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해질 결심

by 흘흘

S는 언제나 자신의 집안 환경을 원망했다. '술주정뱅이'로 잊을 만하면 면허취소를 당해 생계에 지장을 주던 아빠, 걸핏하면 집을 나갔던 엄마, 다만 그의 누나는 그의 모범답안이었다. 늘 학업 성적도 우수하면서 어수선한 집안 상황을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수습해 나가는 모습이 네 살 어린 동생인 자신의 눈에도 유능하게 보였다. "우리 누나는..." 하는 게 그의 주요 대화 레파토리 중 하나였다.

그가 살던 동네는 버스 정류장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었다. 같은 동네 아이들은 그가 살던 집과 다소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전원주택단지에 주로 살았고 그들은 늘 자가용을 끌고 통학했다. 아이들은 종종 걸어서 학교에 가는 그를 차에 태워주곤 했다. 하지만 애들은 한번도 '너는 왜 차 타고 학교 안가?'라는 질문같은 건 하지 않았다. S는 나에게 '그 애들은 그런 질문을 하는 건 실례라는 걸 알 정도로 품위가 있는 애들'이라고 설명했다.

"그 애들은 생일날 집 초대할 때 나를 빼 먹은 적도 없어. 돌아가면서 초대하지만 왜 너는 초대 안 하냐는 질문도 안 해. 내 사정 빤히 다 알아도 그런 얘기로 수군거린 적조차 없어."

"너 없는 데서 험담하거나 그런 건 아니고?"

"아니, 아마 없을 거야."

s는 힘주어 말했다.

"정말 그럴 애들이 아니었거든. 그러기엔 그 애들은 너무... 잘살았어. 그러니까 돈이 많고 그런 문제가 아니고, 물론 돈은 우리집보다 훨씬 많았지만 그냥 마음이 쫄리는 일이 하나도 없었던 애들이란 말이야."

언젠가부터는 S가 나에게 대뜸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고귀한 사람이 될 거야. 내 자신의 환경이 너무 부끄러워서라도 나만큼은 내 스스로가 고귀한 사람임을 늘 느끼게 할 거야."

"고귀한 사람이 대체 뭔데?" 나는 물었다.

"그러니까 고귀하다는 건... 그냥 내가 느끼기에 고귀한 것이면 돼."

"그런 게 어딨어? 고귀한 게 뭔지도 모르면서 고귀한 사람이 되겠다고?"

"그렇지만 난 꼭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난 비웃었다. "모르겠다 난. 그게 고귀한 건지 허영심인 건지. 꼭 고귀해야 해? 그냥 있는 그대로 살아도 좋은 거잖아."

"있는 그대로 살면 뭐가 좋아지는데? 싫은 걸 억지로 좋아하는 척 하는 게 좋은 거야? 나도 징징대는 거 그만 하고 우리 동네 애들처럼 품위 있는 사람이고 싶다고."

"아, 그런 게 네가 말하는 고귀함이라는 거야? 그건 그냥 착한 거잖아? 그리고 걔들이 착한 건 아쉬울 게 없는 환경이니까 그런 거잖아! 그냥 돈을 많이 벌면 되겠네. 쓸데없이 고귀함이니 뭐니 이상한 말 끌어들일 거 없이."

난 가볍게 듣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날의 '선언' 이후로 더는 그런 말을 들을 일이 없었더라면 난 s의 고귀해질 결심을 떠올리지조차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부터 그는 그 생각을 한번도 포기한 적이 없었다. 잊을만하면 고귀함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을 정도였기에 그후로도 그가 그 얘길 꺼내지 않으면 내가 먼저 농담처럼 '그래 지금은 얼마나 고귀해졌어?'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처음엔 그 자신이 고백했듯 고귀한 게 뭔지 몰라 취향이 고급인 게 고귀한 것이라고 느꼈던 모양인지 옷을 잘 고르는 것, 미술과 음악 쪽의 지식을 쌓는데에 열중했고, 나중엔 수채화를 그리러 다니고 악기를 홀로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속적인 시도와 고민 끝에 그가 찾아낸 고귀함이란 그런 것들을 잘 암기해서 인용하거나 보여주는 게 아님이 드러났다. 한동안 그가 탐독하던 교과서 같은 곰브리치를 들어 질문해도 그는 '그런 건 몰라' 혹은 '다 까먹었다'라고만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는 고귀하다는 말 대신 '좋아'라는 말을 자주 쓰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그가 쓰던 말은 '맞아'와 '틀려'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점차 '좋아'를 비롯한 확신에 찬 감상의 언어들이 늘어났다. 한때는 그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무언가가 좋다는 것을 고백하기 위해서인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가서는 비평집에 의존하지 않고도-사실 처음부터 의존한 적도 없어 보였다- 좋아하는 이유와 비유가 점차 자기 삶의 체험에 근거하여 구체화되고 설득력있게 변화하여 공허한 호들갑처럼 느껴지진 않게 되었다.

사실 s가 처음에 더 자주 쓰던 말은 '싫어'였는데, 특히 나와 의견일치를 보이는 줄만 알았던 그가 언젠가부터 내가 어떤 것에 대한 호감을 얘기할 때마다 '나는 그거 싫은데'라는 말을 자주 쓰는 바람에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초를 치는 것처럼 보여서 한동안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좋아하는 거라면 무작정 부화뇌동하던 s가 자신의 호불호를 찾아가는 첫 과정의 하나였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더 강조하기 시작한 뒤로는 예전처럼 많이 쓰지 않게 되었는데 그의 설명에 따르면 싫은 걸 굳이 붙잡고 늘어질 필요는 없다, 좋아하는 걸 붙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모자라다, 싫은 건 알아서 떨어지게 되어 있단다.


사실 s는 그 뒤로도 돈을 많이 벌게 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그의 '고귀함'은 돈을 많이 버는 것과 그리 큰 인과관계를 이루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고귀함에 대한 농담을 하면 여전히 진지한 태도로 고귀함의 중요성을 말하기는 했지만, 어느샌가부터 그는 좋아함에 대한 연구를 더 많이 한 것 같다. 최선을 다해 성실히 살았지만 한 직장에 오래 머무는 일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직장에 들어가더라도 사람들은 이상할 정도로 그를 아끼고 사랑했다. 그는 어느 직장엘 가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사람들과 나누는 것을 아끼지 않았는데, 그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흥미와 더불어 좋아하는 것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과, 좋아하는 것들을 나누는 그의 태도에 사람들이 좋은 반응을 했던 것 같다. 단순히 직장 동료 정도의 관계라고 하기에는 그와 사람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은 꽤나 진솔하게 느껴졌다. 내가 느끼기엔 '애교'처럼 보이는 게 그들에게는 뭔가 사랑스러움으로 느껴지는 것 같고 동시에 어떤 상대라도 그의 말에 진지하게 집중하는 태도가 꽤나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것 같았다.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장례식 날, 조문을 와서 밤새 머무른 적이 있었다. 장례식장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할 정도의 화기애애함이 식장을 감싸고 있어서 묘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문하러 온 그의 지인들이 처음에는 숙연하고 슬픈, 전형적인 조문의 태도로 임했다가, 조문이 끝나고 식사를 하는 동안 그의 주변에서 어색함이 없이 다소간의 미소마저 느껴지는 유난히 맑은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예전 그의 도움을 크고 작은 데서 받은 적이 있던 그들은 한결같이 그의 손을 꽉 잡고 소중한 것을 다루듯 어루만졌다. 그 태도는 의도된 것이 아닌 그를 대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온 모습들이었으며 특히 고인이나 누나, 어머니의 평범한 조문객들과 비교되어 더욱 인상적이었다. 종교도 없는 그가 어쩌다 유난히 다정한 사람들만 만났던 건가 싶다가도, 그 어떤 인상이나 성격을 막론하고 모든 이들의 그를 향한 표정이 한결같은 것은 그가 사람을 대하는 일관된 태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그가 말하던 '고귀함'을 처음부터 잘 몰랐던 건지도 모른다. 우리는 같은 언어를 공유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그 말의 결은 내가 느끼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사랑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반대로 그는 네가 갖고 있는 마음은 허영일 뿐이라는 나의 말을 더는 반박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고귀해지겠다는 친구의 허영심이 20년을 지속하자 이제는 낭만이 되고 품격이 되었다. 고귀한 사람이라는 말이 좋아 허영심도 굳건하고 꾸준하며 성실하게 이루어지면 또 하나의 자기를 만들 수 있을 거라던 친구의 말은 사실로 증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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