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밤 아랫배가 아팠다
이틀 뒤 유전자 검사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또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결과의 내용은 이미 전해들어 알고 있었는데도 병원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긴장됐다.
때마침 병원 대기실에 앉아있는 여자 1을 발견하고 눈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반가워하며 한달음에 나에게 다가왔다.
“잘 지냈어요? 유전자 검사는요?” 그녀는 내 옆에 바짝 따라붙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건강히 잘 지내셨어요? 오늘 유전자 검사 결과를 확인하러 왔어요.” 3개월 만에 보는 그녀는 부쩍 살이 빠져있었다.
“유전자 검사 결과가 오늘이군요. 진행 속도가 빠르진 않네요. 이따가 진료 마치고 잠깐 시간 괜찮아요?”
그녀에게선 예전의 여유로운 모습이 사라지고 다소 위태로운 느낌이 들었다.
“네, 시간 괜찮아요. 마치면 연락드릴게요.”
나는 전과 다른 그녀의 모습에 놀라웠지만 애써 차분함을 유지하며 천천히 말했다.
“나는 여기 대기실에 계속 있을 거예요. 아무튼 연락 줘요.”
그녀는 나의 두 손을 자신의 손으로 기도하듯 마주 잡고서는 뒤돌아 멀어져 갔다. 그녀의 손은 한겨울 추위 속에 있는 것처럼 찼다.
“A님의 염색체에서는 이상 변이가 나타나고 있어요. A님에게는 갑작스러우실 수 있겠지만 사실 특별한 소견은 없어요. 그래도 이해하시기 쉽게 설명드리면, A님의 유전자에서는 이미 성별을 결정하는 요소들이 사라졌어요. 마치 바꿔치기당한 듯 아무런 유전 정보 없는 빈 껍데기들이 자리하고 있죠. 그렇다고 해서 성별이 변하는 건 아니고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 변화가 몸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확정 지을 수 없지만, 다른 유전적 기능들은 멀쩡해서 다른 질병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보이지 않아요.”
“제가 알아야 할 다른 소식은 없을까요?”
“어떤 소식이요? 그런 것보다, 몸에 어떤 변화가 있다면 병원에 알려주세요. 마음을 편하게 가지시고요. 스트레스는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주범이니까요. 이 외에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약은 2주일치 처방해 드리니 모두 복용하시면 다시 뵙는 걸로 하시죠.”
의사는 내가 건강 관리를 소홀히 해 이 병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다그치듯 이야기했다. 짧은 상담이 끝나고 대기실로 나가 여자 1을 눈으로 찾았다. 그녀는 그곳에 없었다. 약을 받은 뒤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지만 바로 답장이 오지 않았고, 나는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대기실에 앉아 기약 없는 기다림을 시작했다.
그녀에게 회신이 온 것은 내가 마침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였다. B와의 점심 약속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서 출발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핸드폰을 못 보고 있었네요. 미안해요. 내가 감기 몸살이 심해서 진료받고 있어요.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해요. 몸이 좋아지면 연락할게요.
여자 1에게 빨리 회복하라는 답장을 보내고 병원에서 나왔다. 오늘은 B의 회사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요즘 B는 다음 주에 발표될 P시 프로젝트와 별개로, 영일의 일에 본격적으로 합류하고 있다.
퇴근은 좀처럼 빨라지지 않아, 집에서 얼굴을 보고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은 주말뿐이었다. 그리고 격주에 한번 꼴로 지방의 현장으로 실사를 가서 며칠씩 보내고 오게 되었다. 영일과 일하는 한 설계부터 완공이 될 때까지, 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음 프로젝트로 넘어가는, 쉴 틈 없는 사이클이 반복될 터였다.
B는 B대로 나는 나대로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점점 말할 타이밍을 놓쳐 말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사소한 일들이 늘어났다. 느슨해진 관계망에, 많은 에피소드들이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 채 흩어지고 있었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되도록 B와 마주하는 시간을 늘려볼 기회를 찾았고, 오늘도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빙돌아가는 비효율적 동선을 감수하고 그를 만나기 위해 점심을 같이 먹자고 제안했다. B는 달가워하며 점심 장소 후보를 몇 가지나 늘어놓았다. 기뻐하는 B의 모습에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며칠 뒤 여자 1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동안 면역력이 떨어져 감기가 나았다가 심해지길 반복했다고 했고, 지금도 완치는 아니지만 외출할 수 있는 정도의 기력을 회복했다고 한다. 또한 이번 달 정기 모임은 참석자가 줄어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다시 만난 그녀는 여유로움과 에너지를 잃고 침체된 분위기를 풍겼다.
“요새 몇 주 동안 끙끙 앓았어요. 빨리 늙어가는 거 같네요.” 그녀는 나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우리 모두가 감염에 취약해지고 있어요. 평소 약했던 기관들은 더 나빠지고요. 나는 원래 위장장애가 있었는데 근래 심해져서 일반식을 잘 못 먹어요. A씨도 조심해야 돼요. 이제 유전자 검사한 단계이니 몇 달 지나면 아픈 곳이 조금씩 생길 거예요. 그래도 A 씨는 마음 편히 가져요. 우리가 먼저 겪고 있으니.”
나는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여자 1의 말에 두려워해야 할지 안도해야 할지 결정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