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년배의 동양화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2세대의 서양화가들은 1세대 화가들이 개척했던 바탕 위에서 본격적으로 저마다의 창의적인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 세대의 서양화가들은 수적으로 보나 작품의 방향성으로 보나 매우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어서 몇 가지 계열로 묶어서 설명하기가 곤란하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여기에서는 편의상 구상, 반추상, 추상의 세 유형으로 작가군을 나누어 작품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우선 구상 계열 작가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먼저 주목되는 것으로는 김인승, 박영선, 이인성의 작품들을 들 수 있어 보인다. 이들은 해방 이전부터 사실적인 아카데미즘을 연마하여 본격적인 성취를 거두기 시작했던 작가들로서, 이들 중 이인성의 경우 6.25 전쟁 때 목숨을 잃었지만 일찍이 괄목할 만한 작품들을 많이 남겨 크게 주목받았었고, 김인승과 박영선은 해방 이후로도 꾸준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먼저 김인승의 작품은 9점이 출품되었다. 그의 특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화 분야에서는 <소녀>(1956)와 <여인>(1976)이 출품된 것이 주목되며, 그 밖의 작품들에서는 <모란>(1957), <백장미>(1973)와 같은 꽃 그림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소녀>의 경우 그의 탁월한 인물화 표현 능력이 충분하게 발휘된 뛰어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젊은 무희를 모델로 하였다고 생각되는 이 작품은 화면 전체에 입혀 있으면서도 지루함을 주지 않는 붉은색의 톤, 조명을 받고 있는 피부 표현의 사실성, 치마의 주름에서 나타나는 시원시원하면서도 정확한 필선 등이 돋보인다.
한편으로 김인승의 출품작 중에서는 이 외에도 인물화 데생 한 점이 출품된 것이 눈길을 끄는데 이 그림은 『김인승 화집』에 실려 있는 <여인상 B>(1968)라는 제목의 작품과 완전히 동일한 구성을 하고 있어 해당 작품을 위해 그려진 습작이었을 것이라고 믿어진다.
박영선의 작품으로는 15점이 출품되었다.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화가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구상 회화에 약간의 추상적 성격을 가미한 듯한 그의 화풍에서 세련미를 느낄 때가 적지 않다. 그는 인물화를 주로 그린 것으로 보이며 더러는 추상화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정물화에 명편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의 절충적 화풍은 인물화에서는 다소 부자연스러운 구도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정물화에서는 그것이 별다른 어색함 없이 빛을 발하고 있다.
출품작들 역시 이러한 그의 작품적 경향을 얼마간 반영하고 있다. <모델>(1954), <누드>(1957), <여인들>(연도미상)을 비롯한 인물화도 적지 않고 또 <풍경>(1977)과 같이 괜찮은 풍경화도 있지만 역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정물화라고 생각된다. <정물>(연도미상)이나 <정물>(연도미상)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과 같은 간결 정확한 필치와 적절한 색채의 구사는 박영선의 정물화풍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인성의 작품은 3점이 출품되었다. 앞의 두 작가에 비하면 한결 적은 수량이지만 <주전자가 있는 정물>(1930년대)이나 <소년>(1940년대)과 같은 작품은 그의 뛰어난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수작들이며 그의 명성에 걸맞는 작품들이라고 생각된다.
이 밖의 구상 계열 작가들의 작품으로는 박득순의 작품이 2점, 김원의 작품이 8점, 손응성의 작품이 2점, 이종무의 작품이 2점 출품되었다. 이 중에서 김원의 <삼팔선수보지구>(1959)나 <80년의 한강>(1980)과 같은 작품은 제목으로 보면 일종의 기록화일 것이라는 인상을 주는데 대개 기록화적 성격의 작품들이 전형적인 표현력을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나름대로 충분한 작품성을 띠고 있어서 흥미를 준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반추상 계열 작가들의 작품들이다. 구상 소재를 취하면서도 사실주의적 경향에서 얼마간 벗어난 작품경향을 보여준 작가들은 정도에 관계없이 모두 이 유형으로 포함시켰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 수적으로 이쪽이 가장 비대해진 감이 없지 않다.
이러한 경향의 작가들 중에서 가장 첫 손에 꼽혀야 할 만한 이들은 아마도 이중섭, 박수근, 장욱진일 것이다. 이 세 화가는 뒤에서 이야기할 김환기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사랑받는 화가로 꼽힌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거기에 힘입어 새로운 작품들도 여타 작가에 비해 월등히 많이 발굴되어 왔고 전시회도 월등히 많이 열렸으며 작품 목록의 체계적인 정리 작업도 이루어진 바 있다. 그런 만큼 새로운 작가와 작품에 주목하고자 하는 이 글에서는 이들의 작품은 되도록 간소하게 다루려고 한다.
먼저 이중섭의 작품으로는 <가족>(1954), <물고기와 석류와 가족>(1954), <물고기와 아이들>(1955-56), <해초와 아이들>(1950년대)의 네 점과 함께 이른바 은지화 작품이 세 점 출품되었다. 특히 앞의 두 작품에서는 이중섭 작품의 일면인 따뜻하면서도 활기 있는 가족의 모습을 주제로 하고 있다.
박수근의 작품으로는 <노상의 사람들>(1950년대), <마을>(1963), <두 나무와 두 여인>(1964), <노상>(1960년대)의 네 점이 출품되었다. 모두가 캔버스 1호 정도 크기의 소품이지만 특유의 표면 조성과 인물 표현에서 박수근 작품의 개성이 묻어나고 있다.
장욱진의 작품은 11점이 출품되었다. 이 중에는 <달맞이>(1976)나 <무제>(1980)와 같이 지극히 단순한 스케치로만 이루어진 그림도 존재한다. 알려져 있다시피 그의 화풍은 대체로 간결성을 띠는 경우가 많아 작품과 작품 이전의 단순 데생의 경계를 구분하기가 어렵다고 생각된다. 출품작 중에서 <마을>(1972), <동산>(1978), <나무와 소>(1985)와 같은 작품은 그의 전형적인 스타일이 잘 나타나고 있다.
이중섭, 박수근, 장욱진과 같은 세대의 화가들 중에는 그들 못지않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개척해 나갔던 화가가 매우 많이 있는데 이 중 전혁림, 최영림, 이봉상, 박상옥, 윤중식, 황염수 등의 작품이 경매에 출품되었다. 전혁림과 최영림은 각각 강렬한 색채와 원시적 소재로 독창적인 자기 세계를 만든 것으로 잘 알려져 있고, 이봉상은 김환기가 그랬던 것처럼 구상 소재를 세련된 반추상화로 다루는 데에 탁월했다. 박상옥과 윤중식은 서정적인 정경을 소재로 즐겨 다룬 화가들이고, 황염수는 화훼 그림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일구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전혁림의 작품은 8점이 출품되었다. 초기작으로 짐작되는 <무제>(연도미상)는 생선이 올려진 접시를 그린 작품인데 후기의 화풍과는 달리 비교적 사실성에 중점을 두고 있어 그의 또다른 일면을 보여준다. 자기 스타일을 정립한 이후의 작품으로는 <한려수도>(1984)와 <장신구(노리개에서)>(1988)가 주목된다. <한려수도>는 그가 심심찮게 다루었던 주제의 하나인 바닷가 풍경을 멋들어지게 표현한 작품이다. <장신구(노리개에서)>는 『전혁림 화집』에도 실려 있는 작품인데 세로로 길쭉하게 2m가 넘는 큰 규모를 하고 있고, 제목처럼 노리개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한 구성과 후기 작품 특유의 다양한 색채의 혼합이 나타나고 있다. 여러 색채의 대비를 동원하는 그의 후기 작품의 스타일은 경우에 따라서는 색채가 탁하거나 과하다는 느낌을 줄 때도 있는 것이 사실인데 이 작품은 그런 아쉬운 요소가 전혀 없고 매우 화사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기의 그의 대표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최영림의 작품은 19점이 출품되었다. 그 역시 전혁림처럼 후기의 고착화된 화풍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작가이지만, 아는 사람은 아는 바와 같이 그는 50년대를 전후한 이전 시기에는 검은색을 많이 써서 다소 어두운 느낌을 주기도 하는 작품 경향을 보여주었다. 그의 초기작으로는 <무제>(1953) 한 점이 출품되었는데 소품이기는 하지만 후기의 스타일이 정립되기 이전의 분위기가 반영되어 있다. 이후의 소작으로서 출품된 <효녀 심청>(1971), <무제>(1974), <무제>(1975), <시골 아씨>(1975), <남과 여>(1982), <여인들>(1984), <낙원>(1984) 등의 작품들은 잘 알려져 있는 그의 원시적이고도 연갈색조를 띠며 해학적인 분위기가 담겨 있다.
이봉상의 작품은 <정물>(1955), <정물>(연도미상)의 2점이 출품되었다. 크기도 같고 소재도 비슷해 같은 시기에 그려진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생애 후반기에 와서는 완전 추상을 선보이기도 했지만 구상 소재를 참신하고 세련되게 표현했던 50년대의 소작에도 좋은 작품이 많이 있는데 출품작들 역시 이 시기의 그의 실력이 잘 발휘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박상옥의 작품은 <향원정>(1965)과 <풍경>(1966)의 2점이 출품되었다. 편의상 반추상 계열의 작가로 분류하기는 했지만 그는 추상보다는 구상에 훨씬 가까운 작가인 것으로 보여진다. 출품작 중에서 <풍경>과 같은 작품은 목가적인 풍경을 정갈하게 표현한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윤중식의 작품은 9점이 출품되었다. 그는 풍경과 같은 소재를 종횡의 부드러운 윤곽선으로 표현한 특유의 스타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백영수와 함께 가장 서정적이고 따뜻한 화풍의 소유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풍경>(1976)이나 <바다 풍경>(1986)과 같은 작품은 그의 가장 애용되어 온 소재라고 생각되는 일출 혹은 일몰의 시간대의 전원 풍경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밖에도 <여름>(1956), <정물>(1971) 등의 작품이 특유의 차분한 화풍이 반영된 수작이라고 생각된다.
끝으로 황염수의 작품은 16점이 출품되었다. 그는 가령 조선 말기에 나비 그림의 남계우나 난초 그림의 민영익이 그랬던 것처럼 중년기 이후 장미 그림에 천착해 이름을 떨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품작들 역시 한 점의 백합 그림을 제외하면 모두가 장미 그림이며 소폭의 크기와 선명한 색감, 뚜렷한 윤곽선을 주요한 특징으로 하는 특유의 화풍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 밖에 박고석의 작품으로 <공룡능선>(1978) <홍도>(1987) 등 3점이, 장두건의 작품으로 <서울근교 풍경>(1977), <무제>(연도미상) 등 4점이 출품되었으며, 비슷한 계열의 작가들로 조병덕, 송혜수, 장리석 등의 작품들도 출품되었다.
다음으로 추상 계열 작가들의 작품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추상화는 해방 이전까지만 해도 전혀 화단의 주류가 아니었지만 해방 이후 비약적으로 성장해 20세기 후반에 괄목할 만한 성취를 거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추상 분야의 최고 거장으로 꼽히는 작가로는 흔히 김환기와 유영국을 꼽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그들이 추상화의 초창기를 개척한 작가일 뿐만 아니라 꾸준한 자기갱신의 노력으로 독보적인 작품적 성취를 거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환기의 작품으로는 42점이 출품되었다. 출품작 중에는 이 밖에 몇 점의 스케치 작품이 있기도 하다. 그는 아주 길지만은 않았던 생애에 실로 다양한 화풍의 작품들을 남겼는데 그는 '타율'이 매우 높은 작가여서 여러 가지 시도에서 모두 뛰어난 작품들을 남겼고 같은 경향 속에서도 저마다의 작품이 개성을 가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실패작이 없는 김환기의 작품에서 우열을 가리는 것이 우스운 일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완전 추상으로 넘어간 후기의 작품보다는 구상 소재의 세련된 추상적 승화가 돋보이는 5~60년대의 소작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정물>(1953)이나 <산>(연도미상)과 같은 작품은 구상의 흔적이 비교적 강하게 남아 있는 소품으로서 아기자기한 매력이 돋보이는 명편이라고 생각되며 이후 자연물을 소재로 취하면서 추상화를 좀 더 진행시킨 <무제>(1961), <무제>(1964), <달 둘>(1966), <무제>(1966), <무제>(1970) 등은 이 시기의 그의 매력이 물씬 풍기는 작품들이 아닐 수 없다. (사진에 있는 작품은 1966년작의 <무제>이다.)
한편 <무제>(1967-68), <무제>(1969), <14-VII-69 #87>(1969), <무제>(1969) 등은 비슷한 시기의 완전 추상을 보여주는 작품들이고, <4-XI-69 #132>(1969), <22-X-73 #325>(1973), <무제>(1973) 등은 그의 생애 후반기에 제작된 이른바 '점화' 계열에 속하는 작품들이다.
유영국의 작품으로는 삽화 한 점을 포함해 10점이 출품되었다. 60년대의 소작인 <영혼>(1965)을 제외하면 <작품>(1984), <작품>(1986), <작품>(1988), <작품>(1989), <작품>(1990) 등 모두가 8~90년대의 작품들인데 깔끄러운 질감을 이용한 60년대의 화풍과 매끄러운 구성을 이용하는 80년대 이후의 화풍이 대비되는 것 같다. (사진에 올린 작품의 경우 아래의 왼쪽이 1986년작, 오른쪽이 1990년작이다.)
간결한 듯 짜임새 있는 구성과 이질적인 색감의 어울림이 돋보이는 유영국 특유의 화풍이 잘 담겨진 작품들이라고 생각되며, 통일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작품마다의 개성이 강해 그가 뛰어난 공력의 소유자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김환기나 유영국과 동년배의 추상화가로서 또한 크게 주목되는 작가로는 남관, 한묵, 이성자를 들 수 있다. 이들은 해방 이후 유럽에서 오랜 기간 활동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앞에서 언급한 두 작가에 비하면 한결 덜 알려져 있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들에 못지않은 세련되고 독보적인 자기 세계를 일구어내었다고 여겨진다.
먼저 남관의 작품은 31점이 출품되었다. <념>(1959), <중세기의 뜰>(1966), <구성 1(푸른 형상)>(1968), <환상>(1973), <무제>(1980), <무제>(1980년대), <무제>(1983), <피에로 가족 85-A>(1985) 등의 작품들은 유학 이후 그의 화풍의 변모 양상을 보여주는 좋은 작품들이라고 생각된다. 유화 이외의 작품으로는 1986년 7월작으로 표기되어 있는 동일한 화풍의 두 점의 수채화가 출품된 것이 눈길을 끈다.
이성자의 작품은 스케치풍의 과슈 그림을 포함해 14점이 출품되었다. 탄생 100주년 기념전에 전시된 바 있는 <대지가 빛을 발할 때>(1959)를 비롯해 <소년기의 밤(Nuit Adolescente)>(1958), <무제>(1961) 등은 초기의 작품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후기의 작품으로는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연작에 속하는 8~90년대의 소작 6점을 비롯해 <나의 은하 궁전 3월>(2000) 등이 출품되었다.
이성자의 후기 화풍을 대표한다고 생각되는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연작의 작품들은 거의 예외 없이 제목에 제작 연월 및 월별 제작 순번을 표기되어 있어, 작품에 제목이나 일련번호를 붙이지 않는 경우가 많은 다른 화가들에 비해 작품들의 체계적 정리를 한결 용이하게 해주고 있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의 표제를 보면 각각 ① 81년 8월 2번, ② 91년 6월 3번, ③ 91년 6월 5번, ④ 92년 3월 2번, ⑤ 92년 11월 6번, ⑥ 93년 6월 1번임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중 91년 6월이라는 같은 시기에 제작된 작품이 두 점 나온 것이 눈길을 끈다.
한묵의 작품은 4점이 출품되었다. 초기작으로는 <정물>(연도미상)이 출품된 것이 주목되며, <무제>(1976)를 비롯해 <원색의 비상>(1986), <황색의 핵>(1986) 등은 유학 이후 얻어진 특유의 기하학적 추상화풍을 잘 드러내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 추상화 계열 작가의 작품으로는 현존 작품이 많지 않은 이규상의 <감인(堪忍)>(연도미상)과 함대정의 <무제>(연도미상)가 출품된 것이 눈길을 끌고, 해방 이후 독창적인 스타일의 회화를 선보였던 김흥수와 곽인식의 작품 또한 십여 점이 출품되었다. 백 살을 넘긴 현재까지도 지속적인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작가인 김병기의 작품으로는 <풍경>(연도미상) 한 점이 출품되었다. 그의 작품 중에는 특유의 속도감 있는 필선을 통해 구상과 추상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명편들이 많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