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의 일기를 통해, 엄마가 글 쓰는 것이 뭔지 깨달았다는 생각이 든다. 글쓰는 엄마가 있는가하면 기도하는 엄마가 있다. 기도하는 엄마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선한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고 스스로의 마음을 최대한 그 방향과 같게 하려는 그런 것들을 행한다. 나는 기도가 종교의 종류와 내용을 초월하여 결국 선한 것을 향하려는 의지, 좋은 것을 보고자 하는 의지라고 느낀다.
그런데 글쓰는 엄마가 반드시 기도하는 엄마의 고양된 상태를 반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글을 쓰는 행위 그 자체는 현재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관습에 물든, 자기가 아는 가장 진부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행위가 되기도 하다. 기도하고 묵상하는 엄마의 뜻을, 글 쓰는 엄마가 차마 다 헤아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든 사실이 글 쓰는 엄마를 통해 밝혀진다. 글 쓰는 엄마는 천진하게 자기가 지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기가 본 것, 자기가 믿고 있는 것, 자신의 번민, 자신의 욕망, 그리고 그 욕망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비추고 기록할 수 있다. 글 쓰는 엄마는 남들 앞에서 자신의 투병을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는 자기 자신이 '쇼'를 하고 있을 뿐이라며, 자신은 이 끝도 없는 병마와의 사투가 언제나 두렵고 힘들기만 할 뿐이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렇게 쇼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 것도 바로 엄마 본연의 모습이다. 엄마는 자신의 고독을 직시했고 그 고독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을 했다. 두려움을 느끼는 엄마, 남들 앞에서 용기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 엄마, 그리고 이 모든 걸 비춰내는 엄마. 그렇게 글쓰는 엄마는 의도하지 않은 가운데 스스로를 '구성'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기도하는 엄마의 고양된 뜻을, 글쓰는 엄마는 미처 파악하지 못한 가운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 고스란히 조명한다. 더불어 주변사람의 증언과 목격에 따라, 기도하는 엄마는 다시 확인되었고 이를 통해 사람들은 엄마가 보속을 받고 좋은 곳에 갔다고 믿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