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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Jul 09. 2023

03. 맛있는 글은 숙성이 필요하다

마음속의 대나무 胸中成竹

맛있는 음식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싱싱한 먹거리를 별다른 조리 없이 그 즉시 먹는 음식도 물론 맛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맛있는 음식은 훌륭한 요리사가 특수한 비법으로 먹거리를 잘 숙성시킨 연후에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하여 만들어진다. 글도 마찬가지다. 맛있는 글에는 숙성이 필요하다.


'맛있는 글'이란 어떤 글일까? 재미있으면서도 읽으면 읽을수록 깊은 여운과 감동을 주는 글을 말한다. 어떻게 해야 쓸 수 있을까? 필자는 앞선 글에서 구양수의 다독多讀과 다작多作의 방법을 소개한 바 있다. 그런데 다작이야 내가 많이 쓰면 되겠지만, 다독은 좀 다르다. 이 세상에 사람은 좀 많고 글은 또 얼마나 많은가. 더구나 인터넷은 지식과 정보의 바다다. 글은 이 순간에도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나의 능력과 읽을 시간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대체 무엇을 골라서 읽어야 '맛있는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을까.


다 아는 이야기지만, '고전古典'을 읽어야 한다. '고전'이란 케케묵은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수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은 명작을 말한다. 다독을 하더라도 우선 고전 명작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할 거다. 필자는 거기에 덧붙여 말하고 싶다. '우리의 고전'을 읽자! 서구의 고전도 좋지만 우리는 우리 동아시아의 것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 우리는 서양인이 아니라 동아시아인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맛있는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동아시아의 고전 명작을 차근차근 소개하고자 한다.




동아시아의 문학사에서 맛있는 글을 쓴 사람에는 누가 있을까? 나는 단연코 먼저 동파東坡 소식蘇軾을 꼽고 싶다. 조선 시대의 문인들, 특히 정조대왕 시기에 정약용을 비롯한 조선의 지식인들이 그를 가장 사랑한 이유도 어쩌면 그의 '맛있는 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소동파(1037~1101)는 중국 북송 시대의 천재 문인이다. 문학과 예술의 모든 장르에서 탁월한 경지를 개척한 중국 문학의 최고봉이다. 그 작품의 최대 매력은 우주와 인생을 폭넓게 조망하는 호방함과, 지성의 안목으로 찾아낸 유머와 긍정의 힘이다. 그래서 글이 참 재미있고 맛있다. (우리말 번역본은 대부분 재미없다) 얼마나 '맛있는 글'인지 실감하실 수 있도록, 맛보기로 먼저 짧은 시 한 수를 소오생 번역 버전으로 소개해본다. 혹시라도 인용하실 때는 꼭 출처를 밝혀주시길 바란다.


황주 땅 돼지고기 품질이 끝내주네              黃州好猪肉,

가격도 저렴하니 진흙보다 더 싸구나           價賤如泥土,

부자들은 “그런 걸 왜 먹어?”                     富者不肯食,

가난뱅이 “어떻게 먹는 거죠?”                   貧者不解煮.      

 

하, 하, 하! 내 가르쳐 줌세!

불은 은은하게, 물은 자작하게!                   慢著火, 少著水!

때가 되면 저절로 아유, 맛있어!                  火候足時它自美.

아침마다 한 그릇, 아 배부르다!                  每日起來打一碗,

자네는 배고파도 나는 몰라요!                    飽得自家君莫管.     


        - 동파, <돼지고기 찬송가猪肉頌>


해학과 유머가 가득 넘쳐흐르는 기상천외의 노래다. 동파의 <돼지고기 찬송가>는 가난한 백성들에게는 엄청난 복음이었다. 응, 그래? 돼지고기를 그렇게 요리해 먹으면 맛있다고? 영양실조로 쓰러지기 일보직전, 찬송가 가사 대로 요리를 해 먹으니 과연 환상의 음식이었다. 모두들 할렐루야, 동파거사!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다 함께 '동파 찬송가'를 불렀다. 그 찜 요리의 이름은 '동파육東坡肉'! 그 후로 수백 년 동안 가난한 백성들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준 이 요리는 이렇게 탄생했다.




그의 시가 이럴 진대, 그의 산문은 또 얼마나 맛있을지 궁금하지 않으신가. 조금 길지만 여기 그의 맛있는 글 한 편을 번역 소개한다. <문여가의 '운당곡 언죽' 화기 文與可畵篔簹谷偃竹記>라는 글이다. 독자 여러분의 맛있는 글쓰기에 틀림없이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하지만 이 글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먼저 몇 가지 기본 사항을 알고 있어야 한다.


(1) 글의 성격:


이 글은 '화기畵記'에 속한다. 옛날 문인들은 자신이 소장한 물품에 대한 글을 쓰기도 했다. 누가 만든 어떤 물건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소장하게 되었는지 그 내력을 기록하는 것이다. 그중 '화기'란 그림에 대한 글이다. 그림에 이런 글이 적혀 있으면 후세에 진위 여부를 알려주기도 하는 등, 그림의 가치를 크게 높여준다.


(2) 제목에 대한 이해:


문여가文與可 : 북송 시대의 유명한 화가인 문동文同 (1018~1079)을 말한다. 여가與可는 그의 자字. 동파보다 19세 연장인 이종사촌 형이다. 동파를 특별히 예뻐해서 자신의 묵죽墨竹 화법을 전수해 주었다.


운당곡篔簹谷 : 운당은 마디가 굵고 커다란 대나무의 일종으로,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높이 자란다. 문동은 57세에 섬서성 양주洋州 태수로 부임했는데, 이곳에는 운당이 많이 자라나는 운당곡이라는 계곡이 있었다. 문동은 이곳에 정자를 짓고 노닐었는데, 이때 언죽偃竹(쓰러진 대나무) 수묵화 한 폭을 그려서 동파에게 선물했다.

문동의 <운당곡 언죽화>. 좌우는 중앙의 그림 일부를 확대한 모습이다.

(3) 글에 대한 이해:


① 문동은 이 그림을 그린 얼마 후에 병으로 죽었다. 몇 달 후, 절강성 호주湖州 태수로 재직 중이던 동파는 장마철이 끝나 소장하고 있던 서화를 햇볕에 말리다가, 문동이 준 <운당곡언죽화>를 발견하고는 감회에 젖어 이 글을 지었다.


② 이 글은 크게 세 문단으로 나눌 수 있다.

[1문단]에는 문동이 가르쳐 준 묵죽 화법의 이론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언급된 ‘흉중성죽胸中成竹’이라는 말은 매우 유명하여 고사성어가 되었을 정도다. 대나무 그림을 그리기 전에 반드시 먼저 마음속에 대나무의 전체적인 이미지가 완성되어 있어야 한다는 이 말은, 비단 대나무 그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모든 예술의 가장 중요한 창작 이론 중의 하나가 되었다.

[2문단]은 사촌형 문동과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이렇게 즐거움으로 망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수법은 매우 파격적이다. 장례식장에 가서 웃기는 내용의 추도사를 읽는 모습을 생각해 보시라. 동파의 글은 이렇게 눈물과 웃음이 범벅되어 있다. 애통한 마음이 더욱 돋보이는 이 글쓰기 수법을 꼭 소개하고 싶다.

[3문단]은 간단한 마무리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를 말하고 있다. 아울러 웃음으로 망자를 애도하는 수법은 옛사람도 사용했던 것으로, 결코 망자를 욕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님을 밝히고 있다.




자, 그럼 가장 중요한 [1문단]의 첫 부분을 읽으며 감상해 보자.



[ 1-1 ] 대나무는 한 치 크기의 싹으로 솟아날 때부터 이미 마디와 잎의 모습을 구비하고 있다. 선복蟬腹 (매미의 배)이나 사린蛇鱗 (뱀의 비늘)처럼 생긴 죽순일 때나, 칼로 하늘을 찌를 듯이 솟구친 모습으로 성장했을 때나, 대나무는 태생적으로 마디와 잎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竹之始生, 一寸之萌耳, 而節葉具焉. 自蜩腹蛇蚹以至於劍拔十尋者, 生而有之也.


【감상】이 글과 그림의 소재인 대나무의 특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어떤 사물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동파의 표현을 빌리자면 "바람이나 그림자를 붙잡으려는 짓 求物之妙, 如繫風捕影"이다. (<사민사에게 보내는 답장 答謝民師書>) 하지만 상대방을 모르면서 그에 대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동파의 그림 스승인 문동은 주변에 수많은 대나무를 심어놓고 늘 세심하게 관찰했다고 한다. 허영만의 《식객》이 '맛있는 만화'로 유명해질 수 있었던 것은 만화의 소재가 되는 먹거리의 특성에 대한 세심한 사전 연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전에 소재의 특성을 꼭 파악하고 글을 써야겠다.




[ 1-2 ] 오늘날 화가들은 대나무를 그릴 때, 마디를 하나하나씩 그리고, 잎 위에 잎을 포개어 올린다. 이래서야 어떻게 대나무 모습이 제대로 재현되겠는가!  今畵者乃節節而爲之, 葉葉而累之, 豈復有竹乎!


【감상】그 특성을 간파하지 못한 화가들의 잘못된 수법을 지적하고 있다. 전체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일부만 보면서 아는 척 떠드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내 글쓰기를 꾸짖는 것 같다.




[ 1-3 ] 반드시 먼저 마음속에 대나무의 전체적인 형상이 완성되어 있어야만 한다. 그다음 붓을 쥐고서 오랫동안 바라봐야 한다. 이윽고 그 모습이 보이면, 송골매가 낙하하여 달아나는 토끼를 낚아채듯 급히 그 형상을 따라 단숨에 붓을 휘둘러 완성해야 한다. 조금만 방심해도 그 형상은 사라져 버린다.   故畵竹必先得成竹於胸中, 執筆熟視, 乃見其所欲畵者, 急起從之, 振筆直遂, 以追其所見, 如免起鶻落, 少縱則逝矣.     


【감상】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동파는 여기서 창작할 때의 세 단계를 이야기한다.


① 흉중성죽 胸中成竹 : 대나무 그림을 그리려면 반드시 먼저 마음속에 대나무의 전체적인 형상이 완성되어 있어야만 한다. (또는 胸有成竹, 成竹胸中이라고도 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는 어떠한가? 이렇게 그 이치를 배웠으면서도 제대로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다. 부끄럽다.


② 집필숙시 執筆熟視 : 붓을 쥐고서 오랫동안 바라봐야 한다. 여기까지의 두 단계는, 글에도 숙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오랫동안 바라봐야 한다'는 말은 '오랫동안 생각을 가다듬어야 한다'는 뜻. 나도 이 말만큼은 실천하는 것 같다. 문제는 그 '오랫동안'이 어느 정도 시간이냐는 것이다. 나의 경우, 짧은 글이라도 한 편 쓰려면 생각을 붙잡고 일주일 정도 고민한다. 지나치다. 공부가 부족한 탓이다.


③ 진필직수 振筆直遂 : 그 모습이 보이면 단숨에 붓을 휘둘러 완성해야 한다. 동파의 표현대로라면 송골매가 낙하하여 달아나는 토끼를 낚아채듯 일필휘지, 그 자리에서 완성을 해야 한다. 잠시 잠깐이라도 마음을 놓으면 애써 생각해 놓았던 그 전체적인 이미지가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어떠한가? 나이가 들으니 힘이 너무 딸린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완성하기가 너무 어렵다. 하지만 실망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소동파와 같은 경지에 오르는 것이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창작 과정의 허정응신 虛靜凝神, 마음을 비우고 정신을 하나로 모으는 시간을 갖는 것만 해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1문단]의 뒷부분이다.



[ 1-4 ] 이러한 이치는 문여가 형님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이다. 나는 이를 실천할 능력은 없지만, 마음속에서는 분명히 알고 있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고, 인식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하며, 마음과 손이 상응하지 않으니, 배움이 부족한 탓이다. 모든 사물이 다 마찬가지 이치다. 마음으로는 잘 보이는데 행동으로는 잘되지 않는다. 평소에는 확실히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정작 일이 닥치면 갑자기 멍해져 버리는 것이 어찌 대나무 그리는 일뿐이겠는가!   與可之敎予如此. 予不能然也, 而心識其所以然. 夫旣心識其所以然而不能然者, 內外不一, 心手不相應, 不學之過也. 故凡有見於中而操之不熟者, 平居自視了然, 而臨事忽焉喪之, 豈獨竹乎!   


【감상】글쓰기의 천재 동파도 이런 어려움을 고백하다니, 조금은 마음의 위안이 되지 않으신가!  


   


[ 1-3 ] 아우 자유子由가 〈묵죽부墨竹賦〉를 지어 여가 형님에게 드리면서 말했다. “양생을 수련하던 아무개는 소 잡는 백정인 포정庖丁의 말에서 이치를 깨달았고, 책을 읽던 서생은 수레바퀴 만드는 윤편輪扁의 말에서 도리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형님께서 지금 대나무 그림에 빗대어 ‘삼라만상의 도道’를 말씀하신 것 같은데, 그게 아닐는지요?” 자유는 그림을 배운 적이 없으니 그 뜻만을 이해한 것이다. 나로 말하자면 형님에게 어찌 그 뜻만 배웠겠는가. 대나무를 그리는 방법까지 배우지 않았는가!   

子由爲〈墨竹賦〉以遺與可曰 : “庖丁, 解牛者也, 而養生者取之. 輪扁, 斲輪者也, 而讀書者與之. 今夫夫子之託於斯竹也, 而予以爲有道者, 則非耶?” 子由未嘗畵也, 故得其意而已. 若予者, 豈獨得其意, 幷得其法.


【감상】여기서 양생을 수련하던 아무개란 문혜군文惠君을 말한다. 《장자莊子 · 양생주養生主》에 나오는 이야기다. 포정이라는 백정은 19년 동안 칼 하나로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어도 전혀 손상 없이 새 칼과 같았다. 고기 근육의 결을 따라 해체했기 때문이다. 문혜군이 그 얘기를 듣고 양생의 이치를 깨달았다는 이야기다. '포정해우庖丁 解牛'라는 사자성어가 여기서 나왔다.


수레바퀴 만드는 윤편 이야기는 《장자 · 천도天道》에 나온다. 제환공齊桓公이 당상에 앉아서 책을 읽을 때, 당하에서 목수 윤편이 나무를 잘라 수레바퀴를 만들며 투덜거렸다. 에혀, 실천하지도 못할 걸 책상머리에 앉아 책만 읽어봤자 무슨 소용 일꼬... 그 말에 제환공이 정치의 이치를 깨달았다는 이야기다. 상식이 풍부해야 맛있는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유子由는 동파의 아우 소철蘇轍을 말한다. 역시 글쓰기에 뛰어나 동파와 함께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명이다. 동파는 여기서 아우인 소철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자신은 문동에게 이론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의 방법까지 배웠으니 더욱 분발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보자. 동파가 '맛있는 글'을 쓸 수 있었던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동파와 마찬가지로 천재 소리를 들었던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은 입에서 나오는 말이 모두 시詩였다는데, 동파의 맛있는 글쓰기 재주도 이백처럼 선천적이었던 것일까? 평소부터의 의문이었다. 그러나 이 글을 잘 음미해 보면 30%의 선천적 재주에 70%의 후천적 노력으로 얻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




다음은 [2문단]과 [3문단]이다. 여기서부터는 필자의 해설을 생략한다. 독자 여러분 혼자만의 힘으로도 옛 선비의 풍류를 충분히 감상하실 수 있으리라 믿는다. 보너스로 하나 더 말씀드린다면... 동파와 문동, 두 사람의 대화에 주목해 보자. 한자는 딱딱하고 재미없으며 엄숙하기만 할 것 같다는 선입견이 깨지는 즐거움을 맛보실 수 있을 것이다.



[ 2-1 ]  여가 형님은 처음에는 자신의 대나무 그림이 대단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사방에서 사람들이 줄을 지어 몰려왔다. 비단을 들고 와서 거기에 대나무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형님은 귀찮아하면서 비단을 땅에 내던지며 투덜댔다. “에잇, 이걸로 버선이나 만들어야지.” 선비들은 또 그 말을 우스갯소리로 퍼뜨렸다.      與可畵竹, 初不自貴重, 四方之人持縑素而請者, 足相躡於其門. 與可厭之, 投諸地而罵曰 : “吾將以爲襪材.” 士大夫傳之, 以爲口實.      


[ 2-2 ]  양주洋州 태수로 근무하시던 형님이 경사京師(개봉)로 돌아오고, 나는 서주徐州 지사로 부임하던 때의 일이다. 형님이 내게 편지로 말씀하셨다. “내가 근자에 이곳 선비들에게 말해둔 게 있다네. 묵죽을 즐겨 그리는 어떤 친구가 이곳 팽성彭城 근처로 오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거기로 가서 그림을 구하라고 했다네. 그러니 이제부터는 버선 만들 비단이 전부 다 자네한테 쌓이게 될 걸세.”     及與可自洋州還, 而余爲徐州, 與可以書遺余曰 : “近語士大夫, 吾墨竹一派, 近在彭城, 可往求之. 襪材當萃於子矣.”


편지 말미에 또 시 한 수를 써놓으셨다.       書尾復寫一詩, 其略曰 :


아계견鵝谿絹 비단 한 필을 풀어내어,             擬將一段鵝谿絹,

일만 척 기다란 대나무를 그려내리라.              掃取寒梢萬尺長.


내가 말했다. “음, 일만 척 길이의 대나무를 그리려면 비단 이백오십 필이 필요하겠군요. 그런데요, 제가 형님께서 연적을 갈아 그림 그리기를 귀찮아하신다는 걸 다 알고 있습니다. 그냥 비단이나 챙기려고 그러시는 거죠?”      予謂與可: "竹長萬尺, 當用絹二百五十匹, 知公倦於筆硯, 願得此絹而已."


형님이 대답이 없다가 한참 만에 말씀하셨다.         

“내가 말을 잘못 꺼냈군. 세상에 일만 척이나 되는 기다란 대나무가 어디 있겠나?”    

與可無以答, 則曰 : “吾言妄矣, 世豈有萬尺竹也哉.”


내가 다시 그 말을 꼬투리 잡아서 시를 썼다.        余因而實之, 答其詩曰 :


세상에는 일천 척 기다란 대나무도 있고 말고요.            世間亦有千尋竹,

텅 빈 정원에 달빛 떨어지면 그림자가 길지 않나요.       月落庭空影許長.


형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하하, 자네 말솜씨는 당하지 못하겠군. 하지만 정말로 비단 250필이 생긴다면 귀향하여 농사나 짓겠네.”    與可笑曰 : “蘇子辯則辯矣, 然二百五十匹, 吾將買田而歸老焉.”


그리고는 <운당곡 언죽>을 그려서 나에게 주셨다.   

“이 대나무는 겨우 몇 척 높이 밖에 안되지만, 일만 척 높이로 솟구치려는 기세가 있다네.”     

因以所畵篔簹谷偃竹遺予, 曰: “此竹數尺耳, 而有萬尺之勢.”     


[ 2-3 ]  운당곡은 양주에 있다. 형님께서는 예전에 내게 〈양주삼십영洋州三十詠〉을 읊어보라고 하신 적이 있다. 운당곡은 그중 하나다. 그때 나는 운당곡에 대해 이렇게 읊었다.      篔簹谷在洋州, 與可嘗令予作〈洋州十三詠〉, 篔簹谷其一也. 予詩云 :


한천漢川의 긴 대나무, 쑥처럼 흔하구나.            漢川修竹賤如蓬,

그 맛난 죽순을 도끼가 어찌 용서하였으리?         斤斧何曾赦籜龍?

청빈하신 이곳 태수님, 먹탐이 좀 많은가.           料得淸貧饞太守,

아마도 강가의 천 평쯤은 몽땅 드셨을 게다.        渭濱千畝在胸中.


그날 마침 여가 형님이 부인과 함께 운당곡에 유람을 나왔단다. 하필 그날 저녁에 죽순 요리를 드시게 되었단다. 하필 식사 도중에 내가 시를 쓴 편지를 열어보았단다. 폭소를 터뜨리다가 입 안에 있던 밥을 식탁 위에 잔뜩 뿜어내셨다고 한다.      與可是日與其妻遊谷中, 燒筍晩食, 發函得詩, 失笑噴飯滿案.      



[ 3문단 ]  원풍元豊 2년 정월 20일, 여가 형님이 진주陳州에서 세상을 뜨셨다. 같은 해 7월 7일, 나는 호주湖州에서 서화를 말리다가 이 대나무 그림을 발견했다. 그림을 던지고 통곡했다. 옛날 맹덕孟德 조조曹操는 어린 시절 자신을 아껴 준 교현橋玄이 죽자, 제문을 써서 지난날 망자가 농담으로 했던 말을 추억했다고 한다. “내 무덤에 제사하지 않고 수레를 지나치면 세 걸음도 안 되어 복통이 나게 할 것이니 그리 아시게!” 나도 지난날 여가 형님과 주고받은 우스갯소리를 기록하여 우리의 정이 얼마나 돈독했는지 알리고자 하노라.     

元豊二年正月二十日, 與可沒於陳州. 是歲七月七日, 予在湖州曝書畵, 見此竹, 廢卷而哭失聲. 昔曹孟德〈祭橋公文〉, 有‘車過’․‘腹痛’之語, 而予亦載與可疇昔戱笑之言者, 以見與可於予親厚無間如此也.




※ 이 글에 나오는 번역을 인용하실 때는 꼭 출처를 밝혀주시길 바란다.


[ 표제 사진 ]

◎ 문동, <운당곡언죽화>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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