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피드백'에 대한 유쾌한 비판
디자이너라면 한 번쯤 이런 말을 들어봤을거에요. "좋긴 한데... 뭔가 덜 튀게? 근데 감성은 있어야 해요" 처음 들었을 땐, 그냥 웃었어요. 두번째 들었을 땐, 머릿속으로 무수한 색조합과 폰트를 떠올렸고, 세번째 부터는.... 그냥 이건 내 인생의 숙제다라고 받아들이게 되더라구요.
디자인 피드백이란게 원래 그렇죠.. 말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되는 말들이 수두룩 합니다.
* "좀 무게감 있게 해주세요" → 회색 계열로 정리하면 OK?
* "산뜻한 느낌으로 바꿔주세요" → 흰 배경+굵은 폰트?
* "더 감성적으로요" → 이건 사실 그냥 디자이너한테 맡긴다는 뜻....(?)
저는 이걸 '디자이너 번역기 모드'라고 부릅니다. 말 그대로 해석하지 않고, 말 뒤에 숨어 있는 의도와 맥락을 추론하는 능력인셈이죠.
회의 중 이런 상황, 자주 겪습니다.
* 기획자A : 좀 더 활기차게요!
* 기획자B : 근데 색이 너무 튀면 안될것 같아요.
* 대표님 : 감성적이긴 한데, 트렌디 해야하는거 알죠?
모두 맞는 말이고, 다르게 말하면 모두 기준이 다르다는 뜻이됩니다. 그리고 그걸 하나로 조율하는 사람이 결국 디자이너죠. 이럴 때 느껴요. 디자인은 단순히 결과물이 아니라 해석과 조율, 그리고 설득의 예술이라는 것을요..
사실 이렇게 여러 사람의 언어를 디자인으로 번역하다 보면 디자이너느 기획자보다 더 기획하게 되고, 마케터 보다 더 메시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만큼 배우는 것도 많지만, 반대로 디자인 자체에 집중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기도 해요. 처음엔 색 하나, 마진 4px 차이에도 심장이 뛰었는데, 요즘은 피그마에 손을 올리는 것보다 회의에서 말의 뉘앙스를 파악하는데 더 집중하고 있더라구요.
"디자인 잘했어요! 근데 다른 시안으로가시죠!" 이 말, 참 많이 들었습니다. 정말 잘 만든 시안 공들여 만든 그 디자인이 슬랙 이모티콘 하나 남기고 사라질 때... 그 시안이 나쁘지 않았다는 건 알지만 왜 아닌지 명확히 설명받지 못한 채 그저 '이번엔 이걸로 갑시다'라는 말로 마무리 될 때, 그럴 때면 문득 '나는 그냥 결과물 기계인가?' 싶은 순간이 참 많았습니다.
이런 혼란을 겪으면서 저는 깨닳았습니다. 디자인 자체보다 디자인을 둘러싼 커뮤니케이션과 흐름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요. 그래서 최근 부터는 모든걸 내가 안고 가기 보다는 내가 해야 할 디자인은 집중하고 내가 안해도 되는 디자인은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외부 파트너의 도움을 받는 것이였죠. 그중 저희 팀이 요즘 함께하고 있는 곳이 넥스트인 - NEXTIN 이라는 디자인 구독 서비스에요. 내가 방향만 잡아주면 알아서 반영해주는 느낌이라 생산성과 컨디션이 꽤 좋아졌습니다.
지금도 피드백은 어렵고, 여전히 모든 시안이 채택되진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덜 디자이너가 된건 아니겠죠. 오히려 점점 더 균형 잡힌 디자이너가 되어가는 중이라 믿습니다. 감성과 해설, 디테일과 조율, 그리고 팀워크 사이에서 오늘도 '덜 튀면서 감성적인' 디자인을 만들고 있으니까요!
모든 디자이너분들을 응원합니다 :)