장 - '학문'의 함정

먼저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질문 두 가지. 잠시 읽기를 멈추고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다.

(1) '학문'은 영어로 뭐라고 할까? 영어를 10년 넘게 배운 학생들도 고개를 갸웃한다.

(2) '학문'은 한자로 어떻게 쓸까? '학'은 '배울 학學'이다. '문'만 생각하면 된다.




"응? 정말... '학문'을 영어로 뭐라고 하지?"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들어섰을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글을 쓰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대학 교수가 그것도 모르다니, 스스로가 한심했다. 네이버 영어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기재되어 있었다.



【학업】learning;study; 【학식】scholarship;knowledge; 【학교 교육】schooling;

【면학】studies;scholastic pursuit; 【학술】a science



여러 유사한 표현이 있지만 학술적인 의미로는 ‘science’였다. 응? 싸이언스? '학문'이 '과학'이라고? '학문의 일종'이 아니라, science가 아예 '학문 그 자체'라고? 충격이었다. 내 상식 속에서의 '과학'이란 '기계', 혹은 '기계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그 무엇인가를 대상으로 하는 지적 탐구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세상 모든 '학문'을 'science'라고 한다면, 서양 사람들은 이 세상 모든 것을 '기계'처럼 대한다는 이야기 아닌가? 하늘도 땅도 바다도 동물도 식물도 그리고 인간도 '기계'란 말인가? 


'science'는 '자연'과 '우주'도 '과학'의 대상이다. 즉 우주와 대자연을 그 어떤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로 본다는 뜻이다. 그런데 희한하다. ‘humanities’라는 단어에는 왜 'science'가 붙어 있지 않는 걸까? 대자연이 기계라면, 인간도 고도의 지능을 가진 로봇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닐까? 자기 자신들이 생각하기에도 자기가 로봇은 아닌 것 같기에 차마 ‘science’를 붙이지 못한 것일까?


신기한 느낌도 잠시뿐, 인문학의 하위 학문 분야의 상당수에는 여전히 ‘science’라는 말이 붙어있다. ‘언어학’을 ‘linguistic science’, ‘윤리학’을 ‘the science of ethics’로 표기하고 있는 것이 그 좋은 예다. 아니, '인간'이 '기계'가 아니라면, '인간의 언어와 윤리'도 기계적인 대상으로 볼 수 없는 것 아닌가? 모순이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어떤 사전에서 ‘humanities’마저 ‘인문학’이 아니라 아예 ‘인문과학’이라고 번역한 것도 이해가 간다. 나름 일관성을 지킨 것 아니겠나 싶다. 그런데 그 학자님들은 이런 고민을 해보기나 하고 그렇게 번역하신 걸까? (두산 백과사전〈인문과학〉항목 참조) 


우리가 배우는 서양학의 체계도


아무튼 서구의 ‘science’는 대자연과 인간의 모든 것을 과학적 기계적 이성적으로 끝없이 분류하고 자꾸만 분석한다. 그래서 현상세계의 지식과 정보의 축적, 그리고 그러한 자료에 근거한 논리와 분석을 중시한다. 그러나 우주와 대자연과 인간 세상을 '기계'로 보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그러한 연구와 교육방법을 과연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다. ‘science’는 '학문'이 아니다. 한자로 번역이 불가능하다. 성격과 방법이 너무나 다르다. '학문'도 영어로 번역이 불가능하다. 그래서인지 애당초 일본 학자들 ‘science’를 '신학문'이라고 소개했었다. 그런데 일제 35년 강점기의 그 어느 순간 슬그머니 '신' 자가 없어지고 '학문'만 남았다. ‘science’가 '신학문'에서 '학문'으로 둔갑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소리 소문도 없이 기존 '학문'을 제도권에서 말살해 버리고 그 자리에 '신학문',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양학', 그것도 '식민지 학문으로서의 서양학'을 밀어 넣은 것이다.


정확하게 알자. 오늘날 우리가 배우고 있는 것은 '학문'이 아니라 '서양학'이다. 특히 우리들의 인지 체계를 서양학의 '인문학'으로 교육하고 있다. 분리의 패러다임인 이원론으로 학생들의 기본적인 생각의 틀을 형성시키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 사회가 분열과 갈등의 위기를 겪고 있는 근본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일제가 번역한 '학문'이라는 용어에 숨은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다.




[ 핵심 정리 ]

◎ 일제는 서양학, 즉 ‘science’를 '신학문'이라고 번역했다가 나중에는 아예 '학문'으로 불렀다.

    우리가 배우고 있는 '학문'은, 사실 '학문'이 아니라 '서양학 science'이다. 둘은 큰 차이가 있다.


[ 표제 사진 ] 

◎ 2022 대전 사이언스 페스티벌 포스터의 일부. 서양학에서는 대자연과 우주를 그 어떤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로 본다.


[ 다음 꼭지에서는... ]

◎ 동아시아의 '학문'에 대해 알아보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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