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속의 외삼촌

by 흘흘

엄마는 꾸준하게 내 꿈 속에서 등장하고 있는데, 침통한 느낌의 꿈도 있지만 때때로 약간 엉뚱하고 이상한 느낌의 꿈에서도 엄마는 곧잘 출연한다. 꿈 속에서만큼은 진지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지만, 깨고 나서 그 내용을 돌이키면 어이가 없고 웃기기까지 한 그런 꿈들이었다.

전에는 엄마와 나무 사이의 간격이 넓어 볕이 잘 드는 산 속을 산책하는 꿈을 꿨다. 이번에도 엄마는 자신의 임종이 멀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내 꿈에 나오는 엄마는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으로, 또는 죽은 모습으로 자주 나온다. 엄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마음이 이렇게도 계속해서 꿈으로 반복되고 있는 걸까. 다른 한편으로 엄마 당신조차 마음의 준비를 할 틈도 없이 갑자기 맞이한 현실에서의 임종을 대신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꿈이라는 것이 어딘가 늘 나사가 풀려 있듯이, 엄마의 표정은 뭔가를 가뿐하게 정리하는 듯한 미소를 띄었지만 그 표정을 띈 얼굴에서 나오는 말은 너무 생뚱맞았다.

"나 죽기 전에 쌍꺼풀을 풀려고 해. 떠날 때는 원래대로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어." 그러면서 갑자기 before and after로 엄마의 쌍꺼풀 풀린 눈이 보조 화면으로 등장하였다. 나는 꿈을 꾸는 와중에도이런 어처구니 없는 화면 전개에 약간 언짢아졌다. 하지만 이날의 엄마는 투병 전의 모습처럼 편안한 얼굴이었고 이 날따라 유난히 쌍꺼풀 진 눈이 선명했다.

엄마는 당신의 오남매 중에서 유일하게 쌍꺼풀이 있는 사람이었다. 엄마의 말로는 이십대 때 저절로 쌍꺼풀이 생겼다고 했었다. 하지만 꿈 속에서의 엄마는 사실 그건 거짓말이고 아빠(외할아버지) 몰래 수술을 했던 거라고 했다. 그러고 계속 살던 게 뭔가 걸렸단다. 그러자 우리 뒤에서 따라오던 외삼촌이 유쾌하게 말했다. "그래. 내가 같이 따라갈게."

하지만 내 세 명의 외삼촌 중 그렇게 '유쾌한' 사람은 없었다. 기본적으로 '매우 내성적'(엄마의 표현에 따르면)이고, 세 분 중 한 분은 엄마 돌아가실 때까지 거의 이십 년, 아니 거의 삼십 년 간 엄마와 왕래한 적이 없었으며 한 분은 외국에 체류 중이라 장례식에 찾아오지도 못하였다. 나머지 한 분도 엄마와 그다지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엄마가 늘 형제간에 우애가 없어서 아쉽다고 했던 부분이다- 그러나 사실 외삼촌들끼리는 간간히 전화로나마 왕래를 했었다는 얘길 들었다. 외할머니를 갑작스럽게 여의고 맏이로서 엄마 역을 했어야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도망치듯 결혼해버린 엄마에게 그렇게 친밀함을 느끼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냥 엄마 주변에 엄마가 그렇게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 자체를 본 적이 없었다. 자식에게조차 정신적으로 의지하는 것 자체를 꺼려했으니. 그나마 오랜 기간 만나던, 같은 용인에 살던 두 분의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그분들이 어딘가 같이 가자고 하면 기꺼이 그러겠노라고 했다(누나가 같이-엄마가 생전 기력이 있으면 홀로 틈틈이 가보던-고향에 가보자고 하면 극구 거절하던 엄마였다) 엄마가 병색에도 늘 해맑게 웃던 모습, 늘 밝은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 '꿈 속의 외삼촌'은 참 신기할 정도로 쾌활하고 익살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엄마의 시한부 인생에 대해서조차 농담을 하지만 엄마는 그 농담을 매우 재미있어 했는데, 나 역시도 전혀 모욕적으로 들리지 않고 그만큼 친한 남매 사이라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느꼈다. 꿈 속에서 그는 궂은 일이 있을 적마다 나타나 아무렇지도 않게 엄마를 놀리고, 그러면서 모든 일을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었다. 자식들이 같이 고향에 가보자고 했을때도 부담스럽다며 손사래를 치던 사람이 이 동생이 그럴 때만큼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이라니. 아마도 쌍꺼풀을 풀겠다는 엉뚱한 결심도 그토록 편하디 편한 외삼촌이 있는 자리라서 할 수 있는 얘기였던 거 같다. 살아 생전 마음 편해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기에 이 사람의 존재가 무척 편안하고 아늑해보였다. 아주 나이든 이에게, 그것도 주변의 많은 것들을 경계하고 내외하던 사람에게 저토록 가볍고 편안한 존재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함께 견디고 겪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일요일 연재
이전 13화엄마의 구름 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