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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규 Nov 15. 2024

깨달음이 임박한 순간

재미있는 사실은 뭐냐면, 깨달음의 순간이 임박할 무렵의 나는 최고조로 예민해져 있을 거라는 점이며, 그 예민함에 매우 무력해져 있는 상태일 거라는 점이다. 모든 것이 다 드러난다. 모든 것들에 다 의식의 불이 켜지고 그 모든 것에 내게 익숙한 감정과 관념이 투영된다. 느닷없는 앙심이 드러나는데 그 앙심의 대상이 사실은 내 자신이었음에도 주변의 어떤 상황이든 그것을 빌미삼아 그것을 표적삼아 날카롭게 감정의 화살을 겨냥하고 마는 것이다. 이 얼토당토않은 어리석음의 사이클은 평상시의 나였다면 어떻게든 통제해보려 노력했을 것이지만, 어느것 하나 내 통제의 범위 안에 들어가지 못한 채 그것들이 그렇게 펼쳐져 보이는 것을 지켜만 보게 된다.


그러면서도 순간 알게 된다 이것들은 계속 나한테 있었던 것이고 통제했다기보다는 감췄을 뿐 별달리 해소된 적은 없었다는 사실을. 오히려 감출 여력조차 해체된 이 상황을 반갑게 맞이하는 편이 좋겠다. 나의 어리석음이 어디까지 가는지 볼 수 있게 된 이 상황을 말이다. 겉보기에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운 듯 하지만 나에겐 심각하고 부들부들 떨릴 일이다. 깨달음에 대해 나는 깨달았다라고 말하는 경우는 없을 듯 하다. 그저 어떤 시선이 있을 것이다 이야기하지 않지만 '이미 보고 있는' 어떤 시선이. 당혹스럽지만 굳이 부인하지도 않는. 그런 나는 조소하지도 냉소하지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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