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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규 Nov 08. 2024

대도시의 사랑법

반려관계에 대한 서툰 상상

주변 사람들과 함께 반려관계에 대한 얘기를 종종 나눴던 시절이 있었다. 어디서 어떤 식으로 살아갈지. 무엇을 같이 하고 나눌지- 그러나 지금은 이런 얘기를 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을 생각할 시간도 기회도 없지만, 할 필요도 없는 인생의 주기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반려관계가 유효한 시점은 청년기와 노년기인 것 같다. 즉 결혼 담론이 무르익기 전이나 혹은 사그라든 다음이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청년기의 경우를 들어 보여준다. 둘은 성애적으로 맞지 않지만 그 어느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소중히 여긴다. 세상에 대한 자신의 주관이 확립되지 못한 시점, 경제적으로 자립이 어려운 가운데 가족은 물론 미성숙한 또래집단의 거칠고 몰이해한 소통을 이겨내기 어려울 때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는 관계. 뜨겁지는 않지만 한없이 아늑한 관계. 편할 때 찾아 즐거움을 좇는 친구보다 한결 더 의존의 폭이 넓은 관계. 청년기의 반려는 심리적인 버팀목의 역할을 한다. 노년기에 맞닥뜨린 신체적 한계에 따른 반려관계의 불가피함만큼이나 이 시절의 관계 또한 생존이 걸릴 만큼 절박할 수 있다. 이 때의 경험은 이전에 없던 것이기에 각별하고 소중해서 마치 평생을 갈 것처럼 이해하기 쉽다. 혹 이 관계가 더는 유효하지 않게 되더라도, 마치 어린 시절에 쓰던 이불처럼 언제 어디서나 심적 안정을 취하고 싶을 때 그때의 기억을 꺼내면 다시금 마음에 안정을 누릴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들의 관계는 결혼과 일이라는 계기로 일단락된다. 그야말로 에릭슨이 제시한 바 있는 심리사회적발달과정이론에 딱 들어맞는 것 같다- 재희는 결혼을 통해 이상적인 동반자와 가정을 꾸리며 인생의 새 단계에 접어든다. 흥수는 비록 재희의 결혼이 기폭제가 되긴 했지만, 이전에는 틈틈이 해오는 수준이었던(혹은 제대 후 거의 손을 대지 않았던) 자신의 글쓰기 작업에 본격적으로 몰두한다. 90년대생 치고는 늦지 않은 시점(서른 셋)에 자리를 잡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에릭슨의 이론에 따르면 이들의 국면은 청년기에 가깝지만 이전보다 생애주기에 변화가 생긴 듯한 오늘날의 시점에서는 중년의 시간과도 겹치는 것 같다. 인생의 중심추가 관계에서, 가족과 일로 넘어가는 시점이다. 이를 통틀어 우리 사회에서는 '성인'이라고 부른다. 결혼을 하고, 자기 일에 주도권을 갖는, 가져야 하는 시기. 


성인기의 두 번째 단계인 중년기는 청년기에 시작한 일이 어느 정도 안정 국면에 접어듦과 동시에 성공의 향방을 가늠하는 시기다. 일정 정도의 성과를 보기 위해서 중년기에 일에 집중하는 것은 중요하다. 또한 청년기에 꾸려진 가정이 이제 본격적인 생산체계에 돌입한다. 자녀를 키우는 일이 일 만큼이나 중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나는 이 '가족'을 관계의 '안정화'측면으로 이해하고 있다. 꼭 가족을 이루지 않은 상태라도(동거형태라면 물론 유사가족도 아닌, 가족의 범주에 해당한다) 커플은 일종의 유사가족 형태이고, 실제로도 한국에서 커플은 서로간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가족 수준으로 부여한다. 설사 혼자인 상태라도 더는 방황하지 않고 혼자만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는 상태라고 나는 이해한다. 중년기라고 해도 물론 일반적인 수준의 '교류' 는 가족이 있든 없든 비슷하게 이어가겠지만, 더 이상 자신의 불안을 기존의 관계에 호소하지 않고 스스로의 자립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를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최대한 혼자만의 시간 속에 스스로를 잘 꾸리고 갈 수 있는가-가 중년기의 중요한 과업 중의 하나가 된 듯 하고, 그래서 반려관계를 이런 이유에서 오히려 고려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영화에서도 은연중 드러나지만 게이는 커플을 맺기가 쉽지 않다. 즉 커플형태로서의 안정화가 잘 안 된다. '남자'로 살려는 게이와 퀴어로 살려는 게이는 삶의 방향이 다를 수 있다. 자기 삶의 가닥이 점점 굵고 또렷해지는 중년으로 갈수록 더욱 그렇게 된다. 혹 그렇게 되더라도 혼자서 충분히 잘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서 서로에게 심리적 하중을 덜어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같이 살기에 분쟁, 타협, 포기(양보), 책임은 당연히 따라오는 필연이자 의무이다. 이게 어려우니까 커플로서의 안정화보다는 혼자로서의 안정화를 추구하는 중년 게이들이 많은 건지도. 물론 갈수록 혼인율이 떨어져가는 상황을 보자면 이게 꼭 이쪽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건 아닌 것 같긴 하다. 


사회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가족이 다른 관계보다 우선시되는데 인적자원의 확보 차원에서 그렇다. 그러나 가족 당사자에게 과연 가족은 그렇게 절대시될 수 있는 것일까? 대안가족, 연애가 매개되지 않은 반려 관계에 대한 상상을 종종 하지만 여전히 한국은 가족 중심 사회다. 그것도 절대적인 가족 중심 사회로, 사회복지의 상당 부분을 가족 관계에 떠넘기며, 한국인 또한 이를 당연시한다. 기혼자들은 대놓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려야 책임이 뭔지 안다는 둥,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둥 하는 말로 미혼자들을 모독(?)하곤 하는데 바로 이런 사고방식이야말로 한국사회가 얼마나 가족중심주의에 매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모든 관계는 크고 작은 책임과 의무를 동반한다. 서로에게 기대되는 역할이라는 게 있고 그 역할에 응당 요구되는 수행이 있다. 다만 한국사회에서는 이것이 가족에게만 절대적으로 유효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고, 나머지 관계에는 비교적 소홀하거나 경시한다. 가족에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기혼자일수록 이 경향은 더 심해질 것이다. 가족에게는 없는 시간도 쪼갤 수 있지만(혹은 쪼개야 하지만), 그 외의 관계는 시간이 남아돌아야 허용한다. 가족 이외의 관계가 사실상 방치되거나 소멸되는 국면에 처해질수록 가족 간의 유대와 가족의 성공에 절대적으로 매달리게 된다. 그냥 어떤 면에서는 한국인들이 가족 이외의 다른 관계에 대한 경험과 이해, 성찰이 부족하고, 서투르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니까 어떤 관계가 좀 인상적이다 싶으면 형제자매같다는 둥 모녀같다는 둥 자식같다는 둥 하는 말이 걸핏하면 튀어나온다. 반대로 가족 아닌 누군가와 각별해지면 의심부터 한다. 둘이 사귀느냐는 둥, 뭐가 있다는 둥, 남들 눈에 보기 좋지 않다는 둥... 관계담론 자체가 사회적으로 합의가 안 된 인상을 준다. 내가 살던 시골에서는 아직도 남녀 친구 사이는 둘 중 하나가 결혼을 하게 될 경우 자동 절교하는 일이 많았다. 서울 친구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데, 여전히 이런 상황은 서울에서도 은연중 볼 수 있다. 내 군대 동기도 나도 알고 지낸 '불알친구'같다던 여자사람친구와 결혼을 하자마자 연락을 끊었다. 


다만 파트너를 포함한 가족은 한국 뿐 아니라 지구상 어디서든 인간 1인의 관계의 시작이자 종착점처럼 여전히 인식되고 있으며 남다른 수행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고독에 직면하게 된 1인들은 그 마음을 품으며 세상을 떠나는 것 같다. 가족이 전제된 상태에서 가족 이외의 관계들은 당연히 '거리'를 상당히 중시하기 마련인데 때문에 가족이 전제되지 않은 1인 간 관계의 적정 선상의, 서로에 대한 책임과 의무에 대한 의식이 거의 마련되지 않았다. (여전히 '그런 게 있을 수 있어? 가족도 아닌데!' 라고 생각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할머니들끼리 초면에도 말을 쉽게 잘 거는 모습에 대해 생각한다. 이들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걸 서로 간에 어쩜 그렇게 잘 알고 있을까. 어쩌면 그렇게 공감의 미소를 서슴없이 주고받을 수 있을까. 역할에서 벗어난 사람들끼리의 홀로됨을 이해한다는 표현일까. 서로가 서로를 소외시키지 않는 것 같은 그 미소. (사실 말 들어보면 굉장히 가족적인 소재가 많이 나오긴 하지만) 물론 이는 동질적인 경험 아래 은퇴를 앞두는 혹은 은퇴를 넘긴 동료들 간의 이심전심같은 감정의 교환일 뿐이거나, 그냥 생면부지의 사람들 사이에서 보일 수 있는 최대치의 우호정도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웃음과 말씨에서 더 나아가보고 싶다. 모든 것이 의심과 불안, 체념으로 가득찬 이 도시 공간에서, 1인, 어쩌면 그 이상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람들 간 마음의 교환의 가능성을 생각하고 싶다. 조금 더 끈끈한, 그러나 그만큼 조금 더 서로를 견디고 책임질 수 있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관계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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