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오생 Jul 03. 2023

02. 스승이 일러준 글 잘 쓰는 비결


#1. 소동파蘇東坡의 글


【제목】<육일거사의 비결 記六一語>


【해제】육일거사는 중국 송나라 때의 문인 구양수歐陽修 (1007~1072)의 만년의 아호. 중국 역사상 가장 글 잘 쓰는 사람으로 흔히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를 꼽는데, 그중 송나라 문인이 여섯 명! 바로 구양수와 그의 다섯 제자다. 동파東坡 소식蘇軾 (1037~1101)은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중국 문학사 최고의 천재 문인이다. 그가 스승 구양수가 일러준 '글쓰기 비법'을 음미하며 기록한 글이다.


【본문】근자의 어느 한가로운 시절, 손신로孫莘老가 구양歐陽 문충공文忠公에게 문장 쓰는 방법에 대해 가르침을 구했다. 공公께서 이렇게 말했다.


“별다른 방법이란 건 없소이다. 그저 부지런히 독서를 하고 글을 많이 쓰다 보면 저절로 잘 쓰게 되는 거지요.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글을 잘 안 쓰는 것만 걱정하면서 책 읽기는 게을리하는구려. 또 글 한 편을 쓰면서도 꼭 남들보다 뛰어난 수준의 글만을 추구하니, 경지에 오른 글이 적을 수밖에요. 다른 사람이 자기 글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지적해 주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지요. 많이 쓰다 보면 스스로 문제점이 보인답니다.”


이는 공께서 직접 체험해 보고 하신 말씀이라서 특별히 음미할 만하다.  

   

【원문】頃歲孫莘老識歐陽文忠公, 嘗乘間以文字問之, 云: 「無它術, 唯勤讀書而多為之, 自工。 世人患作文字少, 又嬾讀書, 每一篇出, 即求過人, 如此少有至者。 疵病不必待人指擿, 多作自能見之。」 此公以其嘗試者告人, 故尤有味。


【해설】모든 학문의 기본은 글쓰기다. 어떻게 하면 글쓰기를 잘할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의 숙제요, 염원이다. 세칭 일류 대학에서는 수험생의 글쓰기 능력으로 입학 여부를 결정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서구식 문학 이론은 다분히 기계적인 방법론을 제시한다. 학원에서는 그 방법론을 요약하여 속성으로 가르친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글쓰기 교육 방법은 완전히 다르다. 장기간에 걸친 다독多讀과 다작多作을 통해 스스로 익히는 방법밖에 없다. 글쓰기는 자기 자신의 내면세계를 완성시키는 일종의 수양이기 때문이다. 당대唐代에 성공하지 못했던 고문운동을 송대宋代에 이르러 성공리에 이끌었던 글쓰기의 대가, 구양수는 이 글 속에서 우리에게 그 평범한 진리를 따스한 목소리로 알려주고 있다. 글쓰기의 천재, 동파도 겸허한 마음으로 스승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그러한 마음가짐 자체가 학문이었다.



#2. 수업


나는 주로 인터넷 수업을 한다. 시험은 따로 보지 않는다. 학생들은 매주마다 동영상 강의를 듣고 그 소감을 편지로 써서 제출하고, 나는 그걸 읽고 피드백을 달아준다. 학기말이 되면 자기가 쓴 모든 편지와 나의 피드백을 전부 읽어보게 한다. 한 학기 동안의 수업을 통해서 무엇을 느끼고 배웠는지, 그래서 자신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되었는지 말해보라고 한다. 그걸로 성적 평가를 한다.


참고 삼아 말씀드린다. 첫째, 나는 여학생을 '낭자', 남학생을 '도령'으로 호칭한다. 학생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둘째, 나는 수강생들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애써 이름도 기억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보고서로 제출하는 편지에 쓰인, 있는 그대로의 내용만 본다. 어떠한 편견도 배제하는 것, 인터넷 수업의 장점 아니겠는가.


<사랑과 중국문학>이라는 과목의 제13주 차 테마는 '웰빙과 힐링'이다. 이때는 동영상 강의 외에, 내가 동파의 글을 번역 해설한 책에서 일부 내용을 발췌하여 자료실에 올리고, 간단하게 그 소감을 써 볼 것을 권유한다. (30% 정도만 권유에 응한다.) 위의 글, <육일거사의 비결>은 그중 하나다. 아래에 한 낭자가 보낸 편지 두 통을 소개한다. 한 통은 13주차에 보낸 편지고, 또 한 통은 15주차에 기말고사 대체용으로 보낸 마무리 편지다. 읽어보시죠.



#3. 편지 1


<맛있는 시트콤>     


안녕하세요, 선생님.


‘웰빙’하면 아는 게 ‘웰빙 푸드’밖에 없어서, 뭐지? 음식에 관한 작품이 나오려나? 했는데 아니었네요. 하하. ‘웰빙 라이프’도 건강한 음식을 먹고 운동하는 삶을 뜻하겠거니 했거든요. 그런데 강의를 듣고 나서 문득 ‘체력이 좋아야 정신이 맑아진다’는 말이 생각나는 거예요. 그제야 ‘아, 웰빙이란 건강한 정신으로 사는 삶을 표명하는구나.’ 깨달았죠.


선생님이 소개해주신 다른 인들의 작품도 좋았지만, 솔직히 소동파의 작품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어요. 유머와 해학이 담겨 있잖아요! 낭만도 좋지만 눈물을 그치게 하는 데는 아무래도 웃음이 최고인 것 같아요. 작품을 읽으며 한편으론 과거에 반쯤 포기했던 ‘시트콤’ 작가의 꿈이 떠올랐어요. 고단한 삶의 일면을 조금 과장되게 표현해 시청자에게 웃음과 위로를 주는 드라마를 쓰는 게 소원이었어요.


그런데 왜 희망을 반쯤 내려놓았었냐 하면요, 제가 소동파처럼 위트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거든요. 전공 수업을 들을 때마다 뛰어난 발상과 독특한 감성을 지닌 플롯을 학우들에게 보여주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질 않았어요. 제 나이에 데뷔한 작가도 적지 않았기에 더욱 조급해졌죠.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까, 글 쓰는 법을 익힌 게 겨우 3년밖에 되지 않았더라구요. 당연히 남들보다 독서량도 부족했고 연습 횟수도 적었어요. 소동파 같은 천재 문인도 구양수에게 가르침을 받는 마당에 제가 뭐라고 갑자기 뚝딱 천재 작가 반열에 오르길 바랐는지… 부끄러웠어요.


별 다른 방법은 없소이다. 부지런히 책을 읽고 글을 쓰다 보면 저절로 잘 쓰게 되는 것이지요. 세상 사람들은 글을 잘 쓰지 못하는 것만 걱정을 하지, 책 읽기는 게을리하지요. 글 한 편을 쓸 때도 남들보다 더 잘 쓰겠다는 생각만 하니 좋은 글이 나오질 않는 것이지요.

                                                                       - 소동파, <육일거사의 비결>중에서


《동파지림》을 읽다가 특히 이 부분에 많이 공감했어요. 어떤 환경에서도 부지런히 힘쓰다 보면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법. 모든 것은 가치가 있으니 긍정적인 마음으로 될 때까지 수양하라. 최근에 깨닫기 시작한 것들이 새겨져 있었죠. 깨닫고 나서는 저만의 치유법을 찾았어요.


첫 번째는 일 년에 100권 이상 독서하기! 화장실이든 어디든 책을 들고 다녔어요. 현재까지 총 92권을 읽었는데,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성취감이 엄청나네요!

    

두 번째는 필사하기인 데요. 울림을 준 구절이 있으면 포스트잇을 붙여놓고, 집에 돌아와 베꼈어요. 손목이 좀 시려도 종이가 까맣게 채워진 걸 보면 기분이 좋아요. 그리고 열중하다 보니 ‘빨리 성공하고 싶다’, ‘젊고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다’ 그런 집착이 사라지더라구요.


그리고 저번에 못다 쓴 플롯을 이어서 수정하는데, 세상에! 하나 둘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전에는 어디가 이상해? 잘 썼는데 왜 별로라고 하지? 고집을 부렸는데, 이제는 전보다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어요. 역시 건강한 영혼을 가진 사람만이 ‘웰빙 작품’을 쓸 수 있나 봐요. 신선한 웃음이 담겨서 모두가 맛보고 싶어 하는 작품이요. 그래서 맛있는 시트콤을 제작하는 날까지 정진하며 여유롭게 수양하려구요. 만약 정말로 제 이름을 건 작품이 나온다면, 선생님도 나중에 꼭 시청해 주세요! 노력할게요.



#4. 편지 2


<또 다른 시작>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늘 정말 기쁜 일이 있었어요! 제가 취업을 했거든요. 이제 겨우 3학년 과정을 이수했는데 어떻게 뽑혔네요. 하하. 선생님의 수업을 들은 덕분에 채용되었다고 생각해요. 가식 없이 진심으로요.


편지를 처음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저는 의욕도 없고 항상 부정적이었어요. 저뿐만 아니라 남도 사랑하지 못했고 그래서 선생님 수업을 신청했죠.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고 싶어서요. 사실 반신반의했어요. 수업을 듣는다고 내가 변할 수 있을까? 줄곧 책을 읽고 시를 읽어도 염세적이기만 하던 내가 사랑을 하게 될까? 하면서요. 그런데 그냥 강의에 참석하기만 한 게 아니라 매주 편지를 썼던 게 엄청난 효과를 불러일으킨 것 같아요! 강의 내용을 되새기며 마음속에 일었던 잔잔한 파동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용기를 불어넣었어요.     

가장 먼저 실천한 건 ‘집착 버리기’였어요. 항상 조급함이 문제였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커져서 안절부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 그래서 여백을 두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제가 가진 재능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싶었죠.


매일 한 편의 글을 써서 다수의 공모전에 출품하고, 시나리오도 완성해 보고, 학교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독후감 대회에도 괜히 한 번 참가해 봤어요. 물론 모두 탈락이었지만 전혀 슬프지 않았어요. 아, 내가 짧은 시간에 이만큼 글을 쓸 수 있구나! 나름 끈기가 있는 사람이었구나! 하면서 너무너무 뿌듯했어요. 자신감이 생겼고 자연스레 저를 사랑하게 됐어요. 부끄럽지만 속으로 매일 스스로를 칭찬했어요. 하하.

 

내면의 수양을 쌓다 보니 실전에서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구요! 하지만 아직 졸업도 멀었고 대외 활동 경험도 전무한 데다가 자격증도 하나 없으니 당장은 안 되겠다 싶었죠. 그렇다면 지금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력서 쓰는 연습을 해보자 결심했어요. 전에 같으면 ‘인생 헛살았다. 그 흔한 수상도 한번 못하고 경험도 없고 아무것도 한 게 없네...’ 좌절했을 거예요. 하지만 이번에는 책상 앞에 앉아서 조용히 회상했어요. 제가 받은 사랑, 희망, 어리석었던 과거를 모두 풀어 종이에 담았어요. 그리고 방송국 딱 한 곳에 넣었죠.

  

그런데 면접을 보자고 연락이 온 거예요! 아직 부족한 면이 많기 때문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어요. 이력서에 쓴 글이 어떤지, 무슨 업무를 하는지, 앞으로 다른 면접을 본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방송 작가를 하려면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 묻고 싶었어요. 예상대로 불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기분은 끝내주게 좋았어요. 꼬치꼬치 캐물어서 정보를 얻은 것도 좋았지만, 면접장에서 최근 인상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동파지림》의 <육일거사의 비결>에 대해 또박또박 이야기했던 게 엄청 자랑스러웠어요.


면접을 봐주신 작가님들에겐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따로 연락을 드렸어요. 비록 같이 일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의미 있는 한 발을 내밀 수 있게 되었다구요. 저절로 문제점을 알게 되는 날까지 정진하겠다고 말했죠. 선생님께 배우고 느낀 그대로 표현했는데, 어때요? 잘했죠?!


그랬는데 오늘, 갑자기 작가님에게 다시 연락이 온 거예요! 임원들의 추천이 있었대요. 그래서 26일에 입사하게 되었어요! 방송 작가라는 직업이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고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열심히 배우려구요! 말이 길었지만 마지막이니 그러려니 넘겨주세요. 하하하.

   

선생님께 보냈던 첫 번째 편지에 ‘벅차오르는 감정을 꾹꾹 눌러쓴, 울림이 큰 작품 같은 편지를 쓰고 싶다’라고 말씀드렸는데, 오늘 이 편지가 바로 그 ‘작품’이 된 것 같아요. 내년 강의에서 또 뵐지도 모를 거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조금 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네요. 종강하던 날 감사 인사를 드리지 못해 후회가 돼요. 한 학기 강의 즐겁게 들었습니다. 덕분에 내면의 성숙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선생님!!!!!!!



#5. 진정한 스승


나에게 스승은 구양수도 아니고 소동파도 아니다. 바로 위의 수강생과 같은 학생들이 나의 진정한 스승이다. 동아시아의 '학문'이 '서양학'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아마도 '실천'을 중시한다는 점일 게다. 이 낭자는 이 늙은 꼰대 선생의 권유에 응하여 책을 읽어주었고, 또 그속에서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두 가지 - 다독多讀과 다작多作을 포착해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에 옮겼다.


세상에, 1년에 100권 독서라니! 매일 한 편의 글을 쓰다니! 말이 쉽지, 실천은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건 아마 누구나 짐작할 게다. 한 학기 동안 92권의 책을 읽었다니, 그 성취감이 얼마나 클까? 좋은 글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무아지경 속에서 매일 글 한 편씩 썼다니, 그 내적인 충일감이 얼마나 클까? 내 수업을 들은 학생이라지만 정말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인재를 끝내 알아봐 주신 그 방송국의 임원 분들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우리 사회의 숨은 역량에 정말로 감사드린다.


<브런치 스토리> 시스템에 어떤 장점이 있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른다. 그러나 그중의 하나는, 어떤 작가 분이 얼마나 많은 글을 읽었고, 또 얼마나 많은 글을 썼는지 금방 알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어떻게 알았는지, 트랜드와는 전혀 동떨어진 구석기시대의 부족한 내 글에도 관심을 표해 주시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어떤 분들인가 궁금하여 살살 마실을 다녀보니 모두들 [구독자]와 [관심작가] 숫자가 어마어마하다. '발간'한 작품의 숫자도 엄청나다. 이 정도면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다독과 다작을 실천하고 계시는 이 모든 작가님들, 존경합니다.

특히 간절한 정성으로 꾸준히 글을 쓰고 계시는 작가님들, 여러분이 바로 저의 진정한 스승이십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 표지 사진 ]

◎ 대북臺北 Táiběi 고궁박물원 소장, 구양수 초상화. 작가 불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