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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아 Oct 21. 2024

UFO만큼 부자연스러운 것

평생 잊지 못해

 모리의 형 주원은 모리만큼이나 마르고 키가 컸지만, 유약해 보이는 모리와는 다르게 강인하고 남성적인 인상이었다.


 그는 모리와 연관성 없는 주원이라는 평범한 이름을 가졌다는 자기소개로 대화를 시작한다. 나는 악수를 청하는 그의 손을 맞잡으며 희미하게 미소 지어 보이고, 좀 더 건강하게 활짝 웃어 보이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모리를 통해서도 아니고, 이렇게 만나는 건 좀 불편하시죠? 갑작스레 죄송합니다.” 그는 긴장한 내 모습에 미안함을 느꼈는지 전화상에서 보다 따뜻하게 말을 걸어온다.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번호는 제멋대로 은혜 누나에게 물어서 알아냈는데, 실례가 이만저만이 아니네요. 모리와 헤어졌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어요. 모리가 없어져 당황하고 있던 중에 떠오르는 사람은 안나씨 밖에 없었어요. 모리 녀석 만날 때마다 항상 안나씨에 대해 말했으니까, 전 당연히 모리와 같이 일 줄 알았습니다.”


 “죄송하다니요. 저야말로 도움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한데요. 지금 저도 모리를 계속 찾고 있지만, 그저 기다리고 있을 뿐이죠.”


 “네. 그 녀석이 아버지껜 몰라도 나한테 착한 동생이었는데 의외입니다. 어떻게 나한테까지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는지. 아, 물론 안나씨에게도 아무 말 없었지만요. 모리도 성인이고, 마냥 어린애는 아니니까 자기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죠. 저도 기다려보겠습니다. 일단은.”


 “네. 단서가 전혀 없으니까요. 그리고 저와 모리, 헤어진 게 아니에요. 모리가 없어진 날 아침에 모리 집에서 쫓겨나듯이 나왔어요. 그때는 영문도 모른 채 모리에게 호되게 당했다고만 생각했는데, 모리가 없어지고 나서는 제게 죄책감이 생겼어요.”


 나는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한 것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말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안정되는 것을 느꼈고, 나의 탓이 아니라고 모리의 형에게 위로받고 싶기도 했다. 주원을 마주하고 있으니 모리와 그의 형은 생김새가 많이 닮았다. 그래서 모리와 함께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나의 말에 눈이 동그래져서 마시던 커피 잔을 황급히 내려놓고 손사래를 치며 말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고, 모리는 안나씨를 미워할 수 없다고, 그 아이는 다른 누구를 안나씨 만큼 사랑한 적이 없다고.     




 정원이 소란스러운 것을 보니 또 파티를 연 모양이다. 넝쿨이 타고 올라간 아치모양의 통로 안쪽을 슬쩍 들여다보니 모두가 풀밭에 앉거나 누워있다. 해가 질 때쯤 아틀리에 입구에서 응접실 쪽으로 이어지는 정원으로 사람들이 모인다. 나는 내가 가져온 아이스 와인 한 병을 조심스레 내려놓고 그들의 주위에 자리 잡는다.


 “안나는 또 기척 없이 왔구나,” 지연이 나의 옆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말했다. 나는 왠지 머쓱해져 지연의 손을 살짝 밀쳐내 나의 머리에서 떨어뜨린다.


 처서가 지나고 8월 하순으로 접어들었다. 여름의 긴 낮이 끝나가는 중이고, 사람들은 벌써 벌겋게 취해있다.


  “해가 점점 짧아지는 것 같네. 좀 아쉬워. 그렇지?” 지연이 하늘을 향해 담배연기를 뿜으며 말한다.


 그는 한동안 붉게 타들어가는 서쪽 하늘을 보고 있다가, 자신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있는 나에게 ‘하늘을 좀 봐봐.’ 하고 턱짓으로 하늘을 가리킨다. 석양의 주홍빛 받은 그의 얼굴에서 고개를 돌려 나 또한 저 먼 하늘을 바라본다. 여기의 저 해가 넘어가면 그제야 동이 트는 그런 먼 곳에 모리는 존재하는 걸까.


 “둘이서 나란히 뭐 해? 하늘에 UFO라도 있어?” 선영이 옆에 서서, 앉아있는 지연의 어깨를 무릎으로 툭 치며 말한다.


 “오늘 노을이 유난히 오렌지색이잖아. 넌 둔감해서 뭐가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지만 그럴수록 하늘을 더 올려다보고 느껴야지. 옆에 앉아.”


 “여자한테 둔감하다고 함부로 말하는 오빠가 더 둔감하거든! 안나야. 넌 아직 모르겠지만 이 사람 이중인격자야. 착한 지연과 싸가지 없는 지연이 있어.” 신경질적으로 쏘아대면서도 지연의 옆에 붙어 앉은 선영이, 나와 그녀 사이의 지연을 뛰어넘어 나에게 말한다.


 지연에게 팔짱을 낀 채 웃는 그녀와 여전히 하늘에 시선을 둔 지연은 진홍빛 도는 담배연기에 싸여 뿌옇게 아득하다. 잔디밭에 쭉 뻗은 선영의 무릎뼈 도드라지는 앙상한 두 다리는 그녀의 몸에 어색한 각도로 붙어있어서, 금방이라도 따로 떨어져 나와 정원수들 사이로 도망이라도 갈 듯이 보였다.


 “왜 아무 말 없이 쳐다보기만 해?” 선영의 물음에 덩달아 지연까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더니, 돌연 ‘아!’하는 표정으로 허겁지겁 자신의 오른팔에 휘감겨있던 선영의 왼팔을 떼어낸다.


 당황한 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풋하고 튀어나왔고, 선영은 “왜 이래?”하고 지연을 핀잔주며 다시 그의 팔에 자신의 팔을 감았다.


 “더운데 용케도 잘 붙어있네요.” 나도 얼마 전까진 팔짱 낄 상대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싶었다.



 

 꿈속에서 모리는 춤을 추고 있었다. 긴 두 팔을 위아래로 흔들며 기분 좋은 듯 눈을 감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꿈속에서 인지, 깨어나서 인지 모르게, 나는 “모리는 잘 있구나.” 하고 말했다.


 눈을 떠보니 지연이 옆에서 잠들어 있고 아틀리에 사람들 모두가 정원에 널브러져 있다. 디오니소스가 포도주를 엎어놓고 간 이 정원에서 다들 인사불성의 얼굴을 하고 무아지경으로 잠이든 광경은 한심스러움을 넘어 사랑스러웠다.


 새벽 동이 뜨고 있었다. 아틀리에 건물 뒤로 보이는 해의 투명한 광선이 예리하게 빛났다. 태양광이 땅을 뜨겁게 달구기 전에 실내로 대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인다.


 잠자는 사람들의 생사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나서, 나는 가까이 있는 지연에게 눈을 돌린다. 지연은 기척도 없이 이미 깨어, 퉁퉁 부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가 자신의 얼굴 가까이로 나의 얼굴을 부른다.


 내가 고개 숙여 그의 입가에 귀를 가까이 하니, 그가 잠긴 목소리로 “모리가 돌아오지 않으면 모리를 대신할 누군가가 필요할 거야.”라는 불길한 말을 한다.


 모리가 돌아오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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