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사랑은 '~불구하고' 영원히

백거이, <장한가> 감상 (3)

by 소오생

사랑은 언제 시작될까요?
사랑은 언제 끝날까요?

사랑은 대체 무엇일까요?


우리는 흔히 사랑을 재단합니다.
법과 제도로, 윤리와 도덕으로, 혹은 세상의 시선으로.


그러나 한 번쯤은 이렇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 사랑이 왜 시작되었는가가 아니라,
그 사랑이 사라지고 말았는가, 아니면 끝내 남아 있는가...

그것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은 백거이의 <장한가>를 통해,
그 질문을 조금 더 깊이 따라가 보려 합니다.


참, 작품을 아직 읽어보지 못한 분들은 아래의 소오생 번역 버전으로 얼른 읽고 오셔요? ^^




사랑은 우리네 삶과 문학의 영원한 숙제이자 미스터리입니다. 소오생은 <사랑과 중국문학>이라는 강좌를 개설하고 오랜 세월 동안 그 미스터리를 풀어보고자 애썼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네요.


강의 목표는 '중국문학'이 아니라 '사랑'이었죠. 동아시아 전통 패러다임 속의 '사랑'을 통해, 한참 질풍노도의 시기를 건너고 있는 청춘 낭자와 도령들에게 한 줄기 싱그럽고 따스한 바람을 선사하고 싶었습니다.


백거이 <장한가>도 그중의 하나였죠. 그런데 학생들의 소감문을 읽어보니... 대부분의 관심이 온통 '불륜'에 쏠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답니다. 많은 낭자와 도령들이 상당히 격한 어조로 현종과 양귀비의 '불륜', 그리고 작가 백거이의 '상업주의'를 비난하고 있었거든요.


또 한 가지 놀랐던 것은... '문학'에 대한 '오해'였습니다. '문학'을 '독자가 현실에서는 감히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일들을 대신 상상을 통해 경험하게 해주는 대리만족의 도구' 정도로 인식하는 것 같았습니다.


실제 현실 속에서 그런 막장 스토리는 좀처럼 일어나기 어려운 일인데, 상업주의에 물든 '글쟁이'들이 한몫 챙기기 위해 '불륜에 대한 욕구 심리'를 선동한 것 아니겠느냐, 문학 작품에 '불륜'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 아니겠느냐, 그런 의견이 꽤 있었습니다.


글벗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지요?

저는 아래와 같이 대답해 주었답니다.


※ 퇴고를 하면서 읽어보니... 뭔가를 가르치려는 선생 말투가 영 거슬리네요. ^^;;; 완전히 다시 쓸까 하다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민낯 그대로의 모습도 나름 아카이빙의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 조금만 손을 보았습니다. 글벗님들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문학과 현실


여러분. 제가 누차 말했죠?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결코 아니랍니다.


문학이란 상상력을 얼마든지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대리만족의 훌륭한 도구라고 말한 낭자 도령 여러분!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문학적 상상력은 우리들 삶에서 일어나는 천태만상의 모습을 도저히 쫓아가지 못한답니다.


그만큼 인간 삶 속에서는 상상을 불허하는 별의별 일들이 다 발생하고 있다는 이야기. 문학은 대리만족을 시켜주기는커녕, 삶의 다양성을 1/10, 1/100도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꼭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심업


'불륜에 대한 욕구 심리' 운운하신 낭자 도령 여러분. 그렇다면 여러분 마음속에도 그런 심리가 있다고 인정하신 거죠? 이걸 불교식으로 설명해 보면, 그런 것을 심업心業이라고 한답니다.

심업은... 그 행위의 결과가 그 즉시 나타나지는 않는다 해도, 언젠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욕구해 왔던 바를 실행에 옮기게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지요.


인간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지니고 있는 욕망과 감정은... 다른 시대, 다른 곳에서 살았거나 살고 있는 사람들도 똑같이 지니고 있게 마련. 단지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의 통제를 받아 그 욕망과 감정이 현실에서 실천으로 옮겨질 기회가 서로 다를 뿐이겠죠. 그렇지 않을까요?



세계 명작과 불륜


문학작품에 '불륜'이 많은 것은... 대박을 노린 작가들이 독자의 말초신경을 자극해서 한몫 잡으려고 한 것 아니겠느냐, 그런 말을 한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세계명작'과 막장 TV드라마 또는 삼류 소설은 다릅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막장 드라마나 삼류 소설, 저질 매스컴이 '불륜'을 즐겨 다루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기 위해서? 하하, 절대 아니죠. 시청률과 흥행을 위해, 즉 독자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세계명작'은 이미 '고전古典'으로 인정받은 작품들입니다. 고전이 무엇일까요?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에게 시공을 초월해 인정받은 훌륭한 작품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작품들은 '불륜'을 다루고도 살아남았을까요?


왜냐하면 문학은 '소재'보다 '주제'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소재는 껍데기, 현상에 불과할 뿐. 중요한 건 내면의 의미 아니겠어요? 독자를 감동시키는 진정한 사랑의 메시지, 그 심원한 주제가 담겨있다면 문학은 그 어떤 소재라도 마다하지 않겠죠. 본질은 껍데기가 아니라 내면에 있습니다. 삶이 그러하듯이.




'불구하고'의 사랑


그렇다면 타인을 감동시킬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사랑이란, "~때문에"가 아니라 "~임에도 불구하고"라고 저는 배웠습니다. 상대방이 현실적으로 나에게 그 어떤 현상적인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랑은, 사랑의 탈을 쓴 거짓 아닐까요? 상대방이 내게 그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랑이야말로 진짜 아닐까요?


'~ 때문에'의 짜가(^^)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힘들고 괴로운 사랑, '~불구하고'의 진짜 사랑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흔히 '불륜'이라고 말하는 '사랑'은 제도적 관습적 제약을 받기 때문에 당연히 힘들게 마련입니다. 이를 테면 '~불구하고'의 조건이 갖춰진 셈이지요. 그 엄청난 현실적 난관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그 사랑을 거짓 사랑이라고 매도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착각하지 마시길! 99.99%의 '불륜'은 은밀한 쾌락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일 터. 만일 그런 '짜가 사랑'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건 '영속성'이 아니라 '쾌락에의 집착'일 확률이 훨씬 더 높을 테니까요. 반대로 잠깐 동안의 일탈이라면... 불륜이건 아니건, 그건 사랑이 아니라 방종일 거구요.


세계명작은 선정적인 목적으로 '불륜'을 다루지 않습니다. 그저 '~불구하고'의 사랑을 추구하려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소재가 많이 다루어지는 것 아닐까요?



영속성


진정한 사랑의 또 다른 특징은... '영속성永續性/지속성'에 있다고 저는 배웠습니다.


남녀 간의 사랑에 있어서... 만약 상대방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확인하려면 헤어져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완전히 헤어져보면 그때 비로소 상대방의 존재 가치를 확연히 알 수 있다는 이야기.


이별은 참으로 힘들고 괴로운 일이죠.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서너 달 정도 지나면 차차 그 아픔이 희미해져 간다네요. 만약... 서너 달이 아니라 삼사 일 정도면 그 아픔이 사라진다? 그건 사랑했다고 말하기 힘든 거겠죠. 만약... 삼사 일도 못 가서 사라진다면? OMG... 그걸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요?


반대로... 3~4년, 아니 10~20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어때요? 그런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었을 확률이 좀 더 크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장한가>의 주제


<장한가>가 노래한 것은 '불륜'이 아니라, '사랑의 영속성'입니다.

그게 이 작품의 주제이죠. 마지막 부분을 다시 한번 살펴볼까요?


칠월 칠석 그날 밤 장생전에서,

남몰래 속삭이던 사랑의 맹세

"바라건대 하늘에선 비익조 되고,

원하옵기 땅 위에선 연리지 되길"

이 세상 마지막 다가올 날 있어도,

이별의 아픈 마음 끝날 날이 있으랴!

七月七日長生殿, 夜半無人私語時。

在天願作比翼鳥, 在地願爲連理枝。

天長地久有時盡, 此恨綿綿無絶期。


현종은 죽을 때까지 양귀비와 주고받던 그 사랑의 밀어가 환청처럼 들려왔습니다. 하늘을 날 때에는 암수 한 쌍이 날개를 나란히 붙이고 날아간다는 비익조가 되자던, 땅 위에 머물 때는 나무 밑동이 하나로 엉켜있는 연리지가 되자던... 그때의 그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었지요.


특히 맨 마지막 구절이 가슴을 파고드네요. 여기서 '천장지구天長地久'란 영원히 변함없이 존재하는 하늘과 땅을 말합니다. (그런 제목의 홍콩 영화도 있죠?) 그렇게 영원한 하늘과 땅마저 혹시 무너져내리는 순간이 있을지라도, '나'의 한 맺힌 마음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으리라... 그렇게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현종의 두 가지 사랑


그런데... 여기서 '나'는 누구일까요? 누구의 '한'을 이야기하는 걸까요? <장한가>의 주인공은 양귀비가 아닙니다. 현종입니다. 그는 왜 '한'이 맺혔을까요?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외파에서 양귀비를 성난 군사들에게 내어줬기 때문이겠죠. 비겁하게 혼자 살겠다고 사랑하는 여인을 죽게 내버려 뒀기 때문일 것입니다.


<장한가>에서 현종은 두 가지 종류의 '사랑'을 합니다.

하나는 '~때문에'의 사랑. 또 하나는 '~불구하고'의 사랑.

그 갈림길은 '마외파'라는 공간에 있었죠.


▷ 마외파 이전: 현종은 '~ 때문에' 양귀비를 사랑합니다. 미모 때문에, 젊음 때문에, 애교 때문에, 쾌락 때문에 그녀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때문에'의 사랑은 '짜가'입니다.


마외파: 현종은 참으로 비굴했습니다. 세계 최강의 휘황찬란한 대당大唐 제국을 건설했을 때의 씩씩하고 영명한 모습은 어디 가고, 살기등등한 군사들의 요구에 겁을 잔뜩 집어먹고 자신의 여인이 끌려가는 모습을 외면하고야 맙니다. 왜 그랬을까요? 과거에 '때문에'의 사랑, 짜가 사랑을 했기 때문입니다.


▷ 마외파 이후: 이제 현종은 '~불구하고' 양귀비를 사랑합니다. 자신이 최고 권력자인 황제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헤아릴 수없이 많은 미녀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또 다른 여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죽어서 다시는 만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양귀비를 간절히 그리워하며 더욱 사랑합니다.


이놈들아, 차라리 나를 먼저 죽여라. 그때 왜 그렇게 막아서지 못했을까... 그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 회한에 사로잡혀 몸부림을 칩니다. 그 애절한 '불구하고'의 사랑이 어떻게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현종에게 마외파의 이별이 없었다면, 마외파 이후의 '불구하고'의 사랑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단언컨대 동아시아 역대 최고의 인기작이었던 <장한가>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랑의 가치는 아프고 힘듬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이어지는 '영속성'에 있으니까요.




현실 속의 영속성


그러나 여러분~! 공자님은 또 말합니다. 영속성도 좋지만, 사랑도 현실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지나치게 너무 오래 아파하지는 말라구요. 설령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더라도, 너무 오래 아파하지는 말라고 권면합니다. 유교에서 3년 상喪을 치렀던 것도 바로 그 의미로 저는 해석한답니다.


※ 공자가 실제로 이런 말을 한 적은 없다. 아래의 사항을 근거로 소오생이 유추해서 한 말이다.

▷ 즐거워하되 음란함으로 흐르지 말고, 슬퍼하되 마음을 다치지는 말아라. (樂而不淫,哀而不傷。) 《논어 · 팔일》
▶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같다. (過猶不及) 《논어 · 선진》
▷ 유교의 3년 상. 《예기 · 단궁》및 〈상복喪服〉편 참고.


실연을 했더라도 마찬가지. 너무 오래 아파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고정된 한 대상자에게 국한된, 그리고 변화무쌍하기 마련인 '감정'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니깐요.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이런 말을 했지요.


사람들은 '사랑의 기술'을 배우려고는 하지 않고,
그저 '사랑의 대상자'를 찾기에만 급급해한다.

그가 말하는 '사랑의 기술'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오래오래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사랑 여행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삶과 학문'의 아름다운 실체, 바로 그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랑의 기술


'사랑'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동아시아 전통 패러다임에 의하면... 이런 추상명사는 굳이 개념의 정의를 내리지 않습니다. 그냥 자주 접하면서 그 특징을 느끼며 체득해 나갈 따름이지요. 음... 그래도 굳이 개념 정의를 내려보라고 한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사랑은...
인간이면 누구나 그리고 언제나 지니고 있어야 할,
소중함의 가치를 판별할 수 있는 혜안이요 선한 의지다.
그리고 그 의지를 맑고 곱게, 정성을 다하여
'말'과 '글'과 '행동'으로 표현해 내는 '실천력'이다.


사랑은... 인간이 언제나 지니고 있어야 할 내면적 가치이지,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서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기분 내키면 다시 나타나는... 그런 '감정'의 성분이 아니라고, 저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사랑하는 낭자 도령 여러분~!

여러분이 제도와 관습이라는 고정관념과 무덤덤한 타성에 빠져,

아프고 힘든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아파해야 할 때는 아파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랑해야 할 때는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요?


당연히 아파해야 할 때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영혼이 마비된 슬픈 존재가 되지 않고,

작은 일에도 감동하고 보다 많은 일에 아파할 줄 아는,

참된 사랑을 아는 참된 지성인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중국문학으로 떠나는 우리들의 이 여행을 통해서,

사랑하는 낭자와 도령 여러분들 모두모두 그 '사랑의 기술'을 터득하실 수 있기를...

작은 마음으로 소망해 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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