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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Oct 18. 2023

10. 낙서 1972

[ 제2부. 소오생의 志於學 ]

내 삶을 돌아본다.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 열다섯스물 나이는 학문에 뜻을 두어야 하는 '지어학志於學'의 시기라 했거늘, 나는 그 시절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지냈을까? 그 어떤 대상을 향해 한 번이라도 겸손하고 간절하게 꾸준히 가르침을 청해 본 적이 있었을까?


옛날 물건을 치우다 보니 50여 년 전 고등학교 시절의 낙서 노트를 발견했다. 그 시절, 나는 성북구 장위동 산꼭대기 채석장 옆집에서 살았다. 저녁 무렵 뒷산에 올라가 먼동이 트는 새벽까지 채석장 아찔한 절벽 끝에 앉아있을 때가 많았다. 알고 있는 모든 노래를 불렀고, 외우고 있는 모든 시를 외우고 또 외웠다. 나름 절실했나 보다. 그 유치한 낙서를 버리지 못하고 있었으니... 


글이란 그 당시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못났는가 기록하기 위해 쓰는 것이라고 들었다. 많이 부끄럽지만 그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 또한 내 삶의 편린片鱗이므로 여기 보관해 둔다. 




[ #1 ] 落照


농익은 석류의 빨간 잇몸을 오늘도

또 불질러 버리고

능선에 걸린 채 드러누운 푸른 청삼靑衫 위를 누비는 동경憧憬의 목욕.


고개 돌리면 님의 눈부시도록 소박한 저고리 가운데 꽂아놓은 

동녘 하늘 반공半空 위의 흰 브로우치.

정情의 눈동자는 이제 천애天涯의 헤매임 속에 파묻혀 가고



부기附記


곱게 머리 빗은 가을 하늘이 더욱 산뜻한 어느 날 저녁 무렵, 뒷산에 올라 머얼리 서쪽으로 웅장한 북한산의 길게 뻗은 능선에 걸려서 뉘엿뉘엿 넘어가는 붉은 해와 산록에 깔린 노을을 바라볼 때, 잠시나마 마음속의 고민이란 고민은 모두 마알갛게 씻겨지고 깨끗한 불그레한 물이 드는 것만 같다. 


그러나 동녘 하늘 반공 위에서 채 빛을 발하지 못하며 그저 하얗기만 한 기울어진 달을 볼 때, 씻겨간 상념들은 하나씩 둘씩 마음속에 다시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다. Cupid의 화살 끝에 이 고민을 달아매어 그네에게 쏘아보내, 그네의 마음 문을 여는 브로우치가 되게 하였으면 좋으련만. 


일 초의 순간도 놓치기가 아쉽다는 듯, 어느덧 붉은 해는 숱한 괴로움의 뿌리를 안고 서산을 넘어 어둠 속으로 어둠 속으로 다시금 방랑의 길을 떠난다.




[ #2 ] 철길


갈래 된

생사生死의 애환이 얽힌 수송선輸送線.


도망치며 외치는 무수한 조약돌들의 원怨이

줄 지은 채 달려오는 전봇대의 정서情緖 속에 휘말린 채

피곤한 철길조차 기꺼운 엘레지를 부른다.


어디까지만 

철길 되어버린 너와 내가 달려야 하는지

구백리를 달려도 만날 줄 모르고 또 만나지도 않을 장본인의 인식 속엔

허탈한 무언無言.


고철이 되고 말 숙명의

나의 철길은 그러나,

같이 가 줄 이 없는 갈 수 없는 철길.


소망의 연기를 뿜어대는 삶의 기차를 잃어버린,

장단長端의 끊어진 철길 위의 철마 만이 얹힌 

잡초 덮인 철길.

※ 나는 이를 테면 문제아였다. 입시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방학이 시작하는 날, 배지와 이름표만 뗀 교복을 입은 채 돈 한 푼 없이 집을 나서서, 방학이 끝날 무렵 돌아오곤 했다. 북한산 바위 위에서 이슬 맞으며 자는 날도 있었고, 청량리역에서 몰래 완행열차를 집어 타고 어디론가 정처 없이 떠나기도 했다. 옛날 기차는 운행 중에도 출입구가 열려 있었다. 그곳 손잡이에 매달려 기차 밖으로 한껏 몸을 내민 채 늘 생각했다. 이 손을 놓으면 어떻게 될까... <철길>은 그 문제아 시절의 단상이다.




[ #3 ] 靜渴의 曉


아삭

흩어지는 햇볕을 모아

흐르르는 고요의 새벽에 끼얹어 보면


건포도빛 가지 열매와 

수박빛 오이 사이에 스민 

밤에 우는 새의 푸른 울음소리를 굽이굽이 돌아

또렷한 흰 십자가에 견인된 경건한 종소리.


언제던가 

부활한 주의 모습에 泥醉된 막달라 마리아의 靜渴한 이미지는

새벽을 머금은 聖歌의 恍惚 속에 되살아나


노오랗게 

시든 마음의 빈터를 하나씩 채워가는 

끝없는

久遠의 視線

※ <靜渴의 曉>란 제목부터가 잘못되었다. <정갈한 새벽>이란 의미일 텐데, 사실 '정갈'은 한자 단어가 아니라 순수한 우리말 '정갈하다'의 어근이므로 이렇게 명사로 사용할 수 없다. 당연히 한자도 없다. 당시의 낙서를 지금 읽어보면 잘못 사용한 한자가 아주 많다. 근데 고등학생 주제에 왜 이렇게 한자를 많이 썼을까? 아마도 과시용으로? 


※ 1972년 여름. 가정의 평화를 위해 억지로라도 신앙을 가져보기로 마음먹었다. 일주일 정도 열심히 새벽 기도를 다녔는데 결국 포기했다. 옆에서 방언으로 통성 기도라는 걸 하는데 그 기괴하고 엄청난 소음이 너무 무서웠다. 아마 그 무렵, 포기하기 전에 긁적인 낙서 같다. 당시 교회 이름은 <장성교회>였는데, 요새는 전광훈 목사(?)가 점령한 <사랑교회(?)>라던가 뭐라던가... 




[ #4 ] 눈물


연보라색 하늘을 

어두움 속으로 물들이는 

먹구름의 휘몰리는 노여움처럼


찌푸려진 말간 이맛살과 

망사 날개의 잠자리가 살포시 내리워 앉으면 

입 맞추는 눈꺼풀 사이를 헤집으며 찾아드는 

그것은


여인의 품 속에 꼬옥 안긴 

어느 

누구도 모를 하소연




[ #5 ] 《순애보(殉愛譜)》독후감     


※ 낙서 노트에 1972년 7월 20일 자 학교 신문 113호에 게재한 독후감이라고 적혀 있다. 지금 읽어보니 실소를 금치 못하겠다. 아니, 왜 이렇게 문장을 엿가락 늘어뜨리듯이 길게 쓴 것인지, 화가 날 지경이다. 옆에 있으면 정말로 한 대 때려주고 싶다. 당시에는 아침마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가 한없이 길게 이어졌는데, 혹시 그 영향은 아닐까? 어휴, 마무리 부분은 또 왜 이러냐. 위대한 수령 동지... 운운하며 목소리 높이는 북한 아나운서 같다. 박정희 정권하의 시대상이 반영된 느낌. 


※ 그 무렵, '서울시 자유교양 도서대회'라는 것이 있었다. 각 학교는 의무적으로 전교생에게 《삼국사기》등의 필독 도서를 읽게 한 후, 3명의 대표를 선발하여 시험도 보고 독후감도 제출하게 했다. 어쩌다 보니 그중 한 명으로 선발되었는데, 운이 좋았던 건지 내가 일등을 하고 말았다. (우리 학교 3명이 1, 2, 3등을 싹쓸이해서 학교 역사책에도 기록되었다) 아마 그런 이유로 학교 신문에서 독후감 한 편을 써달라고 요청한 모양이다. 남 보여주기 위해 억지로 쓰자니, 저절로 상투적인 '꼰대' 말투가 되어버린 것 같다. 발견한 낙서 중에서 가장 짜증이 난다. 아니, 이런 실력으로 어떻게 상을 받았다지? 이런 식으로 써야 좋은 점수를 받는 시대였던 걸까?




한 사람이 남을 위해 자기를 殉하는, 인간으로서 가장 아름다운 행동을 우리는 종종 보아왔다. 예컨대 강재구 소령이나, 모르는 소년을 구하고 대신 자기 목숨을 바친 어느 건널목지기의 행동 등이 바로 그것이다. 말은 하기 쉽지만 실천으로 옮기자면 좀처럼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面으로 볼 때 소설 《순애보》는 너무도 感銘的이다. 등장하는 人物 모두가 우리를 감동 속으로 몰아넣고야 만다. 이 책의 著者인 朴啓周 씨는 몇 년 전 故人이 되셨지만, 生存 時에 독실한 크리스챤이었다. 이것은 그의 몇몇 作品을 읽어보면 여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자기 아닌 남을 위해, 그것도 자기의 원수를 위해 대신 殉하였던 너무도 崇高한 思想의 所有者인 主人公 최문선에게서 우리는 배울 점이 너무 많다. 

     

그가 일제 압박 하에 불우 아동의 계몽운동에 참가하여 천진난만한 소년 소녀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 그들로 하여금 마음속 깊이 眞心으로 감화하게 한 이야기는 제쳐놓고서라도, 뜻하지 않게 그를 짝사랑했던 인순의 살인 혐의를 뒤집어쓰고는 眞犯이 던진 화병의 파편에 失明까지 당하고 검찰에 붙들려 온갖 고초를 당하여 死刑 일보 직전까지 갔었을 때에, 진범인 李致漢이 찾아와 사실을 고백하고 병으로 고생하는 처자가 자기의 목숨 하나에 연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을 때 놀람과 분노에 그는 몸을 떨었으나, 때마침 나타난 순경이 그가 누구냐고 묻자 문선은 성경의 한 구절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눅 6: 27)”라는 대목이 자신의 뇌리에 강한 충격을 줌을 느끼고 그는 나의 친구라 대답하여 순경을 보낸 후, 호주머니 속의 돈을 꺼내어 병중의 처자가 있다는 진범 이치한에게 준 행동은 바로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내밀며, 五里를 同行하자 하면 十里를 同行해주는 그런 적극적인 사랑의 행동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희생정신과 항상 自我 省察하는 姿勢와, 그의 眞理의 구현을 위한 求道 精神을 엿볼 수 있다. 앞서 말한 강재구 소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이라든지, 한 소년의 목숨을 구하고 순직한 어느 건널목지기의 이야기들은 嚴冬雪寒의 따뜻한 한 줄기 바람처럼 이제는 녹슬어버린 동력 기계의 윤활유가 되어 차갑기 그지없는 現實 世界를 아름다운 人情味가 철철 흘러넘치게 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과연 내가 최문선이었다면 자기 눈을 잃게 했으며, 자기에게 살인죄를 씌웠으며, 尹明姬에 대한 사랑을 안타까움 속에 포기하게 만든 그 원수를 대신하여 죽을 결심까지 할 수 있겠는가 생각할 때 부끄럽기 짝이 없는 그 결과가 눈앞에 幻影이 되어 나타난다. 비단 나뿐이 아닐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大部分이, 우리 학교의 十代 知性들조차도 강재구 소령처럼, 어느 건널목지기처럼 행동할 수 있을는지 크나큰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또 그는 항상 자기의 언행을 반성하여 보며 생활하였다. 옛 聖人은 ‘一日三省’이라 하셨지만 최문선은 그 몇십 배 더하였으리라. 여기서 우리는 최문선뿐 아니라 이 소설의 저자인 朴啓周 씨도 그러한 生活을 하였으리라, 아니면 그런 생활을 끊임없이 憧憬하며 그런 생활에 접근하려 애썼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쳇바퀴 돌 듯하는 숨 가쁜 이 社會일수록, 마음의 安定을 얻어 심사숙고하여 自我 省察할 때 비로소 건강하고 밝은 社會가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최문선은 眞理를 실천으로 옮기고자 애썼던 사람임을 여러 대목에서 느낄 수 있다. 최문선이 감화원에서 원아들을 가르칠 때 한 소년을 때리고는, 잠시 후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네 兄弟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를 생각고는 눈물을 흘리며 그 소년에게 잘못을 빌은 것이나 진범 이치한을 용서한 대목에서 우리는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우리는 말뿐이며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 오고 또 우리 자신도 행동으로 옮기기가 무척 힘든 것을 느낀다. 그러나, 이를 배격하고 가장 평범한 진리의 生活化를 시도하는 그 마음의 자세야말로 곧 국토 통일의 밑바탕이 되는 精神 무장의 길이요,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길이 될 것이며, 긴박하기 이를 데 없는 국제정세 속에서 양단된 국토 통일에의 길임과, 나아가 인류 복지와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인류애에 이바지하는 것임을 《순애보》는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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