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 나는 남도 여행의 일환으로 고흥 소록도를 방문했었다. 당시 소록도는 녹동항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 배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었지만, 2009년 소록대교가 개통되면서 이제는 자동차로도 쉽게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하고 관리하기 위한 병원과 정착촌으로 유명한 곳이다. 과거에는 한센병에 대한 오해와 무지로 인해 환자들이 일제강점기 동안 소록도에 강제 격리되어 많은 핍박과 차별을 받았었다. 내가 방문했을 때, 병원과 정착촌은 역사의 증거로 남아 있었고, 한센인들이 가꾼 중앙공원은 그 아름다움이 인상적이었다. 현재도 소록도에는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 구역이 남아 있다고 한다.
또한, 고흥은 나로우주센터를 비롯하여 우주천문과학관, 우주과학관, 국립청소년우주체험센터, 우주발사전망대 등이 위치한 대한민국 우주 개발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이곳은 우주과학의 발전과 함께 우주산업의 미래를 이끌어 가는 중요한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늘은 2006년 소록도 방문을 목적으로 찾았던 고흥에 거의 19년 만에 청라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100대 명산 중 하나인 팔영산1)을 등반하기 위해 다시 방문했다. 고흥군 관광 홈페이지는 다음과 같이 팔영산을 소개하고 있다. '팔영산은 원래 팔전산(八顚山)이라 불렸으며, 중국 위왕이 세수를 할 때 그 봉우리가 비친 모습에서 영(影)자를 따서 팔영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신령할 령(靈)으로 표기되어 있어, 과거에는 신령한 산으로 여겨진 팔령산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1872년 흥양현 지도에는 팔전산(八田山)으로 표기되어 있어, 팔영산의 지명과 관련하여 다양한 이름이 전해지고 있다.
팔영산은 남쪽으로 일렬로 솟아 있는 여덟 봉우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1봉 유영봉(491m), 2봉 성주봉(538m), 3봉 생황봉(564m), 4봉 사자봉(578m), 5봉 오로봉(579m), 6봉 두류봉(596m), 7봉 칠성봉(598m), 그리고 8봉 적취봉(608m)이다. 또한, 팔영산에는 이 여덟 봉우리 외에도 선녀봉(518m)과 실제 정상봉인 깃대봉(609m)을 포함해 총 열 개의 봉우리가 있다.'
오늘의 등산 코스는 강산리 주차장부터 시작하여 강산폭포, 선녀봉, 유영봉, 성주봉, 생황봉, 사자봉, 오로봉, 두류봉을 거쳐 통천문, 칠성문, 깃대봉, 탑재, 능가사, 팔영산탐방지원센터까지 총 9.3km의 거리였으며, 휴식 시간을 포함해 총 5시간 20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약간의 구름이 끼어 있었지만, 맑은 날씨로 등산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인천에서 새벽 4시 30분에 출발한 산악회 버스는 고흥반도를 향해 5시간을 달려 곡강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의 해발 고도는 10m이므로 깃대봉 정상까지 약 600m의 고도를 올라야 했다. 등산로 입구에서부터 팔영산은 이미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주차장을 지나 오른쪽으로 약 400m를 걸어서 들어가는 등산로는 국립공원답게 잘 조성되어 있었다.
약 10분간 임도길을 따라 올라가 강산폭포에 도착했다. 강산폭포는 그 명칭에 걸맞지 않게 물이 적었지만, 물보라가 흩날리는 가운데 폭포 옆 바위면은 푸른 이끼로 덮여 있었다. 편백나무 숲의 피톤치드를 깊이 들이마시며 걷고 나서, 대나무 숲길을 지났다. 그 길을 따라 가파른 데크 계단을 오르며 첫 번째 전망대에 도달했다. 거기서 멀리 푸른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지점에 다도해의 섬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선녀봉은 단일 봉우리가 아닌 여러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단풍으로 물든 산과 바다가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곡강에서 선녀봉까지의 2.25km 거리는 매우 가파른 경사길로, 고도를 약 520m 올리기 위해 상당한 체력을 소모해야 했다. 선녀 1, 2봉을 지나 산녀봉 정상에 서니, 멀리 팔봉산의 여덟 봉우리가 동양화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고, 왼쪽 끝에는 깃대봉이 우뚝 솟아 있었다.
선녀봉에서 약 30분, 1km의 가파른 암릉길을 따라 안전 난간을 잡고 걸어서 성주봉 삼거리에 도착했다. 여기서 배낭을 내려놓고, '유달은 아니지만 공맹의 도를 선비처럼, 유건은 썼지만 선비의 풍모가 당당하여 선비의 그림자를 닮은 유영봉이 되었다'는 명칭의 유래를 가진 팔영산 제1봉인 유영봉으로 향했다. 유영봉으로 가는 길은 거의 사다리와 같은 급경사의 철제 계단이었다. 유영봉에서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다시 급경사의 철계단을 올라 성주봉 삼거리로 돌아와 배낭을 챙겨 성주봉으로 향했다.
성주봉으로 가는 길은 가파른 철계단을 통해 이어졌다. '성스러운 산의 주인, 군주봉을 지키는 팔봉, 부처와 같은 성인바위, 팔영산의 주인 성주봉이 여기 계시다'라는 명칭의 유래를 가진 성주봉은 팔영산의 두 번째 봉우리로, 높이는 538m였다. 유영봉(491m) 보다 높았으나 전망은 그리 좋지 않았고, 가까이에는 생황봉(564m)과 사자봉(578m)이 위치해 있었다.
성주봉(538m)에서 출발하여 5분 만에 '열아홉 대나무통 관악기 모양의 바위, 생황이라 불리며 바람이 불 때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는 전설을 가진 생황봉(564m)에 도착했다. 생황봉 뒤로는 선녀봉 능선과 다도해의 멋진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생황봉에서 사자봉으로 내려가는 길 앞에는 팔봉산 중 가장 도전적이고 스릴 넘치는 두류봉(596m)의 오르막길이 보였다. 생황봉에서 가파른 계단을 내려와 다시 올라가는 길을 따라 5분 만에 '사자바위가 주변을 군림하듯이 우뚝 서 있고, 그 모습이 마치 사자가 으르렁거리는 듯하다'는 이야기를 가진 사자봉(576m)에 도착했다.
사자봉 바로 뒤에는 팔영산 봉우리 중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오로봉(579m)이 있었다. '다섯 명의 늙은 신선들이 놀이터로 삼았다는 전설을 가진 오로봉' 뒤로는 팔영산의 하이라이트인 두류봉이 있고, 그 뒤로는 팔영산의 정상인 깃대봉도 보였다. 사자봉에서 오로봉까지는 1분 거리로, 두 봉우리는 매우 가까이 위치해 있었다.
'건곤이 맞닿는 곳, 하늘문이 열렸으니, 하늘길 어디인가요? 통천문이 여기 있다. 두류봉에 오르면 천국으로 통하리라.'라는 유래를 가진 6봉 두류봉(596m)은 5봉 오로봉에서 급경사를 내려온 후, 철제 안전 난간을 잡고 사족 보행으로 6봉 두류봉의 직벽 암릉을 힘겹게 기어서 올랐다. 팔영산의 8개 봉우리 중 중앙에 위치하는 6봉 두류봉을 오르는 동안 심장 박동은 쿵쾅됐고 쫄깃하기에 충분하였다. 5봉 오로봉에서 6봉 두류봉까지 걸린 시간은 약 10분가량이었지만, 심리적으로는 훨씬 더 길게 느껴졌다. 까마득한 낭떠러지의 급경사진 미끄러운 암벽길에서, 젖 먹던 힘을 다해 철제 안전봉에 매달려 아등바등거렸다. 두 손으로 철난간을 당기고 두 발로 암벽 틈새를 밟고 밀어내면서, 마치 용이 하늘을 오르듯 필사적으로 암벽을 타고 기어 올랐다. 이는 바로 6봉 두류봉에 오르는 길의 험난함과 위험성의 크기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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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류봉 사거리에서 '북극성을 축으로 하여 하루에 열두 번을 돌며 천만년을 변함없이 도는 칠성바위'라는 유래를 가진 7봉 칠성봉(598m)까지는 170m 거리였다. 6봉 두류봉에서 7봉 칠성봉까지는 약간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비교적 편안한 길이었다. 6봉 두류봉에서 약 250m 지점에 있는 팔영산 통천문을 지나 7봉 칠성봉에 도달했다. 7봉 칠성봉 주변에는 까마귀 떼가 맴돌고 있었다.
팔영산의 8개 봉우리 중 가장 거리가 긴 7봉 칠성봉과 8봉 적취봉 사이는 약 400m로, 나무 계단과 철제 계단을 걸어 20여 분이 소요되는 거리였다. '물총새의 파란색 병풍처럼 겹겹이 쌓인 초록의 그림자와 꽃나무 가지가 엮여 산봉우리를 푸르게 한다'는 유래를 가진 8봉 적취봉(608m)은 영덕의 팔각산과는 달리 팔영산의 정상은 아니었다.
8봉 적취봉에서 약 100m 이동하여 이정목에 도착하자 탱그리 수석대장이 팔영상 정상인 깃대봉(609m) 방향을 안내하였다. 이곳에서 깃대봉까지는 500m 구간은 큰 오름이나 암릉구간이 없는 완만한 능선길이었다.
하산하는 길에서 깃대봉에서 100m 지점에 서니, 오늘 등반했던 팔영산의 여덟 봉우리가 병풍처럼 늘어선 모습이 보였다. 깃대봉은 팔영산 중 유일하게 해발 600m를 넘는 봉우리로, 거기서 멀리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깃대봉에서 적취봉 삼거리를 거쳐 능가사2) 주차장까지 3.5킬로미터의 하산길을 서둘러 내려왔다. 임도길을 따라 내리막의 편백 나무 숲길과 팔영산 야영장을 지나 능가사에 도착했다.
능가사는 고흥반도 동쪽에 위치한 팔영산의 품에서 15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사찰이다. 능가사 건물의 처마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팔영산의 봉우리들은 아름다운 그림 한 폭이었다.
오늘 팔영산의 10개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산행을 마친 후, 업다운이 심한 암릉 등산에서는 등산 스틱보다 접지력이 뛰어난 등산화가 필수적이었음을 느꼈다. 오랜만에 청라산악회의 따뜻한 동료들과 함께한 산행은 더욱 의미 있고 즐거웠으며, 행복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였다.
능가사 주차장에서는 남도의 맛있는 음식을 기대하며 하산 후 식당으로 향했다. 남도 음식은 기대에 미치진 않았지만, 산악회 회장님이 특별히 준비한 남해 바다의 신선한 회와 무한 리필되는 대패 삼겹살로 푸짐하게 식사를 즐겼다.
하산식을 마치고 5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버스로 5시간 이상 이동한 끝에 밤 11시경 인천에 도착했다.
1)팔영산: 높이 606.8 m, 총 면적은 9.881㎢이다. 1998년 7월 30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고흥군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중앙의 성주봉(聖 主 峯 )을 비롯해 유영봉(幼 影 峯 )·팔응봉(八 應 峯 )·월출봉(月 出 峯 )·천주봉(天 主 峯 ) 등 8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세가 험하고 기암 괴석이 많다. 정상에 오르면 멀리 대마도까지 볼 수 있고, 눈앞에 펼쳐지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의 절경이 일품이다. 팔영산의 본디 이름은 팔전산(八 顚 山 )이었다. 중국 위왕의 세숫물에 8개의 봉우리가 비쳐 그 산세를 중국에까지 떨쳤다는 전설 이 전해지면서부터 팔영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예전에 화엄사, 송광사, 대흥사와 함께 호남 4대 사찰 로 꼽히던 능가사를 비롯하여 경관이 빼어난 신선대와 강산폭포 등 명소가 많다. 남동쪽 능선 계곡에 팔영산자연휴양림이 잘 조성되어 있다. 북서쪽 기슭에 있는 능가사는 1천 5백여 년 전 아도 (阿 道 )가 세워 처음엔 보현사라 했던 것을 정현이 인도의 명산을 능가한다하여 능가사라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능가사에는 13세기 말에 조각했다는 사천왕 상과 범종(전남유형문화유산 69), 그리고 능가사적비(전남유형문화유산 70)가 있다. 능가사 주변에는 용의 눈이 아홉개 들어 있다는 구룡정이 있다.
2)능가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인 능가사는 호남 4대사찰 중 하나로 규모가 크고 평지에 위치해 있다. 417년 아도화상이 창건하여 보현사라 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탄 뒤 조선 인조 22년(1644)에 벽천 정현대사가 중창하고 능가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벽천은 원래 90세의 나이로 지리산에서 수도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서 절을 지어 중생을 제도하라는 계시를 받고 이곳에 능가사를 신축하였다고 한다. 능가사는 호남 4대사찰 중 하나로 규모가 크고 평지에 위치해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5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한 보물 제1307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응진당, 종각, 천왕문, 요사채 등이 있다. 능가사는 2018년부터 템플스테이 사찰로 지정되어 '남쪽나라 바다 명상 여행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팔영산 자락에 위치해 팔영산을 둘러볼 수 있으며, 능가사를 지나 팔영산 자동차야영장이 인접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