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산 볼에서 본 별무리
햇빛이 약해져가는 메세타의 저녁은 무척 쌀쌀했다. 광막한 들판 한가운데에 세워진 오두막 같은 알베르게에서 근사한 파에야로 든든하게 저녁 배를 채운 사람들은 9시가 되자 어디선가 취침을 알리는 종소리라도 들은 듯 일제히 잠자리에 들었다.
5월 메세타의 오후 9시는 그리 어둡지 않아 밤이라기보다는 저녁에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오늘 하루 적어도 이십여 킬로미터는 걸었을 사람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았다. 길을 떠난 지 며칠이 지나자 모두의 일과는 길 위의 여정에 맞춰져 있었고, 그들 중 대부분은 어둑어둑한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곧장 채비를 갖추고 길을 나섰다. 그저 하루의 마지막 밥을 먹고 나면 그것으로 밤이 시작되고, 몸이 따뜻해지면 그대로 잠들면 되는 것이었다. 나도 자연스레 눈이 감겼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세 시간여 만인 자정무렵, 갑자기 눈이 떠졌다. 그때 동시에 옆 침대 2층칸에서 네덜란드 여자가 램프를 켜더니 화장실에 갔다. 그때 나는 몸을 일으켜세우고 그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가 돌아오고 곧 램프를 끄자 그때서야 나는 방을 나섰다. 하지만 화장실이 아닌, 알베르게 출입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쌀쌀했던 저녁과는 달리 밤은 오히려 포근했다. 낮에 내내 울던 새들은 잠잠하고 대신 한번도 들은 적 없는 어떤 새가 멀찌기서 우-우-하고 울었다. 마치 한국의 소쩍새같은 그런 새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풀밭 어딘가에서 벌렌지 새인지 모를 또 다른 종류의 나즈막한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퍼져나왔다. 부드러운 빛이 어딘가 느껴졌지만 그게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곧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야말로 숨 막힐 정도의, 충격적으로 많은 별들이 밤하늘을 무수히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낮 내내 그렇게 찌뿌둥했던 하늘이 언제 그랬는가 싶게 맑게 개고 달은 없지만 별빛만으로도 사물을 식별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마저 들게 할 정도였다. 어렸을 때 알고 있던 그 봄철의 별들이 어디에 붙어있는지 분간하기 어려울만큼 너무나도 많은, 그러나 하나같이 밝은 별들이 하늘 어디도 빈 틈이 없게 빼곡히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은하수라는 건 찾아볼 수도 없이 그저 별, 별 뿐이었다. 어디서 어디를 찾아야 할지 난감했다. 어디에도 내가 알던 별들이 없었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이게 내가 알고 있던 밤하늘이 맞는지, 이 별들은 다 어디에서 온 별들인지... 모르고 있던 어떤 한 세계의 한꺼풀이 벗겨진 것처럼, 그렇게 몰랐던 작은 별들이 온 하늘에 가득했다. 그리고 이 숱한 별을 오로지 혼자 상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서워졌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나는 북두칠성과 북극성을 찾을 수 있었다. 이제껏 고향에서는 북쪽하늘에 북두칠성과 북극성만이 달랑 보일 뿐이었는데, 그 별들 사이로 그토록 무수하게 다른 별들이 있는지는 그때 처음 알았다. 별자리가 하늘에 있는 별들을 죄다 엮어다 만든 것인줄 알았으나, 사실은 단지 그 무수한 별들 사이에 하나의 표지판 구실을 하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별자리의 별보다 더 많은 별들이 하늘에는 원래부터 있었다. 북극성 이외의 다른 별은 거의 눈에 띄지도 않는 작은곰자리지만, 여기서는 그 외의 다른 별들 때문에 분간 자체를 하기도 어려웠다.
눈물이 났다. 그리고 오래 머물기도 무서웠다. 건물 벽으로 다가가 기둥을 한 손으로 붙잡은 채 다시 남쪽하늘을 바라봤다. 밤에 혼자 들판 한가운데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이 엄청난 눈들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 이 몰랐던 것들, 이 새로운 것들은 놀랍기에 앞서 두렵다. 모든 새로운 것들은 어떤 두려움을 안긴다. 하지만 이 별들은 내가 살던 곳에서도 원래는 비치고 있던 것이겠지.
별자리의 형상이 분간되지는 않아도 목동자리의 으뜸별이나 사자자리의 으뜸별정도만 알아본 채 그렇게 다시 숙소로 돌아왔지만, 이제는 호기심이 일고 다시 그 밤하늘을 봐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더 꼼꼼하게 그 공간들을 바라보고 싶어졌다. 엉뚱하지만, 그런 것들을 갑자기 알아채게 되는 순간이라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를 생각했다. 밤길, 별을 바라보며 길을 걸어가본다면...
그때 처음으로, 이거라면 죽어도 상관없다고 느껴질 그런 순간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이 꼭 그렇다고 생각해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과연 내 안에 그런 게 있는 걸까? 꼭 그런 게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있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