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살 나이의 특성은 무엇일까? 마흔 나이의 키워드를 한자 단어로 표현하면 '상춘傷春'이라고 말한 바 있다. 떠나간 청춘을 가슴 아파하는 연령대라는 뜻. 쉰 살 나이의 키워드는 '회춘回春'이다. 마흔이 넘어 이 나이 대가 되면 꿈도 야무지게 회춘을 노린다. 그래, 내가 가슴 아파하기만 하다가 이대로 죽을 수는 없지. 청춘을 다시 한번 불살라보는 거야. 오케이? 건강, 아니, 정력에 좋은 거라면 닥치는 대로 먹으면서 심지어 불로장생을 꿈꾼다. 그게 오십 대의 특성이다.
'성공'에 대한 집착도 못지않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을,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서 타인 위에 군림하는 것을 성공으로 생각하고 거기에 집착한다. 그동안 시간은 가속 액셀을 밟고 정신없이 달려간다. 그래서 오십 대의 세월은 나타나는 순간 번개처럼 사라져 버린다. 왜 그럴까? 혹시, 죽음을 준비해놓고 있지 않기 때문, 아직도 시간이 창창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지천명知天命’이라... '천명'이 뭐지? 우리말 사전을 찾아보면 한결같이 "하늘의 명/명령/운명을 알아야 한다"라고 해석한다. 하늘의 명령? 쉰 살이 되면 하늘의 명령을 알아야 한다? 아니, 대체 그 명령이란 게 뭔데 그걸 어떻게 알라는 거지? 주역이나 사주팔자 공부를 열심히 해서 천공 도사님처럼 하늘, 아니 용산의 비밀을 엿보고 손바닥에 임금 왕王 자라도 써주라는 건가?
그게 아니다. 많은 분들이 ‘명命’이라는 글자를 굉장히 심오한 뜻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그런 식의 해석은 천박한 사술邪術일 경우가 많다. 진리는 의외로 아주 평범한 곳에 있는 법.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 말은 어떤 사전을 찾아봐도 모두 "사람 목숨/수명은 하늘에 달려있다"라고 해석한다. 그렇다. ‘명’의 가장 큰 뜻은 ‘목숨, 수명’이다. 그렇게 잘 알면서 사람들은 왜 ‘지천명知天命’의 '명'은 대부분 '명령/운명'으로 해석하는 걸까? 혹시 잘못된 해석이 습관적으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지천명’이란 말은 직역하면 "하늘이 준 목숨을 알아라", 즉 "하늘이 허락해 준 나의 수명이 어디까지일지 늘 헤아려보면서 살아라." 그런 뜻이다. 설명을 붙인다면, 쉰 살 나이쯤 되면 하늘이 언제든지 갑자기 목숨을 거두어갈 수도 있으니, 죽음을 잘 준비하고 있으라는 얘기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말이 조금 마음에 걸린다면, 여태까지 50년 삶의 성과를 잘 정리해놓고 있으라는 당부의 말이라고 생각하시라.
"헉, 벌써?" 그렇게 느끼는 분들은 조금 섭섭할 수도 있겠다. 그럼 나이의 계산법을 달리 해보면 살짝 위안이 될 수 있다. "교수님, 요새는 자기 나이에 0.7을 곱해야 하는 거래요." 학교의 어느 여직원이 일러준 적이 있듯이, 나도 옛날 나이와 요즘 나이는 계산법이 달라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는 하다. 평균 수명과 건강 상태가 과거와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란다.
흔히 일흔 나이를 '고희古稀'라고 부른다. 그 나이를 먹은 사람은 드물다는 뜻.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가 "인생칠십고래희 人生七十古來稀"라고 노래한 것에서 기원한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일흔 나이가 '고희'라고? 웬걸, 요새는 여기저기 지천으로 널려 있다. 노인정에 가면 막내 취급받으며 '형님들' 심부름이나 하기 십상이요, 공짜로 지하철을 탄다 해도 노인석에 앉기가 영 눈치 보인다. 장례식장에 가면 향년 90은 수두룩하고 100세 넘기신 분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으니, 예전 70세는 요새 100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연이 그러하니 요즈음 ‘지천명’은 50이 아니라 70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니 쉰 살 나이에 죽음을 준비하라고 하면 공감이 안 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죽음이란 태어난 순서대로 찾아오지는 않는 것.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까 아무리 오늘날의 평균 수명이 연장되었다 하더라도 쉰 살 나이부터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절대로 나쁠 이유는 없을 터. 죽음을 준비하는 일은 사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않을까. 그만큼 하루하루의 삶이 충실해지지 않을까.
2003년에 대구에서 지하철화재참사가 있었다. 당시 어린 두 자녀를 둔 어느 젊은 엄마가 지하철 안에 갇혀 죽어가면서, 지인에게 걸었다는 전화 내용이 당시의 큰 화제話題였다. 젖먹이 아이들이 있는데, 아무 준비도 없이 이렇게 죽을 수는 없는 거잖아요… 뉴스 시간에 들었던 흐느끼는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울린다. 기가 막혔다. 뜻밖의 순간에, 갑자기, 아무런 준비도 없이 죽음을 맞이한다면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그러므로 적어도 쉰 살 나이부터는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음을 뼈저리게 인식하라는 뜻이다. 그러니 어서 속히 삶의 성과를 만들어 놓으라는 말이다. 그것을 정리해 놓고 대기하라는 뜻이다. 그런 연후에 혹시, 만의 하나, 기적이 일어나서 하늘이 지금 당장 목숨을 거두어가지 않는다면, 그 후의 삶은 덤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덤으로 사는 삶은 한순간 한순간이 새록새록 감사한 웰빙의 시간이 되지 않겠는가!
쉰 살에는 천명을 알아라?
적어도 쉰 살부터는 하루하루 덤으로 살아라! 그 말 아닐까?
[ 사족 ]
◎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는 말은 《순자荀子 · 강국强國》의 "사람의 수명은 하늘에 달려있고, 나라의 수명은 예(학문)에 달려있다 人之命在天,國之命在禮"라는 구절에서 출전出典되었다.
◎ "인생칠십고래희 人生七十古來稀"는 두보의 시〈곡강曲江〉의 한 구절이다. 곡강은 당나라의 수도 장안長安(오늘날 서안西安) 자은사 남쪽에 위치한 유원지로 한漢 무제武帝 때 만든 인공 호수다. 온갖 기화요초와 전각들이 들어선 아름다운 국민 유원지로 오늘날에는 대당부용원大唐芙蓉園이 들어서 있다. "인생칠십고래희 人生七十古來稀"라는 표현은 화려한 풍광을 바라보며 오히려 유한한 인생의 허망함을 떠올린 것이다.
[ 표지 사진 ]
◎ 중국 운남성雲南省 곤명昆明 Kūnmíng 시내를 굽어보고 있는 옥안산玉案山 공동묘지. 멀리 바다처럼 넓은 전지滇池 Diānchí라는 호수까지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풍광이 장관을 이룬다. 필자는 '망자의 주검을 처리하는 방법을 통해 본 중국 소수민족의 생사관生死觀 고찰'이라는 연구를 위해 2006년부터 2008년까지 6회에 걸쳐 중국 운남성 서북부와 사천성 서부를 답사한 적이 있다. 사진은 2007년 1월 15일에 촬영한 것이다.
대충 그 무렵부터 필자는 외국 여행을 가면 맨 먼저 공동묘지를 찾아가는 습관이 생겼다. 공동묘지는 대부분 그 고장의 높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현지의 지리 및 자연환경을 살필 수 있고, 묘비명을 통해 현지인들의 평균 수명· 경제적 수준 · 종교 · 생활문화 등의 인문 환경을 가늠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곳 옥안산 공동묘지는 대도시 곤명과 인접하여 삶과 죽음의 모습이 비교적 떨어져 있지만, 오지에 사는 소수 민족일수록 망자의 주검을 자신의 삶과 가까운 곳에 둔다. 죽음을 바라보고 준비하면서 하루하루 감사하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무척이나 감명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