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미당 시전집 강독 4: 『귀촉도』에서 세 편

by 노정연

3. (계속)


'귀촉도' 편 후반부에 실린 네 편의 시 또한 그리움을 노래한 시들입니다. 다섯 번째로 수록된 「푸르른 날」은 송창식 가수의 작곡을 통해 노래로도 잘 알려져 있는 시입니다. 시인들의 시를 노래로 만드는 사례를 우리는 종종 볼 수 있는데, 서정주의 경우 개인적으로는 김두수 가수가 부른 「귀촉도」와 함께 이 두 곡을 가장 대표적인 경우로 꼽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처 단풍 드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귀촉도』 무렵의 서정주 시는 음률성이 잘 살아 있다는 점이 큰 미덕으로 꼽히곤 합니다. 그래서 노래로도 만들어진 것일지 모릅니다.(주1) 유종호 평론가는 이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지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음악성 지향의 시가 사고의 깊이를, 사유 지향의 시가 음악성을 희생시킬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점을 언급한 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미당 시에서) 음악성 혹은 소리 지향이 가장 높은 성취를 보여준 것은 시집 『귀촉도』 전후의 시기라고 생각된다. 『귀촉도』에는 「밀어」 「견우의 노래」 「꽃」 「목화」 「행진곡」 「멈둘레꽃」 같은 명편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반(反)산문 지향은 뚜렷하다. 이어서 나온 『서정주 시선』에는 「국화 옆에서」 「신록」「추천사」 등 음률 지향의 명편이 수록되어 있어 역시 그 절정기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렇지만 미당의 솜씨와 그릇으로도 음률적인 소리 지향이 자칫 깊이를 잃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점차 산문으로 대담하게 근접해 가서 독자적인 깊이에 이른다. 미당만한 그릇과 솜씨로도 음률 지향이 자칫 「푸르른 날」 「노을」과 같이 아슬아슬한 품위 손상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요즘 젊은 시인들이 거의 산문 지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주2)


애송시의 하나인 「푸르른 날」이 '아슬아슬한 품위 손상'을 보여주는 시편의 하나로 꼽히게 된 것은 시의 내용이 다소 단순하게 처리되어 있다는 점과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는 앞서 「밀어」를 읽으면서도 얼핏 느꼈던 점이기도 합니다. 「푸르른 날」은 「목화」의 주제를 거의 그대로 공유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화자의 시점을 바꾸고 비교적 구어적이었던 어조를 완연한 음수율로 바꾸었을 뿐입니다. 가을 하늘 푸른 날 꽃나무를 바라보는 상황이나 단풍이 초록이 지쳐서 드는 것이라는 표현 역시 고난을 이겨낸 건강한 삶의 의지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이어지는 3연에서의 '어이하리야'라는 표현이나 4연에서의 '-한다면'에서 더 이어지지 않는 문장, 또 물음표의 느낌표의 차이 같은 것들은 다소 모호하게 처리된 표현들입니다. 아무래도 이 점 때문에 「목화」가 「푸르른 날」보다 윗길로 분류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3~4연은 어감이 다소 미묘해서 얼른 해석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줄 수 있지만, 결국 세상사의 부단함과 인생사의 신산함을 그럴듯하게 표현한 것 정도로 해석될 수 있어 보입니다. 결국 삶에서 힘든 일이 있었고 또 앞으로 있더라도, 슬퍼하되 건강하게 슬픔에 잠기자는 것이 이 시의 거의 유일한 강령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고향에 살자」, 「서귀로 간다」, 「노을」은 각기 상황은 다르지만 연인으로 추정되는 그리워하는 인물을 두고 노래되고 있는 시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고향에 살자」의 화자는 '게집애야 게집애야/ 고향에 살지', '서러워도 서러워도/ 고향에 살지'라고 말하며 곧 떠날 것만 같은 여인에게 고향에 같이 머무르자고 말하고 있고, 「서귀로 간다」의 화자는 반대로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 사는 '서귀'를 향해 활기 있게 가는 장면을 그리고 있으며, 「노을」의 화자는 '새로 꽃이 픤 들길에 서서/ 눈물 뿌리며 이별을 허는' 상황에서 이제 '나뭇닢 지는 가을 황혼에/ 홀로 봐야할 연짓빛 노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연시의 주제 때문에 눈에 띄지 않지만 이 시들에서는 타향에 대한 거부감과 고향 긍정의 분위기가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음도 특기할 만합니다.


4.


시집의 세 번째 단락인 '멈둘레꽃' 편에는 일곱 편의 시가 실려 있습니다. 『귀촉도』의 전반부에 수록된 시들에서 대체로 부정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긍정적으로 승화하려는 태도가 많이 나타나는 것과는 달리, 여기서부터, 시집의 후반부로 가면 착잡한 현실 상황 자체에 대한 토로가 보다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입에 있는 세 편의 시 「소곡」과 「멈둘레꽃」, 「만주에서」는 시인이 1940년 겨울 무렵 생계를 위해 만주에서 살던 시기에 씌어진 것들입니다. 서정주는 이 시기의 생활에 대한 감정이 담긴 이 시들을 '내가 쓴 것 중 가장 딱했던 것들'(주3)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첫 번째로 실린 「소곡」은 2연으로 된 짧은 시이지만, 마치 구절들이 조각나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뭐라 하느냐/ 너무 앞에서/ 아- 미치게/ 짓푸른 하눌.// 나, 항상 나,/ 배도 안고파/ 발돋음 하고/ 돌이 되는데.' 시인은 아마도 만주에서의 팍팍한 생활을 조각난 구절로 실험적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뭐라 하느냐/ 너무 앞에서'라는 구절은 불필요하게 가까이 있으면서 정작 소통은 안 되는 답답한 상황을, '배도 안고파/ 발돋음 하고/ 돌이 되'기도 한다는 구절은 죽지도 못해 산다는 말을 달리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 다른 작품들인 「멈둘레꽃」과 「만주에서」 역시 전반적으로 자학과 허무의 분위기가 주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문둥병을 뜻하는 '용천의 하눌밑에' 핀 민들레를 보고 있는 「멈둘레꽃」은 어두운 분위기가 완연합니다. 시의 초두에서 화자는 하얗게 핀 민들레를 보고 '우숩다'고 말합니다. 꽃이 새로 피어나기에는 그 터전이 너무도 팍팍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화자는 이곳의 사람들이 모두 '허리띠에 피가묻은 고이안에서/ 들키면 큰일나는 숨들을 쉬고' '그어디 보리밭에 자빠젔다가/ 눈도 코도 상사몽도 다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자기 자신마저도 '소주와같이' 공중으로 증발하고 말 것이라고 말합니다. 「만주에서」 역시 산문체의 시이기는 하지만 앞에서 본 만주 시편과 거의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입니다.


참 이것은 너무 많은 하눌입니다. 내가 달린들 어데를 가겠읍니까. 홍포(紅布)와같이 미치기는 쉬웁습니다. 몇천년을, 오- 몇천년을 혼자서 놀고 온 사람들이겠읍니까.


종보단은 차라리 북이 있읍니다. 이는 멀리도 안들리는 어쩔 수도 없는 사치입니까. 마지막 부를이름이 사실은 없었읍니다. 어찌하야 자네는 나보고, 나는 자네보고 웃어야하는것입니까.


바로 말하면 하르삔시와같은것은 없었읍니다. 자네도 나도 그런것은 없었읍니다. 무슨 처음의 복숭아꽃 내음새도 말소리도, 병도, 아무껏도 없었읍니다.


시의 첫 구절인 '참 이것은 너무 많은 하눌입니다'는, 앞서 본 시들에서 하늘이 긍정적인 의미로 그려진 것과 완전히 대조를 이룬다는 점에서 흥미를 줍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만주 시편은 시인이 일시적으로 만주에서 생활하던 1940년에 쓴 것으로, 이후의 긍정적 시편보다 앞선 시기의 소작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시에서의 하늘은 「화사」에서의 물어뜯어야 할 하늘에 가깝다는 인상을 줍니다. '홍포'는 「멈둘레꽃」에서의 '피가묻은 고이'와 이어진다고 할 수 있고, 만주 사람들을 가리킨 것으로 보이는 '몇천년을 혼자서 놀고 온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잘은 모르겠지만 그만큼 소통 부재의 상황 속에서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가 싶습니다.


멀리까지 들리는 '종'과 그렇지 못하는 '북'을 대비시킨 2연의 첫 구절은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제대로 된 삶을 살아보지 못하면서도 또 죽지도 못하는 기막힌 생활을 비유한 것으로 보입니다. ('종'은 이후의 서정주의 시편에서 자신의 희망이나 목표를 비유한 존재로서 종종 시어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찌하야 자네는 나보고, 나는 자네보고 웃어야하는것입니까.'는 말은 그런 상황에서의 쓴웃음을 표현한 것으로, 「멈둘레꽃」에서의 '우숩다'는 말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됩니다.


3연의 문장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갖게 되는 허무감을 토로한 것들입니다. '하르삔시'와 같은 것이 없었다는 말은 다소 독특하게 다가오는데, 역사적 맥락을 생각해봤을 때 아무래도 안중근 의사의 의거와 같은 극적인 희망의 순간이 알고 보니 자신의 삶에는 없었다는 생각을 뜻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만주 시편들은 『귀촉도』의 전반적인 긍정적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개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끕니다. 같은 분위기를 공유하지만 다른 어투를 지니고 있어서 동어반복의 느낌 없이 각기의 매력을 나타냅니다.


'멈둘레꽃' 편에서 두 번째로 수록된 「행진곡」은 시인이 만주로 떠나기 전인 1940년 초에 씌어진 작품입니다. 당시 서정주는 시인 김기림으로부터 강제로 폐간된 『조선일보』에 대한 기념시를 써 달라는 연락을 받게 되었는데, 연락을 예정보다 늦게 받아서 시일 안에는 보낼 수가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쓰게 된 것이 이 작품이라고 합니다.


잔치는 끝났드라. 마지막 앉어서 국밥들을 마시고

빠앍안 불 사루고,

재를 남기고,


포장을 거드면 저무는 하늘.

이러서서 주인에게 인사를 하자


결국은 조끔씩 취해가지고

우리 모두다 도라가는 사람들.


목아지여

목아지여

목아지여

목아지여


멀리 서 있는 바닷물에선

난타하여 떠러지는 나의 종소리.


'행진곡'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시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지극히 가라앉아 있습니다. 1연과 2연의 내용은 잔치가 끝난 뒤의 풍경, 그것도 즐거운 잔치가 아니라 송별회 같이 우울한 느낌을 주는 잔치의 뒷마무리 풍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포장을 걷고 주인에게 인사를 하며 나간다는 말로 보아 잔치도 아니고 포장마차 같은 곳에서 술 한 잔씩을 한 것일 텐데도 굳이 '잔치'라고 표현함으로써 쓴웃음 나는 상황을 드러냈습니다. 빨간 불을 사르고 재를 남겼다는 것과 포장을 걷었을 때 보이는 저무는 하늘은 실제 포장마차의 풍경과도 부합하지만 우울한 잔치가 끝난 뒤의 화자의 심정과도 잘 이어집니다.


끝나고 만 '잔치'는 포장마차에서의 우울한 잔치를 뜻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우울한 잔치를 치를 수밖에 없었던 상황 자체를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를 맞을 수밖에 없었던 쓸쓸한 자신들의 무리를 화자는 '조끔씩 취해가지고' '도라가는 사람들'에 비유했습니다.


특이한 것은 시의 후반부입니다. 화자는 4연에서 '목아지여'라고 네 번 반복해 말한 뒤, 5연에서는 '멀리 서 있는 바닷물'에서 '나의 종소리'가 난타하여 떨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들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제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모가지를 여러 번 끊어서 부른 4연의 형태는 마치 효수된 머리들과 같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읊거나 바라보는 것은 현실에 대한 강한 절망감을 불러일으키지만, 한편으로는 목숨에 대한 어떤 강렬한 소망 같은 걸 불러오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모가지들을 불러보는 과정을 거치고 난 뒤에, 화자는 5연에서 '나의 종소리'를 느끼게 됩니다. 여기서 「바다」의 한 구절을 다시 떠올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시의 화자는 '바다의깊이우에' '구멍 뚤린 피리를 불고'자 했습니다. 그것은 '멀리 서 있는 바닷물'에서 떨어지는 종소리와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록 멀리서 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화자는 어쨌든 현실에 부딪쳐서 후퇴하고 만 절망을 겪고 나서도 다시 '종소리'를 발견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어두운 주조 속에서도 희미한 희망을 찾고자 하는 것이 이 시의 결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섯 번째로 수록된 「밤이 깊으면」은 이 시집에 실려 있는 두 편의 장시 중의 하나로, 결혼 직후 생계를 걱정하던 아내를 생각하며 쓴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 시 또한 현실의 어두운 모습을 그린 묘사가 많이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그것을 이겨내려는 과정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밤이 깊으면 숙아 너를 생각한다. 달래마눌같이 쬐그만 숙아/ 너의 전신을.'로 시작되는 1연에서 화자는 시적 대상이 되는 '숙'의 외모를 하나씩 떠올려보고, 이어 2연에서는 '한마리의 버꾹이새'의 울음 속에서 느껴지는 '고이는 우물물과 낡은시곗소리'와 같은 것을 생각해봅니다.(주4) 이러한 연상은 마치 「서풍부」의 구절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나열되는 것들은 점차 부정적인 분위기의 것들로 이어져 갑니다. 화자는 3연으로 가면서 그것은 '너의공복'을, 나아가 '너의절명을' 생각하게 되고, 자살의 목적으로 걸어졌을 '뒤안 솔밭의 솔나무가지'에 감긴 '누우런 새끼줄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는 불안한 생활이 가정의 빈곤과 파탄으로 이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을 화자가 느끼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5연에서 7연까지의 내용은 이러한 생활을 이어나가야 할 수밖에 하는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5연의 '여자야 너또한 쪼껴가는 사람의딸'이라는 표현은 불행한 생활이 바단 화자와 '숙'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대부분의 현실임을 은근하게 보여주며, 이어지는 6연과 7연에서의 다양한 묘사들은 도시화가 진행되는 여러 풍경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시, 8연의 구절을 통해 '결국은 너의 자살우에서' 진행되는 생각임이 환기됩니다.


시의 후반부에서 화자는 '숙아!'(11연)라는 외침이 '내 척수신경의 한가운대에서' '끊임없이부르는것'임을, '피같이,/ 피같이,' '내 칼끝에 적시여 오는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숙'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절실한 것임을 보여주고, 그것이 '칼'로 비유된, 현실에 맞서는 뚝심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로 승화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마지막 연인 16연에서 화자는 숙에 대한 감상적인 생각을 이제는 끊고 '시퍼런 단도의 날을 닦'기로 다짐합니다.


「조금」과 「역려」는 다루고 있는 내용은 다르지만, 『화사집』 시절에 나타났던 어두운 에너지의 여운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공통된다고 여겨집니다. 「조금」은 이별 이후 만나고 싶지만 만날 수 없는 마음을 썰물에 비유하여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상황에 대한 절망감을 노래하고 있는 시이고, 「역려」는 '샛길'과 '가시밭'으로 표현된 힘든 상황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다시 움직일 것에 대한 의지를 되새기고 있는, 「바다」와 상당히 닮아 있는 듯한 시입니다.


5.


『귀촉도』의 마지막 순서로 네 번째 단락에 유일하게 수록되어 있는 작품은 장시 「무슨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입니다. 이 시는 서정주의 삶의 태도를 요약한 듯한 제목이 주는 강한 인상 때문인지, 2015년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시선집의 표제작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아조 할수없이 되면 고향을 생각한다./ 이제는 다시 도라올수없는 옛날의 모습들. 안개와같이 스러진것들의 형상을 불러 이르킨다./ 귓가에 와서 아스라히 속삭이고는, 스처가는 소리들. 머언 유명에서처럼 그소리는 들려오는것이나, 한마디도 그뜻을 알수는없다.' 시의 도입부에서, 절망에 지쳐 있는 듯한 화자는 떠나간 고향의 모습을 떠올려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형상보다는 느낌으로만 다가오기 때문에 확실한 모습이 되지는 못하지만, 화자에게 '도라오는 청춘'을 느끼게 만들고 '생명의환희를 이해'하도록 만들어준다고 말해집니다. 아름다웠던 추억을 떠올려보는 것은 시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곤 하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다음 대목에서, 추억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보고 싶어했던 화자는 실제로 그것을 눈앞에 보게 됩니다. 시의 둘째 부분에서는 화자가 '섭섭이와 서운니와 푸접이와 순녜'라는 네 명의 소녀를 따라 보리밭에 오게 되었다는 환상적인 상황이 제시됩니다. '상제님의 고동소리'가 들리는 언덕에서 네 명의 소녀는 다음과 같은 행동을 벌인다고 말해집니다. '네명의소녀는 제마닥 한개씩의 바구니를 들고, 허리를 굽흐리고, 차라리 무슨 나물을 찾는것이 아니라 절을하고 있는것이었다. 씬나물이나 머슴둘레, 그런것을 찾는것이아니라 머언 머언 고동소리에 귀를 기우리고 있는것이였다. 후회와 같은 표정으로 머리를 숙으리고 있는 것이였다.'


신비로우면서도 다소 이상한 이러한 광경에 화자는 가까이 가 보려 하지만, 가까이 가도 소녀들의 광경은 다가오지 않고 점점 멀어져만 갔다고 말해집니다. 민들레 포기와 찔레 덤풀만 발에 채일 뿐, 화자가 손을 치켜들고 소리를 내어 불러 봐도 오히려 '여긴 오지 마……'라는 소리만 돌아왔다고 화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저승에서 살면서 이승에 사는 사람을 바라보는 입장이라면, 아무리 그곳이 천국일지라도 차마 그 사람한테 이곳으로 오라고 하지는 못하겠지요. 죽어야 올 테니까요. 이 대목은 목숨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컨대 하늘을 지향은 하되 아주 하늘로 갈 생각은 말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부분에서 화자는 '소녀여, 내가 가는날은 도라 오련가. 내가 아조 가는날은 도라 오련가'라고 독백합니다. 화자는 소녀들을 다시 만나는 순간이 오기를 바라지만, 한편으로 그것이 다름아닌 이승을 떠나는 무렵일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어서 언급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장면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시에 찔려 앞어헐때는, 네명의소녀는 내곁에 와 서는 것이었다. 내가 찔렛가시나 새금팔에 베혀 앞어헐때는, 어머니와같은 손까락으로 나를 나시우러 오는것이였다.// 손까락 끝에 나의 어린 핏방울을 적시우며, 한명의소녀가 걱정을하면 세명의소녀도 걱정을허며, 그 노오란 꽃송이로 문지르고는, 하연 꽃송이로 문지르고는, 빠앍안 꽃송이로 문지르고는 하든 나의상처기는 어찌면 그리도 잘 낫는것이였든가.'


소녀들은 화자가 그들을 따라서 하늘로 가려고 하면 달아나지만, 화자가 다쳐서 피를 흘릴 때는 돌아와 꽃으로 가슴을 문지르는 행위를 통해 그를 낫게 해줍니다. 이 장면은 현실 속에서 고통을 겪을 때 과거를 추억하는 것이 치유의 한 길이 되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시에서는 '정해 정해 정도령아/ 원이 왔다 문열어라./ 붉은꽃을 문지르면/ 붉은피가 도라오고./ 푸른꽃을 문지르면/ 푸른숨이 도라오고.'라는 구절이 마치 소녀들의 노랫소리처럼 등장하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정도령'이 나오는 시를 우리는 앞서 보았지만, 「문열어라 정도령아」가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의 목숨을 되돌리고자 하는 내용의 시라면, 여기서는 반대로 죽은 저승의 소녀들이 산 사람인 화자의 상처를 되살리고자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다음 대목에서 화자는 다음과 같이 독백합니다. '소녀여, 비가 개인날은 하늘이 왜 이리도 푸른가. 어데서 쉬는 숨소리기에 이리도 똑똑히 들리이는가./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싶은가.' 이 구절을 통해 우리는, 현실의 고통이 너무 힘들지만 그렇다고 죽음이 두려워 죽을 수도 없는 화자의 기막힌 심정이 얼마나 곡절한 것인가를 실감 있게 느끼게 됩니다.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화자는 풀밭에 서서 소녀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이 '내속에 네리는 비가 개이기만, 다시 그 언덕길우에 도라오기만, 어서 병이 낫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여기에 와서 눈앞까지 다가왔던 소녀들의 광경은 다시 환상의 자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소녀들의 메시지를 이해하게 된 화자는 이제 자신을 추스려, 다시 건강한 삶을 꾸려 나가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됩니다.


전반적으로 이 시는 현실의 고통을 극복하고 건강한 생활로 돌아오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시의 형태를 택한 것은 앞서 「부활」에서 시도되었던 환상성을 실감 있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성을 갖춰야 하겠다는 인식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는 후일 『신라초』와 같은 작업으로 이어진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1) 송창식 가수는 서정주가 직접 「푸르른 날」을 추천해 주었다는 사실을 방송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2) 유종호, 「소리 지향과 산문 지향」, 『문학의 즐거움』(민음사, 1995).

3) 서정주, 『천지유정』(전집 7권, 은행나무, 2016).

4) 이승훈 시인은 가령 이 대목과 같은 서정주의 초기 시에서 등장하는 참신한 상상력의 포착에 대해 높이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한 마리의 뻐꾹이새 울음 속에서 '고이는 우물물'과 '낡은시곗소리'를 상상하는 화자의 상상력은, 아니 서정주의 상상력은 참으로 놀라운 데가 있다. 이런 독보적인 상상력은 앞에 인용한 「서풍부」에도 유감 없이 드러나는바, '서녘에서 부러오는 바람속에서' 서정주는 '오갈피 상나무와/ 개가죽 방구와/ 나의 여자의 열두발 상무상무'를 읽고 있을 정도이다. 내가 서정주의 초기 시를 사랑하는 것은 이런 놀라운 상상력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승훈, 「서정주의 초기시에 나타난 미적 특성」, 『한국 현대시의 이해』(집문당,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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