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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정연 Oct 11. 2021

사향 박하의 뒤안길

미당 시전집 강독 1: 『화사집』에서 세 편

                    1.


이남호 평론가는 서정주에 대해서 이런 재미있는 가정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인지 몰라도 이런 생각을 한 번 해봤습니다. 미당 선생님께서 1941년에 『화사집』을 내셨는데, 『화사집』 내시고 직후에 한 1942년쯤 요절하셨으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정말 너무 죄송한 상상이고 가정이지만, 만약 그때 요절하셨으면 『화사집』 하나만으로도 미당 선생님은 지금, 어떤 정치적 오점도 남기기 전일 테니까, 그것 하나만으로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존경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화사집』 한 권만이라도. 그런데 미당 선생님은 그 후에 그와 같이 훌륭한 시집을 열몇 권을 더 쓰셨습니다. (주1)


이 가정은 우리에게 두 가지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서정주가 첫 시집인 『화사집』 한 권만을 남기고 요절했다면 사람들에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이미지로 남아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가 이후 「국화 옆에서」나 「동천」과 같은 명편들을 쏟아냈음을 염두에 둔다면, 비록 명성은 좀 퇴색할지언정 장수의 시인으로 남아서 오랫동안 작품활동을 한 것이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보면, 서정주가 정말로 요절했더라도 그는 『화사집』 한 권만 가지고도 뚜렷한 문학적 업적을 남긴 시인으로 기억되었으리라는 추측을 충분히 가능하게 합니다. 이 점은 역설적으로 한국 시에서 『화사집』이 가지고 있는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 주는 것 같습니다.


『화사집』이 출간된 해는 1941년입니다. 이에 앞서 서정주가 「벽」이라는 시로 얼떨결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한 뒤 곧이어 문예지 『시인부락』을 만들면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한 해는 1936년이고, 이후 첫 시집의 원고를 완성해 출판사 남만서고를 운영하던 시인 오장환에게 넘긴 것은 1938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집의 출간은 출판사의 경제적 사정으로 세 해나 늦춰지게 됩니다.


서정주가 시인으로서 출발하던 1930년대 후반은 한국 시의 발전기로서, 1920년대 초반 이후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반복하던 근대시가 본격적인 성취를 보여주기 시작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 활동하던 시인들의 면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20년대의 한국 시는, 물론 여러 시인들이 등장하긴 했지만, 김소월과 한용운의 시집 그리고 정지용의 초기 시편을 제외하면 읽을 만한 것이 별로 없는데, 시간이 흘러 30년대 중후반에 이르면 시인들의 매력도 다양해지고, 개개 시편의 완성도도 높아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유종호 평론가의 『한국근대시사』에서 두 대목을 인용하겠습니다.


1920년대는 20세기 한국 시의 장르적 형성기요 부족한 대로 하나의 성숙기였다. (…) 이 시기의 시문학사는 사실상 『진달래꽃』과 『님의 침묵』의 시적 성취를 통해서 서술하는 것이 가능하다. 당시 시집의 형태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주목할 만한 새 작품을 보여 준 정지용의 초기 업적이 첨가된다면 그 서술은 더 견고해질 것이다. 그 밖의 것은 결국 주변적 사실의 확인을 통해 이들의 천재적인 업적이 가능했던 보조적 분위기와 구체적 맥락을 더듬어 보는 미시적 천착에 지나지 않으며 극소수 연구자의 관심 사항일 뿐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막연한 문학적 의지나 표현 욕구가 김소월, 한용운의 시집과 정지용의 초기 작품 속에서 구체적 성취를 보여 주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그 시대를 대표하게 된 것이다.


1935년은 『정지용시집』과 『영랑시집』이 간행된 해이다. (…) 이 시기에 들어 20세기의 한국 시는 크게 보아 습작기를 청산하게 된다. 19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적 노력이 여러 단계의 형태적 세련을 거치면서 일정 수준의 성숙함을 보여 주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아마추어리즘의 탈피와 프로페셔널리즘으로의 진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프로페셔널리즘이란 일단 시인으로서의 직업적 기량을 확보했다는 뜻이고 반드시 생계 유지와 연관되는 것은 아니다. 1935년 이후의 많은 시적 성취를 우리는 그러한 맥락 속에서 접근하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30년대 중반 이후에 등장한 시인들의 면면은 다채롭기 그지없습니다. 세대가 조금 앞서는 정지용과 김영랑을 제외하더라도, 유치환, 백석, 이용악의 개성적인 언어 구사, 김기림의 주지주의와 김광균의 도회적 서정, 신석정의 목가적 성격, 노천명의 방랑 기질, 이육사의 지사적 의지, 박두진의 기독교 정신에 기반한 자연 추구, 박목월의 향토성 지향, 조지훈의 선비적 풍모, 윤동주의 성찰적 태도 등의 특징들은 각각의 시인에 있어서 독자적인 영역과 성취를 이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열거한 시인들 사이에서도 서정주는 특히 독보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남호 평론가는 『화사집』에 수록된 시들을 네 종류로 구분하면서, 그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두 가지 성격에 대해서 이렇게 짚어보고 있습니다.


1. 무한 욕망의 전율: 『화사집』의 가장 인상적인 면모는 그 강렬한 육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화사집』은 강렬한 관능과 성적 욕망의 황홀감을 과감하게 노래한다. 「화사」 「대낮」 「맥하」 「입마춤」 등의 작품에서 시인은 관능의 매혹에 탐닉되기도 하고, 성적 충동과 그 죄의식 사이에서 갈등을 보여주기도 하고, 또 때로는 관능적 미학을 노래하기도 한다. 관능과 성욕을 『화사집』만큼 인상적으로 노래한 예는 우리 문학사에서 달리 찾아볼 수 없다.


2. 죄와 저주의 어두운 운명: 『화사집』의 화자는 관능과 성적 충동에 강하게 이끌리는 존재이다. 그러나 무한 욕망의 추구는 사회적 관습, 도덕, 질서 등과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관능을 부르는 피는 '불순한 피'가 되고, 성적 충동에 굴복한 행동은 죄가 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 충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는 서러움과 저주의 운명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래서 『화사집』의 화자는 자신의 삶이 서럽고 저주받은 것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내보인다. 「자화상」 「문둥이」 「부흥이」 등의 시편들에는 세상에서 용납되지 않는 불순한 피를 가진 불안정하고 위험한 존재가 세상에 대해 갖는 감정이 날카로운 오기와 원통함 등으로 나타나 있다. (주2)


이 두 가지 성격은, 전대의 한국 시에서는 대단히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었고, 당대의 한국 시에서는 시도는 되더라도 그때껏 제대로 된 성공을 별로 보지 못하던 것이었습니다. 요컨대 서정주의 초기 시는 어두운 에너지를 지닌 독보적인 성질과 그것을 매력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탁월한 언어 구사 능력이 모두 조화되면서 유례가 드문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겸장의 미덕은 서정주를 당대의 가장 참신한 신진 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주목받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김용직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한마디로 그는 아주 든든한 30년대 후반기 시단의 역군으로 나타난 것'입니다.(주3)


                    2.


총 다섯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는 『화사집』의 첫 장을 폈을 때 우리가 맨 먼저 마주치게 되는 것은 첫 단락인 '자화상' 편에 독존으로 실려 있는 시, 「자화상」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전집을 폈을 때도 이 작품을 제일 먼저 만나게 됩니다. 이 점은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시인으로서의 자신의 모습과 방향에 대해 노래하고 있는 이 시가, 마치 '시집에 들어가는 관문, 그리고 그의 시집 전체의 방향을 알리는 메니페스토와 같은 역할'(주4)을 하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기퍼도 오지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뿐이었다.

  어매는 달을두고 풋살구가 꼭하나만 먹고 싶다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도라오지 않는다하는 외할아버지의 숯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눈이 나는 닮었다한다.


  스믈세햇동안 나를 키운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하드라

  어떤이는 내눈에서 죄인을 읽고가고

  어떤이는 내입에서 천치를 읽고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찰란히 티워오는 어느아침에도

  이마우에 언친 시의 이슬에는

  멫방울의 피가 언제나 서꺼있어

  볓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느러트린

  병든 숫개만양 헐덕어리며 나는 왔다.


'애비는 종이었다'라는 시의 첫 구절은 두 가지가 충격적입니다. 화자가 자신의 아버지를 '애비'라는 멸칭으로 부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의 낮은 신분을 거리낌없이 터놓고 밝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자는 효를 근간으로 하는 유교적 가치관을, 후자는 신분을 중시하는 사회적 통념을 가리키는 것인데, 화자는 시집의 첫 문장으로 이 두 가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후일 김지하의 「황톳길」 같은 작품으로도 영향을 주었다고 짐작되는 이 구절은 기존의 사회가 굴레 씌우고 있는 자신에 대한 규정과 편견을 단호하게 거부하려는 화자의 태도를 드러냅니다.


뒤이어 1연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들은, 밤이 깊어도 오지 않는 아버지를 시작으로 가족 구성원의 모습을 한 장면씩 포착함으로써 화자의 불우한 가정환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파뿌리'와 '대추꽃 한 주'의 표현은 늙고 홀로된 할머니의 모습을 부각시켜 주고, 임신하여 '풋살구가 꼭하나만 먹고싶다'고 하는 '어매'의 모습과 '바람벽', '호롱불', '깜한 손톱'으로 묘사되는 화자 자신의 모습은 가난하고 딱한 생활적 환경을 간결하고도 리얼리스틱하게 드러내 줍니다. 마지막으로 '바다에 나가서는 도라오지 않는다하는' 할아버지와 자신이 닮았더라고 하는 구절은, 기본적으로는 화자에게 암시되고 있는 떠돌이의 운명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선대로부터 자식에게 불우한 삶이 대물림된다는 후진 사회에서의 명제를 연상시키게도 하는 것 같습니다.


2연의 첫 구절, '스믈세햇동안 나를 키운건 팔할이 바람이다'라는 문장은 화자의 거칠었던 생애를 한 마디로 압축하여 나타내는 말로써 너무나 유명합니다. 부침 많았던 삶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인구에 회자되는 이 대목은 ''바람'의 다의성과 고리대금의 이자율이나 소작농의 지대 지불의 비율에 관련되는 어사인 '팔할'의 당돌한 결합 때문에 유례없는 참신성을 얻고 있'습니다.(주5) 이어지는 문장인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라는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제가 읽었을 때는, 사람이 아무리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해도 살다 보면 부끄러운 일을 계속해서 겪게 된다는 사실을 담은 표현인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그 다음 구절인 '어떤이는 내눈에서 죄인을 읽고가고/ 어떤이는 내입에서 천치를 읽고가나'의 경우 얼른 보아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데, 제가 보기에 사람들이 화자의 눈에서 죄인을 읽는 것은 미천한 집안 사람인 할아버지의 눈과 그의 눈이 닮았기 때문일 것이고, 화자의 입에서 천치를 읽는 것은 그가 섬겨야 될 아버지, 어머니를 애비, 에미라고 부르는 못 배워먹은 말투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는 다시 화자의 자라난 환경과 사회적 출신과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어지는 문장인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라는 말은, 첫 구절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한계 짓는 사회의 구조와 통념을 향해 나에게 씌워진 사회적 굴레는 나의 탓이 아니라는 저항의 표현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구절은 훗날 서정주가 자신의 정치적 과오를 마냥 뉘우치지 않았던 줄로만 착각하던 호사가들에 의해 그가 나중의 삶을 예언한 셈 아니냐는 쑥덕거림을 낳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를 떠나서라도 뉘우치지 않겠다는 표현 때문에 화자에게서 자기반성의 자세가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이는 바로 앞에 나오는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라는 구절을 간과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연 마지막 행의 이 표현은 시집에 수록된 또 다른 시 「문」에서 '뉘우치지 않는사람, 뉘우치지 않는사람아!'라는 구절로 다시 등장하기 때문에, 이 시와 함께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방법일 것 같습니다.


3연은 시인으로서의 화자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시를 쓰면서 그의 이마에는 이슬이 맺히지만, 설령 그때가 찬란한 아침이라 할지라도 그 이슬에는 피가 섞여 있습니다. '피'는, 설명하기가 어렵지만, 몸으로부터 온 것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어떤 핵심적인 요소로서 느껴지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이 시에서 본능적이면서도 진실한 것에 대한 비유로 쓰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람들은 으레 시인이라고 하면 고귀하고 멋있는 존재로 생각하기 쉽지만, 시의 이슬에 피가 섞여 있기에 화자는 그런 멋있는 모습으로 올 수가 없습니다. 물론 시의 흐름이 너무나 잘 짜여져 있기 때문에 어쩌면 비극의 주인공같이 멋있게 그려진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하여간 그가 그곳이 볕이건 그늘이건 '혓바닥 느러트린/ 병든 숫개만양 헐덕어리며' 와야 했던 것만큼은 사실일 것입니다.(주6) 이것이 시인이 말하고 있는, 시인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입니다.


「자화상」은 흔히 서정주의 걸작 중의 걸작으로 손꼽힙니다. 독자에게도 그렇겠지만, 특히 평론가의 경우, 서정주론을 쓴 모든 평자들이 거의 반드시 이 작품을 언급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시는 시인 자신의 의식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시에 비해 더 주목할 만한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도 시 자체에서 오는 감흥이 큰 데에서 연유한 결과일 것입니다. 시의 전면에서 드러나고 있는 유례 없는 어두운 에너지와 그것을 형상화하는 구절구절마다의 표현의 탁월함은, 시인이 스물세 살 되던 해 가을에 이 시를 썼다는 사실과 함께 우리를 절로 감탄하게 만듭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시를 비롯한 『화사집』 수록 시편들이 전반적으로 현실 부정의 기조를 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의 구사는 지극히 토속적이고 익숙한 우리말에 기반을 둔 것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단어의 선택 등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와 관련한 김우창 평론가의 언급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이런 시 읽는 게 얼마나 문화적인 관습에 매어 있는가 얘기를 하면, 중요한 얘기는 아니지만, 이 시의 반 이상이 자기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이런 얘기를 했어요. 영어로 서정주 시를 번역한 데이비드 맥캔이라고 하버드에서 한국문학 가르치는 사람이 쓴 걸 읽어보니까, 논평을 하면서, 이게 자화상이라고 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얘기만 했느냐, 가족 얘기만 한다, 이런 논평이 짤막한 게 들어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내가 누구냐 하려면 할아버지 할머니, 우리 14대 조가 뭐 하고 어쩌고 이렇게 얘기하는 게 관습이 돼 있는데, 미국 사람 눈으로 보니까 자화상이면 자기 얘기를 할 일이지 왜 이렇게 얘기하느냐 이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주7)


                    3.


「자화상」에 이은 시집의 두 번째 단락인 '화사' 편에는 여덟 편의 시가 실려 있습니다. 여기에 수록된 「화사」, 「문둥이」, 「대낮」, 「맥하」, 「입마춤」, 「가시내」, 「와가의 전설」, 「도화도화」는 모두가 앞에서 언급되었던 '강렬한 육체성'을 지닌 숨 가쁜 목소리와 장면들의 향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첫 번째 수록 시이자 시집의 표제가 된 「화사」는 그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일 것입니다. 이 시는 행간의 구분이 매우 특이한 시이기도 합니다.(주8)


  사향 박하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베암…….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여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둥아리냐


  꽃다님 같다.


  너의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든 달변의 혓바닥이

  소리잃은채 낼룽그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눌이다…… 물어뜯어라. 원통히무러뜯어,


  다라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 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초ㅅ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안해가 이브라서 그러는게 아니라

  석유 먹은듯…… 석유 먹은듯…… 가쁜 숨결이야


  바눌에 꼬여 두를까부다. 꽃다님보단도 아름다운 빛……


  크레오파투라의 피먹은양 붉게 타오르는 고흔 입설이다…… 슴여라! 베암.


  우리순네는 스믈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흔 입설…… 슴여라! 베암.


시의 전반부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대상이 가지고 있는 모순된 성격에 대한 것입니다. 시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베암'과 화자 모두가 그렇습니다. '베암'은 매혹적이게 아름답고도 저주와 슬픔에 싸인 징그러운 존재로 규정되어 있으며, 화자는 그런 뱀에게 돌팔매를 던지면서도 동시에 그에게 매료되어 따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화영 평론가는 이를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비평가들이 이 시인을 '생명파'라고 일컫고 또 때로는 보들레르적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일 것이다. 과연 '사향 박하의 뒤안길'에서의 '배암'은 보들레르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 「화사」가 표현하고 있는 시인의 태도는 양면적이다. 배암은 우선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여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둥아리냐'에서 보듯이 부정적인 악의 모습, 혐오감과 저주의 대상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사향 박하'의 뒤안길이라는 매혹적인 공간 속에 등장하여 '꽃다님' 같은 유혹의 모습을 띤다. 생명은 이처럼 혐오와 매혹, '징그러움'과 '꽃다님보담도 아름다운 빛'이라는 이율배반의 모습을 띠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다라나거라'라고 외치면서도 동시에 '돌팔매를 쏘면서'도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이다. (주10)


평자들이 서정주 초기 시의 어두운 에너지에 주목하는 것은 그 말씨가 지닌 매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 바로 '보들레르적'인 것이라고 흔히 말해지는, 도덕에 대한 변증법적 논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매혹적이라고 곧장 따라가지도 않고, 죄의 냄새가 풍긴다고 뻣뻣하게 갈라치지도 않는 양면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것은 삶이 지닌 모순적 측면을 실감 있게 드러내 줍니다.


시의 전반부에서 '베암'에 대한 양가적인 인상과 태도를 보여주던 화자는 그로 인해 품고 있던 공격성을 6연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고, 이어지는 후반부의 7연과 8연에 오면 비로소 그것을 현실에서의 구체적인 생각으로 연결하게 됩니다. 7연에서 화자는 '크레오파투라의 피먹은양 붉게 타오르는 고흔 입설'을 가진 뱀의 매혹이 자신에게 스며들라고 말하고, 이어 8연에서는 '고양이같이 고흔 입설'을 가진, 아마도 화자의 연인일 것이며 순박한 인물이라고 생각되는 '순네'에게도 이러한 매혹이 스며들라고 말합니다. 전체적으로 「화사」는 '아름다움'과 '징그러움'의 양면성을 '베암'이라는 관념적인 존재로 비유하면서, 그것이 지닌 특징 중에서도 매혹적인 요소를 자신의 현실에 스며들기를 바라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어 보입니다. 특유의 숨 가쁜 어조 덕에 실감이 살아 있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소재 채취의 관념성 때문에 「자화상」에서 볼 수 있었던 만큼의 실감을 얻고 있지는 못하다는 평을 받기도 합니다.


이렇게 「화사」에서 볼 수 있는 매혹과 슬픔이 교차하는 장면은 함께 실려 있는 다른 시들에서도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화사」에 뒤이어 실려 있는 두 편의 시, 「문둥이」와 「대낮」은, 이를 가장 잘 보여주면서도 각각 비극적 측면과 매혹적 측면에 주로 집중되어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이어 등장하는 「맥하」와 「입마춤」은 「대낮」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욕망의 강렬한 분출, 즉 성희의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가시내」는 성적 욕망을 완전히 이해하기 직전인 사춘기의 모호한 성적 그리움을 노래한 시지만, 전체적으로는 같은 범주로 묶일 만한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와가의 전설」은 「대낮」 계열의 시들과는 그 주제가 사뭇 다릅니다. 여기에서의 등장 인물인 '숙'은 이미 죽은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속눈섭이 기이다란, 계집애의 연륜은

  댕기 기이다란, 볽은댕기 기이다란, 와가천년의 은하물구비…… 푸르게만 푸르게만 두터워갔다.


  어느 바람속에서도 부끄러운 열매처럼 부끄러운 계집애.

  청사(靑蛇).

  뽕나무에 오디개 먹은 청사.

  천동(天動)먹음은,

  번갯불 먹음은, 쏘내기 먹음은,

  검푸른 하늘가에 초롱불달고……


  고요히 토혈하며 소리없이 죽어갔다는 숙은,

  유체 손톱이 아름다운 계집이었다한다.


1연과 2연에서 '기이다란' 속눈썹과 댕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계집애'의 '연륜'은 '천년' 된 와가의 '은하물구비'와 더불어 '푸르게만 푸르게만 두터워' 갔던 것으로 표현됩니다. 어디서고 '부끄러운 열매처럼 부끄러운' 모습으로만 있었던 그의 모습은 검푸른 하늘가에 오디를 집어삼킨 '청사'에 비유됩니다. 시집 속에서의 다른 시들과 대비될 정도로 이 시에서는 푸른색에 대한 시각적 표현이 여러 차례 등장하고 있으며, 특히 뽕나무에 익은 오디는 그 푸른빛이 붉다 못해 생기는 것이라는 점도 사려됩니다.


'유체 손톱'이 아름다웠다던 '숙'은 그러나 '고요히 토혈하며 소리없이' 죽어갔다고 언급되는 것으로 시는 끝납니다. 김우창 평론가는 이 시 속에 쓰인 비유들을 풀어내면서 이 작품을 두고 '성적 억압을 견디어 내야 했던 정절의 여성'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 '서정적 설화이면서 당대의 현실과 전통에 대한 날카로운 해석을 담고 있는' 작품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별로 알려진 작품은 아니지만, 서정주 초기 시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구성력이 현실 감각과 절묘하게 결합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중년기에 썼던 그의 또 다른 작품인 「신부」와도 연결되는 주제의 시가 아닌가 싶습니다.


댕기가 길다는 것을 되풀이한 것은 처녀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고, 또 그것은 자연스럽게 긴 세월에 이어진다. 불분명한 채로 여기 여성의 연령도 구태여 따지자면 천년쯤 된 기와집의 한 부분을 나타낸다. 그것은 처녀가 그러한 긴 전통의 무게를 받들고 있다는 말로, 긴 역사가 기와집 처녀의 연령을 실제의 나이에 관계없이 무한한 세월의 일부가 되게 하고, 은하처럼 멀고 드높은 것이 되게 한다. 그리하여 처녀는 푸르기만 하다. 처녀는 성숙한 처녀이면서도 스스로의 성숙함을 부끄러워하고, 외모도 차가운 청사와 같은 것으로 말하여진다. 특이한 것은 그 청사가 동시에 천둥, 번개, 소나기를 머금고 있다는 점이다. (…) 숙은 아무 말도 소리도 없이 피를 토하면서 죽어 갔다. 유체의 손톱이 아름답다는 것은 이 여성도 아름다운 육체의 소유자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미당의 시에서, 아름다운 손톱은 여성미의 상징으로 쓰인다.)


이 시의 어조가 반드시 비판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판적 관점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시의 시적 효과를 높인다. (…) 사실 「와가의 전설」과 같은 시에 이러한 사상적 맥락을 결부하여 읽는 것은 무리스러운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미당이 금욕주의 - 유교가 부과한 금욕주의에 크게 반발한 것은 그의 시와 산문의 도처에 보이는 것이다. (주11)


'화사' 편의 나머지 작품인 「도화도화」는 '내 나체의 예레미야서/ 비로봉상의 강간사건들'과 같이 난해한 구절들이 등장하는, 해석하기가 다소 난감한 시입니다.





1) 네이버 <열린연단>의 '고전 강연' 참조.

2) 이남호, 『서정주의 『화사집』을 읽는다』(열림원, 2003).

3) 김용직, 『한국현대시사』 2권(한국문연, 1996).

4) 김우창, 「떠돌이의 귀향」, 『고전 강연』 8권(민음사, 2018).

5) 유종호, 『한국근대시사』(민음사, 2011).

6) 가령 남진우 시인은 시의 초반부에서 화자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오지않었다', '도라오지 않는다하는'으로 표현된 것과는 달리 말미에서 자신은 '왔다'라고 표현되어 있는 점 등을 지적하면서, 화자 자신을 그들과 구별되는 존재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남진우, 「집으로 가는 먼길」, 『그리고 신은 시인을 창조했다』(문학동네, 2001).

7) 네이버 <열린연단>의 '고전 강연' 참조.

8) 이 글에서의 작품 인용은 대체로 원 발표 시집과 함께 1972년에 출간된 『서정주문학전집』에서의 표기 변화를 참조했지만, 「화사」의 경우 보기에 따라 연과 행이 다르게 분절될 만한 부분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해방 직후의 정본이라고 생각되는 『현대시집』 1권(정음사, 1950)에서의 텍스트를 가장 믿을 만한 것이라고 판단해 이를 따랐습니다.

9) 김우창, 위의 글.

10) 김화영, 『미당 서정주의 시에 대하여』(민음사, 1984).

11) 김우창, 위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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