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월 14일

by 흘흘

안녕하세요?

이렇게 메일을 보내려니까

약간 쑥스러운 생각도 드네요...

저 역시.. 메일친구를 사귀고 싶어 이렇게 띄우게 되었습니다..

이런 말을 벌써부터 하게 되면 실례가 될진 모르지만..

메일을 처음 띄우고..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얘기를 하고서도..

언제나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네요..

사실 메일친구...구한다는 말은 많이 접하게 되지만,

실제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주고 받는 일은 드물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저...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상대방의 생각이나 느낌에 관심을 갖고 싶은데..

그리고 언제든 집중해서 그 사람의 느낌을 전달받고,

또 내 느낌과 생각을 전달하고픈 생각이 드는데,

몇몇 사람들은 '메일친구'를 한정된 의미로 바라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물론, 그렇게 심각할 필요까지는 없지요.

자신의 일상에 관심을 가져주는 친구를 사귄다는 거..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그저 이야기를..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나고 싶은 것이죠.

그리고 그 이야기를 오랫동안 나눌 수 있는 친구 말이죠.

이상해요...그저 기나긴 겨울,

심심한데 메일이나 주고 받으며 시간을 때워볼까하는

일회적인 목적으로 친구를 사귀게 되는 경우가 적지가 않거든요.

님..역시 그러실까요..?

정말 오랫동안 메일을 주고 받고자 하는 건 지나친 욕심일까요?

단지, 상대방한테 심심한데 얘기나 하자는 식의 메일을 보낼 생각은 아니지만..

그리고 꼭 사람들이 일회적인 목적,

아니면 다른 목적으로 메일친구를 사귄다는 얘기도 나오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아마 그렇지 않을리라 생각해요.

그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알 수 없는..그런 작용으로 인해서

자기도, 그리고 상대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끊기게 되는..뭐 그런 얘기들이겠죠.

그걸 탓할 수는 없을 거에요.

그래요...나 역시 그런 것들을 의식하진 않으려 해요.

상대방이 편해야 나도 편할 수 있는 거니까..

벌써부터 이렇게 많은 얘길 꺼내면 부담스러울까요?

그리고 메일을 띄우기조차 싫어질까요?

그저...이야기를 건네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이런 생각에 이런 글을 띄웠을 뿐이니..

너무 부담갖지는 말아주세요..!


편하게..그리고 자유롭게..한계를 가지지 않고,

그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세계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

너무 거창하다 싶지만, 그저 편하게 자기 얘기,

그리고 상대 얘기에 귀기울여가며 관심가져주는

그저 그런 친구를 찾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제가 사람들에게, 님에게 그런 친구가 될 수도 있잖을까..

뭐 이런 섣부른 기대도 하게 되네요.

안된다 하더라도...그렇게 실망하진 않으려고 해요^^

너무 이랬다 저랬다 하는 느낌이 드나요?

후후...그런 건 아니지만....그저 친구, 그리고 가능성이 있는 존재..

언뜻 보기에 사소하게 보일듯하지만,

거기서 큰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는..뭐 그런 얘기를 하려는 거였어요..

부담이 안되셨으면 하네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내가 지금 당장 1년을 매달려서 해도 쉽지 않을 일이 지난 20여 년간의 글을 아카이빙하고 정리하는 일이다. 아니 사실 더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그렇게 따지면 30년까지도 될 거 같다. 친구사이에서 지난 90년대부터 발간한 글들을 아카이빙했던 전시를 보면서 나도 내 안에서의 퀴어함과 관련된 흐름을 짚어보고 싶어졌다. 이것은 반드시 성적 지향만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전반의 어떤 '이상스러움'이 글에서 어떤 식으로든 드러나는 걸 90년대 다이어리에서부터 느끼고 있고 그걸 아카이빙하는 것도 꽤 중요한 작업이 되겠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다만 나는 아직도 20대를 객관화하기를 쉽지 않아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는데, 나는 저때 저 글이 왠지 50대 중장년이 쓴 거 같은 느낌이 든다.


20대에는 기성세대의 언어를 조심스럽게 모방하거나 날것 그대로의 말을 여과없이 배설하거나 하는 식이 되기 쉬운 거 같다. 나는 후자를 극도로 경계했다. 내가 어떤 욕망을 함부로 배설할지 모르고 그게 누군가에게 혐오를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느껴서였다. 사실은 내 날 것에 내가 제일 먼저, 제일 강하게 반발하고 혐오했을 것이다. 심지어 그게 섹스와 관련된 게 아닌 것임에도, 모든 것들에 경계심, 두려움이 있었다. 20대의 나의 말들로부터 끊임없이 우회하고 회피하고 가장하고 터무니없이 관념화하고 추상화하는 것들을 본다. 2007년, 제대하고 1년이 지나서 군대에서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내 말을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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