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

by 흘흘

비 오는 날, 앉고 싶었던 오래된 공원의 벤치를 떠올린다

그 벤치가 다 마를 때까지 기다려봐야지

다 마른 벤치에 앉아서 같이 마른 주변을 둘러봐야지

벤치를 만지작거리며

어떤 재질인지

한 시간 전에는 누가 머물렀을지

젖은 벤치에 그대로 앉은 사람은 누구였을지

비 오는 날 일부러 와서 앉은 사람은 누구였을지

젖은 상태 그대로 앉고 싶은 기분이 혹시 나랑 같은 종류의 것이었을지

끝내 참은 나와는 달리 끝내 앉아버린 그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지

혹시 그 사람이 지금 이 앞을 지나가다 나를 바라보며 그때를 떠올리고 있는 건 아닐지

어쩌면 시력 좋은 나는 멀리서 그 사람임을 알아 볼지도 몰라

쳐다보지 말아야지

다가올 것 같으면,

그 사람이 그때를 떠올릴 것 같으면,

아니 그런 게 아니더라도,

나는 여기서 물구나무를 설 거야

여기 와서 해보려고 했던 게 아닌 걸 할 거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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