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정돈을 좋아하던 엄마는 많은 물건들을 상자와 통에 담아놓고 견출지에 이름을 붙여놓고는 했다. 한때는 내 방이었던 엄마의 방에는 크고 작은 상자들이 옷장을 채우고 있다. 상자 속을 채웠던 대부분의 물건들은 엄마의 가장 최근 시간대와 관련된 것들이 많았다. 엄마가 오래된 걸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다. 오래된 물건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은 투병과 치료가 반복되면서 엄마는 자신의 수중에 있던 물건들을 버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집갈 때 들고 왔던 스테인리스 주걱과 통 같은 걸 40년 넘게 쓰는 건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닐 것 같다. 오히려 그렇게 오래된 물건이라는 사실을 알고 몸서리친 엄마가 병세가 깊어졌을 때 싹다 버리고 나중에 후회하기도 했다.
어느 날 본가에 와서 앨범을 찾아보다가 엄마의 앨범이 보이질 않아 엄마에게 물었다니 싹 다 버렸다고 했다. 놀랐지만 엄마는 있으면 뭐하냐며 태연하게 반응했다. 그렇게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 결혼 사진은 사라졌다. 그리고 일기들이 적혀있던 1970년대의 가계부들, 80년대의 가계부들, 90년대의 가계부들이 하나씩 하나씩 버려졌다. 미처 버리지 못한 엄마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내 기억들은 내가 처분해야겠다."
하지만 어떤 상자에는 여전히 버리지 못한 '기억'들이 남아 있었다. 다 버린 줄 알았던 사진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예뻐했던 외손주의 사진들은 수십여 장이 두텁게 쌓여 있었고, 자식들이 같이 찍힌 사진들 또한 버리지 않고 앨범에서 떼어내 상자에 모아두었다. 다른 한 상자에는 자식들의 출생기록이 담긴 서류들이 있었는데, 나와 누나들을 떠올릴 만한 물건들 딱 한 가지씩 같이 있었다. 누나들의 것들은 사진이었는데 내 것은 내가 고3때 아마도 어버이날 보낸 편지였다. 편지를 간직한다면 훈련소에서 보낸 편지이리라고 생각했지만 왜 고등학교때 편지였을까. 나는 편지를 그렇게 애틋하게 쓰는 편이 아니고 오히려 보는 사람이 당황할 정도로 솔직하다 못해 냉소적으로 쓰는 일이 종종 있는데 이 고3 때의 편지도 그런 식이었다. 공부도 잘 되는 편은 아니고 솔직히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걸 어떻게 어버이날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끝 부분에는 '사랑해요'라고 적혀 있었다. 난 그 사랑해요라는 말에 약간 놀랐다. 내가 사랑해요, 라는 말을 쓴 적이 있었구나. 엄마를 갑자기 떠나보내고, 엄마가 내 손을 붙잡고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사랑한다는 말은커녕 엄마를 위하는 말을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가 내내 끊이질 않았는데 그때 나는 그 말을 어떤 마음에선지는 모르겠지만 했었구나. 그래도 엄마 생전에 그 말을 한번은 했다는 것에 안도하는 내가 우스웠다.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이 편지를 남긴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엄마의 영세식 때 찍은 사진, 대학시절 학생증과 동기들과 찍은 사진들이 있었다. 엄마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었을 적 한 시간도 넘게 이어졌던 엄마의 화제는 엄마보다 두 해 전쯤 돌아가신 셋째 이모할머니의 로맨스에 관한 내용이었다. 엄마의 어린 시절 앨범에 공교롭게도 이모할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이 남아있었는데 그 사진은 원래 커플사진이었고 남자 쪽 부분은 오려져서 이모할머니 무릎 위에 얹은 손 부분만 남아 있는 사진으로, 나도 예전에 그 사진을 보고 의아한 적이 있었다. 그 사진 얘기가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세상을 떠난 이모할머니의 마지막과 그 사진에 대한 기억을 시작으로 당시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엄마와 나이 차가 그렇게 크지 않았던 셋째 이모할머니가 엄마의 과외교사였던 남자친구와 어떤 과정에서 가까워졌고, 어떤 우여곡절을 거쳐 엄마의 외할아버지에 의해 이별을 강요당했는지 그리고 서울에서 다시 재회했을 뻔한 상황과 결국 이어지지 못한 만남에 대해,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엄마가 수행했던 메신저 역할 등등. 헤어진 후 이모할머니는 그 후로 다른 사람을 두어 차례나 만났는데도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다가 엄마가 기억을 처분하기 직전까지 엄마의 앨범 속에 고이 남아있었다고 했다. 둘의 헤어짐은 엄마의 예전 로맨스와 상당히 닮은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엄마가 감정이입되어 그 사진을 여전히 갖고 있었는지, 이모할머니의 언니인 외할머니도 이모할머니의 이별을 아쉬워해서 갖고 있다가 엄마에게까지 물려진 건지 잘 모르겠지만 엄마의 이 얘기는 흥미진진했기에 한 시간이 넘도록 이어지는 얘기에도 나는 지루함을 느낄 새도 없이 이야기에 몰입했고 그 얘기를 일기에 기록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내가 서울로 돌아간 그날 밤, 엄마도 몇 장 남지 않은 자신의 어린 시절 사진을 꺼내어 다시 보기 시작했는데 그걸 폰카로 찍어서는 사진편집어플을 이용해서 캡션을 달아두기까지 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꿈 많던 대학시절', '아 옛날이여'
그 날의 유골함은 무겁고 뜨거웠다. 잿빛의 가루가 된 엄마의 온전한 무게를 허벅지 위에서 느꼈다. 어쩌면 그것이 엄마에게서 느낄 마지막 물리적 온기였을지도 모르겠다. 묘원으로 가는 내내 버스 창을 통해 햇볕이 유골함을 비췄다. 묫자리로만 남아있던, 언제일지 모를 그 날을 생각하며 당신이 앞서 둘러봤을 그 곳에 땅이 파헤쳐지고 구덩이가 만들어진 후, 마침내 상자는 땅 속으로 들어갔다.
이제 일 년이 지난 지금 아직은 나무로 된 함이 썩기엔 이른 시간, 이제는 이미 싸늘해진 지 오래고 서서히 눅눅해져가는 유골함 속에서 조금씩 흙이 될 준비를 하는 엄마 유골을 떠올리고. 나는 여전히 꾸지 못한 일들에 대해 이렇게라도 남겨보려고 애쓰지만 그렇게 자꾸만 생각하고 끊임없이 곱씹다가도 어느새 나도 모르는 먹먹함과 나도 모르는 지겨움이 내 안 어딘가로부터 스며나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으니-
적어도 나만은 지겨워하는 독자가 되지 않길 바란다 이제 그만 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라는 말을 다른 이들보다 굳이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