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욱의 오늘의 작가전 마지막 날
현란한 칼질이 없어도 집안의 주방에서는 요리들이 매일같이 만들어져 나온다. 집이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꾸 이런 생각을 한다. 식당에선 지금보다 좀더 손끝이 여물어야 할지도 몰라.
효율적일 수 없는 동작들은 직업의 현장에서 추방당해야만 할까? 10여년 전 빵집에서 나의 손 끝에서는 반죽들이 둥글려 나오지 않았고 담당자는 나 들으라는 듯 저런 신입을 들여서는 안 된다는 말을 다양한 표현으로 변주하며 끊임없이 말했었다. 언젠가는 야무지게 되겠지 그게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새를 참지 못하고 나는 그곳을 뛰쳐나왔지만 지금도 종종 그 치열한 현장을 떠올린다. 여전히 나는 빵을 만들고 때때로 둥글리기를 해보지만 역시 집에서는 그 업장에서 한번에 수십개의 둥글려진 반죽을 만드는 것만큼의 열심을 기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왜 집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업장에서 하는 것처럼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나의 쓸모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프로페셔널함에 대한 강박이 있다. 다양한 활동들을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프로페셔널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꼈다. 언젠가는 뭐 하나라도 그렇게 되어야 밥벌이를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모든 작가들이 다 저마다 자기가 프로페셔널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정말일지도 몰라. 어리숙한 척하면서 정말 그런 능란한 사람들일 거라고 냉소 없이 생각한다.
동영상 속의 너의 얼굴을 보았다. 그 누구를 만나도 어색한 표정을 짓는 너. 이제 지금쯤이면 제법 오래 산 것도 같은데 여전히 사소한 몸짓 하나조차 능숙해지지 않은 것 같은 너. 어디로부터인지도 모를 어떤 시선을 의식하며 어색하게 손을 입에 갖다대기도 하고 얼굴을 쓸어내리는 너. 이젠 늙어가기까지 하네. 이건 정말 보여진 너의 어색함때문일까 아니면 너를 보는 나의 시선의 어색함때문일까
남자에 대한 생각을 한다. 모든 남자들이 자기 안에 프로페셔널한 구석 하나쯤은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 같다. 직업 사교 취미 운동 집안일 뿐만 아니라 면도를 할 때라든가- 섹스할 때의 허리놀림이라든가 어쩌면 마스터베이션의 뒷처리 같은 것 중 어떤 건 누구보다 자신이 있을 것 같은 아니 사실 근데 내가 남자라고 생각-실감-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남자흉내조차 내지 못하는 것 같은데 남자패싱은 되고 있으니까 그냥 그런대로 살고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하나
소의 목에 거는 듯한 방울은 어설프게 바닥을 구르다 다시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세우더니, 이내 다시 널부러지고 넙죽이고를 반복하며 소리를 냈다. 날렵함이나 민첩함과는 거리가 먼, 굼뜨고 어리버리한 그 움직임들. 그러나 어딘가 모를 신중함은 이 모든 움직임들이 진심이라고 믿게 만든다. 능숙함으로부터 인간이 이런 경지에까지 오를 수 있구나 하는 경외감을 느끼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서투르고 어설프지만 상대를 향해 신중하고 매 순간이 진심인 듯한 마음으로부터는, 인간을 넘어 그 생명감으로부터 느끼는 근원적 뜨거움을 느낀다. 사실 이 작품의 이름은 '서로를 아껴주는 마음'이지만 다른 작품인 '아는 사람의 모르는 밭'에서라는 제목이 좋았다.
한 작업마다 다양한 움직임과 소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혹은 연쇄적으로 발생하는데 하나의 움직임이 다른 움직임, 그리고 하나의 움직임이 다음의 움직임과 갖는 관계가 서로 엮이고 겹치면서 네트워크가 되었으며, 이것이 겹치고 겹쳐 n승으로 불어나니 작업 하나로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감상을 가능하게 한다. 심지어 공간에 차분하게 머무를 수 있도록 자리와 읽을 글이 마련된 것도 좋았다. 언제까지고 내내 있고 싶었다.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온 걸 후회했다. 처음부터 갔다면 정말로 매일 같이 하루 한 시간은 앉아있다 갔을 것이다. 하루는 허튼 생각을 하다 다른 하루는 그 생각을 지우고 다른 생각을 했을 것이며 또 다른 날에는 잊었던 그 생각이 허투름을 벗고 말끔해진 채로 나타나 놀라게 할 것 같았다. 서울 한복판에는 그렇게 머무를 만한 자연물조차 보기 힘들다.
오늘의 작가전에 마련된 소개문들이 하나같이 어렵지 않고 이해하기 쉽게 쓰여져 이 점도 좋았다. 사실 아무리 쉽게 써도 선 채로 미술과, 텍스트를 동시에 소화하는 게 늘 수월하지 않았는데 이 전시는 워낙 긴 호흡을 갖고 볼 수 있게 자리를 깔아놓으니 텍스트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충분한 여유가 주어진다는 점에도 흡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