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인생

by 흘흘

이따금 주변을 돌아본다.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나에 대해 조금 인식하고, 나의 경계를 단속할 수도 있다.

살면서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유형의 사람은 사실 그 즉시 내 시야에 발견되지는 못한다. 사실 종래에 한번은 겪은 뒤에, 그때는 그게 어떤 것인지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깨닫는다.

내 경우에서 사례를 하나 든다면 고등학교 시절에 봤던 사람의 어떤 유형을, 군대에 가서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내가 고교시절에 겪었던 그 애들이 나이가 조금 들어 이십대 초반이 되면 저렇게 될 수 있겠구나...싶었다. 그들은 남자아이고, 대부분 서울대를 비롯한 최상위권 대학에 재학중이었으며, 원하던 대로 카투사에도 들어갔다. 졸업 예정인 경우도 있고, 군대에 다니면서 변리사 시험에 합격하기도 한다. 때때로 재수, 삼수를 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서울대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에 어떤 의심의 여지도 가질 수 없을 만큼 인과가 분명했었기에 자신의 삶을 '위태롭게' 하는 어떤 요인들에 걸려 넘어지거나 거기에서 머무르는 사람들의 상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자기의 의지와 관련된 것만을 생각했다.

군대는 매 순간마다 정답이 있는 공간이다. 언제 어디서 뭘 해야 하고,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 자신의 위치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디에 놓여있고 거기에 있는 자신의 역할은 어떤 것인지. 매순간 정답을 푸는 방법을 정확하게 이해했던 그들은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풀이방법을 쉽게 알아차리고 거기에 맞게 행동하기에, 거기에 부응하지 않는 이들을 이해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못하는게 아니라 '안했다' 왜냐면 답이 뻔히 있고, 자기는 문제 없이 다 해냈으며, 주변에서도 다 해내고 있어 '누구나 다'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범위에 해당할 수 없었다. 의지의 문제로 생각하건대, 군대는 너무 쉬운 곳이고 그것조차 못하는 인간들은 답이 없다. 사회에서였다면 절대 상종할 수 없는 부류들이다.

그들은 '쿨'하고 생각이 복잡해지지 않은 가운데 '단순명료'하게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조건에 놓인) 자신을 의심의 여지 없이 자랑스러워했다. 이따금 자신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존재를 만나기도 하지만, 그들은 아주 빠르고 쉽게 단순명료한 결론을 내리고 신속하게 '손절'한 뒤 종래의 자신에게도 돌아갈 수 있었다. 그들의 관계는 각자의 그 단순명료함을 유지시키는 네트워크로 구성되었고, 사회에서는 그것을 유지하기가 아주 손쉬웠다. 앞으로도 그들은 평생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이해하지 않고, '한심한 놈', '씨발년'으로 배제한 가운데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그들은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방향으로 순항하던 애들인데, 동시에 내가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어쩌면 생각하고 싶지 않은?- 유형의 애들이기도 했다. 주어진 삶을 '잘 살고 싶은' 욕망이 있었지만, 저렇게 살면 나한테는 잘 사는 게 아닌 거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그 나이 때까지 '잘 사는'것에 대한 대안과 다른 방향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의 고민은 여기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그들의 사고와 태도와 가치를 너무나 잘 이해했고, 그들이 원하는 얘기를 남김없이 다 읊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역시 그렇게 내면화하면서 살려고 했었는데- 애시당초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나의 주어진 조건과 사회에 부합될 '유능함'의 한계가 있어서, 그들만큼 쿨해지고 단순명료해질 수 없다는 것에 좌절했다. 생각은 늘 복잡하게 흘러갔고, 나도 여기서 정답이 뭔지 빤히 알면서도 한없이 망설이고 주저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오랫동안 익숙한 '정답'이 눈앞에 보여도, 그 정답은 내가 도달하기 불가능한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무의식중에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었다. 군대에서 만난 남자애들같은 삶의 진로는 물론이고, 어떤 유능한 게이들처럼 탁월하게 전문직으로 또는 대기업으로의 취직만을 바라보며 돌진할 수도 없었는데, 애시당초-성적도 성적이겠지만- 의욕과 의지가 도무지 그쪽으로 뻗어나갈 기미가 없었다. '몰랐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간 내가 품어왔던 욕망과 기대를 맹렬하게 거부하기 시작했다. 뭔가 하나를 얘기하면 그때마다 짜증스러울 정도로 철저한 no로 돌아왔고, 아는 게 없는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내가 처한 어떤 조건에 한없이 너그러워지거나 자유로워질 수도 없었으니, 나는 수동적이지도, 능동적이지도 않았는데 그야말로 그 모든 것에 '저항'하고 있었다. 모든 것에 대한 저항은 결국 어떤 흐름도 가질 수 없이 소용돌이치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모든 것을 떨궈내는 저항성, 동시에 그 모든 것이 고여서 갈 길을 못 찾는 저항성.


혼란이 길어졌고, 몸이 아프기 시작했는데 엄살이라면 엄살이겠지만, 이전에는 꼼짝도 못할 정도로 아팠던 적 자체가 없었으므로(그러니까 국어책에서 가끔 나오는 이마에 물수건을 두르고 누워있는 모습 자체가 나로서는 거의 상상의 영역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것은 엄살이라도 나한텐 큰 변화였다. 어느 순간 놓아버려야겠다고 결심까지 한 것은 아닌데 더 이상 애쓰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살아지나... 한번 보기로 했다. 이상한 삶이 시작되었다. 지금 이게 뭐 하는 건지 해석도 안 되고, 그 어디로부터도 딱히 참고할 수 없는 것 같은 무용하고 무상한. (난 예술에 대해서도 유능성과 연관을 지어 생각했기에 예술에 대해서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나를 향한 시간의 제안을 딱히 거부하지 않는다. 될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살아본다. 수동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인생에서 '수동적'으로 산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향한 많은 제안들을 하나하나 알아보고 이를 완강하게 거부하며 그 자신의 '수동성'을 유지하기 때문에 의외로 의지가 강하고 섬세한 사람들이다. '평범성'은 그야말로 수면 아래로 보이지 않는 고니의 막대한 발길질 같은 것이다.


이상한 것은 나같이, 딱히 뭐 그렇게 대단한 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면서도 취직에 대한 욕구가 활활 타오르지도 않는 그런 애들이 어쩌다 있긴 있었는데 - 군대 동기들은 대부분 성공적인 삶을 살겠다는 의지로 불타오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그들은 퍽 예외적인 존재에 가까웠다. 그때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한참이 지나서야 궁금했다. 그들 중에는 이상하게 나에게 다정했던 애들이 간혹 가다 있었다. 뭔가 마음을 살뜰히 챙겨주고, 내 기분을 늘 살펴보던. 늘 정답을 품고 살던 난 그런 '예외성'을 허용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의 다정함을 의아하게만 취급하고 넘어갔다. 차라리 그 다정함에 적극적으로 화답할걸. 오히려 그런 애들을 맞이하는데 집중할걸. 그렇다면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을 일은 없을지언정 과거의 한시절이 괴롭게만 기억되진 않았을 것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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