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시전집 강독 10: 『동천』에서 세 편
시집의 두 번째 단락인 '고대적 시간' 편에는 스물세 편의 시가 실려 있습니다. 첫 번째 시 「선운사 동구」는 선운사에 핀 동백꽃을 보러 간 화자의 에피소드를 간결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디다.
화자는 선운사 골짜기에 핀 동백꽃을 보러 가지만, 개화 시기보다 일찍 찾아간 탓에 동백꽃은 보지 못하고, 막걸릿집 여자의 노랫소리 속에 작년에 피었던 꽃만이 목이 쉰 모습으로 남아 있더라고 말합니다. 꽃의 아름다움이 노랫소리로 전해 이어져 온다는 데에서 서정주 특유의 영통의 미학이 다시금 확인됩니다. 주막 여인의 목쉰 소리는 세련되기보다도 투박한 느낌을 주는데, 마치 고단한 삶 속에서 터져 나오는 노래에서만이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사찰 안에서가 아니라 그 밑의 술집에서 그런 아름다움을 보는 화자의 이미지는 가령 「무제」에 나오는 '귀비의 묫등' 옆의 막걸릿집을 연상케 하며, 역시 앞의 시들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서정주가 불교에서의 초월적인 것을 추구하면서도 세속에서의 아름다움 역시 잊지 않는 면모를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두 번째로 수록된 「삼경」 역시 동백꽃이 등장하는 단시라는 점에서 「선운사 동구」와 공통점이 있지만, 앞의 작품과는 딴판으로 아주 정적이고도 쓸쓸한 느낌을 줍니다. '이슬 머금은 새빨간 동백꽃이/ 바람도 없는 어두운 밤중/ 그 벼랑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습니다./ 깊은 강물 위에 떨어져 내리고 있습니다.' 시인은 꽃핌의 여운과 낙화의 어쩔 수 없는 쓸쓸함을 아울러 대비시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 번째 시 「재채기」는, 예전부터 흔히 쓰이곤 하던 말인, 재채기를 하는 건 누가 어디서 내 얘기를 하기 때문이리라는 우스갯소리에서 영감을 얻어 쓴 작품입니다. 시의 내용은 그렇게 새로울 것은 없다고 하겠지만, 재채기에 대한 해석 속에 누군가가 먼 데서 나를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는 인식이 시인으로 하여금 이 시를 쓰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네 번째로 수록된 「우리 님의 손톱의 분홍 속에는」은 연정을 고백하지 못한 채 헤어진 '우리 님'의 손톱 속에 화자 자신의 못다 표현한 마음의 조각이 남아 있다고 말하는 내용의 시이고, 이어서 마치 짝을 이루는 듯한 느낌의 제목을 가진 「여자의 손톱의 분홍 속에서는」은 이와는 전혀 다르게 희랍 신화 속 트로이 전쟁의 내용을 소재로 채취한 작품입니다. '"파리스하고/ 붙는 건/ 인젠 당신이나 하슈./ 나는/ 본서방한테로/ 그리샤로/ 돌아갈 테니까."// 헬렌이/ 비이너스를/ 핀잔하는/ 소리가 나고// 얼쩡얼쩡하다가/ 군인의/ 창에 찔려/ 거꾸러지는/ 비이너스의 피가 보인다.' 신화의 내용 속에서 비너스가 전쟁 중 창에 찔려서 피를 흘렸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손톱의 분홍빛이 이때 그가 흘린 핏빛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얘기를 하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어서 실린 「비인 금가락지 구멍」은 화자가 누군가의 연인의 것이었을 가락지를 보며 그 연인의 모습이 있었을 것을 떠올리는 상상력을 전개시키는 작품이며, 다음으로 실린 「수로부인의 얼굴」은 앞서 『신라초』의 「노인헌화가」에서 주제로 쓰였던 수로부인 설화를 다시 다루어본 시입니다.
여덟 번째로 실린 작품은 「영산홍」입니다. 한자 음을 뜻으로 바꾸면 '산에 비치는 붉은빛'이라고 풀이되는 꽃의 이름을 시의 출발점으로 잡고 있는 시입니다.
영산홍 꽃잎에는
산이 어리고
산자락에 낮잠 든
슬푼 소실댁
소실댁 툇마루에
놓인 놋요강
산 너머 바다는
보름사리 때
소금발이 쓰려서
우는 갈매기
이 작품은 꽃 자체에 치중하기보다도 꽃으로부터 출발해 점점 시점을 뻗어나가는 독특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초두에서 화자는 영산홍의 이름을 풀어 영산홍 꽃잎에는 산이 어린다고 말하고서, 이어 꽃잎에 어린 산자락에 사는 '슬푼 소실댁'이 낮잠을 자는 장면을 비추고 있습니다. 소실은 첩을 뜻하는데, 낮잠을 자는 그가 슬프다고 표현된 것은 그의 생활이 무료하고 무가치하게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3연에서는 소실댁의 툇마루에 놓인 놋요강이 비춰지고, 4연에서는 화자의 시선을 산 너머 바다로 이동시키고 있습니다. 소변기인 요강이 툇마루에 무심히 놓인 장면과 보름날의 밀물과 썰물을 가리키는 '보름사리' 때의 바다를 보여주는 장면은 소실댁의 성적인 그리움을 은유한 장면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마지막 5연에서는 소금기에 젖은 발이 쓰려서 운다고 말해지는 갈매기의 모습을 비추고 있습니다. 갈매기의 울음은 자고 있는 소실댁의 드러나지 않는 슬픈 심정을 대신해서 울려주는 것처럼 다가옵니다.
「영산홍」은 짦은 내용 속에 다양한 이미지를 전혀 무리스럽지 않게 배치하면서도 그 속에서 어떤 착잡해 보이는 사연과 슬픈 삶의 모습을 아주 은은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숭원 평론가는 이 시를 '미당의 50대 작품 중 완벽한 형식미를 갖춘 명작'이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영산홍은 슬픈 홍색으로 아련히 피어 있고 소실댁은 무료히 낮잠에 잠겨 있고 놋요강은 누런 고독의 빛깔로 툇마루에 놓여 있는데, 생존을 위해 바닷물에 발을 적시는 갈매기는 쓰라린 울음소리를 토해낸다. 무료하게 잠든 존재건 살려고 몸부림치는 존재건, 생의 비애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련한 존재라는 공통점이 있다. 소실댁의 슬픔은 갈매기의 울음으로 고스란히 이월되는 것이다.
정형시에 가까운 절제된 형식미, 거기에 내포된 풍부한 상징성, 이 둘의 긴장에서 형성되는 신비로운 시적 아우라, 생의 비극성을 관조하는 담담한 시선. 미당 후기 시의 걸작 「영산홍」은 이러한 시적 구성을 통해 미당의 시적 광휘가 시들지 않았음을 생생히 보여준다.(주1)
아홉 번째로 수록된 시 「봄볕」은 거짓말과 진실을 오고가곤 하는 자신의 심정을 독특한 비유로 내보이고 있는 작품입니다.
내 거짓말 왕궁의
아홉 겹 담장 안에
김치 속 속배기의
미나리처럼 들어 있는 나를
놋낱 같은 봄 햇볕 쏟아져 나려
육도삼략으로
그 담장 반나마 헐어,
내 옛날의 막걸리 친구였던
바람이며 구름
선녀 치마 훔친 버꾸기도 불러,
내 오늘은
그 헐린 데를 메꾸고 섰나니……
화자는 자신이 '내 거짓말 왕궁의/ 아홉 겹 담장 안에/ 김치 속 속배기의/ 미나리처럼' 들어 있다고 묘사합니다. 자신의 거짓말의 '왕궁'을 세워놓고 그 속의 속으로 꽁꽁 감춰져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의 삶의 모습이 거짓말투성이에 가까운 것이었다는 생각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참모습을 감추어버린 거짓말의 담벼락은 2연의 '봄 햇볕'에 의해 무너질 판이 됩니다. 햇볕과 같은 자연스러운 진실함의 힘은 갖은 지혜의 전략, '육도삼략'으로 감춰져 있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게 만듭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3연입니다. 화자는 자신의 옛 친구인 '바람이며 구름/ 선녀 치마 훔친 버꾸기'를 불러 자신의 헐린 담장을 메우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미 무너진 거짓말의 담장을 또 다시 메우려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서정주 식 성찰의 한 묘미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인이 포착하고자 하는것은 치부 자체보다도 치부를 가리는 행위에서 발견됩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삶 속에 치부가 있으니 있는 그대로 놔둬야 한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가 언어로 표현되는 이상 애초에 치부와 치부 아닌 것의 분리는 불가능하다는 데에 있습니다. 삶의 모든 행위는 어쩌면 치부를 숨기려는 행위에 속하는 것입니다. 화자가 부분적으로 허물어진 '거짓말 왕궁'을 다시 메우려 하는 행위를 해학적인 어조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그것 또한 삶의 한 모습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것을 또한 비판적으로도 인식해야 한다는 점을 역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성찰적인 사람은 자신의 삶에 거짓이 많다는 생각에 반성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때가 많고, 대체로 좋은 시인들은 그런 마음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경우가 많습니다. 혹자는 서정주에게 이런 성찰이 없었을 것이라고 예단하곤 하지만, '오랫동안 나는 잘못 사렀구나'라는 「수대동시」의 한 구절에서부터 삼십 년이 지나 씌어진 이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에게서 성찰의 시편들이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는 데에서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매력적인 것은 그가 여기에서 나타나는 성찰의 태도를 한 번 비트는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는 성찰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즉자적인 깨달음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성찰하려다 마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성찰의 의미를 변증법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는 가령 「근교의 이녕 속에서」와 같은 시의 한 구절에서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되풀이 말해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서정주의 통찰의 매력은 그것이 단순한 윤리 예찬으로 끝나지 않고 거기에서 현실을 한 번 더 바라보는 쪽으로 이동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봄볕」은 그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그 뒷 순서로 실린 작품들에는 서정주의 불교적 가치관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시들이 여럿 있습니다. 「고요」에서의 화자는 '이 고요 속'에서 '눈물만 가지고 앉았던 이'와 '이슥한 삼경의 시름/ 지니고 누었던 이'는 그 고요를 다 본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눈물이나 시름이 '고요의 그늘에 깔리는/ 한낱 혼곤한 꿈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매우 간단한 형식의 시인 「내가 돌이 되면」에서의 화자는 '내가/ 돌이 되면// 돌은/ 연꽃이 되고// 연꽃은/ 호수가 되'며, 그 반대로도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중이 먹는 풋대추」에서는 어느 승려가 대추나무에 걸린 대추에 자신의 피를 꾸어주고 자기 몸에는 냉수를 담고 있다가, 나중에 그것을 햇빛을 통해서 다시 받아들인다는 내용의 재치 있는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무제」에서의 화자는 말합니다. '매가/ 꿩의 일로서/ 울던 데를 이얘기할 테니/ 우리나라 수실로/ 마누라보고 벼갯모에 수놓아 달래서/ 벼고 쉬게나./ 눈물을 아조 잘 수놓아 달래서/ 벼고 쉬게나.' 여기서 매가 꿩의 일로서 울던 얘기란 『삼국유사』에 실린 영취사에 관한 일화를 가리키는 것입니다.(주2) 화자가 청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시 속에서의 장면은 이야기의 감정(눈물)이 사물(수실)로 전달되고, 그 사물(베개)이 다시 감정으로 변환되는(베개를 베고 쉼) 현상을 그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방에 새로 들인 '금강산 후박꽃나무'가 '오랜만의 돌아운 식구의 얼굴로' 앉아 있다고 말하고 있는 「어느 날 밤」 역시 비슷한 맥락의 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산골 속 햇볕」과 「실한 머슴」은 생략이 많아 얼른 그 의미가 이해되지는 않는 작품들입니다. 「산골 속 햇볕」은 '잊어버리자'는 외침 속에 멧방석만 한 햇볕이 비치기를 기대하며 이 산골에서 저 산골로 자꾸 움직이는 것이 내용의 거의 전부입니다. 「실한 머슴」은 특이하게도 '마르끄 샤갈풍으로'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시인데, 묵묵하게 살아가는 머슴의 생활을 담담하고도 슬픈 어조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소네트 시작(試作)'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열세 번째 시 「외할머니네 마당에 올라온 해일」은 시인이 서구의 소네트 형식에 맞추어 지어보려 했다고 밝히고 있는 작품으로, 여러 가지 형식 실험에 대한 시인의 관심의 일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시는 실제로 시인이 유년기에 목격한, 해일이 집 마당까지 올라왔다 가곤 했다는 광경을 소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시 속에서 외할머니네 마당에 올라온 해일에는 '예순 살 나이에 스물한 살 얼굴을 한' 그의 신랑, 화자의 외할아버지가 있다고 말해집니다. 신랑을 마중 나온 할머니는 '천 길 깊이 묻었던 델 파내서/ 새각시 때 연지를 바르고,' 할아버지의 혼 앞에서 '열아홉 살 첫사랑 적 얼굴'을 하신다고 화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시간과 생시를 초월한 사랑의 모습을 다룬 이 시의 소재는 이후 『질마재 신화』에서 또 다른 시 「해일」로 다시 씌어지기도 했습니다.
열다섯 번째 시 「한양호일(漢陽好日)」과 열일곱 번째 시 「전주우거(全州隅居)」는 삶의 한 장면을 정겹고도 기품 있게 그리고 있는 산문투의 작품입니다. 맑은 하늘 아래서 꾸밈 없는 모습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꽃장수 아이의 모습을 그린 「한양호일」이나, 전주의 정경과 생활을 담백하게 그리고 있는 「전주우거」는 언뜻 보면 평범한 것 같아도 담백한 매력이 있고 읽는 맛이 있는 시들입니다. 특히 「한양호일」은 서정주의 산문시에서 한 절창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되어 오기도 했습니다. 가령 김화영 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개인적인 기호를 강하게 내세울 자리는 아니지만 미당의 시전집 중에서 그리 흔하지 않은 몇몇의 이러한 묘사적 시들 - 혹은 그런 성격이 강한 시들 - 은 유별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가령 앞에서도 인용한 「기도 1」, 「기도 2」, 「피는 꽃」, 「사경」, 「어느날 밤」, 「방한암 선사」, 「단상」, 「모란 그늘의 돌」, 「구멍난 고무 공」 등이 객관적 묘사의 성격이 강한 시편들에 속한다. 이러한 시들이 한결같이 지니고 있는 특징은 그 고요함과 비어 있음이다. 고요함은 이런 시편들의 내용인 동시에 형태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으로 고요하고 비어 있는 시가 「한양호일」이다. (주3)
'세 마리 사자가/ 이마로 이고 있는 방 공부는/ 나는 졸업했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연꽃 위의 방」은 불교적 초월에 경지에 접근한 화자의 자의식이 돋보이는 시입니다. 하지만 그런 만큼 이 시기의 서정주의 작품에서 보여지곤 하는 부정적 측면인 관념적 자족의 면모를 쉽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불러일으킨 작품이기도 합니다. 김현 평론가는 '이 시에서 드러나는 해탈의 제스처는 서정주의 체념과 달관이 독선적인 자기 방어로 변모할 것을 보여준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주4) 비슷한 맥락으로, '마흔다섯은/ 귀신이 와 서는 것이/ 보이는 나이. (…) 귀신을 길를 만큼 지긋치는 못해도/ 처녀 귀신허고도/ 상면은 되는 나이.'라고 말하는 「마흔다섯」 역시, '절대 영원을 탐구하던 정력이 노쇠해가는 분기점'을 보여주는 안일함이 나타나는 작품으로 지적받기도 했습니다.(주5)
스물한 번째 시 「가벼히」는, 사랑을 하면서도 도중의 다른 데에 한눈을 팔기도 하는, 독특한 사랑의 자세를 노래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화자는 말합니다. '애인이여/ 너를 맞날 약속을 인젠 그만 어기고/ 도중에서/ 한눈이나 좀 팔고 놀다 가기로 한다./ 너 대신/ 무슨 풀잎사귀나 하나/ 가벼히 생각하면서/ 너와 나 새이/ 절간을 짓더래도/ 가벼히 한눈파는/ 풀잎사귀 절이나 하나 지어 놓고 가려 한다.' 화자의 태도는 열렬하기보다도 여유로움을 추구하는 사랑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화자의 삶의 태도를 압축시킨 '풀잎사귀 절'이라는 표현은 그것이 가볍지만 세속적이지 않고 깊이 있지만 무겁지 않음을 지향하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이 단락의 마지막 순서로 실린 시 「고대적 시간」은 얼른 이해하기에는 다소 알쏭달쏭하게 느껴질 작품입니다. 이 시에는 총 네 쌍의 비유가 등장합니다. 화자는 만약 이 시간이 '깜작이는 그대 속눈섭'이라면 자신은 '홍옥'이 되고, '부딪치는 그대 두 손톱 끝 소리'라면 '날개 돋쳐 내닫는' 화살이 되겠지만, 이 시간이 '내 사막과 산 사이에 늘인/ 그대의 함정'이라면 자신은 '포효하고/ 눈 감는 사자'일 것이며, '45분만큼씩 쓰담던/ 그대 할아버지 텍수염'이라면 자신은 '그저 막걸리를 마시리'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한 번 읽기만 해보고 지금 다시 찾지는 못했지만 이 시에서 나온 비유에 관해 어느 글에서 서정주는 수유(須臾)와 같은 불교적 표현에서 차용한 것이라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마 시간을 의미하는 해당 표현들의 출처를 찾으면 해석이 되리라고 생각됩니다. 눈 깜박이는 시간과 턱수염 쓰다듬는 시간의 대비로 보아 아마도 화자는 짧은 시간일수록 사랑을 향해 가고, 긴 시간일수록 여유를 추구하는 태도를 보이겠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1) 이숭원, 『미당과의 만남』(태학사, 2013).
2) 서정주, 「한국의 독수리」, 『풍류의 시간』(전집 10권, 은행나무, 2017).
3) 김화영, 『미당 서정주의 시에 대하여』(민음사, 1984).
4) 김윤식/김현, 『한국문학사』(민음사, 1973).
5) 이숭원, 앞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