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동의 스타벅스는 처음 와 보았다. 북한산의 주능선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다. 보통 북한산하면 떠오르는 풍경과는 사뭇 다른 형태라서 저게 내가 알던 인수봉인지, 백운대인지 헷갈릴 정도다. 경치 좋은 곳마다 스타벅스는 작정하고 가게를 차리는구나. 굳이 여기까지 와서 그를 만날 필요까진 없었던 것 같은데. 내가 따릉이를 타고 이 혹한 속에 은평뉴타운까지 가다 형을 만난 게 원인이라면 원인이다.
그와 헤어진 지 7년은 되었던 거 같다. 딱히 그란 사람에게 별다른 미련은 없었지만-그 후에 이어진 시작도 끝도 없는 몇 차례의 단발성 만남과 비교되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해마다 3년차까지는 헤어진 날을 기준으로 오늘이 헤어진 지 1년 됐네, 2년 됐네 하고 되씹곤 했다. 그렇게 3년 지나고 나서부터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었는데, 그 즈음에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번호는 지웠어도 부고 문자에는 그의 이름이 상주로 올라왔으니 당연히 그라는 걸 알 수 있었고, 딱히 나에게 문자를 보내려 의도한 게 아니라 단체 문자에 내 이름이 섞인 모양이었는데 그때까지도 그가 내 번호를 지우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얼떨결에 조문을 갔다왔다. 딱히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장례식장이 너무 휑하면 안 좋지 않을까. 머릿수라도 채워줘야 하지 않을까, 이런 걱정을 내가 왜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난 뜬금없이 괜한 걱정과 안 좋은 상상을 하고는 안 해도 되는 일을 할 때가 종종 있다. 이번에도 뭐 그런 거였다. 걱정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 그의 아버지 살아 생전 돈독했던 사람들, 그의 어머니 지인들이 조문을 많이 왔고 그도 나랑 있을 때만 사회 생활 부적응자인 척 했던 모양인지 예전 직장 동료들까지 인산인해를 이루어서 나는 몰래 왔다 가도 될 뻔한 상황이었다. 조의금을 내고 나니 육개장은 먹고 가야겠단 생각만 안 했다면 말이다. 그와 마주 앉은 나는 아무것도 얘기하지 않고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듣고 있다가 새로 들어온 조문객을 맞이하러 그가 나가는 사이 냉큼 나와버렸다.
평일의 오후였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은 많았다. 연령대도 다양했고, 노트북을 앞에다 두고 작업인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내 옆 테이블에 앉은 커플들처럼 책을 들고 와서 읽고 있는 사람들도 꽤 눈에 띄었다.
"너는 어떻게 살아. 지난번엔 물어보지 못했어."
"그럴 시간이나 있었을까. 정신 없었겠더라."
"그래 아무튼- 너는 잘 지내는 거지? 좋아 보이네."
"좋아보여? 어디가 좋아보이는데?"
"또 왜 그러니. 오랜만에 보는 건데 시비부터 걸고.'
"시비라는 표현은 좀 세지 않아? 그냥 언성 높인 거 가지고"
형은 더 말하지 않았다. 나는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왜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늘 어떤 사람에게는 나도 모르던 신경질이 나오고 어떤 사람들보다 몇 배의 예민함이 발휘된다. 나의 경우는 늘 남자들에 한해 그랬다. 그게 헤테로든 게이든- 남자한테는 그래도 된다고 믿는 건지도 모르겠다. 형에게는 더 심했던 거 같다. 무슨 이윤지는 모르지만 그에게는 내가 미안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미안해도 그가 미안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고, 뭔가 낯을 붉힐 일이 있다 해도 내 자신이 무안할 상황만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그가 오래 버틴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나는 그 전후와 비교하건대 이상할 정도로 상대가 얼마나 버티나 두고보자는 심술이 심했던 것 같다. 형과 헤어지고 나서 느낀 것은 허탈함이지만 동시에 묘할 정도로 이상한 해방감을 맞이했다. 성욕이 줄은 건지, 아니면 누군가와 얽매이는 것에 내심 부담감을 느낀 건지 더는 그 누구에게도 예민하게 굴지 않으려고 노력은 했다, 실제로 어땠을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그냥 남녀 공평하게 모두에게 적당히 예민하고 적당히 여유로운 태도를 취하는 기조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나의 예전 습관들이 그를 보니 다시 나타나는 것 같다. 걔가 변해? 7년동안 그 개 같은 성질 하나도 안 변했더라, 라고 그가 누군가에게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듯.
"그래도 언성 높였다고 인정은 하네. 전 같으면 내가 언제 그랬냐고 따졌을텐데."
형이 자기 앞에 놓인- 내가 구운 쿠키를 집어서 먹기 시작했다. 원래 그는 과자를 먹지 않았고, 뭘 구워 와도 시큰둥했기 때문에 뭔가를 만들어서 줄 생각이 들지 않는 자식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하곤 했는데.
"이거 팔아도 되겠다. 초콜렛 넣은 거야?"
"이거 아리흑밀이라고, 이번에 새로 나온 국산 밀 품종이야. 가루 자체가 까만 거야. 서울우유 버터 쓴 거고, 한살림 유정란에다 유기농 마스코바도 넣어서 만들었어, 모리셔스산이야... 아 이런 거 원래 관심 없지 형은" 나도 모르게, 상대가 누구든 내가 만든 과자나 빵을 먹고 한마디라도 하면 자동적으로 내가 하던 말들이 튀어나왔다.
"아- 나도 전에 창업 준비로 카페 생각하면서 카페베이커리 수업 들었었어."
"뭐? 그때는 베이킹 자체에 관심 없지 않았나?"
형은 쿠키를 만지작거리다가 말했다. "그땐 할 수 있을 줄 알았지."
"그래 남들 한다고 따라하는 거 딱히 좋진 않아. 그런 사람이 하는 카페는 진짜 티가 확 나거든. 뭐 빵에 꼭 영혼이 있어야 할 필요까진 없지만 그냥 맛 자체가 없는 거 같아." 나는 케이크 사진을 찍는 여자를 보며 딴 소리를 했다.
"형이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야."
"이런 식으로 만들어서 팔면 나름 잘 될 거 같은데."
취미로 만드는 거랑 장사하려고 억지로 매일 만드는 거는 다르다는 둥, 베이킹 잘 해도 다른 무수한 이유들로 일 관둔 경우는 부지기수라는 말을 하려다 더 이상 그를 피곤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잠자코 있었는데,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하긴, 이 얘긴 예전에도 내가 했던 거 같다. 네가 그랬지. 자기는 글 쓸 건데 왜 그런 소리 하냐고."
"아, 차라리 그때 뭐든 했어야 했나. 그땐 그래도 가게 차린다는 애들 많았는데." 나는 손톱 옆을 쥐어뜯으며 형을 봤다. 그는 어느새 후드를 벗은 채 새로운 쿠키를 입에 넣고 있었다.
"그래서 글은 잘 쓰고 있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알았어, 아니 사실 전부터 알았는데 말하지 않았어- 자 들어봐봐, 어차피 또 이런 얘기 할 일도 없을 거고- 나는 이제서야 내 세계관을 알게 되었어. 그리고 동시에, 나의 세계관에서 나는 패배했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까 최종적으로 나는 망했고 배드엔딩으로 끝났다는 거를 알았는데 인정하기가 어려웠어. 이제껏 쏟아부은 뭐라고 해야하나, 내 마음들이 너무 아까워서, 그 마음들이 잘못된 세계관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것이 분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
"뭔 세계관? 네 세계관이 뭔데. 그냥 잘 먹고 잘 사는 거 아니었어? 그 세계관에서 너는 승리자일텐데."
"와... 솔직히 내가 뭔가 얘기 좀 늘어보려는데 형이 지금 그런 식으로 깨는 거 좀 싫은데 뭐지, 좀 신기하거든? 내 생각에 대해 질문을 할 줄 알아? 그래, 비꼬는 건 여전한데, 질문이라는 걸 할 줄 알아? 7년 전에는 못 보던 행동인데 형은 많이 변했네?"
"비꼬긴 뭘 비꽈. 얘가 또 왜 이래- 나 지금 '얘' 대신 '이 새끼'라고 할 뻔했거든?"
하지만 우리는 둘 다 실실 웃고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어- 내가 이미 실패했다는 것을... 왜 글을 쓰겠다고 했던 걸까.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는데. 나랑 같이 학교에 다녔던 사람들은 지금 도서전에서 사인회를 하고 있던데. 그들을 이미 알고 있어서 벼르고 별렀다 사인을 받아가며 기뻐하는 거야. 걔들은 신인도 아니고 이미 몇 권의 책을 내고 그런 걸 하고 있는 거야... 누군가에게는 걔들의 사인이 벼르고 별러서 드디어 얻게 되는 종류의 것이었던 거야. 처음부터 뭘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지나 않았으면 좋았을텐데. "
"네가 그런 욕심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내가 너무 관심이 없었던 건가"
"아니- 그거는 누가 관심을 가지지 않기를 바랬던 거고 보이려고 한 적도 없었어- 생각해보니까 내가 내 세계관을 몰랐던 거 같아. 나는 그런 야심만 있었고 실천할 생각은 없었던 거야. 처음부터 알았으면 했을까 생각해봤는데- 몰라. 안 그랬을 거 같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부러웠다 이런 게 아니고 패배했다는 마음을 알고 나면 오히려 명료해지는 게 있다는 그런 말을 하려는 거였지만- 형한테 얘기하고나니 꼭 그냥 부러워 뒤지겠다처럼 들리겠군... 무슨 얘긴지 알겠어?"
친구들에게 열렬하게 떠들던 얘기들이 형에게 하면 맥이 빠지면서 이상하게 빠질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별 말도 없는 그에게 짜증을 내곤 했다. 그때의 상황들이 다시 반복되고 있는 것 같았고 그게 거슬렸다. 또 '드러운' 꼴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옆 테이블에서 각자 책을 읽고 있던 커플이 어느 새 엎드려 자고 있었다.
"나는 그냥 네 안부만 듣고 말려고 했거든."
"하긴 그래. 형은, 매번 잘 지내냐, 라고 묻고 그 대답이 어떤 거든 '잘 지내네'라고 혼자 판단하는 사람이었지. 그게 너무 꼴보기 싫었어. 마치 네가 어떤 상태이든 네가 대답할 수 있는 거면 내 기준에 너는 잘 지내는 거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
"왜 그러냐..."
"그럴 거면 뭐하러 물어봐? 지 안에서 답은 다 정해놓고서. 그래 일부러 길게 얘기했어! 못 지내는 거 설명하고 싶어서. 못 지내는 거 납득 좀 하라고. 쿨한 척하느라고 헤어지고 나서도 연락은 했지만 정말 너무 짜증났어"
그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바보같은 놈..."
그의 손이 내 머리칼을 쓸고 지나갔다.
"잘 지내야지."
문득 그의 어깨 너머로 북한산이 보였다. 산 그늘이 칠부능선을 넘어 그 아래까지 내려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