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거이, <장한가> 감상 (2)
글벗 여러분,
지난번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는 재미있게 감상하셨나요?
그런데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저절로 아주 흥미로운 궁금증을 가지게 됩니다. '세계 명작'에는 왜 유독 '불륜' 이야기가 많은 걸까요? 도덕적으로 보면 분명 문제가 있는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런 작품을 더 오래도록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백거이의 <장한가> 역시 마찬가지. 당 현종과 양귀비. 이들의 사랑은 과연 아름다운 이야기일까요, 아니면 그저 미화된 '막장 스토리'에 불과할까요? 오늘은 조금 불편한 이 질문을 정면으로 다뤄보고자 합니다.
참, 작품을 아직 읽어보지 못한 분들은 아래의 소오생 번역 버전으로 얼른 읽고 오셔요? ^^
잠깐!
본격적인 토론에 들어가기 전에...
몇 가지 기본 사항에 대해 알아보고 넘어갈까요? ^^;;
어떤 분들은 <장한가>와 <장한몽>의 이름을 혼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한가>와 <장한몽>은 완전히 다릅니다. <장한몽>은 일본의 오자키 고요(尾崎 紅葉)의 《곤지키 야샤(金色夜叉)》라는 통속 소설을, 1913년에 조중환趙重桓이 우리말로 번안해서 매일신보에 연재한 통속 소설 이름이지요.
사실은 《곤지키 야샤》 또한 영국 소설가 샬럿 메리 브레임의 소설 《여자보다 약한; Weaker than a Woman》(1890년 경)을 번안한 소설이다.
깊어가는 가을날...
모란봉이 보이는 대동강가를 거니는 청춘 남녀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바로 이수일과 심순애였던 거디었던~ 거디었다~!
수일 씨~ 으흐윽~ 흑...
에잇, 드러븐니욘~! 놔랏~! ^^;;
김중배의 다이아가 그리도 탐이 나더란 말이냐~!
다들 아시죠? ㅋㅋㅋ
그 이야기의 <장한몽>과, 백거이의 <장한가>와는 전혀 다르니, 절대 혼동하지 마시와여~!?
물론 조중환이 소설 이름을 붙일 때 <장한가>라는 이름을 떠올렸을 확률은 대단히 높다고 봅니다. 이름 석 자 중에서 두 글자나 똑같으니까, '죽어서도 풀지 못할 사랑의 한'이라는 '장한長恨'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 아니겠어요? 그만큼 백거이 <장한가>가 그 당시에도 여전히 큰 사랑을 받았다는 또 다른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장한몽>은 1926년에 최초로 영화화되었고, 1965년에는 <이수일과 심순애>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되었다. 감독: 김달웅. 주연: 신성일/김지미. (좌상)은 1969년판 <장한몽> 포스터. 감독: 신상옥. 주연: 신성일/윤정희. (우상)은 소설책 표지.
흥미로운 건... 학생들에게 <장한가>를 가르칠 때, 양귀비가 원래 당 현종의 며느리였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반응이 확 달라지더라는 사실~ ^^;; 이렇게 말이죠.
그럼... 이거 불륜 스토리, 완존 개막장 드라마네여?
이런 걸 왜 이렇게 미화했대여? 또라이 아녜여?
쌤은 왜 이런 저질 이야기를 가르치는 거져?
씨근씨근...
저마저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니
당혹스럽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습니다. 오 마이 갓! ㅜㅠ
'불륜'이란 단어는 입에 올리기조차 참 민망하고 조심스럽습니다. 요새는 조금 덜한 느낌이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침 드라마를 시청한 많은 여성들의 분노 게이지를 상승하게 했던, 현대 한국 사회의 뜨거운 이슈 중의 하나니까요. 왠지 말을 꺼내기만 해도 사람들의 눈총과 질타를 받을 것 같아 두려운 마음까지 생깁니다.
혹시 우리 글벗님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신 건 아닌지... 등에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네요. ^^;; 하지만 오늘은 우리 모두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학술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불륜不倫'이란 무엇일까요?
사실 그 뜻은... 조금만 생각하면 아주 쉽습니다.
"아닐 불不에, 윤리 윤倫"이잖아여~~
다시 말해서 "윤리에 어긋나는 행위"라는 뜻~!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윤리'라는 건 또 뭘까요? 언제, 누가, 왜 만든 걸까요?
듣자 하니 어떤 분들은 고등학교 때 <전통 윤리>라는 걸 배우셨다고 하더군요? 소오생은 <국민 윤리>라는 걸 배웠답니다. 제일 먼저 국민교육헌장 암기~!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제대로 못 외우면... 등치가 태산 같이 커다란, '좁쌀'이란 별명을 가진 윤리 선생님한테 끌려 나가 반 개죽음당하도록 두들겨 맞았죠. ㅠㅠ
또 기억나는 일. 신성일 엄앵란이 뽀뽀하는 장면이 나온다는 19금(?) 영화를 보려고 어른으로 변장해서 몰래 극장에 잠입하기도 했었죠. 드디어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
... 하는 줄... 알았더니...
어라? 주변 사람들이 모두 벌떡 일어나네? 차렷! 경례!!
♩♬ 동해 물과 백두산이~ ♪♬ (으윽, 아니 왜 이 순간에...) ♩♬ 우리나라 만세~~ ♪♬
후유, 끝났구나 싶었더니... 이어서 <대한늬우스>가 나오고... ㅠㅠ
아무튼 인간이 가장 순수한 욕망을 갈구하던 그 순간에도, 국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껴야만 하는지, 조용히 주입하고 있었던 것이었죠.
한 마디로 말해서
그 시대의 윤리란... 국가,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권력에 대한 충성이었습니다.
반대로 말해서,
▷ 국가에 순응하지 않는 것
▶ 권력에 저항하는 것
그것은 바로 '윤리에 어긋나는 행위' 즉 '불륜'이었던 것이죠.
여기서 밑줄 쫙~~!
'국민', '윤리', 그리고 '불륜'이라는 단어는, 사실 모두가...
일본 메이지 시대의 번역어입니다.
그 뒤에는 국가의 전체주의 사상이 간섭하고 있는 권력의 언어들이죠.
그림: 吳聲(1943~). 《백거이 <장한가> 시의도詩意圖》에서 인용. 天津楊柳靑畵社, 2001. 이하 모든 그림은 모두 그의 그림이다.
'국민國民'이라는 단어는 중국 고전에는 거의 출현하지 않습니다. 고대에는 대체로...
▶ 민 民
▷ 백성 百姓
▶ 여민 黎民
▷ 국인 國人
▶ 창생 蒼生
... 과 같은 단어를 사용했지요. 그런데도 일본은 서구의 'nation'을 번역하면서 굳이 '국민'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냅니다. 개인보다 국가를 우선하는 전체주의적 시각을 전제하고 있는 거죠.
'국민학교'도 마찬가지. 일본 황국皇國의 신민臣民을 키우는 학교라는 뜻.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일제의 잔재를 몰아내고 민족정기를 회복하자는 차원에서 1996년에 '초등학교'로 명칭을 바꿨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계시죠? 또 그래서 요즘은 '국민'이라는 단어도 점차 '시민'으로 대체 사용하는 추세인 것도 알고 계시죠? ^^
'윤리倫理'라는 단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통적으로 '윤倫'은 '순서/질서'를 의미합니다. 좋게 말하면 공동체의 질서, 객관적으로 말하면 '기득권층의 방어 논리'입니다.
물론 모든 윤리가 전부 다 권력의 산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죠. 그러나 적어도 ‘불륜’이라는 개념에는 그 요소가 강하게 작동해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윤리倫理'는 일본이 메이지 시대에 서구의 'ethics'를 번역한 신조어였죠. 하지만 양자를 비교하면...
▶ ethics : 개인 행위의 타당성을 판단. [예] 나치 시대에 독일인이 유태인을 숨겨주는 행위는 올바른가?
▷ 윤리 : 조직 질서의 준수 여부를 판단. [예] 그 행위는 국가 조직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아닌가?
성격 자체가 크게 다릅니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전체주의 가치관을 심어놓은 단어임을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이름은 이렇게 세계를 만들어 나갑니다.
자, 다시 '불륜' 이야기로 돌아가볼까요?
'불륜'이란 원래 '(기득권층이 만들어놓은) 사회/조직의 질서를 어지럽힌 행위'를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일본 메이지 시대에 서구의 extramarital affair를 번역하면서부터 ‘남녀의 혼외 관계'라는 특정 의미로 고정되어 버립니다. 즉, 개인의 사랑 문제를 국가 질서의 문제 안으로 끌어들인 것입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이러한 관계를 사통私通, 현대 중국에서는 외우外遇라고 합니다. 영어의 extra-marital affair나 이런 단어들은 그 어떤 가치 판단도 개입하지 않은 단순 fact의 설명에 그치고 있죠. 즉 개인의 사랑과 국가 질서를 별개로 인식했다는 이야기.
그러나 '불륜'은 단어 자체에 이미 판결이 내려져 있죠. 그리고 그 이면에는 두 가지 사실이 숨어있습니다. 첫째, 지배층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둘째, 남성에게 훨씬 너그럽다.
왜일까요?
‘불륜’의 핵심은 '여성의 성을 통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출산 → 혈통 → 호적 제도 → 징병제 → 국가 질서 ]의 구조가 성립하려면, 그 전제로 여성의 성이 반드시 통제되어야만 했거든요. 따라서 '불륜'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질서와 국가 행정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불륜’이라는 말은 단순한 행위의 명칭이 아니다.
그것은 지배층이 피지배층의 삶을 규정하기 위해 만든 언어다.
윤리는 언제나 기득권의 언어였고,
그 언어는 주변부의 삶을 재단하는 기준이 되었다.
※ 국가 전체주의에서는...
▷ '불륜'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의 성'을 통제한다.
▶ '여성'은 출산을 통해 사회 질서를 바꿀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여성의 성을 통제하면 남성의 권력이 보장된다.
▶ 국가는 사랑이 아니라 출산을 통제한다.
[결론]
'불륜'이란 성과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혈통과 권력의 문제다.
오늘날 우리가 '불륜'이라고 말하는 수많은 현상들, 그러나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 그 당시 지배층에게는 또 그 나름대로의 논리가 있었으므로.
예컨대 조선시대 지배층 남성은 사실상 일부다처였죠. 여성이 이를 문제 삼으면 칠거지악의 하나로 '불륜'이 되었구요. 또 젊은 남녀가 자유롭게 연애하는 것도... 남녀칠세부동석의 조선 시대라면, 그 역시 엄청난 '불륜'이었습니다.
따라서 당 현종이 며느리를 후궁으로 맞이한 사실도, 오늘날 우리의 기준에서는 문제일 수 있지만, 그 시대의 윤리로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녔다는 이야기. 어쩌면 당 현종은 자신의 18번째 아들이라는 수왕壽王 이모李瑁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에게는 아들이 무려 26명, 딸은 25명이나 있었으니까요.
음... 그럼 이제 고려 조선시대에 백거이의 <장한가>가 윤리적인 비난을 받지 않은 이유를 조금은 이해하셨는지요? ^^;;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서 우리들이 이른바 '불륜'이라고 말하는 수많은 현상들, 그러나 지구상의 또 다른 곳에서는 지금도 그렇지 않지요.
티베트의 어느 지방에서는 지금도 일처다부가 그들의 윤리입니다. 또 다른 지방에서는 여인들이 아예 '남편'이라는 존재 없이 자유롭게 사랑하며 사는 '주혼走婚'이 그들의 윤리이죠.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우리보다 훨씬 더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답니다. 참 놀랍지 않나요?
새들에게는 새들의 사랑 윤리가 있고, 짐승에게는 짐승들의 사랑 윤리가 존재합니다.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 살고 있는 그 지방 기득권자들의 잣대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어요?
미래의 우리나라는 과연 어떠한 '윤리'가 형성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단, 결단코 지금 현재의 윤리는 아니겠지요. 사회가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그만큼 윤리도 빨리 변해가겠죠. 그렇지 않겠어요? *^^*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호주 제도나 간통죄가 존속했던 우리나라였잖아요. 윤리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내막과 사연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부화뇌동하여 타인을 쉽게 비난하는 일은 지성인으로서 절대 금물일 것 같습니다~ ^^;;
※ 간통죄는 1953년에 제정되었다. 쌍벌죄로 남녀 모두 처벌한다고 되어있으나, 일제 강점기부터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간통죄는 사실상 여자만 처벌했다. (1950년대에 대법관 최병주는 “여자만 처벌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1990 · 1993 · 2001 · 2008년에 계속해서 간통죄를 합헌으로 판단했다. 특히 2001년 헌재 결정문에서 권성 재판관은 아주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간통죄의 처벌은 원래 유부녀를 대상으로 한 것이고 유부남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간통죄의 핵심은 유부녀의 간통에 대한 처벌에 있다..." (이 사실을 아는 여성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ㅠㅠ)
간통죄는 2015년에야 성적 자기 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판단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그 효력을 상실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합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라고요~!
그런데 혹시, 그 하늘이 당신만의 하늘이 아닌지,
우물 속에 앉은 당신 혼자 바라본 당신만의 하늘은 아닌지,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불륜’이라는 말은 이미 하나의 판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무엇을 기준으로, 누구의 이름으로, 그 판결을 내리고 있는지 충분히 묻지 않았습니다.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비난하는 일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우리의 언어로 재단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의 눈으로, 어떤 권력의 언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가.
사랑은 허락되거나 금지되는 것이 아니라,
끝내 남아 있느냐, 아니면 사라지느냐... 그것으로 판단되는 것은 아닐까요.
만약 그 모든 제약과 금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남아있는 사랑이 있다면...
그때서야 우리는 '불륜'이라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권력의 언어이며,
얼마나 허망한 언어의 유희인지 비로소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글이 또 너무 길어지고 있습니다. ㅜㅜ
백거이 <장한가>의 주제는 부득불 다음 글에 이어서 검토해 보겠습니다.
요즘 이사를 준비하며 짐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미니멀 라이프를 준비하는지라 열의 아홉 이상을 버리고 있답니다. 처음에는 꼭 필요한 물건만 추리면 된다고 가볍게 생각했는데요, 정리할수록 이게 보통 일이 아니네요.
우선은... 저 스스로 제 '유품'을 정리한다는 기분입니다. 제가 떠난 뒤, 자식들이 이 무수한 잡동사니들을 하나하나 들춰보며 정리한다면 얼마나 번거롭고 고된 일이겠어요. 뭐, 십중팔구 유품 정리업체에 맡기게 되겠지만...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제 사생활이 그대로 노출된다는 것도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버리려고 집어든 물건마다... 어디서 샀는지,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 누가 선물한 물건인지, 그때 그곳의 공기와, 소리와, 함께 했던 마음이 자꾸만 따라오네요.
특히 30년 넘게 학생들이 보내준 정말 엄청나게 많은 편지와 카드들은... 차마 그냥 버릴 수가 없군요. 오늘도 하나하나 읽어보며 작별식을 가졌습니다. 동그라미 그 얼굴을 떠올리며 그때 그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얼굴> 노래: 소프라노 이해원.
많은 글벗 작가님들께서 제 건강을 염려해 주시는데, 오랫동안 글을 올리지 못해서 걱정 끼쳐드려 하염없이 죄송하고 송구합니다. 건강은 잘 버티고 있습니다. 새로운 곳에 터를 잡을 때까지 들쭉날쭉하더라도 부디 조금만 너그럽게 봐주시기를... ^^;;
# 백거이, <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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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 윤리, 불륜, 간통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