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만 밥과 해물토마토스파게티

by 흘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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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16일 오후, 엄마의 책상 위에는 물에 만 밥이 담긴 그릇과 간장만이 남은 멸치조림 반찬통이 남겨져 있었다. 평소 엄마가 가장 자주 먹었던 차림이다. 엄마 하면 떠올리게 될 물에 만 밥은 입맛 없으면 먹는다고 했던 음식, 맛있어서라기보다는 위에서 저항없이 잘 넘어가서 먹던 음식이었다. 의사의 강력한 권고에 따라, 엄마는 억지로라도 먹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했다. 투병환자들이 별수없이 먹는다는 뉴케어가 거의 두달 치 쌓여 있었고, 그중에 한 박스는 이후 내가 러닝하면서 먹었다. (그리고 섭취가 간단해 보이는 뉴케어를 먹는 것도 엄마에게는 꽤나 곤욕이었겠다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음식과 관련하여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은 꽤 많았다.



물에 만 밥을 먹는 시간은 보통 오전 8시 이후- 언젠가부터 엄마는 가족들의 7시대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당신의 식사는 따로 했다. 이런저런 반찬들을 다 만들고 국도 끓이지만 정작 당신의 식사 때 그 국과 반찬을 먹는 일은 별로 없었다. 콩장이나 멸치자반, 무청나물, 김치 정도가 물에 만 밥을 먹을 때 곁들이는 반찬의 다였다. 이런 습관은 투병이 시작된 후에도 계속되었다. 오히려 항암치료로 입맛이 사라지자 물에 만 밥을 먹는 경우는 더 많아졌었던 것 같다. 가족들은 더 영양가 있는 걸 먹어야 한다고 채근했지만 엄마는 아무것도 넘어가지 않는데, 억지로라도 먹기 위해 물에 만 밥이나마 먹는 거라고 항변했다. 우리들은 고집도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매번 저렇게 먹어가지고 어떻게 낫겠느냐고 투덜거렸다. '아침마당'을 틀어서 보거나, 혹은 음향 없이 불도 켜지 않은 오전의 실내에서 숄을 걸친 채 묵묵히 물에 만 밥을 먹는 엄마의 모습이 이제서야 고독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2023년 12월 8일, 엄마는 다시 한번 검진결과를 들으러 분당 서울대병원에 갔다. 그날 엄마는 내원에 앞서 점심식사로 해물토마토스파게티를 먹었고 이렇게 사진으로 남겨두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한껏 단장하고 난 다음 자신의 모습을 셀카로 찍었다. 명절날에도, 우리 집에 올 때에도 엄마가 이렇게 꾸민 적은 없었다. 은평으로 한번, 마포로 한번 방문했을 때의 엄마 차림새는 꾸민다기보다는 편하게 하고 놀러왔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성당에 미사하러 갈 때랑 병원에 갈 때 가장 꼼꼼하게 스스로를 단장했었다. 병원에 가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빠지고 위축되는 기분이 들 것 같은데 엄마는 늘 신경써서 단장했던 것 같다. 그렇게 곱게 꾸미고 병원에 간 날 엄마는 간에서부터 복부에 이르기까지 c자형태로 빼곡히 들어선 재발된 암세포를 보아야만 했고, 그 지긋지긋했던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엄마는 자신의 일기에 '치료는 다음 주 화요일부터 시작된다고 했기에 얼마간의 여유시간을 벌었다'고 기록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잔뜩 차려 입고 나선 내 모습이 어설퍼 보였다."



아마도 저 스파게티가 엄마가 즐긴 마지막 외식이었을 것 같다. 엄마는 스파게티를 좋아했다. 내가 만든 크림스파게티를 먹고 수십 년 만에 스파게티 맛있는 거 다시 알게 되었다고 극찬하여 겸연쩍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투병기간동안의 엄마는 늘 입맛이 없는 모습이었고 뭘 만들어도 맛있다고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엄마는 저 스파게티를 다 먹었을까? 종양을 1차적으로 발견한 건 이미 11월 말의 일이었고- 통증도 있었기에 어느 정도 예상을 한 상태에서 결과를 들으러 가던 길이었으리라.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단장하고 어떤 마음으로 홀로 스파게티를 사먹었을까? 꾸미지 않고 가면 오히려 더 환자 같은 기분이 들어서 싫었던 건 아닐까. 병원가는 길은 늘 마음을 어둡게 한다고 했는데 그때마다 오히려 씩씩하게 스스로를 돋우고자 의식처럼 차려입었던 것은 아닐까...... 만나면 물어보고 싶지만 이미 세상에 없는 엄마로부터 대답을 들을 수는 없다.


병원을 오가는 시간이 엄마에게는 늘 극복하기 힘든 두려움과 괴로움을 주었지만 동시에 괴로움으로부터 자신이 대처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과 의식 같은 행동들을 고민하게 했고 그것들을 실행하게 했다. 가족 그 누구도 헤아리지 않았던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엄마는 철저히 고립됨과 동시에 그렇게 온전히 혼자됨을 고민하였다. 그리고 나로서는 헤아릴 수도 없을 이 고민들이, 이제부터 내 삶의 한으로 서서히 자라나게 될 것임을 예감했다. 치유가 되든 안 되든 과거를 안는 과정 속에서 내가 짊어져야 할 것들은 뒤늦게라도 나타나고 그것은 평생을 지속할 수도 있을 것임을, 오히려 내가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것들은 더 또렷하게 의식될 수 있을 것임을 이제서야 어렴풋이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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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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