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오생 Nov 04. 2024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가수 송창식과 <푸르른 날>

<푸르른 날>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시: 미당 서정주



<푸르른 날> 낭송: 소오생




오늘

눈이 부시게 푸르른 가을날이었다.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할 수 있었다. 


작년

이때쯤 통영에서 한 달을 살았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가을 한 달이었다.

그리운 사람을 실컷 그리워할 수 있었다. 



통영은 예술의 고향이다.

박경리, 김춘수, 유치환, 윤이상, 이중섭, 김상옥, 그리고 화가 전혁림(1915~2010)도 있다. 


전혁림은 평생을 가난하게 그림을 그렸다. 환갑을 넘겨서야 조금씩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2002년, 여든여덟의 나이에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다. 2005년 11월 경기도 용인의 이영미술관에서 ‘구십, 아직은 젊다’ 전을 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아침 뉴스를 듣고 즉흥적으로 전시장을 찾았다. 대통령의 요청으로 나이 아흔한 살에 석 달 동안 그림을 그렸다. 255.6 x 602.6cm의 대작 <통영항>이 탄생했다.




깊은 바닷물을 길어온 울트라 마린의 코발트블루, 하늘을 끌어다 놓은 파란 옥색의 세룰리안블루... 눈이 부시게 푸르른 통영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푸르른 남해 바다를 청와대 본관 인왕실에 걸었다. 전혁림 화백은 '통영의 피카소'라 불리게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했다. 푸르른 통영항은 곧바로 수장고에 처박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다. 곧바로 그림의 훼손 부분을 복원한 후 청와대 사랑채에 특별전 ‘함께, 보다’를 열고 대중에 공개했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섰다. 청와대를 찾은 소오생은 그림을 발견할 수 없었다. 문의해도 답변을 듣지 못했다. 지금은 어디에 처박혀서 썩어가고 있을까...


(좌) 전혁림 미술관  (우) 젊은 시절의 전혁림



삼십 대 초반, 전혁림은 한 여인을 사랑했다. 그러나 가난이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았다. 삼십 대 후반, 전혁림은 다른 여인과 결혼하게 되었다. 옛 연인이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세 살 된 남자아이를 안고 와서 인사를 시켰다. 부자지간은 천륜이니 알고나 있으라며 눈물을 뿌리고 다시 헤어졌다. 


남자아이는 고아처럼 자랐다. 한국의 모차르트 소리를 들으며 서울예고에 수석 입학 했으나 찢어지는 가난으로 중도에 학업을 포기했다. 매일 수돗물을 마시며 주린 배를 채웠던 소년은, 훗날 대한민국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 인사가 되었다. 20세기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가왕 조용필과 쌍벽을 이루는 통기타 음악의 제왕, 송창식이 바로 그이다.


송창식은 윤형주와 함께 '트윈폴리오'라는 듀엣으로 출발해 솔로 가수로 활동했는데 <피리 부는 사나이>, <토함산>, <고래 사냥> 등 수많은 히트작을 남겼다. 김남조 시인의 <그대 있음에>를 노래로 만든 적이 있는 송창식은 1983년 미당 서정주의 <푸르른 날>을 작곡하여 노래로 만들었다. 어린 시절, 고향 통영의 푸르른 날이 그리웠던 것일까... 


1984년 12월 8일. 송창식은 아버지 전혁림 화백과 다시 만났다. 전혁림 화백이 가수로 활동하던 송창식을 보고 자신의 아들임을 알아본 것이다. 중앙일보 <고아로 알려진 가수 송창식 씨, 아버지 전혁림 화백을 찾았다>. 송창식은 지금이라도 같이 살자는 아버지의 제안을 웃으며 거절했다고 한다. 





거짓말 같은 실화, 영화 같은 실화다. 

문학은 천태만상의 인간 세상을 다 담아내지 못한다. 

가을 하늘의 시원함과 맑음이 담긴 젊은 시절 송창식의 목소리로 그 노래를 들어보자. 



<푸르른 날☜ 클릭    작곡 &노래: 송창식



송창식은 명동에서 한의원을 하는 나의 벗 신정식 원장과 함께 선도仙道를 수련하는 동문 사형이기도 하다. 30년 전 신원장과 함께 그의 집을 찾았을 때, 소오생이 중국문학박사라는 말을 듣고서 두 시간이 넘게 내게 중국문학에 대해 강의해 주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그의 강의를 열심히 들었다. 어느 한 분야의 정점에 오르면 모든 분야에 도통하게 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소년 송창식이 주린 배를 채우려 냉수를 마시다가 바라보았을 그 푸르른 하늘... 

그 푸르른 날에 창식이 형은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누구를 그리워하였을까. 


오늘 

눈이 부시게 푸르른 가을날

창식이 형의 <푸르른 날>을 들으며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한다. 






# 미당 서정주, <푸르른 날>

# 전혁린, <통영항>

# 노무현 대통령

# 송창식, <푸르른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