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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Nov 15. 2023

16. 차 한잔에... 편지 (2)

[ 제5부. 소오생의 知天命 ]

※ 앞에서 이어집니다.


※ [표지 사진]

◎ 명明, 왕문王問,《자차도煮茶圖》. 대북台北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 소장.

'자차煮茶'란 '차를 달인다'는 뜻. '팽차烹茶'라고도 했다. 오늘날에는 주로 '포차泡茶'라고 한다.


옛 선인들은 차를 달이고 마시는 것을 흔히 인생에 비유했다. 



차 한잔에 띄워보는 그리움의 편지 (2)


우주와 주파수를 함께 하는 생명의 나무     


선배님. 계곡 사이로 어스름 피어오르는 안개가 새벽을 깨우고 있군요. 


먼동이 트고 있습니다. 제 연구실에 걸린 산수화 그림처럼 말이죠. 깎아지른 낭떠러지, 점점이 이어진 낙락장송, 기암괴석 사이를 흘러나오는 계곡 물, 그리고 깊은 산 어디선가 들려오는 산사의 새벽 종소리…. 나그네는 강가에 정박한 나룻배 안에서 무심히 그 종소리를 듣습니다. 

황쥔삐黃君璧(1898~1991) , 〈계두귀래溪頭歸來〉

선배님도 언젠가 제 연구실에 왔을 때, 그 산수화를 보신 적이 있으시지요? 저는 언제나 그 그림을 바라봅니다. 마음이 당기는 날이면 아껴두었던 오룡차를 정성껏 달여내어 혼자서 천천히 음미해 보며 한가로운 여백의 마음을 배워봅니다….  




선배님은 어떤 차를 좋아하십니까? 


우리 주변에서 제일 흔하게 대할 수 있는 차는 녹차綠茶이겠죠. 대부분 목마름을 가시게 하는 음료수 차원에 머물고 있지요. 하지만 차 마시는 행위에 깊은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다도茶道의 대상도 녹차랍니다. 그런 건 물론 수행 깊은 선사禪師께서나 드셨음직한 고품격의 작설차雀舌茶와 같은 녹차이겠지만.


저는 오룡차烏龍茶와 같은 청차靑茶 계통의 차를 좋아합니다. 녹차와 청차가 어떻게 다르냐고요? 글쎄요, 전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그러한 과학적인 분류법은 왠지 들을 때마다 자꾸만 잊어버리는군요. 그저 오룡차와 벗하며 지냈던 지난 세월의 단상斷想을 모아 선배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따름입니다.   


차는 물로 달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맛이 좋아야 차 맛도 좋습니다. 


그래서 천하제일의 약수가 어떤 것이니, 어떤 물로 다려야 차 맛이 제일 좋으니, 수많은 이야기가 전해지는 거겠죠. 거기에 제 이야기를 하나 더 보태어 그러한 물맛에 차 맛을 비유해 보면 어떨까요?


제 경험 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월출산 기슭, 왕인 박사 유적지의 물맛이었습니다. 촌철살인寸鐵殺人! 한 모금 마시면 쨍그랑~ 청아한 금속 소리가 들립니다. 정신이 번쩍 차려집니다. 신령스러운 월출산 기암괴석의 정기가 단숨에 정수리에 가득 차 오릅니다. 이윽고 호수의 파문처럼 조용히 온몸에 퍼져 가는 해맑은 기운! 그 황홀한 느낌은 정말 예술이었습니다. 오룡차는 그 월출산 석수, 예술의 물맛 같다고나 할까요?


그에 비하면 백마강을 굽어보는 부여 고란사 물맛은, 그저 물맛 그 자체였습니다. 저의 아둔한 감각으로는 음미하기가 너무 어려웠죠. 구태여 말하자면 철학적 물맛이라고 해야 되나요? 사색과 명상을 사랑하는 분들은 그러시더군요. 물맛은 아무 맛이 없어야 최고라고요. 


녹차는 그런 고란사 물맛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색無色, 무미無味, 무취無臭에 가까운 담백한 그 맛…. 곰곰이 음미하노라면 머리가 하얗게 텅 비어지는 느낌입니다. 정말로 참선이 따로 없다는 생각…. 아하, 이래서 다선일여茶禪一如라는 말이 나온 거로구나, 싶지요. 철학과 예술! 선배님은 어떤 물을 더 좋아하시나요?   

  

차는 불로 달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장 좋기로는 숯불처럼 은은한 불이라고 합니다만, 차를 달일 때마다 매번 그런 호사를 부리기가 어디 그리 쉽겠습니까? 그저 물의 온도나 제대로 맞추어 차가 지니고 있는 생명력을 잃지 않게 노력해 볼 따름이지요. 우주와 주파수를 함께 하는 생명의 나뭇잎에서 형편없는 풀 냄새만 풀, 풀, 풍겨난다는 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지는 일이니까요. 그렇다고 물의 온도를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하는 일은 차의 그윽한 맛과 멋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행위겠죠? 


아시다시피 오룡차와 같은 청차는 끓는 물에서 펄펄 끓는 그 기운만을 살짝 없애준 아주 뜨거운 물을 사용하지요. 이를테면 반쯤 발효되어 잠들어 있는 차 잎을 순간적인 쇼크 요법, 아주 뜨거운 물로 순식간에 깨운다고나 할까요? 오룡차는 뜨겁게 태어나 뜨겁게 인생을 살다 간 정열의 예술가입니다. 


그에 비해서 녹차는 물의 온도를 아주 뚝 떨어뜨려야 한다는군요. 싱그러운 녹차 잎은 입술에 따스한 기운만이 전해질 정도의 온도 안에서 아주 은은하게, 자신이 내재한 색과 향과 맛의 가치를 천천히 퍼뜨리지요. 그 따스함을 조금씩 입안에서 음미하면, 오로지 수행만을 삶의 유일한 일과로 삼으신 스님의 담백한 일생을 살짝 엿보는 그런 느낌입니다. 선배님은 어떠한 삶을 더 사랑하십니까?    

 

차는 또한 다구茶俱로 달여내는 것이기도 하지요. 


다호茶壺 이야기를 먼저 해볼까요? 녹차를 달이는 다관茶罐은 유약이 발라진 도기입니다. 흙은 생명이 있는 물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차를 달이는 주전자에 유약을 바른다는 건 생명을 차단하는 행위가 아닐까 싶어 왠지 아쉬웠지요.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니 어리석은 욕망을 차단하고자 하는 형이상학적 의지로 이해하는 게 더 올바른 해석일 듯도 싶었습니다. 선배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청차를 달이는 다호는 비교적 작은 크기, 유약을 바르지 않은 토기이죠. 살아있는 생명체인 것입니다. 청차는 이 작은 우주 속에서 그와 함께 호흡을 주고받습니다. 서로 하나가 됩니다. 그때 다호는 차 잎의 향과 맛을 자신의 안 깊숙한 곳에 내재시키는 거죠. 그래서 좋은 차를 많이 달여냈던 다호로 차를 달이면, 차가 그다지 좋지 않아도 차 맛이 기가 막히게 우러나옵니다. 지난 세월 동안 머금어두었던 그윽한 향과 맛을 토해내기 때문입니다. [각주]


그렇게 달여낸 차는 찻잔으로 마십니다. 녹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다구茶俱는 큼직합니다. 차를 달여내는 다관도 크고, 마시는 찻잔도 큽니다. 욕망의 강을 건너 저기 깨달음의 피안彼岸으로 향하는 자비로운 대승大乘의 뗏목일까요…. 오룡차를 마시는 찻잔은 앙증맞게 작습니다. 그러나 홀로 강을 건너는 독각獨覺의 구도자, 그 소승小乘적 삶의 모습은 아닌 듯합니다. 비록 그 뗏목은 작지만 너무나 예술적이니까요. 

[좌] 유약을 바른 다관. 녹차를 달일 때 사용한다. [우] 오룡차를 달일 때 사용하는 여러 가지 모양의 다호

오룡차를 마실 때는 품명배品茗杯로 맛을 감상하기 전에 먼저 운두 깊은 문향배聞香杯 찻잔 속에 다향茶香을 모아두고 한껏 그 향기를 음미하지 않습니까? 그 향기를 맡을 때면 저는 언제나 저만의 아늑하고 조용한 정원에서 거문고와 시서詩書를 즐기는 단아한 선비가 되는 듯한 즐거움을 맛봅니다. 선배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정도 삶의 호사를 누리는 건 지나친 사치일까요? 

하단 좌측 찻잔이 문향배, 우측이 품명배다.

차의 본질은 생명입니다. 변화하는 생명입니다. 


차는 우주와 주파수를 함께 하는 나무, 바로 우리들 ‘삶의 나무’이죠. 특히 오룡차는 한 잔 한 잔에 서로 다른 사랑과 낭만, 기쁨과 슬픔, 괴로움과 즐거움이 녹아있습니다. 매번 차를 뽑아낼 때마다 맛이 다르지요. 상등품일수록 여러 번 차를 뽑아낼 수 있는데요, 처음 서너 번은 그때마다 독특한 맛이 난답니다. 


첫 번째는 상큼하고 싱그러운 느낌.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느낌. 조금이라도 잘못 달이면 너무나 쓴맛이 나지요. 청춘은 독버섯! 사춘기의 설익은 고민을 연상시킵니다. 두 번째는 달콤하고 화려한 장미의 화원이랄까요? 여름 해변, 이십 대 젊은이들의 축제가 생각납니다. 그러나 아직 깊이와 여운은 좀처럼 느낄 수 없지요. 장미의 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어느 서양 시인 생각도 나는군요…. 


진짜 제대로 된 차 맛은 그러므로 세 번째 달여낼 때부터랍니다. 머리끝까지 퍼져나가는 맑고 그윽한 기운이 삶의 찌든 때를 조용히 씻어주는 느낌….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앉은 나의 사랑하는 누님, 그 원숙한 아름다움을 떠올리게 하죠. 정말로 좋은 차는 이 세 번째의 생명력을 오래도록 유지한다고 합니다. 


차의 가치는 정성입니다. 생명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 하는 간절함입니다. 


좋은 차라고 해서 무조건 그 황홀한 세계가 펼쳐지는 건 결코 아니니까요. 차 맛은 뭐니 뭐니 해도 달여내는 사람에 의해 결정되지요. 우주와 주파수를 함께 하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차를 달여야 합니다. 섬세한 영혼의 촉각으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해야 합니다. 흙으로 빚어진 다호와, 뜨거운 불로 끓여낸 물과, 생명의 차 잎이 하나로 만나 혼연일체가 되는 그 순간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선배님. 저는 언제나 그 경지에 들어설 수 있을까요? 그 간절한 정성을 오늘도 새롭게 배우고자 합니다….


그러나 차는 필경은 마시는 사람의 것이죠. 


차는 분위기를 몹시 탑니다. 주룩주룩 내리는 장대비, 실처럼 보일 듯 말 듯 흩날리는 안개비. 그 조그마한 날씨의 변화에도 그 맛이 너무나 다릅니다. 그러니 하물며 아름다움의 가치를 발견할 줄 모르는 사람과 함께 차를 마시면 어떻겠습니까? 우리의 여행길 연도에 제아무리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다 해도, 피곤에 지친 나그네가 영혼의 눈을 감고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차 한잔에 담긴 가치를 가슴으로 절실하게 공감하는 다우茶友, 선배님과 같은 벗님은 바로 우리 삶의 지기知己입니다. 보배입니다….


차의 의미는 여백餘白입니다. 쉬어 가는 생명의 휴식 터입니다. 


파스칼이 말했다지요?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앉아 휴식할 줄 모르는 데에서 비롯한다고. 피에르 쌍소가 쓴 책,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오룡차와 함께 음미하며 읽어야 제 격인 듯 싶습니다. 도연명陶淵明도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말했습니다. 힘차게 나아갈 때가 있으면 조용히 쉬어갈 때도 있어야 한다고요. 무위자연無爲自然…. 봄, 여름, 가을, 겨울…, 너무나 자연스럽게 가고 멈추는 대자연의 진리를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선배님. 무심히 새벽의 골짜기를 나서던 구름이 문득 발길을 멈추고 먼 곳에 피어오르는 안개를 바라보고 있군요. 구름이 쉬어가는 저 여백의 공간을 오래도록 바라봅니다…. 아무래도 새로이 오룡차를 달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맑은 새벽의 법당 안에서 한 잔, 한 잔을 새롭게 다려내며, 넓고 큰 가능성을 열어두고 기다리는 여백의 시간을 가져야 할까 봅니다. 선배님도 차 한잔 더 나누지 않으시렵니까?


 ― 계속 ―




[각주 설명]


◎ 중국 강소성江蘇省 태호太湖 서쪽의 의흥宜興에서 출토되는 자사紫砂로 만든 '의흥 다호'가 유명하다. 이 다호는 처음에는 유약을 바르지 않은 흙 그 자체이지만, 차츰 차 기름을 먹게 되면 점차 유약을 바른 것처럼 윤이 나게 된다. 특히 매일 정성껏 조심스레 문질러주면 마침내 속눈썹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거울같이 반지르르 빛나는 모습을 지니게 된다. 이렇게 다호를 길들이는 과정을 ‘양호養壺’라고 한다. 인간의 사랑으로 흙의 생명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탄생된 다호는 그야말로 자손만대에 길이 전해지는 보물이다. 국보급으로 인정된 이러한 명품 다호들은, 오늘날 의흥 다호 박물관에 진열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꼭 한번 가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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