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 2024년 05년 15일(수)
날씨 : 약간 흐림 →흐림→비
기온 : 16ºC 비가 내리면서 약간 쌀쌀함을 느낄 정도
모이는 시간 및 장소 : 청라역 오전 07시
산행코스 : 불광역 2번 출구→족두리봉→향로봉→비봉→승가봉→문수봉→대남문→구기탐방센터
산행 시간 : 4시간 (휴식 시간 포함)
산행 거리 : 약 8Km
준비물 : 교통카드, 스틱, 장갑, 모자, 행동식, 생수 500 2통, 여벌 옷
참석 인원 : 행복한 지킴이 부부, 물독사, 아가타, 나프리, 화양연화, 리사, 양지, 우공, 인향, 텍사스, 산이랑, 산주막, 디져스(?), 젊은 오빠 총 15명
물독사님 전달 사항 : 내일(15일) 15시경 1~2mm 내외의 비 소식이 있습니다. 그전에 하산하겠습니다. 우비나 우산 준비해서 오십시오.
2024년 05월 15일 (수)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이며 스승의 날이다. 또한 청라산악회 물독사님께서 신입회원을 위해 공지한 번개 산행(대중교통으로 북한산¹을 산행)이 있는 날이기도 하다.
송도에 거주하고 있는 불광역에 가장 빨리 가기 위해서는 광역버스 M6724번을 타고 합정역에 가서 지하철 6호선으로 환승해야 한다. 그런데 광역버스 M6724번은 배차 간격이 아주 큰 것이 문제이다. 버스를 한 대 놓치게 되면 다음 차가 언제 올지 예측할 수 없고 자칫 약속 시간을 맞추지 못할 수도 있다. 때문에 산행 당일에 불광역에 8시에 도착하기 위해서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어 카카오 맵 버스 도착 시간 알림에 따라 서둘러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오전 06시 05분 버스를 승차하여 합정역에 도착하니 오전 07시 이전이었다. 청라역에서 다른 일행들이 출발하기도 전인 너무 이를 시간이었다.
07시 12분에 물독사님으로부터 지각자가 있어서 약속 시간보다 늦게 도착한다는 톡을 확인하고 합정역 승강장 벤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05월 11일(토) 청광종주, 05월 14일 송추에서 도봉산역까지의 도봉산 산행 등의 여독 때문인지 벤치에서 휴식 중에 앉아서 깜빡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 시간을 보니 07시 30분이 넘어 있었다. 무려 20여 분을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지하철 승강장 벤치에서 노숙을 한 것이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도착하는 지하철을 타고 약속 장소인 불광역으로 갔다. 불광역에 도착해서도 일행들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牛空과 북한산 종주할 때를 생각해서 불광역 9번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중에 물독사님으로 부터 08시 08분에 불광역 2번 출구로 오라는 전화를 받고 2번 출구 빵집 앞에 앉아서 일행들을 기다렸다. 약속 시간보다 15분이 지나서야 낯익은 청라산악회 산우들이 나타났다.
물독사님의 리딩에 따라 불광역 2번 출구에서 나와 구기터널 방향으로 걸어서 첫 번째 목적지인 족두리봉으로 향했다. 牛空은 북한산의 많은 산행 코스 중 족두리봉(비봉 능선에서 보면 족두리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 코스를 대표적인 어려운 코스 중에 하나라고 했었다. 몸이 풀리기도 전에 가파른 오르막길을 치고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많이 힘들다고 했었다. 오늘 오르는 족두리봉 코스는 牛空과 올랐던 대호아파트에서의 코스와 비교하면 훨씬 수월한 편이었다. 산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후미에 있었던 牛空이 일행 중 디져스님이 중도 탈락하였다고 전했다. 도저히 산행을 따라갈 수 없다고 하며 자기가 산행을 계속할지, 집으로 돌아갈지를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 일행은 족두리봉 가는 도중에 휴식을 취하면서 사진 몇 장을 남겼다.
오후에 비가 내리기 전에 산행을 마치기 위해서 서둘러서 족두리봉의 남은 코스를 올랐다. 족두리봉이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도착하여 몇 장을 사진을 더 남기고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하여 몇 차례의 오르내리막길을 걷고 또 걸어서 향로봉(멀리서 보면 향로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에 도착했다.
족두리봉
향로봉 정상에서 바라본 비봉 향로봉에서 보는 비봉과 북한산 봉우리들의 절경은 멋지다는 말로는 설명될 수 없었고, 사진으로 담을 수 없었다. 우리 일행은 향로봉에서 내려와 비봉을 가기 전에 간식 시간을 갖기로 했다. 각자 준비해 온 비장의 간식을 배낭에서 꺼내 물독사님의 깔개 위에 놓았다. 월남쌈, 홍어 무침, 간자미 회, 다양한 상표의 막걸리, 닭강정, 바나나, 미나리 전, 부추 전, 게맛살, 김치, 얼린 파인애플, 방울토마토 등이 화려하게 차려졌다. 맛난 간식을 챙겨 먹으면서 남은 산행을 위한 에너지를 보충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갖은 후에 진흥왕순수비가 있는 비봉(碑峰)으로 향했다.
나와 牛空은 지난해에 비봉 정상에 올랐기에 오늘은 비봉에 오르지 않기로 했다. 물독사님과 행복지킴이 부부도 비봉에 오르지 않고 비봉에 간 일행을 기다리기로 했다. 이쯤에서 중탈 했던 디져스님이 갑자기 나타났다. 산행 안내 앱을 보고 살방살방 계속 산행을 했다고 했다. 내가 본 디져스님의 모습은 여기가 마지막이었다. 후에 전해 듣기로는 후미에서 산행을 하던 인향님이 디져스님이 다리에 경련이 나서 약을 주셨다고 했다.
용감하신 나프리님께서는 진흥왕순수비까지 올라가서 인증 사진을 남기셨고 양지님, 텍사스님, 산이랑님, 아가타님, 화양연화님께서는 코뿔소 바위에서 인증 사진을 남기셨다. 인증 사진을 촬영하신 인향님께서도 물론 코뿔소 바위와 비봉 정상까지 오르셨다.
간식 차림
진흥왕 순수비(원래의 순수비는 훼손을 막기 위하여 1972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하여 보관하고 있다.)
코뿔소 바위 비봉에서 사모바위와 통천문을 지나서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문수봉으로 향했다. 사모바위의 사모는 사랑의 의미가 담긴 思慕가 아니고 조선 시대 관료들이 쓰던 모자인 紗帽와 같은 모양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모 바위
사모 바위에 오른 牛空
통천문
문수봉 정상에서 단체 사진 사모바위를 지나면 하늘로 통하는 문인 통천문에 이르게 된다. 통천문을 통과하여 오늘 산행의 마지막 오르막길을 힘차게 올라 드디어 문수봉(봉우리 아래에 위치한 문수사에서 유래되어 붙여진 명칭이다.)에 도착했다. 문수봉을 오르는 내내 행복지킴이 남편이 얼마나 가면 되냐고 묻고 또 묻는다. 물을 때마다 조금만 가면 된다는 뻔한 대답이 어디선가 들려왔다. 행복지킴이 남편이 아내와는 다르게 많이 힘들어했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牛空 따라 산에 오르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장거리 종주 산행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문수봉 정상에서 단체 사진을 남기고 성벽 길을 따라 대남문으로 방향을 잡아 하산을 서둘렀다. 이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배낭에서 우산(지난 주말 청광종주 뒤풀이 맥줏집 사장님이 준 것임)을 꺼내 쓰고 비에 젖은 내리막길을 조심조심해서 牛空(오늘 牛空은 모자, 셔츠, 바지, 재킷 모두를 등산 명품으로 장착했다.) 과 아가타(아가타님도 모자, 바지, 재킷 모두를 등산 명품으로 장착했다.)님의 등산 명품 의류에 대한 이야기를 귀동냥하면서 구기 탐방센터로 하산하였다. 구기터널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불광역에서 환승하여 지하철 6호선에 몸을 실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환승해야 하는데 일행 중 한 사람이 내리려 하지 않고 꿀잠을 자고 있었다. 하마터면 리사님이 '낙오의 여왕'이 될 뻔한 순간이었다. 리사님을 깨워서 서둘러 공항 철도로 환승하였다.
지난달 정기산행 때에 일행 대부분은 셔틀버스를 타고 쉽게 날머리로 내려왔는데 리사님 혼자만 무더운 날씨에 지친 몸으로 힘겹게 터덜터덜 걸어서 내려온 이력이 있었다. 그때의 이야기를 나누며 공항 철도로 환승하여 뒤풀이를 위해 청라로 go go~~
반나절의 짧은 산행이었지만 즐겁고 재미있었던 알찬 하루였다.
牛空 님 감사합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같은 명칭의 국립공원의 범위인 서울특별시 은평구, 서대문구, 종로구, 성북구, 강북구 및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일원에 걸쳐 있는 봉우리들을 아울러 북한산으로 일컫는다. 세부적으로 우이령을 기준으로 도봉구, 양주시, 의정부시 방면의 북한산 일부를 도봉산으로 따로 말하기도 한다. 서울에서 남산, 한강과 함께 서울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그런데 사실 북한산의 3봉우리 중 백운대(837m), 인수봉(811m)은 모두 행정구역상 서울특별시 영역이 아닌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영역으로 되어있다. 즉 엄밀히 말하면 북한산은 서울에 없는 셈이다. 그러나 서울 시내에서도 다 보이는데다가 역사적으로도 북한산은 원래 고양시 땅도 아니었다. 역사 이래 북한산은 양주(楊州)의 땅이었으며, 옛 양주는 조선 왕조 개창과 함께 한성부가 독립된 행정구역으로 분리되기 전까지는 한양 전역도 관할구역으로 두고 있었다. 삼국시대로 더 거슬러 올라가면 현 서울 강북 지역의 옛 이름이 북한산군(北漢山郡) 또는 북한산주(北漢山州)로 즉 아예 그냥 북한산이었다. 북한산이 서울에 없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 때문이다.
북한산의 다른 이름은 삼각산(三角山)으로, 고려시대부터 천년간 사용되어왔다. 백운대, 인수봉, 만경봉의 세 봉우리가 있어서 불리게 된 이름이다.[2] 식민 통치 이전에는 북한산보다 삼각산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다.
북한산이라는 이름은 서울(한양)의 북쪽(北漢)에 있어서 붙은 것이다. 한반도 북쪽의 북한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1915년 조선총독부의 고적조사위 사업을 시작으로 이 이름이 공식 지도 등에 기재되어 왔다. 1983년 전두환 정권 당시 건설부(現 국토교통부)에서 북한산 일대를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지정한 이후부터는 정부 방침에 따라 각종 방송과 신문 등 출판물, 교육자료에서 삼각산이라는 이름은 쓰이지 않게 되었고 민간에서도 이 영향으로 점차 쓰이지 않게 되었다.
북한산이라는 이름은 조선총독부에서 붙인 근본없는 지명이며, 따라서 삼각산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새로운 행정명 물론 북한, 북한산이라는 지명은 고대 시절부터 한강의 이북 지역, 즉 한산(漢山; 서울)의 북쪽 일대를 가리키는 단어(北漢山)였다.[3] 사용 빈도는 조선 후기부터 증가했는데, 삼국시대 시절에도 한강 이북을 가리키는 말로 존재했다. 신라가 한강 하류를 차지한 후 555년, 진흥왕이 직접 북한산 일대(한강 이북)를 순행하는 것을 기념하는 내용의 진흥왕 순수비를 설립했다. 삼국사기의 이 기록이 북한산이라는 지명이 최초로 역사에 등장한 경우다. 백제 시대부터 서울 일대를 한성이라 불렀기에 이전에도 북한산 혹은 북한성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신라가 한강 하류에 한주라는 행정구역을 새로 만드는 등 새로운 지명을 만들었기 때문에 북한산이라는 명칭이 진흥왕 때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논란이 되는 것은 일본 식민통치 이전에도 북한산이 곧 삼각산이었냐, 아니면 북한산은 서울 한강 이북의 산들을 뭉뚱그려 칭하는 것이었냐는 것이다.
비교적 최근에 명칭 정리가 끝난 만큼 중년층부턴 삼각산이라고 하면 대부분 알아듣는다. 산이나 지리에 관심이 없는 청소년이라도 알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한국의 학생들에게 친숙할 시인 심훈의 〈그날이 오면〉과 김상헌의 시조 〈가노라 삼각산아〉에 나오는 삼각산이 바로 이 북한산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육군 수도방위사령부의 부대가(歌)는 삼각산이라는 명칭을 채택했으며, 부대마크에는 삼각산을 형상화하는 삼각형을 그렸다. 대한민국 해군은 미합중국 해군이 쓰다 민간 불하한 PC 4척을 구매한 뒤 그 중 3번함인 PC-703을 삼각산함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고서에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 조선왕조실록, 고려사, 여러 고전 시가와 시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북한산은 신라에선 국가에서 명산대천으로서 제사를 지낸 장소 가운데 하나였고, 대한제국 시대에도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던 다섯 명산인 '오악(五嶽)' 중 하나에 들었다.[4] 북한산 인수봉의 옛 이름은 어머니가 아이를 업고 있는 것과 같은 형상이라는 뜻에서 부왘 '부아악(負兒嶽)'이었다.[5] 조선 시대에 북한산은 화산(華山), 화악(華岳)이란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서울(한양)의 진산(鎭山)이기도 하다.
북한산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약 1억 7천만년 전이다. 이 당시 현재의 북한산을 이루는 산체 자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하에서 수천만년에 걸쳐 마그마가 끝없이 관입되기 시작한다. 이렇게 관입된 마그마는 아주 엄청난 양이었고, 현대의 서울보다 더 큰 마그마방이 지하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마그마는 분화하지 못하고 오래도록 땅속에 고여있게 된다. 그리고 훗날 한반도에서 화산 활동이 잦아들며 마그마 관입이 멈추기 시작하자 훗날 북한산이 될 거대 화강암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이렇게 형성된 화강암들은 최소 지하 10KM 지점에 위치해있었다. 그리고 1억 4천년 전, 마그마 관입이 완전히 멈추고 수 많은 지질운동들을 거치며 조금씩 융기시작한다. 그리고 아주 오랜시간을 거치며 북한산을 덮고 있던 지층이 풍화되며 깍여나가며 조금씩 현재의 북한산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현대에 이르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북한산이 모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니며 북한산의 수십배에 달하는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가 현재 서울 아래에 기반이 되고 있다.
[출처]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