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친구에게 하고자 했던 말은 내 마음의 흐름과 관련이 있으며 내 자신에게 하는 말과 같았다. 그것은 글쓰기의 마음 아니 예술을 하는 마음은 나 혼자만의 작업이라는 생각에서 우리 모두 벗어나야한다는 것. 그것이 족쇄가 되고 굴레가 되는 것일 수 있으며 그것이 누군가를(그 자신은 물론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착취하여 어떤 결과물을 얻는 방향으로 이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공동작업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온전히 작가 개인이 하고 있는 개인작업의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분명 제도적인 차원에서 그 일로 직접적인 성과를 얻는 것은 나 자신일 뿐이기는 하고 그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도 나다. 모든 일이 다 그렇기도 하다. 그렇지만 유난히 예술이라는 이름의 작업에서 어떤 작업자는 이것이 온전히 나만의 일이고 내가 해내야 하고 이것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식으로 작업의 동기를 부여하려고 한다. 과정의 출발과 진입 과정에서 이와 같은 절박감이 동력을 내는 데에 유용하다는 것을 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말고 정말 그렇게 되는 일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태도만으로 작업 과정 전반이 장악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은 인생의 너무 많은 시간을 힘들게 하고 무겁게 하고 지치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과정은 괴로워도 일단 성과를 보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 산모의 기분이 된다고도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축적된 걸 보며 인생 헛살지 않았구나라는 마음으로 위안받는 게 맞는 건가? 그럼 그런 비슷한 기준에서 '축적'을 보지 못한 사람은? 헛산 건가? 헛산다는 게 무엇인가?
이 시대와 사회에서 이런 말들이 얼마나 비웃을 거리인지는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뻔뻔해지고 싶다. 우리 각자는 그냥 우리 각자대로 살고 있을 따름이다. 게으르게 살 수도 있음을 비호할 수도 있다만, 그보다는 좀더 포괄적으로 얘기하고 싶다. 누군가의 존재를 의미가 없다고 말한들 그들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을 뿐이며 실은 의미가 있고 없고의 문제도 아니다. 그럼에도 살아있는 우리로서 굳이 '헛된' 시도를 하려고 한다면, 그 모든 존재의 '의미있는' 삶을 보려는 노력과 시도가 중요하다. 무언가를 한다는 건 헛된 의미있음을 찾는거일 뿐. 헛된 의미없음에 관한 것은 아무것도 안 하면,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면 그만인 것들이다. 살아있는 존재로서 그렇게 되기가 어려울 뿐. 그것은 어떤 다른 상태의 나 자신에게도 포함된다. 성과가 나를 규명하지 않게 잡아먹지 않게 모든 과정이 소중할 수 있게 인생의 매 순간순간이-객관적으로 그것도 힘듦과 어려움의 시간이지만 너무 무거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그 바람이다.
친구에게 말하고자 했던 것은, 본질적으로 작업은, 개인작업 조차도 인간으로서의 내가 더 많은 사람에게 의존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고 그런 결과물로서의 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의식과잉은 충분히 가능하다. 사람 대 사람의 관계가 아닌 작업의 과정에서는 오히려 자의식 과잉을 극대화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의 의존성과 연결성은 변하지 않는다. 하중을 할 수 있는 한 낮추라. 돈이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도 실은 어떤 의존의 결과라서다. 돈이라는 절대적이고 결정적인 방법을 당장 찾지 못한다면 사실 그 결정적 최선을 얻지 못한 건 극히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다른 방향을 잊지 않도록 하라. 이 말들은 역시 탁월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생각할 가치가 있다.
동시에 다른 방향을 기억하라. 긍지를 뻔한 데서 구하지 말고 연구하라. 일마다 일의 질감 및 일과 일하는 주체 사이의 관계적 양상은 매우 다르다. 연기에 즐거움과 열의를 막, 혹은 오랜 시간에 걸쳐 느끼는 연기자의 인터뷰가 자주 나오지만 나는 연기자와 연기의 관계를 마치 일과 일하는 이의 일반적인 관계론인 양 인식하는 걸 경계하게 되었다. 연기는 생동적이고 즉각적인 것이 먼저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이 시대적 가치기준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모든 일이 연기와 같은 식의 열정과 몰입과 애착의 형태로 작업자와 관계를 맺을 수는 없다.
울고 있는 나를 보고 있는 차가운 나를 의식하라. 오만함을 다르게 가져보라. 의존하는 자로서의 오만함을 가져보라. 나라는 존재 덕분에 내 주변의 이들이 조금이라도 기운을 얻고 살고 있다는 뻔뻔한 믿음을 가져보라. 이를 위해서라도 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 요구하자. 내 작업을 위해 기꺼이 도움을 주시오. 가족처럼 대가를 바라지 않고 언제든 도와주시오. 또 시작이네 젠장, 하면서도 도와주시오. 그렇게 반복해서 도와주는 당신의 마음을 느끼고 그런 마음을 느끼게 만들어준 나 자신에게 선물을 주시오. 주고 받고라는 교환의 관계가 아니라 주고 버리며 받고 버린다는 생각을 해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