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 빠진 독

by 흘흘

엄마의 가장 큰 고뇌 중 하나는 자신이 마음과 성을 다 하여 바쳤던 가족들이,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무관심하고 자신이 기대한 만큼의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에 있었다. 이것은 엄마에게 황혼기의 가장 큰 깨달음 중의 하나를 가져왔다. 더 이상 가족에게 많은 기대를 하지 말 것,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이미 떠나거나 사라진 것들에 연연하지 말고 남아있는 것들에 충실할 것. 그럼에도 엄마는 너무 많은 것들을 가족에게 쏟았기에 이미 체력도 정신력도 약해진 노년기에 와서 끊임없는 고통과 마음의 갈등을 느껴야 했다. 자신이 이러한 고난에 처하게 된 원인이 과거의 어떤 지점부터였을까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곱씹고 또 곱씹었다. 스스로를 다잡아가려고 노력하고, 다시 관성으로부터 오는 고통에 짓눌리고- 번뇌와 감사의 마음, 체념과 달관 모든 것들이 엄마에게서 일어났다. 항암치료로 가장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2022년의 공백-(기록 자체가 거의 없이 치료일정만 간략하게 몇줄 써 있다) 극심한 치료의 고통을 견디면서도 감사의 마음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재생력. 외로움, 재발과 전이에 지쳐감에도 삶에 대한 의욕을 생애 마지막 바로 전날까지 보이던 엄마의 흔적들. 나는 아마도 엄마의 이 마음을 평생 기억하며 살아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처음부터 엄마가 이렇게 많은 일을 해왔다, 우리는 엄마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다. 엄마가 그렇게 떠난 것은 우리 가족 평생의 한이 될 것이다(이것은 엄마가 자신의 부모님을 떠올리며 꺼낸 말과 비슷하다)...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죽음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하게 했던 것은 1998년에 떠났던 우리집 개 누렁이였다. 나는 누렁이를 너무나 좋아했었는지 한동안 내내 울었고, 그렇게 죽은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죽음이란 언제나 믿기지 않는 것인가보다. 그때는 사후 세계, 천국의 존재를 깊게 인식하고 있었는데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누렁이가 천국에 가서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원하고 기도했다.


지금의 나는 엄마가 하늘나라에 평안히 머무르고 있다-라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한다. 엄마의 믿음에 따라 엄마가 안식하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나는 지금 엄마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살아온 엄마가- 그 뒤에도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별로 좋지 않게 느껴진다. 그러니까 나는 사후세계를, 사후의 엄마를 상상할 수가 없다고 말해야겠다. 엄마는 더 이상 내가 의식할 수 없는 영역으로 떠나셨다. 이렇게 단언하듯 말하고 있지만 난 이것에 대해서도 계속 생각해보고 싶다.


이 완전한 단절에도 불구하고 이어지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 내가 건네받은 것들, 나에게 스며든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은 살아생전의 엄마의 의식과 의욕과 기대와 같은 것들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데에 있지 않다. (비록 나는 추억하겠으나) 그 반대로, 내가 관성적으로 이해하는 엄마를 복원하는 것에도 있지 않다. 그렇게 계속해서 남겨지고 있는 것들, 울리고 있는 것들이 무언지를 계속 알고자 한다.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마음을 생각한다

자신의 의욕과 무관한 결과를 알고도 나아가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함께 살아가기 위하여 스스로의 결실이 없는 선택을 하는 마음은 어떤 것인가 생각해본다.

다만 이런 것들은 실제 엄마가 했던 생각들과는 무관할지도 모르겠다. 또한 무엇이 '결실'인가를 섣불리 얘기하기는 어렵다. 다만 사람의 번뇌 속에서 나타나는 어떤 현상들일 수는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마음에서 유래한 선택은 종종 일어날 수 있다.

내가 비록 그런 선택을 하지 않더라도 그런 마음을 담아두어야 한다. 그 뜻을 좇지 않고 헤아리는 것이 나에게는 필요하다. 그런 것이 결국 나의 일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의식하는 결과와 이상과는 무관한 것들이 나를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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