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2024년 3월 31일

by 이영수

오늘은 나의 산행 동반자 牛空이 나를 홀로 남겨두고 백두대간 무박 산행을 떠났다. 나는 대구 '비슬산 ¹으로 홀로 산행을 시작했다. 유가사 주차장에서 출발해 유가사, 천왕봉 정상, 참꽃군락지, 대견사를 거쳐 다시 유가사²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원점 회귀 코스였다. 비슬산은 대구 남부 산지의 중심이며, 높이는 1,084m, 최고봉은 천왕봉으로 참꽃군락지로 유명하다.

2024년 3월 31일 새벽 5시, 잠을 설치고 부평구청역 4번 출구에서 산악회 버스를 타고 4시간 만에 유가사 주차장에 도착해 산행을 시작했다.

유가사 입구
비슬산 등산 안내도

유가사 경내 초입에서 벚꽃 나무 아래에서 인증 사진을 찍고, 김소월의 '진달래꽃' 시비를 지나치지 않고 사진을 남겼다.

유가사 경내의 돌탑
유가사 경내 벚꽃나무 아래에서
김소월의 진달래꽃 시비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안내판을 따라 정상을 향해 걸었다. 비슬산 정상인 천왕봉 아래에서 호사로운 점심 식사(새조개 샤부샤부, 소갈빗살과 삼겹살 구이)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정상에 도착해 팔공산을 비롯한 영남권의 웅장한 산세를 감상했다.

비슬산 계곡
비슬산 계곡
비슬산 등산 안내판
점심 식사 시간

비슬산 천왕봉에서 인증 사진을 촬영하고 참꽃 군락을 영접하기 위해 대견사 방향으로 산행을 재개했다. 목적지인 참꽃 군락지에 도착했지만, 기대했던 만개한 진달래는 없고 꽃망울만 가득한 참꽃나무가 나를 맞이했다. 시기를 잘못 선택해 비슬산을 찾은 것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비슬산 정상 천황봉에서
비슬산 정상 천황봉에서
몇 송이 안되는 참꽃
참꽃없는 참꽃 군락지
참꽃없는 참꽃 군락지
참꽃없는 참꽃 군락지

참꽃 군락지를 뒤로하고 대견사로 향했다. 석굴 앞에서 소원을 빌고, 3층 석탑³을 둘러본 후 유가사 주차장으로 하산을 서둘렀다.


대견사 석굴 앞
대견사 석굴 안
대견사 3층 석탑

비슬산에서 맞이하지 못한 진달래꽃의 아쉬움을 강화 고려산에서 달래야겠다고 생각하며 牛空을 채근해야겠다.


1)비슬산:산 정상의 바위모양이 신선거문고를 타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비슬’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최고봉은 천왕봉(天王峰:1083.4m)이다. 종래의 최고봉은 대견봉(大見峰)이었으나, 2014년 10월 국가지명위원회에서 천왕봉으로 변경했다. 남쪽으로 조화봉(照華峰:1,058m)·관기봉(觀機峰:990m)과 이어지며, 유가사(瑜伽寺) 쪽에서 올려다보면 정상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바위 능선이 우뚝 솟아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의 경치가 아름답고 봄철에는 철쭉·진달래, 가을에는 억새 군락이 볼 만하다. 스님바위·코끼리바위·형제바위 등의 이름난 바위와 달성군 옥포면(玉浦面)의 용연사(龍淵寺)를 비롯하여 용문사(龍門寺)·유가사 등의 사찰이 산재한다. 그 가운데 용연사 경내의 석조계단(石造戒壇:보물 539)과 대견사지 삼층석탑(大見寺址三層石塔:대구유형문화재 42)이 유명하다. 대구광역시 외곽의 위락지인 냉천계곡(冷泉溪谷)과 천명(天命)·장군수(將軍水) 등의 이름난 약수터가 있어 유람객이 많이 찾는다. 1986년 2월 22일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비슬산 [琵瑟山]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2)유가사: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유가사길 161 (양리 144)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이다. 827년(흥덕왕 2년) 도성(道成)이 창건하였고 889년(진성여왕 3년) 탄잠(坦岑)이 중창하였다. 1047년(문종 1년)에 학변(學卞)이 중수하였으며 1452년(문종 2년) 일행(逸行)이 중수하였다. 전성기에는 3,000여 명의 승려들이 머물렀다고 전하지만 임진왜란의 전화로 소실되었다. 그 후 1682년(숙종 8년) 도경화상(道瓊和尙)이 대웅전을 보수하였으며 다시 낙암(洛巖)이 중수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반포된 31본사사찰령에는 유가사가 동화사의 수반말사(首班末寺)로 되어 있어 당시 유가사의 사세가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76년 대웅전과 용화전을 중창하였으며 1979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용화전(龍華殿)·나한전·산령각·범종루(梵鐘樓)·천왕문(天王門)·백화당(白華堂)·동산실(東山室)이있다. 대웅전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고, 정면 4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인 범종루는 취적루(翠滴樓)로 불리기도 한다. 문화재로는 괘불(掛佛), 삼층석탑, 15기의 부도 등이 있다. 이 중 괘불은 주변의 마을 주민들이 가뭄이나 질병, 적군의 침입 등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봉안하고 소원을 빌었다 한다. 특히, 가뭄이 심할 때에는 괘불에 소원을 빌고 대견사터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렸다고 한다. 삼층석탑은 높이 364㎝이며 아래쪽에 있었던 원각사터에서 1920년에 옮겨온 고려시대 양식을 띤 작품이다. 또, 이곳에 있는 15기의 석종형 부도는 도굴의 화를 입지 않아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데 낙암당(洛巖堂)·월호(月湖)·휴영당(休影堂)·설청(雪淸)·해백(海白)·경수(景修)·진흘(眞汔)·명학(明學)·처명(處明)·사옥(思玉)·영규(靈圭)·도경·풍렬(豊烈)·하초(夏初)·세민(世敏) 등의 부도이다. 부속암자로는 비구니들의 수도처인 수도암(修道庵)과 경상북도의 3대 수도처 중의 하나인 도성암(道成庵)이 있다. 2010년 6월부터 음력 초하루법회를 없애고 일요법회를 강화했다. 여기도 비슬산으로 가는 등산로가 있지만, 등산로의 경사로가 급하고 험해 초보등산객들에게는 그리 추천하지 않는다.


3)대견사 3층 석탑: 달성 대견사지 삼층석탑(達城 大見寺址 三層石塔)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대견사지에 있는, 남북국 시대 신라의 삼층석탑이다. 1994년 4월 16일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284호로 지정되었다가, 1995년 5월 12일 대구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42호로 재지정되었다. 대견사의 창건시기는 구첵적으로 알 수 없으나 신라 헌강왕 대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또한 사명 유래는 당 문종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한다. 문헌기록은 조선시대의 왕실자료와 지리지 등에서 확인된다. 15세기 왕실자료인 태종실록과 세종실록에는 대견사의 석조관음상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이후레 간행된 문헌에는 사찰의 위치와 창건에 대한 이야기가 반복되며, 18세기 후반의 지리지부터는 사찰에 대해 "영무"(令無),"영폐"(令廢)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영남읍지와 현풍군읍지에 의하면 사찰에 구층석탑이 있고, 1592년에 사찰 건물이 무너졌다고 한다. 이와 같은 내용에 의하면 대견사는 9세기에 창건되어 석조관음상과 구층탑을 봉안하였으며, 16세기 전반까지는 사세가 유지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900년에 영친왕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하여 이재인이 중창하였으나 1909년에 다시 폐사되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조사자료에 의하면 사지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삼층석탑과 오층석탑, 마애불이 있다고 하였으나,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석탑 1기와 석불 1구만 보고되어 있다. 이후 1997년 자료에는 석축, 석렬, 우물지와 도괴어 있다가 복원된 석탑, 추정 배례석, 연화대석, 마애범라분 등이 보고되어 있다. 사지는 달성군의 정비복원사업의 일원으로 2002년에 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당시 조선시대 건물지 6동과 연화대좌, 납환 2점, 명문 막새편 등이 확인되었으며, 2014년에 복원사업이 진행되었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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