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3일, 갈리시아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매일같이 바라보는 이 풍경을, 끊임이 없이 이어지는 이 길 위에서의 걸음 하나 하나를 어떻게 담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그냥 먼지처럼 날아가버릴 것만 같다. 시골의 스페인 음식들은 정말 집에서 만든 것보다 못한 게 많고 지나치게 시끄러운 순례자들도 꼴불견이지만 그런 것들은 단지 찰나만으로도 충분히 잊혀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이 아주 맑고 선명한 대기의, 그리고 색채와 음영의 감각도 결국 이런 식의 상투적인 표현 안에만 갇혀버리고 말 뿐이 아닐까. 꼴랑 이런 단순한 표현들로 이 풍광과 이 바람과 공기의 내음을 이야기한다는 건 씁쓸한 일이다. 이런 나 조차도 대개는 그냥 무심히 지나쳐버린다.
천 년이 넘은 이 길을 거닌다는 것, 그리고 용인 시내를 혹은 안국동 뒷길을 거닐던 나의 두 다리와 나의 두 눈과 코와 귀가 다시 이곳에서 같은 식으로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아니 오히려 그 때의 선명한 감각을 발휘하지 못한 채 둔하디 둔하게 지금을 바라보고 있다...
내 앞에 놓인 달걀지단같이 생긴 토르티야 콘 초리소가 식어가고 있다. 여전히 싸늘한 바람... 다른 어느곳보다 더 시골스러운 갈리시아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묵기로 하고 지금 나는 근처 바에 앉아있다. 자연이란 어떤 정돈된 풍경에서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모든 게 뒤섞인 혼돈에서 자극을 주는 것 같다- 혼돈. 질서있게 자리잡힌 것 같은 모양은 단지 인간의 어떤 언어적인 기교에 불과할 뿐 자연은 어쩌면 그냥 혼돈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이 다양한 초록들. 어떤 하나의 강한 초록이 다른 작은 초록들을 압도하면서 하나의 색으로 언어화되는 과정들-
산티아고로 향하고 있다. 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이 단호함과 성실함은 산티아고라는 어떤 구심점이 있기에 가능하다. 모두의 삶 속에 어쩌면 존재할지 모를 산티아고- 근데 그 '산티아고'가 소돔과 고모라 같은 곳이라면 어떨까? 내가 알던 그 도시가 아니라는 사실에 충격받는다면...가고 싶지 않음에도 결국 내 모든 감각과 두 다리는 그곳을 향해 단호하고도 쉬임없는 걸음을 디딜 수 있다면- 결국 그 멸망의 도시를 향해 가는 것이 이 몸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일까.
그러나 그 도시는 아무도 가본 적이 없다. 가본 적이 없기에 오히려 소돔처럼 고모라처럼 불길하게 가정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