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그 자체와 관련하여 이제 수업은 그만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했었다. 일단 비슷한 내용을 너무 되풀이해서 들은 것도 있지만, 나는 뭔가를 배우고자 함이 1차 목표는 아니었던 것 같다. 무언가를 허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늘 스스로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나에게 허용할 수 있는 것이 어떤 건가. 지금의 나를 허용해도 좋은가? 하지만 사실, 나 그 동안은 허용할 수 없는 게 무엇인지에 더 익숙했다. 이런 건 하면 안 된다, 이런 건 소설이라고 할 수 없다, 좋은 글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면 '안 된다.'
하지만 내가 끊임없이 뭔가를 쓰고 있다는 것이 반드시 '잘 쓴' 글을 위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기준에 잘 쓴 글이라는 게 있기는 있다. 다만 지금의 내가 겪을 수 있는 한계 안에서 '잘 한다'는 것은 그다지 유의미하지가 않다. 그저 글을 쓴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했다.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다. 닮은 것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그런 것은 없다는 것도 알게 되면서 뭐랄까,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닮은 것이 없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비참한 기분을 느끼다니. 그러나 이런 감정이 결코 아물지 않을 거라는 것도 느꼈다. 평생 가는 것들은 한 가지 모양으로 남아 있는 법이 없다.
그리고 그런 글은 이렇게 비공개로 쓰여진 채로 남겨지는 것이 아니었다. 작가라는 사람들은 그 누구가 되었건 간에 사방팔방 떠들고 싶은 욕구라는 것이 있다. 나는 들릴 수 있는 곳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나의 제약된 경험상으로는 그곳이 '광장'이라고 생각했다. 광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리고 광장에서 떠들 수 있는 자격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박수갈채를 받을 만한 자격을 말한다.
자리는 어조와 문체와 소재와 주제와 태도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 같다. 때문에 내가 무엇을 얘기할 것인가보다는 어디에서 얘기하는가가 중요했다. 아니 중요한 정도가 아니라 절대적이었다. 때문에 내가 떠들고자 하는 자리를 찾는 것은 나한테 매우 간절한 일이었는데, 이게 나로 하여금 글쓰기를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나는 '장소'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내가 반드시 광장을 필요로 하지는 않음을 깨닫는 중이다. 단지 개방되었다고 여겨지는 그런 구획이면 됐다. 공원의 어느 한 구석. 어쩌다 한번 드나드는 숲 속의 어느 공간에서 나는 이야기한다. 흥미가 생기지 않거나 갈 길이 바쁜 사람은 그냥 지나가면 되고, 어떤 사람은 잠깐 지나쳐 귀기울이다 발걸음을 옮길 수 있으며, 또 어떤 사람은 끝까지 다 듣고 갈 수도 있다. 때때로 앵콜을 청할지도 모른다.
아니,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내가 말할 수 있는 누군가의 귀에 들릴 가능성이 있는 공간이라면 된다... 아니 어쩌면 볕을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아 내가 걸어다닐지도 모르겠다. 걷기는 특별한 감정을 싣지도, 행복을 가리키지도 않았지만 그 자체로 언제나 충만했다. 글쓰기도 그러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