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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아 Oct 25. 2024

대낮의 살인사건

평생 잊지 못해

 때마침 정원으로 은혜가 도착했다.


 은혜는 허리에 두 손을 얹고 정원을 둘러보며 한숨을 길게 내쉰다. 그녀의 등 뒤로 서슬 퍼런 불꽃이 보이는 것 같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뒹굴고 있는 술병을 재빨리 한쪽으로 모은다.


 “정원은 손대지 말라니까 정말 너무들 하네. 빨리 일어나서 정리하지 못하겠어?” 은혜는 자신에게서 가까운 사람 순서대로 일일이 손을 잡고 힘껏 일으켜 세운다.


 은혜의 통솔아래 한 줄로 서서 아틀리에 안으로 들어가니, 그녀가 가지고 온 따듯한 음식 냄새가 실내에서 활개치고 있었다. 잠이 깬 사람들은 퉁퉁 부은 얼굴을 식탁 위로 동동 띄우고 점점 기운을 되찾아갔다. 금빛 햇살을 반사하며 흐르는 시냇물의 재잘거림처럼, 활기 띤 아침 시간의 수선스러움을 좋은 하루의 징조로 해석하고 싶었다.


 나는 정원의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다리를 뻗고 앉아, 초록 잔디 위로 고개 내민 스프링클러의 회전수를 세고 있었다. 100번을 한 세트로 몇 번씩 세고 있는데 멀리서 지연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가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잠시 걸음을 멈추었을 때, 나는 아틀리에 대문 밖으로 뛰어나가 도망치고 싶었다.


 정원을 가로지르는 유연한 그의 걸음걸이와 햇빛을 반사하는 하얀 피부는 진짜 사람이 아닌 홀로그램처럼 보였다. 그가 나의 앞에 와 나를 내려다보았고 나도 고개 들어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담뱃불을 비벼 끄고 내 옆에 한 뼘 정도의 거리를 두고 앉아 속삭인다.


 “오늘 날씨가 참 예쁘지? 너처럼 참 예뻐.” 나는 그의 말에 반응하여 그를 쳐다보았으나 그를 따라 억지 미소를 띠우거나 하진 않는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를 계속해서 바라보았는데, 이것에 특별한 이유는 있지 않고 단지 그의 말에 숨겨진 본뜻이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그는 나의 침묵으로 기분이 언짢아졌는지 얼굴에서 웃음기가 점점 사라졌다. 나는 그의 심각한 표정이 싫어져 한순간 미소 지어버렸고, 그도 이내 밝은 표정이 되어 나에게로 더 가까이 붙어 앉는다.


 나는 구름 하나 없이 지루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대기를 가득 채운 수많은 부유물들 중 어느 한 부분도 모리에게서 나오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나는 지연의 어깨에 기대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생각한다.


 모리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모리의 형을 두 번째로 만났을 때, 그는 무척 활기차보였다. 그는 하늘색 셔츠에 짙은 남색 반바지 입고 하얀색 단화를 신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역시나 모리와 무척 닮아있었다.


 “모리에게 메일이 왔습니다. 저는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어요. 안나씨에게 어떤 연락이 왔는지 궁금해서 다시 연락드렸습니다. 그 애에게는 안나씨의 고충을 아느냐고 나무랐는데요.” 그는 에스프레소에 두 스푼의 설탕을 넣고 가볍게 휘저으며 나에게 말한다.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아직 저에겐 연락이 없어요.”


 그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했고 스푼의 움직임을 멈췄다.

 “아. 그랬군요. 모리는 스페인 친구 집에 있답니다. 갑자기 스페인까지 날아가다니. 그 녀석 또 충동적으로 비행기를 탔겠죠. 스페인의 친구는 다행히 여자는 아닌 것 같던데요.”


 그는 왜인지 들떠 있었고, 그것이 나에게 좋은 느낌을 주진 않았다. 난기류를 만난 비행기를 탔을 때처럼 비주기적인 불편함이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본다. 그러더니 자신이 한창 추진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설명한다. 서울 근교에 큰 규모의 예술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고. 한 분야에 편중되지 않으며, 누구나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고, 부담감도 크지만 자부심 또한 굉장하다고 말한다.


 뜬금없이 그는 카페 창밖을 침묵하며 바라보더니 최고조에 달한 여름의 더위에 대해 읊조린다.


 “이맘때쯤 날씨는 너무 지겹죠?”

 그는 잠시 어두운 표정이 되었다가 다시 말을 시작한다.




 “어렸을 때 아버지 일 때문에 스페인에 잠시 머물렀던 적이 있어요. 이토록 햇살 강한 날은 그때를 떠올리게 합니다. 모리가 어렸을 때, 아마 대여섯 살쯤 되었을 때, 그곳에서 모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죠.


 모리와 저는 배다른 형제입니다. 어렸을 적 우리에게는 어머니가 두 분이었어요. 누나와 나는 다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모리를 무의식적으로 배척해 괴롭히고 있었어요. 하지만 우리의 행동은 우리마저도 인식 못했죠. 어렸을 땐 배려나 일종의 가식적 행동이 힘드니까, 지금 돌이켜봐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누나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때 누나가 말한 적 있어요. 모리에게 어렸을 적 기억은 상처일지도 모른다고, 그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쏟아질 만큼 가슴이 아프다고. 나는 무디게도 그때서야 깨달았어요. 모리는 어렸을 때부터 병약하고 겁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몸에는 항상 열이 있고 악몽 때문에 울음을 터뜨리며 잠에서 깨는 아이었죠. 그런 아이가 어머니를 잃고 얼마나 무서웠을까 생각하면 소름이 끼쳐요. 난 참 무디고 무뚝뚝한 형입니다. 한심하죠.


 죽은 어머니를 찾아낸 건 모리였어요. 스페인 여름의 햇살은 새하얗게 빛나게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만큼이라 한낮에는 길에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요. 급격하게 한산해지죠. 모리와 어머니는 우리를 기다렸어요. 아버지, 누나와 나, 나의 어머니는 점심약속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아버지의 친구를 만나서 예정보다 조금 늦게 그들에게 도착했는데, 조금밖에 늦지 않았는데…….


 만나기로 한 장소 가까이의 작은 광장에는 모리 혼자 서있었어요.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길 한복판에 수직으로 내리쬐는 햇볕을 그대로 맞으며 모리가 울상을 하고 우두커니 서있었어요. 아직 울지 않았지만 금방 눈물을 뚝뚝 떨어뜨릴 표정이었죠. 그때 비명소리가 들렸고 모리는 엉엉 울며 소리의 근원지로 골목으로, 골목으로 뛰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영문 몰라 멍하게 모리가 뛰어간 곳을 가만히 응시하고만 있었고, 갓 생일이 지나 열두 살이 된 누나가 제일 먼저 모리를 따라 뛰었어요.


 그제야 어머니와 내가 허겁지겁 뒤따랐죠. 아버지는 제일 뒤쪽에서 그저 걸었어요. 천천히 걷기만 했죠. 더워서 짜증 난 얼굴을 하고 땅을 보고 걸었어요. 우리는 또 다른 광장으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의 끝에서 모리를 안고 있는 누나를 발견했고 그 뒤편에 모리의 어머니가 피범벅이 된 얼굴을 우리 쪽으로 하고 쓰러져계셨어요. 절박한 눈빛의 어머니는 ‘오지 마. 저리 가.’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누나는 그때의 상황을 경찰에게 이야기하며 끔찍한 어머니의 모습에 모리의 심장이 멎을까 모리의 얼굴을 온몸으로 감싸 안았다고 울며 말했습니다. 경찰은 동양인을 노린 강도의 짓이라고 간단히 결론지었고 나는 납득할 수 없었어요. 굳이 그런 식으로 처참하게 살해할 필요가 있었는지가 말입니다. 그분은 가진 것이 없었어요. 돈 될 만한 것이라곤 지니지 않았어요. 저는 그날 무료하게 걷는 아버지의 모습이 계속해서 떠올라 원망스러운 마음이 그치지 않을 뿐입니다.”




 주원과 저녁을 함께하고 간단히 맥주 한잔씩 마시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와 나눈 대화 속에서 세 남매의 유년시절은 부족함 없이 평화로웠고 모리 어머니 사건은 의식적으로 가려둔, 쓰이지 않는 가구처럼 존재감 없었다. 또한 그는 모리가 모두에게 귀여움을 받으면서 컸다고 나를 안심시키듯 말했다.


 그는 깨끗이 닦인 은색 세단의 운전석 옆자리에 나를 태웠고 차 안에선 화학적 방식에 따라 제조된 억지스러운 방향제 냄새가 났다. 그는 집으로 데려다주는 내내 아무 말 없이, 어디서 들어봄직한 음악을 휘파람으로 근사하게 연주했다.


 집 앞에 도착하자 그는 운전석에서 내리지 않은 채 큰소리로 나에게 인사했고, 근사한 뒷모습을 하고 빠르게 도로로 나아갔다. 계단을 오르는 중에 흔들리는 나의 머리카락에서 방향제 냄새가 풍겨 나와 얼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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