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간 난 무언지 잃긴 잃었다

미당 시전집 강독 8: 『신라초』에서 세 편

by 노정연

3.


시집의 2부는 '고조', '귓속말', '무제', '인연설화조'의 네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앞서 신라에 대한 탐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던 1부와는 달리 이 2부에서는 시인의 나이 40대에 들어서며 씌어진 여러 주제의 자유시들이 묶여 있습니다.


첫 번째 단락인 '고조(古調)' 편에는 다섯 편의 시가 실려 있습니다. 이 중 가장 먼저 등장하는 시는 「고조 1」과 「고조 2」인데, 이 두 편은 다루는 주제가 좀 다릅니다. 제목이 '고조'라는 것은 전통적 어투를 사용하고 있다는 뜻인 동시에 주제를 사유하고 처리하는 방식이 구식이라는 것을 뜻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고조 1」에서 화자는, 아마도 저승으로 떠나갔을, 먼 곳에 있는 상대를 향하여 강한 재회의 의지를 드러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성한 동아줄이나 있다면/ 샘 속이라도 몇만 리라도 갈 길이나 있다면/ 샛바람이건 무슨 바람이건 될 수라도 있다면/ 매달려서라도 자맥질해서라도 가기야 가마.' 이것은 우리가 앞서 서정주의 이별 시편에서 볼 수 있었던 어조와 동일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는 것이 좀 다릅니다. '하지만 너, 내 눈앞에 매운재나 되어 있다면/ 내 어찌 뿌리치고 올꼬. 흥건한 물이나 되어 있다면/ 내 어찌 뿌리치고 올꼬.' 이 구절에서 나타나는 허무에 대한 인식은 비슷한 소재에 옛 투를 쓰고 있는 가령 「누님의 집」이나 「문열어라 정도령아」와 같은 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는 시인이 말하는 영원주의가 기본적으로 현실에 기반을 둔 것이고 반드시 초월적 세계를 지향하라는 의미의 개념은 아님을 보여 줍니다. 「고조 1」에서 말해지고 있는 것은 떠나간 존재와의 소통 의지를 지니라는 것이고, 더 중요한 메시지는 그 이상을 넘어서는 것은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초월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허무로 연결될 수 있고, 저승을 뿌리치지 못하는 자살로 연결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실린 「고조 2」는 비교적 단순한 내용이 표현된 시입니다. '국화꽃이 피었다가 사라진 자린/ 국화꽃 귀신이 생겨나 살고', '사슴이의 귀신들이 살다 간 자린/ 그 귀신의 귀신들이 또 나와 살고'라고 화자는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꽃이며 사슴이 죽어서도 귀신이 되어 계속 살고 귀신이 죽어도 또 그 귀신이 돼서 산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실린 시 「진주 가서」에서 화자는 말합니다. '백일홍 꽃망울만 한 백일홍꽃빛 구름이/ 하늘에 가 열려 있는 것을 본 일이 있는가.// 1.4 후퇴 때 나는 진주 가서 보았다.// 암수의 느티나무가 오백 년을 의 안 상하고/ 사는 것을 보았는가.// 1.4 후퇴 때 나는 진주 가서 보았다.' 그는 직접적으로 1.4 후퇴라는 상황을 언급하면서, 전쟁의 참혹한 현장 속에서 오히려 아름다운 자연의 한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광호 평론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전쟁의 한가운데서, 그 초월성이 유린되는 현실 앞에서 오히려 영원한 것을 보고자 갈망했다. 6.25 전쟁이라는 역사의 악덕과 광기를, 그 동족상잔의 현장을 경험하면서, 그 찢김과 단절의 세계 정반대에 있는 영원의 세계를 동경한 것은 어쩌면 마음의 필연성이었는지도 모른다.'(주1) 이어서 실려 있는 「숙영이의 나비」는 구전 설화의 내용을 시로 만든 것입니다.


다섯 번째로 실린 시 「기다림」은 이별을 겪은 화자의 심사를 담백한 어조로 노래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내 기다림은 끝났다.

내 기다리던 마지막 사람이

이 대추 굽이를 넘어간 뒤

인젠 내게는 기다릴 사람이 없으니.


지나간 소만의 때와 맑은 가을날들을

내 이승의 꿈잎사귀, 보람의 열매였던

이 대추나무를

인제는 저승 쪽으로 들이밀꺼나.

내 기다림은 끝났다.


이 시는 일견 절절한 이별의 노래일 것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이별은 절절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시에서의 이별은 절절하다기보다는 깊은 쓸쓸함을 남기는 그런 종류의 것이라고 하는 것이 보다 적절해 보입니다. 시에서의 '기다림'이 정확히 무엇에 대한 기다림인 것인지는 직접적으로 언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흔히 재회에 대한 기다림으로 읽히기 쉽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과의 관계의 진전을 그리는 마음을 뜻하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추나무'는 화자의 삶, 또는 현재 화자의 생활에 대한 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추 굽이'란 그 대추나무가 세워져 있던 자리에서 꺾어져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언저리에 해당합니다. '기다림'이 앞서 언급한 것 중 전자의 의미라면 '대추 굽이'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가리키고, 후자의 의미라면 소망의 실현과 실패가 엇갈리는 지점을 의미할 것입니다. 화자가 이별한 존재를 '내 기다리던 마지막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가 정말로 모든 이들 중에서 최후까지 기다렸다는 뜻이기보다도 그만큼 자신이 그리던 사람과의 관계가 소중한 것이었음을 의미합니다. 또 한편으로 관계 하나하나로 보자면 모든 관계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이기 때문에, 결국 모든 이별은 마지막 이별에 해당한다는 뜻이라고도 해석될 수 있어 보입니다.


'대추나무'를 '인제는 저승 쪽으로 들이밀꺼나'라고 말하고 있는 후반부의 구절은 이별 직후의 감상적인 절망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실상 자신의 '대추나무'가 언제나 꾸준히 저승 쪽으로 들이밀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재인식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매우 짧은 내용 속에 이별 이후의 쓸쓸한 심사와 그에 얽힌 사유를 압축시킨 시입니다. 어조가 담담해서 그 감정이 오히려 진하게 다가옵니다.


4.


2부의 두 번째 단락인 '귓속말' 편에는 일곱 편의 시가 실려 있습니다. 이 중 첫 번째로 수록된 작품은 「재롱조」입니다.


'언니 언니 큰언니/ 깨묵 같은 큰언니/ 아직은 난 새 밑천이/ 바닥 아니 났으니,/ 언니 언니 큰언니/ 삼경 같은 큰언니/ 눈 그리매서껀 아울러/ 안아나 한번 드릴까.' 이 시는 길이도 짧고 리듬도 매우 친숙함에도 불구하고, 이와 대조적으로 상당히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어린아이처럼 느껴지는 인물인 화자는 '언니'에게 힘을 돋워 주고자 합니다. 그에 따르면 언니는 '깨묵' 같고 '삼경(三更)' 같은 인물입니다. 이는 언니가 친근한 인물인 동시에 들어 가는 나이 속에 쓸쓸함을 느껴 가는 인물임을 보여 주는, 참신한 비유입니다. 화자는 자신이 아직 '새 밑천이/ 바닥 아니 났으니' 그를 두고 눈 그림자까지 아울러 폭 '안아나 한번 드릴까' 하고 재치를 부리고 있습니다.


이 시는 잘 알려진 작품은 아니지만, 김우창 평론가는 이 시를 두고 의외로 깊이 있는 통찰을 어려운 말 안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서정주의 시적 언어가 가진 강점을 잘 보여주는 작품의 하나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표현은 늘 민속적인 감정 - 그러면서 한국인에게 사회적 그리고 세계 인식의 매체가 되는 감정을 포함한다. (…) 「재롱조」는 사실 그렇게 해독이 쉬운 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민속조의 언어와 리듬으로 의미 이전에 전달에 성공하는 시이다. 이 시는 극히 일상적이고 토속적인 언어로 되어 있는 민요풍의 시, 그것도 해학조의 시인데, 거기에 담겨 있는 감정으로써 의미를 전달하고 다시 미당의 깊은 삶에 대한 통찰을 전한다.'(주2)


이러한 성격은 이어지는 시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두 번째로 실린 「귓속말」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아주머니 소곤거리는 귓속말씀은/ 칠월달 감나무 같긴 하옵니다만/ 결국은 그렇게 소근거릴 필요도/ 하나도 없기는 없겠구먼요./ 당신네 집 제일 이쁜 어린애기는/ 칭얼칭얼 늘 그냥 그럴 뿐이지/ 어디메 귓속말이나 할 줄이나 알아요?' 소곤거리는 귓속말은 대체로 은밀한 내용을 전할 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간의 유대감을 나타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화자가 보기에는 어린아이의 있는 그대로 나오는 말들에 비하면 덜 좋은 것, '결국은'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라고 말해집니다. 이러한 생각은 아기의 자연스러움과 순수함을 배워야 한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세 번째에서 다섯 번째 순서로 실린 「뚜쟁이조」와 「어느 유생의 딸의 말씀」, 「석류 개문」 또한 위의 시들과 같은 짧은 내용을 가지면서, 소재를 다소 달리하고 있습니다. 이 세 편은 같이 읽어 보니 유교 문화에서의 금욕주의와 세속적인 욕망의 추구 사이의 갈등 양상을 여러 각도에서 다뤄본 작품들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뚜쟁이조」의 화자는 철저하게 세속적인 인물인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는 '여기는 신방은 신방이어요./ 웃도리 속옷까진 흔히 벗어 버리는 (…) 신방은 틀림없는 신방이어요.' 하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는 아무래도 속된 목적으로 성관계가 이루어지는 장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옷 벗고 정을 통하고 가는 곳이니 여기도 신방은 신방이 아니겠는가 하는 농담투가 이 시의 내용입니다. 「어느 유생의 딸의 말씀」은 화자의 입장이 앞의 시와는 딴판입니다. 여기에서 그는 '두 송이 접시꽃 모란꽃같이/ 향기라도 적시고는 살겠습니다./ 그렇지만 별같이는 못 살겠어요. (…) 별같이 헤어져선 못 살겠어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꽃은 향기라도 갖고 있지만 별은 멀리 떨어져 있기만 한 돌덩이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그는 이어 말합니다. 별에 대한 화자의 인식은 앞에서 언급한 「한국성사략」에서 송학 이후 별이 쉬이 소통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에 서 있습니다.


「석류 개문」의 내용은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화자에게는 젊었을 적의 혈기로 고백도 해보았던 아는 여인이 있습니다. 그는 고고함 때문인지 허세 때문인지 화자의 고백을 거절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다 늙고 나서 난데없이 그는 화자에게 친근하게 다가오기 시작하고, 화자는 이런 상황을 다소 우습게 바라보게 됩니다. '수두룩한 자네 딸, 잘 여무른 딸/ 상객(上客)이나 두루 한 번 가 보라시나?/ 건넛말 징검다리밖엔 없는 나더러/ 무얼 타고 신행길은 따라가라나?' 그는 여인더러 '공주님'처럼 굴고 '청빈한 선비'처럼 대할 때는 언제고 가진 것 없는 놈한테 갑자기 왜 잘 보이려고는 하나? 하고 놀리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로 수록된 「오갈피나무 향나무」의 화자는 자신의 집 '오시는 집 문전에' 오갈피나무와 향나무를 세우게 해 두고선 그 님과 단둘이서 살고자 합니다. 이것은 별로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특이한 것은 그렇게 문을 굳게 닫아놓고 단둘이서만 사는 일을 예찬하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방식은 다소 극단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두 번째 단락의 마지막 순서로 실린 작품은 「진영이 아재 화상」입니다. 화자는 시의 첫머리에서 마을 사람인 진영이 아재의 쟁기질 솜씨가 '이쁜 계집애 배 먹어 가듯' 했다고 말합니다. 이는 아마 그가 단정한 멋을 지닌 사람이었다는 비유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어 화자는 그의 모습을 그리면서 그가 싸리비 같은 구레나룻을 가진 강한 외모의 소유자였고 또 '소소리바람 위 원두막같이', '숭어 뛰노는 강물과 같이' 시원시원하게 살아갔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시의 마지막 구절인 '어깨너머 기우뚱 놓는 꼬누는/ 낱낱이 뚜렷이 칠성판 같더니.'라는 말은 앞의 내용과는 이질적이라는 느낌을 주는데, 지극히 건강해 보이는 그 또한 결국은 죽음 너머로 떠나가 버리는 존재라는 것을 내비친 장면은 아닌가 싶습니다. 놀이의 현장인 고누판에서 관 바닥에 까는 칠성판의 모습을 발견하는 이 구절은 사뭇 섬뜩하게 다가오는 구석이 있습니다.


5.


2부의 세 번째 단락인 '무제' 편에는 열다섯 편의 시가 실려 있습니다. 첫 번째로 실린 시 「가을에」는 맑은 가을에 청자에게 새로운 출발을 이룰 것을 독려하는 내용의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게

아직도 오히려 사랑할 줄을 아는 이.

쫓겨나는 마당귀마다, 푸르고도 여린

문들이 열릴 때는 지금일세.


오게

저속에 항거하기에 여울지는 자네.

그 소슬한 시름의 주름살들 그대로 데리고

기러기 앞서서 떠나가야 할

섧게도 빛나는 외로운 안행(雁行)- 이마와 가슴으로 걸어야 하는

가을 안행이 비롯해야 할 때는 지금일세.


작년에 피었던 우리 마지막 꽃- 국화꽃이 있던 자리,

올해 또 새 것이 자넬 달래 일어나려고

백로는 상강으로 우릴 내리 모네.


오게

지금은 가다듬어진 구름.

헤매고 뒹굴다가 가다듬어진 구름은

이제는 양귀비의 피비린내나는 사연으로는 우릴 가로막지 않고,

휘영청한 개벽은 또 한번 뒷문으로부터

우릴 다지려

아침마다 그 서리 묻은 얼굴들을 추켜들 때일세.


오게

아직도 오히려 사랑할 줄을 아는 이.

쫓겨나는 마당귀마다, 푸르고도 여린

문들이 열릴 때는 지금일세.


이 시는 마치 「꽃밭의 독백」에서의 '꽃'이 사소와 같은 이에게 문을 열어주려 하며 읊조리는 말 같다는 인상을 줍니다. 세상의 이치에 도달한 것처럼 느껴지는 존재인 화자는 청자에게 계속해서 오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청자는 모진 시련을 겪고도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은 존재이고, 저속을 거부하며 살아왔으면서도 그 태도를 분노가 아닌 정제의 자세로 이끌어간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자에 대한 이러한 묘사는 이와 같은 인품을 지녀야만 화자를 만나는 길목에 있을 '푸르고도 여린/ 문들'이 있는 곳으로 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 문들이 열리는 시기는 '지금', 곧 가을입니다. 가을은 작년에 피었다 졌던 꽃이 있던 자리에 새로운 꽃이 피는 시기, '피비린내나는 사연'을 담담하게 정리하고 '휘영청한 개벽'의 자연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마음을 달래고 또 다지게 만드는 시기로 설명됩니다. 다시 말해 가을의 자연은 우리를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인품이 될 수 있도록 '내리 모'는 역할을 해줍니다. 인품의 단련 과정은 또한 가을에 날아가는 기러기의 행로에도 비유됩니다. 그것은 '시름의 주름살들 그대로 데리고' '이마와 가슴으로 걸어야 하는' 힘든 길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출발의 날갯짓을 위해 거쳐야 할 수밖에 없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화자는 청자에게 그것을 기꺼이 독려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음 순서로 실린 시 「대화」는, 화자가 옆에 두고 있던 대추나무가 자신을 모르겠느냐고 묻기에 모른다고 대답했더니 하늘로 날아올라 죽은 연인의 호흡이 되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더라는 내용의 시이고, 이어서 수록된 「다섯 살 때」는 화자의 유년 시절의 한 장면을 그리고 있는 시입니다. 다섯 살 때 부모가 집을 비우고 혼자서 잠을 자던 화자는 순간 마치 바닷속으로 빨려가는 듯한 가위눌림을 당하던 끝에 가까스로 일어나 사립문 밖 개울가로 뛰어갔는데, 거기에서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본 물가에 미친 솜구름을 보며 어머니가 해 입혀준 적삼 같은 포근함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것이 '고독한 자의 맛에 길든' 최초의 기억이었다고 회상합니다.


네 번째에서 여덟 번째 순서로 실려 있는 다섯 편의 시, 「무제」, 「사십」, 「무제」, 「무제」, 「무제」는, 작품이 씌어진 계기와 관련해 시인 자신이 매우 흥미로운 고백을 털어놓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이 작품들은 1950년대 후반, 시인의 나이 40대 초반이던 때에 한 여성을 짝사랑하게 된 시기에 씌어진 시들입니다. 서정주는 그것에 관해 이렇게 털어놓습니다.


말하기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1956년이던가의 여름부터 나는 이미 내 나이 사십이 넘은 것도 잊기도 하고 또 속으로 한탄도 하면서 어줍잖게도 어떤 여자 대학생 한 사람을 그리워 못 견디는 병에 또 한번 빠지고 말아서, 위의 시 「무제」는 바로 그 일종의 정신적 지랄병을 나타낸 것이다. 나는 이런 연정의 지랄병을 상대에게 단 한마디도 말해 본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없었지만 속은 이걸로 한 3, 4년 좋이 타오르고 이걸로 시도 꽤나 많이 썼다. 위에 쓴 시 외에도 내 시집 『신라초』 속에 들어 있는 「사십」, 세 편의 다른 「무제」들, 「여수」, 「바다」, 「재롱조」 등의 시편들이 여기서 나온 것들이다. (…) 이 글을 보시는 독자 가운데서는 나더러 '이 죽일 놈……'이라고 격할 분이 있을 듯하다. 그러나 언행으로는 나타내지 못한 채로나마 이것이 이때의 내 마음속의 실상이었으니 어쩔 수 없이 사실대로 여기선 적을밖에 없는 것이다.(주3)


처자식을 둔 중년의 시기에 자기 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젊은 여성에게 연모의 감정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탄 없이 밝힌 시인의 고백은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게 다가오며, 더구나 비난 받을 것을 감수하면서도 자서전적인 글인 만큼 자신의 심정을 사실대로 적시할 수밖에 없었노라는 부연 역시 놀랍도록 진솔합니다. 이 솔직함이 서정주 문학의 한 원동력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당시 그는 이 연모의 감정을 시상 이외의 다른 어떤 것으로도 드러내려 하지는 않았습니다.(주4)


그렇기 때문이겠지만 이 다섯 편의 시에는 사랑의 감정을 덮어두고 난 뒤의 담담할 것 같으면서도 슬픈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무제」에서 화자는 말합니다. '마리아, 내 사랑은 이젠/ 네 후광을 채색하는 물감이나 될 수밖에 없네. (…) 그대 처음 내 앞에 이르렀을 땐,/ 초파일 같은 새 보리꽃밭 같은 나의 무대에/ 숱한 남사당 굿도 놀기사 놀았네만,/ 피란 결국은 느글거리어 못 견딜 노릇.' 그는 청자에게 일렁이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자신의 혈기를 가라앉혀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자신의 피를 갖다가 달여서 소주로 만들거나, 아니면 먹으로 만들어서 그의 후광을 채색하는 물감으로 쓰는 수밖에는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상대를 '후광'을 지닌 '마리아'로 지칭함으로써 그를 존중하려 하는 화자의 심리가 나타납니다. 「사십」 역시 같은 맥락의 시입니다. 화자는 어느 지당(池塘) 앞의 자리에서 '너'와 함께 나란히 앉아 있었지만, 그에게 자신의 솔직한 심사를 털어놓고 싶은 기분이 든 이후로는 일부러 지당과는 떨어진 꼬부라진 산보로를 택해 다니기로 합니다. 그러나 그와 머물렀던 지당 쪽에 한 번쯤 가보려는 생각도 가끔씩은 든다고 털어놓습니다.


또 다른 세 편의 「무제」는 화자의 사연이 앞의 시들에 비해 훨씬 은유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시들입니다. 그래서 보다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작품들이라고도 생각됩니다. 두 번째 「무제」는 망가질 듯한 화자의 심정을 종에 비유해 노래하고 있는 시입니다. 화자는 애타는 자신의 마음이 금이 간 종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깨지면 깨진 대로 얼얼히 울'더라도 '종이야 될 테지, 되려면 될 테지' 하며 자신의 처지를 다소 자학적으로 느껴지는 어조로 말하고 있습니다. 종에 대한 언급은 이전 시집들의 「상리과원」 등의 작품 속에서 종종 등장한 바 있는데, 이 시에서는 그것이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긍정적이기보다는 체념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게 다가옵니다.


세 번째 「무제」 역시 상실의 감정을 드러낸 시입니다.


하여간 난 무언지 잃긴 잃었다.

약질의 체구에 맞게

무슨 됫박이나 하나 들고

바닷물이나 퍼내고 여기 있어 볼까.


별에는 도망갈 구멍도 없고

호주 말로 마구잡이 달려간대도

끝끝내 미어지는 포장도 없을 테니!


여기 내 바랜 피 같은 물들

모여 괴어 서걱이는

이것 바닷물

되질하는 시늉이나 하고 있을까.


살 닿는 데 꾸려온 그런 거든가.

네 손이 짧거든 내 손이 길거나

내 손이 짧거든 네 손이 길 것을,

아무리 닿으려도 닿지 않던 것인가.

하여간 난 무엇인지 잃긴 잃었다.


생각해보면 상실감이라는 감정은 무언가 없어지거나 잃어버린 상태 자체와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감정인 것 같습니다. 가령 흔히 '사람을 잃었다'는 말을 쓰는데, 그 말의 의미는 실제로 그 사람과 헤어진 상태를 가리키기보다도 그로 인해 느끼게 된 황망한 감정, 사람 말고도 어떤 다른 것을 또 앗아가버린 듯한 느낌을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의 첫 구절인 '하여간 난 무언지 잃긴 잃었다'는 말은 이런 상실감의 성격을 절묘하게 집어내서 표현한 구절이라고 생각됩니다.


상실감을 느낌에 따라 화자가 크게 인식하게 되는 것은 비관적으로 현실적인 가치관입니다. 그는 자신이 '약질의 체구'라고 인식하게 되고, 아무리 멀리 달아나 봤자 완전한 도피의 공간도 없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바랜 피 같은 물들'이 괴어 있는 바닷물을 됫박으로 퍼내는 시늉이나 해볼까 하고 말해봅니다. 이러한 행동은 다소 희극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좀 거시적으로 말하자면 삶에서의 행동이라는 것이 다다를 수 없는 완전한 목표를 향한 극히 미약한 움직임일 수밖에 없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화자가 됫박으로 바닷물을 퍼내는 것이 황당할 정도로 파급력이 작은 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행하려 하는 것은, 그것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가 시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행동이며, 또 그나마 가치를 지닌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아무리 닿으려도 닿지 않던 것인가' 하며 닿을 수 없는 소망에 대한 절망감을 노래한 이 시는 앞서 보았던 신라 시편에서의 긍정적 의지와는 대치되는 시각이 담겨 있어 이채를 띱니다.


네 번째의 「무제」는 다른 「무제」들과는 내용이 좀 다릅니다. 화자는 산을 청자로 설정하여, 자신이 죽어 산에 묻혀 오랜 시간이 지나 풍화를 거치게 되면 산도 자신도 차돌이 되고 흙이 되어 갈 테니, '바람의 떼 못 떠나고 보채 쌓는 건/ 뺨 부비듯 결국은 그게 그거다', 즉 세사에 매달려 봤자 어찌 보면 그리 큰일도 아니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로서 그는 씁쓸한 감정을 애써 물리치고 마무리지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


열 번째 시 「시월유제」와 열한 번째 시「어느 늦가을날」은 자칫 지치고 안이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으려 하는 태도를 노래하고 있는 시라고 생각됩니다. 「시월유제」는 앞서 「가을에」에서 잠시 등장했던 기러기의 '가을 안행'을 주제로 잡고 있습니다. 화자는 '사색하고 고민하는 이마로써 길을 내 걸어가는' 기러기의 모습을 보면서, 여름내 잊혀 가던 자신의 '엽전 선비의 길'을 다시금 뻗치게 만드는 시월이 '내 새 안려의 길이 서슬푸리 열리는 달'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늦가을날」에서의 화자 또한 이와 비슷하게, 자신이 고단한 길을 지친 상태에서도 여지껏 가게 해준 것이 낡고 해진 신발과도 같은 의지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두 시 속에서 화자의 길은 '엽전'이나 닳은 신발과 같이 일면 자조적인 것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결국은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 길, 잠시 주저앉으면서도 가기는 해야 할 길로 말해집니다. 이 밖에 열두 번째 시 「추일미음」의 경우 역시 단순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가을 기운을 받고서 삶의 자세를 가다듬는 내용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밖에 「단식 후」와 「두 향나무 사이」는 연모의 감정이 지닌 에너지를 다시 주제로 다뤄 본 시들이라고 여겨지며, 「어느 날 오후」는 한낮의 서쪽 하늘에 '배를 깐 구름'이 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내용의 거의 전부인, 해석하기가 다소 난감한 시입니다.





1) 이광호, 「영원의 시간, 봉인된 시간」, 『환멸의 신화』(민음사, 1995).

2) 김우창, 「떠돌이의 귀향」, 『고전 강연』 8권(민음사, 2018).

3) 서정주, 「내가 가진 루비니 뭐니 그런 것들」, 『천지유정』(전집 7권, 은행나무, 2016).

4) 이와 관련한 이숭원 평론가의 언급이 인상적입니다. '이루지 못할 사랑이지만 그 사랑에 모든 것을 걸고 싶은 내면의 충동, 그 타고난 시인 기질을 미당은 40대 초반까지 밀고 나갔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행동을 20대 이래 지속되어 온 '감정의 지랄병'이라고 비하할 수 있는 이성적 균형감도 지니고 있었다. 이 양 측면의 기장 속에 미당의 시가 창조되었고, 그 긴장이 유지될 때 그의 탁월한 시가 창출되었다.' 이숭원, 『미당과의 만남』(태학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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