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 엄마는 혼자만의 생활을 위한 바닷가의 집을 마련하였다.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었지만, 평생동안 한번도 이루지 못했던, 자기 혼자 살아보겠다는 꿈을 이룬 것 같았다.
그곳은 한쪽은 다락밭이 보이는 곳이고 다른 한쪽은 망망대해가 펼쳐진 바다였다. 집은 작은 대신 여러 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어느 방에서든 전망이 좋았던 것 같다. 어느날 내가 그 집에 놀러갔고, 엄마는 아랫방을 내주었다. 아랫방은 바다 전망이 너무 시원하고 아름다웠다. 엄마는 내가 머무는 동안 다락으로 통하는 것과 같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나오는 윗방에서 지내고 있었다.
아마도 초여름 새벽, 이제 막 날이 밝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초여름 아침 특유의 적당한 축축함과 옅은 한기가 느껴졌다. 엄마가 바깥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엄마는 꼭두새벽에 자신이 가꾸는 텃밭에서 일을 하다 돌아와 다시 늦은 아침잠을 청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던 모양이다. 잠에서 깬 나는 일어나서 집안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집안은 1980년대의 양옥집처럼 황갈색의 니스칠이 반질반질하게 된 원목자재로 이루어져 있었다. 가족과 함께 살았을 적의 엄마는 집안에 자질구레한 게 쌓이는 걸 무척 싫어해서 정기적으로 물건들을 싹 다 버리는 일이 많았는데, 왜인지 이 집은 뭔가 크고 작은 잡동사니들이 여기저기 들어차 있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소쿠리라든가 노리개, 복조리 같은 것들이었는데, 어쩌면 아주 오래전 어린 시절 내가 집안에서 봤었음직한 옛날의 물건들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 모든 것들은 너저분하지 않게 아기자기하고 가지런하게 늘어져 있었고 때문에 나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구경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른 시간이었던지라 졸음이 다 가시지 않았던 나는 도로 마룻바닥에 누워 꽤 오랜 시간 동안 창 밖으로부터 들려오는 파도소리를 들었다.
그러다가 텔레비전을 틀었는데 유튜브였는지 주문형 비디오였는지 어떤 한국 영화를 봤는데 엄마와 같은 경상도 출신의, 관공서에서 일하다가 이번 영화에서 처음 연기를 시작한 배우가 나오는 영화였다. 본인 고장의 말이었기에 매우 자연스러운 경상도 억양의 연기를 할 수 있었고 내용은 잔잔하지만 그 배우의 딕션이나 연기가 인상적이어서 배우의 단독샷이 나올 때마다 주의깊게 보고 있었다.
영화에 열중하다 엄마가 어느새 집에 돌아왔는데 집 근처 밭에서 일을 하고 주방에서 일을 보다가 피곤했는지 바로 윗방으로 들어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한참 있다가 방에 올라갔더니 엄마가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게 보였다.
"엄마 자?"
방바닥이 시선과 맞닿는 계단 즈음에서 내가 물었다.
"...응"
엄마가 잠에 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도로 내려갔다. 다시 집의 양쪽 창을 보았다. 밭쪽으로 밝은 햇살이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반대쪽이 바다인 걸 보면 서해안인 것 같은데, 깎아지른 절벽, 짙푸른 바다, 제주도의 현무암을 연상케하는 검은 바위 등등이 육지의 서해안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검정에 가까운 푸른 파도가 검은 바위를 끊임없이 적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