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가게로의 산책

2015년 용인의 어느 동네에 있었던 홍차가게

by 흘흘

동네에 홍차를 파는 카페가 생겼다.(걸어서 20분 걸리긴 하지만 같은 행정구역이니까 동네는 동네긴 하다) 홍차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카페가 수지 일대에서는 보기가 어려웠는데 이 동네에 생기다니, 좀 신기한 마음으로 언젠간 가봐야지 싶었지만 위치도 위치였고 대체로 한국에서의 '홍차'카페란 커피값의 2배에 달하는 홍차의 값과, 여느 커피점관 달리 친목을 도모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좋은 분위기(푹신한 소파와 파스텔톤 난색으로 꾸며진 공주풍 분위기)로 조성되는 경우가 많다보니, 나 혼자 홀가분하게 책보러 가긴 대체로 부적합한 편이었다. 현재 나의 독특한(!) 위상때문인지 요즈음에 연락이 되는 지인들은 대체로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인 경우가 많으니 홍차카페에 갈 만한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나, 동네가 워낙 후미진 곳이다보니 올 사람이 많진 않아서 기약을 미루고 있었다. 분명한 건 이런 카페는 오래 못 갈 것이라는 점이다. 홍차라는 아이템이 흔치는 않지만, 동시에 여전히 인기가 많지 않은 아이템이기도 하고, 가게의 위치가 동네 중심에서도 떨어진 아파트 상가 뒷편이라 사람들의 눈에 띄기가 여간 쉽지 않은 곳이었다. 유일하게 기대할만한 점이 있다면 동네 자체가 소비수준이 높으니 소수의 사람이나마 꾸준히 찾으면 가게가 유지가 될 수는 있겠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서울의 M동에 있는 홍차카페가 오늘내일하고 있는 까닭도 홍차카페가 들어서기에 그 동네의 입지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라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랬는데, 오늘 용인 친구가 직장에서 일종의 땡땡이(!)를 치면서 우리 동네에 '소카(요즘에 갑자기 주목받기 시작한, 시간단위로 대여가 가능한 렌터카다)'를 끌고 오겠다는 것이다. 혼자 운전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그는 쉬는 틈을 타 차를 끌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심지어 우리동네까지 오겠다고 한 것이었다. 그가 운전을 하는 걸 보니 나도 문득 운전을 하고픈 마음이 들었는데, 사실 누나 차가 내 명의로도 보험이 들어 있어서 차를 끌 수 있는 여건은 된다. 문제는 면허따고 13년동안 한번도 차를 끌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며칠정도는 연수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변에 그런 걸 도와줄 사람이 없다! 웬만하면 친한 사람한테는 부탁하면 안 된다지만, 일단 친하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운전 할 줄 아는 사람은 없다. 우리 동네까지 차를 끌고 온 친구도 이제 막 운전을 시작해서 누굴 도와줄 처지는 못 되며, 정작 차를 구입한 누나 또한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정도로 주차를 쩔쩔 매며 하는 지경이라서 도무지 왜 덮어놓고 차를 산 건지 모르겠다는 의구심을 낳게 할 정도다. 하지만 저 용기 하나만큼은 높이 살 만하다. 나도 일단 무작정 혼자 차를 끌고 나가 볼 일일까... 역시 아무래도 그건 안 될 것 같다.


아무튼 동네에 와서 근처 스타벅스를 가려는 친구말에 나는 곧장 그 카페를 떠올리고 그곳에 가기로 했다. 예상대로 카페는 정말 작았다. 테이블은 단 3개 정도였고, 그나마도 각 테이블 사이의 거리도 그다지 떨어져 있지 않다. 분위기 자체는 부담스럽지 않지만, 너무 작고, 뭣보다 중년의 주인이 보이는 친절하다만 아무래도 오래 노출되면 부담이 느껴지게 될 그 표정이 불과 몇미터 떨어진 내 시선에서 가시질 못하기에 혼자서 홀가분하게- 서너시간 이상의- 시간을 보낼 수는 없을 장소였다. 지인이 하는 곳이라면 경우가 다르겠지만 말이다.(그렇지만 지인이 테이블 3개중 1개를 5시간 이상 차지하면 그건 그거대로 기분이 좋지 않을듯. 이럴때 오래 머물러도 양심의 가책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스타벅스가 죽치기에는 좋은 장소이다.)

지난번 M동의 그 홍차카페도 다기에 관심이 많은 주인이 일종의 확장된 취미생활로서 장사를 시작한 느낌이 강했는데, 여기도 거의 그럴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다만 이 가게는 정말 차 자체에 좀더 집중한 듯한 느낌이다. 벽에는 일본과 영미권의 어느 국가에서 취득한 차 관련 교육 수료증같은 것들이 걸려 있고, 차는 20가지가 넘게 있었다. 그러니까 장사 자체보다는 자신이 공들여 우려낸 차를 불특정한 사람들에게 선보일 기회를 이 가게를 통해 마련한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일종의 돈 많이 드는 취미같은 느낌이랄까. 가게가 원체 작아서 큰 수익을 내기는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다. 가게에는 실제로 그의 지인으로 추정되는 중장년여성들이 모여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 카페는 티백으로 우려내는 차는 전혀 쓰지 않고 직접 차를 우려내는 것 같다. 제대로 관찰은 하지 않았지만 주문한 '우바'종의 홍차는 진하고 향도 괜찮았다. 카페에는 세트메뉴라는 게 있었는데 2~3잔분량의 차를 차주전자에 내주고, 스콘 2조각을 곁들인 것이다. 그 외에 다양한 다과와 핑거샌드위치등이 들어간 애프터눈 티세트같은 종류는 없었다. 아무래도 혼자서 자그마한 카페를 운영하는데 그렇게까지 일을 벌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스콘은 그야말로 그냥 평범한 스콘이었다. 내가 아는 지인도 카페를 하며 스콘을 팔고 있었는데, 그 스콘이 그렇게 엄청나게 뛰어난 것이 아님에도(아니 사실 스콘 자체가 태생적으로 맛이 뛰어난 음식이 아니긴 하다), 거기보다 맛있는 스콘을 찾아보기가 의외로 어려웠다. 재료의 다양화를 시도하지 못해서 그런가. 요거트맛을 연상시키는 사워크림이 딸기잼과 같이 나왔지만, 나는 사워크림보다는 클로티드크림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비싸서 곤란하겠지. 우리는 세트 하나에 찻잔을 2개 내달라고 부탁했다. 차주전자에 차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서 인심이 참 후하네, 이러다 망하면 어떡하지? 싶었는데 그 후 한참 뒤에 나온 스콘이 4조각인 걸 보고는 아차했다. 주인은 우리가 '2잔'이라고 한 말을 세트 2개로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저녁식사를 앞둔 오후 5시 30분에 스콘을 2개나 먹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니 티타임 정석대로 오후 4시에 주문했더라도 한 사람이 스콘을 처음부터 2개나 시켜서 먹는 경우는 흔치 않다. 스콘 자체가 너무 퍽퍽한 빵이라 2개나 먹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인은 설마하면서도 '참 많이도 먹는 사람들이네 각자 세트 하나씩 먹겠다고? 이상하네, 내가 잘못 들었을까? 세트 하나를 시킨 거 같은데, 한번 물어볼까? ...아니야 2개를 시켰다고 생각하자... 그래 2개를 시킨거야...2잔이라고 그랬잖아? 그건 세트 2개라는 뜻이라고 충분히 오인할 수 있고 그렇게 오인할 명분이 충분하지. 난 세트 2개를 만들어서 내갈거야. 그리고 2만원을 청구해야지' 라고 혼자 결론을 내린 것인지도 모른다. '저희 세트 하나에 1만원인 거 맞죠?'라고 물어보지 못한 걸 후회했다.


스콘 2개씩 담긴 접시 2개와, 크림과 잼이 담긴 접시 2개가 순식간에 우리 앞의 테이블을 잔뜩 차지하는 모습을 의아하게 쳐다본 우리 모습을 보고 뭐가 잘못됐느냐는 듯한 기색을 드러내기에, 결국 내가 '이거 세트 하나 맞나요?'라고 물었다. 주인은 '어머 어쩌죠? 제가 주문을 잘못받았네요' 한 뒤론 더 이상 아무말 없이 무안한 웃음이 담긴 표정으로 우리를 한참이나 쳐다보기만 할 뿐,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대답을 하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즉 자기가 할말은 이게 다라는 느낌같기도 했다. 곧 친구는 '저희 좀있다 저녁 먹어야 돼서 이거 다 못먹어요' 했는데, 주인은 여전히 그 표정인 상태로 '아유 어떡해요. 제가 실수했네요'를 얘기할 뿐, 이 상황에서 주인인 자신이 어떤 조치를 취하겠노라는 의향은 없이 '그거 정말 안됐네요'의 뉘앙스와 같았으며, 내온 접시를 도로 내갈 의향은 없다는 인상을 굳혀나갔다. 스스로 물리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저 이거는 저희가 시킨 게 아니니까 물릴게요'라고 우리가 말하길 기다린 것일까? 아니면 뒤에서 빤히 쳐다보는 자신의 지인들을 지원군으로 믿고 버틸 때까지 버텨보자는 마음이었을까.


사실 나도 같이 버티며 누군가가 먼저 말을 먼저 꺼내길 기다리며 이 어색한 분위기를 한껏 길게 끌어보면 어떨까 싶기도 했지만 친구와 좋게 만난 자리기도 하다보니... 결국 스콘 2개는 싸달라고 했다. 계산할때 주인은 '죄송해요 제가 주문을 잘못받아서', 라고 했지만 그에 알맞은 자기 나름의 조치도 없이 2만원을 그대로 청구했으며, 난 그냥 그 2만원을 다 내고 나왔다. 하지만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주인의 태도에는 이미 기분이 상할대로 상했고, 다시는 이 카페에 들르지 않기로 했다. 뭔가 기싸움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타협이 안 되는 분위기로 몰고 가는 그 느낌은 정말 싫었다. '정확한' 주문에 실패한 내 과실도 있으니 쌤쌤해서 5천원만 깎는 식으로 예상해봤는데 이런 식으로 싸움을 거시다니.

물론 내 과실도 없지 않을 상황으로 분쟁까지 벌어지는 것은 영 싫어서 그의 승리(?)로 마무리지었다만, 그러나 나 또한 내 요구사항을 정확하게, 그러나 상냥하게 얘기할 수 있었으면 오히려 더 나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차를 배불리(?) 마신 걸로 위안삼았지만 뒷끝은 대단히 찜찜했다. 여튼 주인의 미숙한 대처에 이렇듯 불만을 품게 될 나같은 손님들도 어느정도 있을 거라 생각하다보면 참 장사는 쉽지 않은 것 같다는 결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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