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밤 아랫배가 아팠다
P시 연구단지가 완공되기까지 3년 반동안 나의 몸은 점점 약해져 암세포가 자라났다.
한 달에 한번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아온 덕분에 초기에 암을 진단할 수 있었다. 나는 유전력이 있던 자궁에 먼저 암세포가 생겨났다. 암세포가 자라나는 속도가 일반인보다 비정상적으로 빨라, 자궁을 적출함으로써 다른 기관으로의 전이를 막았다. 암은 언제라도 다시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의사는 경고했다.
무성화를 앓는 여자들 중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사람들도 점점 증가했다. 저개발국의 여자들은 손상된 면역 체계로 인해 쉽게 병에 걸렸고, 폐렴이나 결핵, 뇌수막염이 손쓸 겨를 없이 급성으로 진행했다. 무성화는 그 자체만으로 사망률이 높지 않지만 합병증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경우는 흔했다. 병에 대한 연구는 확대되고 있지만 그 원인과 근본적 치료 방법은 찾지 못한 채 성과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한국은 인구 대비 발병 비율이 높은 나라로 연구에 대한 투자가 활발해졌다. 무성화로 인한 인구감소는 아직 미미했다. 한국은 암이나 다른 합병증에 대한 관리가 체계화되어 있어 중년 여성들의 사망률이 높지 않고, 무엇보다 무성화는 임신 경험이 없는 여성들에게 발병하는 확률이 극히 낮기 때문이다. P시 연구단지에 입주하는 의학 연구팀 중 무성화를 담당하는 팀의 규모가 가장 컸다. 아직까지 무성화는 인간의 면역과 진화 체계에 있어 전대미문의 난제였다.
여자 3과 그의 남편이 P시 연구단지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B와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나는 연구단지가 준공되고 첫 방문이었다. 예산과 계획된 일정을 초과한 연구단지는 설계안의 메인 아이디어가 모두 구현되었다고 한다.
연구단지로 들어가는 초입은 2차선 도로로 넓지 않았지만 깔끔히 정돈돼 있었다. 양 옆에는 무성한 나무들이 도로를 감싸듯 우거졌고, 낮은 키의 가로등을 장치해 차창 밖 풍경에서 인공물은 눈에 띄지 않게 조성했다.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나무와 같은 키의 ㄱ자형 가로등과는 다르게 세련된 느낌이 있어 사유지의 진입로 같았다.
“밤이 되면 더 멋있겠어. 어두워지고 조명들이 다 켜지면 말이야.”
“응. 태양광 에너지를 사용하는 조명들인데, 밤이 되면 기밀 시설물로 가는 느낌을 줘. 사택 내부에 실제 사람들이 살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네. 테라스는 설계 의도와 기능성이 일치했으면 좋겠어. 누구나 직관적으로 우리의 설계 목적에 따라 자연스럽게 동선을 짜고 이용할 수 있게 말이야.”
“누가 사느냐에 따라 집의 기능은 달라질 텐데, 그 활용은 사는 사람들의 몫으로 넘겨주자. 그래도 테라스를 커뮤니케이션의 공간으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해. 잘 모르지만 소통은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 것 아닐까. 고립되어 연구할 거면 굳이 이곳에 모일 필요가 없지.”
“그런 학문적 욕구가 있는 연구원들이 많이 들어오면 좋겠어.”
“맞아. 다른 어떤 욕심에서보다도 B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사려 깊은 사람들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운 좋게도 오늘 한 샘플을 볼 수 있잖아.”
“응.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지.”
“아무튼 부부가 많은 얘기를 하는 건 확실해. ‘남편 말에 따르면’을 자주 언급하는 분이시니까.”
입구로 이어지는 도로를 지나 밝은 빛이 드는 공간으로 들어섰다. B와 내가 마음에 들어 했던, 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 건물들이 띄엄띄엄 자리했다. 서로의 그림자가 다른 건물에 어둠을 만들지 않는 구조였고, 각각은 1층의 통로로 이어져있었다.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건물이 커뮤니티 센터였고 가장 안쪽에 자리한 것이 연구원들을 위한 거주동이었다. 우리는 다른 건물들을 중앙 도로로 가로질러 곧장 거주동으로 들어갔다.
거주지 앞에는 보안을 위한 출입 통제문이 있었고, 앞에 설치된 인터폰에 여자 3에게 전달받은 호수를 입력했다. 인터폰 건너편에서 여자 3의 목소리가 들렸고 이윽고 통제문이 열렸다. 출입문에서 지하 주차장까지는 가깝지 않았다. 거주민을 위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고, 자연 그대로의 울창한 숲에 가까운 이 공간을 지나쳐야 주거 시설이 등장했다.
“어서 들어와요. 먼 길 고생이 많았어요.”
집에 도착하기 전 현관문은 이미 열려있었고 우리의 기척이 들리자 여자 3은 문 앞으로 나와 우리를 맞이했다. 그녀는 마지막 보았을 때보다 야위었지만 표정은 무척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