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연주에 앞서 오보에는 a음을 연주하고 다른 악기들이 거기에 맞춰 조율을 시작한다. 조율은 앞으로의 합주를 위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제대로 된 음정을 찾지 못하면 곡은 연주되지 못한다.
자기만의 글을 쓰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상냥해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 스스로에게 상냥해져야 한다는 말은 그에 앞서 스스로에게 솔직해야만 성립 가능한 말이다. 합리화는 스스로에 대한 매우 편협한 해석방법의 하나다. 개방의 기회가 자꾸만 뒤로 미뤄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런데 스스로에게 솔직하면 항상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거나, 무작정 혐오의 감정부터 치밀어올랐다.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시도하기'가 수월해질 수 없었다. 모든 시도는 단순하고, 터무니없거나 허접하고 유치할 여지가 충분하다. 스스로에게 상냥하지 않고는 그 시도를 차분하게 늘어놓을 수 없다. 자신에게 열림으로써 시작되는 글은 모든 이들과 통함으로써 결실을 맺게 되지만, 전제가 되어야 할 '나만의' 글쓰기는 스스로를 허용할 때 비로소 열린다.
요 몇달간 나에게 일어난 느슨하고 조용하며 감지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문득문득 체감한 변화라면 내가 스스로에게 조금은 더 상냥해진 것 같다는 점이다. 계기는 잘 모르겠다. 나의 일상 루틴은 그렇게 큰 변화가 없었다. 경제적으로는 작년보다 더 어려워졌다. 직업교육을 받으면서도 이 일로 내가 직장을 구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크고, 그냥 내 모든 일들에 대한 확신이 없다. 내가 쓰고자 하는 글과 사람들이 좋아하는 내 글도 좀 다른 것 같다. 그런데도 그냥 내가 쓰는 글에 대해 마음이 가고, 그냥 그 글을 어떻게하면 잘 이어갈 수 있을까 생각한다.
소설의 문장을 쓸 때마다 나는 마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를 연기-조차 아닌 흉내를 내는 것 같은 억지스러움과 어색함을 느껴서 한동안 써내려갈 수 없었다. 시는 아예 내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손댈 수 없다고 일축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어떤 문장을 홀로 쓰고 있고, 시는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다. 이 글들은 누군가로부터 고무받은 영역들도 아니다.
2002년경 아빠가 니콘의 쿨픽스4500이라는 디지털카메라를 구입한 적이 있다. 난 시범삼아 자동모드로 몇 차례 찍었지만 그때 보도사진반 활동을 하느라 한창 집중하고 있던 필름SLR과 비교하면 색감도 화질도 현저하게 뒤떨어졌고, 그때의 나는 디지털 카메라라는 것 자체가 후진 기계라고 생각해서 몇번 찍다 방치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2년 뒤인 2004년, 편입에서 떨어지고 그간 준비해둔 계획이란 것이 사라진 가운데 군 입대까지의 약 넉 달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그때즈음엔 약간 구식이 된 쿨픽스를 다시 꺼냈다. 이 카메라에 프로그램모드라는 게 있고 접사 기능이 있다는 걸 알게되면서부터 렌즈를 통해 보게 된 대상들은 현저하게 달라졌다. 재미있는 것은, 이 카메라로 신나게 찍은 이후로 필름카메라를 통해 찍은 사진들도 그 전보다 훨씬 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쿨픽스는 내가 보고자 하는 대상이 어떤 것인지를, 나는 사진의 어떤 면에 주로 집중하는지 처음으로 생각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내 글이라는 게 뭘까하는 고민들을 하던 지난 시간들이란 끊임없이 초점을 조정하는 과정같은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아주 느슨하고 헐거운 내 특유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으로- 오랫동안 내 렌즈가 보아야 할 거리, 대상에 대해서 한동안 방치하기도 하고 잠시 시도했지만 여전히 초점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그 과정에서 우연하게 초점이 잡혀 찍힌 거라든가, 끝끝내 초점을 잡지 못한 채 온통 아웃포커싱된 사진이라도 결국 찍기는 찍고야 말았는데, 훗날의 나는 그 아웃포커싱된 사진의 내용을 다시 해독해보기 시작하고 보려고 했던 것, 나도 모르게-내가 보기에- 잘 찍은 것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나는 이제서야 겨우 잡힌 초점으로, 겨우 분간한 a음으로 이런 것 저런 것들을 촬영하고 연주하며 내 음악을 연주하는 즐거움을 아주 조금이나마 누리게 된 것은 아닌가라고도 생각하기도 하고- 어쩌면 진작에 이미 모든 멜로디들이 주어져 있었음에도 그것을 청음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가 이제서야 예전에 포착된 인상들을 하나하나 음표로 추스려가며 정리해보는 느낌이다. 이제 나는 좀더 다양한 방법으로 좀더 빈번하게 '실패하려는' 노력을 기울여보려고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